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유독 장마가 길어졌습니다. 평균적으로 장마는 중부지방 기준 6월 24일 정도에 시작되어, 7월 24일 정도에 종료되는 특성을 가지는데, 올해는 8월까지 장마가 이어졌고 집중호우도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기상백과에 따르면 장마의 어원은 ‘댱마’(長)+‘맣’으로 ‘긴’ ‘오랜’이란 뜻의 한자어 ‘장’(長)과 ‘비’를 의미하는 ‘마ㅎ’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즉,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 장마를 ‘메이유’, 일본에서는 ‘바이유’라고 부릅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로 장마의 발음은 조금 다르지만, 한자로는 ‘매우’(梅雨)로 같은 글자입니다. 매화(梅花) 열매가 익을 무렵부터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지요. 올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모두 장마 동안 강한 집중호우로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마는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요?
먼저 비가 내리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공기를 구성하는 것은 대부분 질소(78.03%)와 산소(20.95%)인데, 분자량은 29g/mol 정도로 수증기(H2O)의 분자량 18g/mol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즉 습한 공기일수록 가벼운 것입니다. 보통은 비라고 하면 물이 떨어지는 현상이니까 공기가 무겁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실제로 습도가 높으면 몸이 처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공기가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는 가벼워서 상승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공기 속의 수증기가 응결됩니다. 마치 차가운 음료가 담긴 캔이나 병 겉면에 물이 고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렇게 응결된 수증기인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현상을 비(강수)라고 하지요.
장마 기간 동안 구름띠, 정체전선, 북태평양 고기압, 하층 수증기 유입 및 상층제트의 위치. (출처 : 기상청 장마백서)
앞의 그림에서 보듯이 여름에는 주로 우리나라 남쪽에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위치하고 그 고기압을 따라 열대 지역에서부터 다량의 수증기가 한반도로 유입됩니다. 반면 대기 상층에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자리합니다. 그런데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상승하면서 점점 온도가 내려가서 응결하기도 하지만, 대기 상층에 차가운 공기가 자리하면 갑자기 많은 양의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장대비를 뿌리게 됩니다. 대기 하층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대기 상층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맞닿은 부분이 위의 그림에서 표현된 정체전선(장마전선)이고, 큰 공기의 기단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하며 위도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걸리기도 하고 남부지방에 걸리기도 합니다.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과 역대급 장마
지난 글에서 소개한 ‘시베리아 산불’ 기억하시나요? 작년 여름과 올해 여름 시베리아 지역에 폭염이 지속하면서 전례 없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는데, 유난히 강하고 긴 이번 장마가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 현상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지구상 가장 기온이 낮은 곳으로 꼽히는 시베리아에서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하면서 6월 평균 기온이 30도를 넘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기온이 38도를 넘어서기도 했지요.
이 같은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은 기압계의 ‘블로킹’ 현상과 맞물려 발생했습니다. ‘블로킹’이란 고기압이 정체되거나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농구나 배구의 ‘블로킹’ 같이 통상적으로 중위도 지역에서 동쪽으로 흘러가야 하는 고기압/저기압 패턴(기압계)이 정체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시베리아 지역의 경우 여름철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 구름이 없고 일사량이 많아지면서 온도가 올라가는 특성을 보이는데, 올해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 주변 기압 배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베리아의 ‘블로킹’ 현상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기 상층의 찬 공기가 계속해서 정체되었고, 이 공기가 열대 지역에서 유입되는 수증기와 만나 평년보다 집중호우가 더 강하게 발생한 것으로 기상청은 분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7월 말이 되면 장마전선이 한반도 북쪽으로 이동하여 장마가 끝나지만, ‘블로킹’ 때문에 길이 막혀 계속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머물면서 폭우를 쏟아냈다는 얘기지요.
6월 하순께 동시베리아와 우랄산맥 바이칼호 부근에 블로킹이 발생하여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를 가두어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을 막았으며, 그 결과 정체전선(장마전선)이 한반도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폭우를 쏟아냈다고 기상청은 분석했다. (자료: 기상청 제공)
지구온난화의 영향
앞서 말씀드린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 현상은 지구온난화 현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북극의 해빙이 많이 녹았기 때문에, 알베도 피드백이 강하게 작용했고 다른 지역보다 더 심각한 이상고온 현상을 보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는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해드리자면, 극한(extreme) 강수의 빈도나 강도는 확률이 점점 높아질 뿐 아니라 가뭄 발생에 대한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폭염과 가뭄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동시에 올해처럼 집중호우가 강해지기도 한다는 것인데 강수량의 평균값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사회 경제적 피해는 매우 극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문제는 영화 <기생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재해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더 큰 피해와 이재민을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진국들은 이산화탄소를 이미 많이 배출했으면서 다른 나라들을 견제하려 들고, 개발도상국들은 집중호우나 폭염, 한파 등 기상재해 발생시 국민들이 입는 피해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그리고 우리 손에 의해서 오늘도 꾸준히 이산화탄소 배출이 진행되고 기후변화와 기상재해가 발생한다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김진수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대기과학) 재학시절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와 기후변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포항공대를 거쳐 현재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엘니뇨와 같은 이상기후 현상과 탄소순환, 기후변화 등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4월부터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으로 임용되어 북극과 고위도 기후연구를 진행한다.
첫댓글 극한 강수의 빈도나 강도는 확률이 점점 높아질 뿐 아니라 가뭄 발생에 대한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데ㅜㅜ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구촌은 이렇게 하나의 연결고리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거군요. 선진국 사람들은 가장 편리하게 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떠안는 모순..ㅜ
지구온난화,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