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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리운 102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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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에서 사실 타자라는 말만큼 빈번히 사용된 개념도 없을 겁니다.
타자는 'the other'라는 표현을 옮긴 한자어입니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타他'라는 용어가 자신을 나타내는 '자自'라는 글자와 대립해서 사용되었습니다. 불교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자타불이自他不二'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이것은 "나와 타자가 둘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깨달은 사람의 최고 경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깨달은 자는 남의 고통을 슬픔, 나아가 기쁨마저도 나의 일처럼 느낀다는 것이지요.
타자라는 용어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 혹은 낯선 사람이 그 자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낯선 사람은 오직 '나'에 대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어떤 사람이 다르거나 낯설어 보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타자라고 부른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사람을 다르거나 낯설게 바라보게 될까요? 아마도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타자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의 신비는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을,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데도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점차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오직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이 나 자신과는 너무나 다르고 낯설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결국 사랑에 빠진 우리는 기묘한 비대칭 상태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여기서의 비대칭은 자신의 욕망과 느낌은 나름대로 알고 있지만, 반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과 감정 상태는 거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요.
이 때문인지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무한정 기다린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알려면 우리는 기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원재훈 시인이 비가 오는 날 은행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느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감정일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행복이기도 합니다. 기다림이 고통인 이유가 그 사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면, 행복인 이유는 그 사람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릅니다.
시인에게 기다리는 사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우주의 시간처럼 기다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대는 올 줄 모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지고, 그 반대로 사랑하는 그대는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시인은 기다리는 그대를 강제로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대는 끝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요. 당연히 그대에게 느꼈던 시인의 '어찌할 수 없음'은 더욱 커져만 가겠지요. 타자에 대한 심한 무기력을 느끼는 수동적인 시인은 비가 오면 젖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푸른빛을 띠는 수동적인 나뭇잎이 되어 가는 듯한 느낌, 하염없이 작아진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사랑하는 타자를 기다리는 시인의 속내가 전달되나요?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면 레비나스(Immanuel Levinas, 1906~1995'라는 철학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레비나스라면 비오는 날 은행나무 아래에 서 있는 시인의 마음을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인이 지금 유한성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그것은 시인의 그대가 무한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그대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중, "무한으로서의 타자, 레비나스와 원재훈" 중에서
6시간을 버텨야 하는 야간자율학습 감독의 긴 밤을 가뿐히 넘겨줄 읽을 거리가 필요해 도서실을 어슬렁거리다 이 책을 뽑아들었다. 강신주는 요약을 참 잘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점은 철학자의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짚어내면서 그 문제의식을 화두로 어떻게 사유를 전개시켜 나가는지를 몇 쪽 되지 않는 지면에 또렷하게 집약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개론서 쓰기가 가장 힘든 법이다. 핵심과 더불어 맥락을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어려운 개념들을 쉽게 풀어 전달하면서도 사유의 뜨거움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중적 글쓰기의 필력은 독보적이라 느낀다. 벙커에서 강신주의 강연을 직접 듣기도 했고 동영상 강의도 빠짐없이 보곤 했지만, 그의 강연보다는 글이 훨씬 더 진중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런 강신주가 시를 철학으로 읽어내겠다고 하니... 철학이야 익히 확인한 바 있지만 시에 대한 감수성은 어떠한지,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매번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진다. 사실이 아닌 의미의 탐구... 인문학의 대표 주자가 바로 예술과 철학이다. 그리고 단연코 예술의 최정점은 시다. 감성과 이성의 만남 속에서 어떤 글쓰기가 피어날지 궁금했다. 그리고 수업을 위한 재료를 건질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프롤로그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시인이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온갖 물고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라면, 철학자는 그물로 끌어올린 물고기를 다시 확인하고 만져보는 사람입니다."
이성복 시인은 말한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시인의 생각이 타당하다면, 예술은 사실과 안전으로 상징되는 친숙한 세계를 뒤흔들어 느낌과 위험으로 가득 찬 낯선 세계가 도래하는 길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한 시인이 자신의 시로써 독자들의 친숙한 내면을 와해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겉만 시인일 뿐 진정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중략)... 철학 역시 "삶을 낯설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이야기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로서 문학, 특히 시와 철학은 동일한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이 느낀 것은 기존의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낯선 상처 혹은 어떤 감각입니다. 시는 기존의 말로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말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를 발생시킵니다. 이 때문에 시가 어려운 것입니다. 새로운 말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말을 강제했던 시인의 낯선 감각도 공감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인의 생경한 표현에 충분히 적응하면 놀라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과거와는 다른 느낌으로 세계를 보고, 그에 따라 삶을 새롭게 영위하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느낌을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을 억지로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더듬거리는 말처럼 우리가 입속말을 웅얼거리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반면 철학은 개념을 창조하고 그것을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학문입니다. 어떤 철학지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그것을 새로운 그물로 엮는 이유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사유 문법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의 그물코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시는 가장 주관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이 들어갔던 물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나 시인이 느꼈던 낯선 물고기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반면 철학은 가장 보편적인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주관적이기도 합니다. 철학자가 만든 특정한 그물을 물속에 던지면 그것에 딱 어울리는 특정한 물고기만 잡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의 힘이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가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정서의 형성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강신주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정서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적인 자극과 충격을 함께 제공해 줄 것이라 생각되는, 현대 철학자 21명과 현대 시인 21명을 함께 짝지어 놓았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더불어 화두가 된 시의 제목을 옮겨본다.
