2015년에 아델라이드 대학에서 은퇴한 박 교수 부부와 왕복 3,200km의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비행기로 호주의 최남단 도시 아델라이드로 갔다. 목적지는 호주 대륙의 중심이고 원주민들의 성지인 울루루-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고 하는 거대한 바위-이었다.
여행의 특징은 아무 부담이 없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나는 개미같이 부지런한 박 교수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그저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신뢰하거나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비록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부모를 무조건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은 행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신앙도 그런 것이다. 무조건 예수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과 모순이 따르는 것이다.
첫 날 800km를 달려 오팔 광산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영국이 7 차례나 핵실험을 했던 우메라를 지났는데 그날 밤은 인간들이 두더지처럼 땅을 파가던 동굴로 된 지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침대에 누워서 지구를 파괴할 원자탄을 만들고 보물을 캐기 위해서 땅 속을 헤매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을 지구는 과연 용서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 또 다시 800 km를 달려 마침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울루루에 도착 했다. 오는 동안 사람은커녕 동물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법적거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처럼 최소한 1,000 km 이상을 달려오거나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다. 단순하게 바위 하나를 보러.
왜 일까? 인간은 신비로운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대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생각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울루루 투어를 했다. 원주민들이 불과 100년 전까지 수 만년 동안 500억년이 된 이 거대한 바위에 은거하여 살았다고 한다.
과연 그들과 비행기와 차를 타고 온 우리들과 영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 그들은 자연과 , 현대인들은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주민들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영성을 느꼈듯이 현대인은 사회적 관계에서 영성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영성을 느끼지 못하다면 영적인 야만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기레 다시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땅을 800 km를 달려 첫날 밤을 보냈던 오팔 광산촌으로 돌아왔다. 너무 덥고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르고 파리만 달라붙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다. 파리가 얼굴에 붙어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두 들어가려 해서 망사천을 뒤집어 쓰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막에 사는 파리는 본능적으로 습기를 찾아 눈 코 입으로 사정없이 파고드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 사실은 모든 면에서 내가 따라갈 수 없는 하버드 박사 출신인 박 교수의 방향감각이 영 형편이 없어서 몇 번이나 뻔 한 길에서 헤맬 뻔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나는 본능적으로 택시 운전사의 감각을 타고 태어났다.
여러 사람이 여행을 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이 의견 차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모든 것을 박 교수에게 맡기기로 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해본 박 교수가 조정사로 단거리에 능한 나는 부조종사로서 조종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애초에 연료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운전대를 넘겨받고서 100 Km 정도 갔을 때 다음 마을까지는 아직도 150 Km 정도 남았는데 바늘 눈금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에어컨을 끄기로 하고 속도를 낮추기로 했다. 목적지를 100 Km로 정도 남겨 놓고 다시 운전대를 주조종사인 박 교수가 잡고서 숨을 죽이고 전진을 했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창문을 닫은 채로 에어컨을 끄고 달리니 차 안의 공기는 곧 뜨거워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폐가 약한 아내는 호흡이 곤란해서 억지로 참았다고 했다. 드디어 목적지가 50 Km 정도 되는 거리에서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는 과연 불이 들어온 후 얼마를 달릴 수 있을가가 관건이었다.
만일에 나무 한 구루 없는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서 차가 서 버린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집과 사람은커녕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 곳에서 설령 운 좋게 차를 만난다고 해도 장비가 없어서 그 차의 기름을 어떻게 우리 차에 넣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전화도 물론 안 된다. 나는 운전을 하는 박 교수가 긴장을 하지 않도록 짐짓 여유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에 차가 선다면 박교수는 차를 지켜야하고 내가 기름을 얻으러 가야 하는데 정신은 건강하지만 육체는 허약한 내가 도저히 40도의 더위 속에서 걸을 자신이 없었다.
조마조마 상태로 약 30분을 달려서 멀리서 목적지가 보이자 마음속으로 “조그만 더! 조그만 더!” 하고 차를 응원을 했다. 다행히 차가 서지 않고 다음 동네 주유소까지 굴러갔다. 그야말로 구사일생! “할렐루야!"가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기름을 넣을 때 조끔씩 조끔씩 기름이 넘칠 때까지 주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