1. 기쁨의 연대 - 네그리와 박노해, "인다라의 그물"
2. 언어의 뼈 -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소리의 뼈"
3. 사유의 의무 - 아렌트와 김남주, "어떤 관료"
4. 삶의 우발성 - 알튀세르와 강은교, "물길의 소리"
5.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즘 - 바타이유와 박정대,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6. 소비사회와 유혹 - 벤야민과 유하, "오징어"
7. 무한으로서의 타자 - 레비나스와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 그리운 102"
8. 망각의 지혜 - 니체와 황동규, "꿈, 견디기 힘든"
9. 미시정치학 -푸코와 김수영, "하..... 그림자가 없다"
10. 대화의 재발견 - 가라타니 고진과 도종환, "가구"
11. 밝음의 존재론 - 하이데거와 김춘수, "어둠"
12. 주름과 리좀의 사유 - 들뢰즈와 최두석, "성애꽃"
13. 애무의 비밀 - 샤르트르와 최영미, "차(茶)와 동정(同情)"
14. 작고 상처받기 쉬운 것들 - 아도르노와 최명란, "아우슈비츠 이후"
15. 해탈을 위한 해체론 - 데리다와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16. 미래 정치철학의 화두 - 아감벤과 한하운,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
17. 육화된 마음 - 메를로 퐁티와 정현종, "섬"
18. 포스트모던의 모던함 - 리오타르와 이상, "AU MAGASLN DE NOUVEAUTES"
19.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 - 바디우와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20. 인정에 목마른 인간 - 호네트와 박찬일, "팔당대교 이야기"
21. 한국 사유의 논리 - 박동환과 김준태, "길 - 밭에 가서 다시 일어서기1"
철학자들의 면면은 별 다르게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 사유들을 시와 결합시킴으로써 철학자들의 사유가 현실에 더욱 밀착하는 현실감을 얻게 된다. 시에 대한 강신주의 해설 역시 만족스럽다. 잘 읽히고, 또 잘 스며든다. 이성과 감성의 얽혀듬이 무리가 없어 시집 한 권을 읽어낼 때의 망연함과 머뭇거림이 덜하고, 철학서 한 권을 읽어낼 때의 긴 호흡의 장거리 긴장이 느슨해지니...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수위의 여가다.
하지만, 다시 원서가 읽고 싶어진다. 소개서, 개론서로는 충족되지 않는 철학자들의 육성의 깊이가 그리워진다. 꽤 오래 공부를 쉬었던게다. 슬슬... 다시 돌아가고 싶은걸까?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국내 저서, 시인이 시집, 철학자의 원저서가 꼼꼼하게 소개되고 있으니 그렇게 강신주의 안내를 따라 시인과 철학자의 육성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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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에 담아 둘 책들
레이 몽크, 남기창 옮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천재의 의무>, 문화과학사
알튀세르, 권은미 옮김,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이매진,
서관모, 백승욱 옮김, <철학에 대하여> 동문선
강은교,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문학사상사, 2002
바타이유, 조한경 옮김, <에로티즘의 역사>, 민음사, 1998
레비나스, 양명수 옮김, <윤리와 무한>, 다산글방
원재훈, <그리운 102>, 문학과 지성사, 1996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문학과 지성사
가라타니 고진, 송태욱 옮김, <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2005
하이데거, 신상희 옮김, <동일성과 차이>, 민음사, 2002
존 라이크만, 김재인 옮김, <들뢰즈 커넥션>, 현실문화연구
최두석, <성에꽃>, 문학과지성사, 1990
서동욱, <차이와 타자>, 문학과지성사, 2000
아돌노, 김유동 옮김, <마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길, 2005
최명란, <쓰러지는 법을 배우다>, 랜덤하우스코리아
김상환, <해체론 시대의 철학> , 문학과지성사
오규원, <오규원 시 전집>, 문학과지성사
데리다, 김상록 옮김, <목소리와 현상>, 인간사랑
김항,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새물결, 2009
제이슨 바커, 염인수 옮김, <알랭 바디우 - 비판적 입문>, 이후,
악셀 호네트, 강병호 옮김, < 물화 - 이정이론적 탐구>, 나남
김준태, <지평선에 서서>, 문학과지성사
박동환, <안티호모에렉투스> ,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