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리 여행8 - 강남의 수향 퉁리고진에서 나성주를 생각하고 운하를 구경하다!
어제 2023년 10월 27일 쑤저우 에서 지하철을 타고 옛 수향 마을인 퉁리(同里 동리)
에 도착해서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퇴사원 (退思园) 과 진주탑경원
(珍珠搭景圓) 에 숭본당을 구경하고 밤에는 퇴사원 벽에 비추는 빛의 쇼 를 보았습니다.
하룻밤을 자고는 10월 28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하 로 나가니..... 벌써
관광객들이 밀어닥쳐서 운하에서 배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놀랍니다.
퉁리 고대 마을 (Tongli Ancient Town) 은 호수로 둘러싸인 매력적인 수로마을로 강남 수향 마을
중에서도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니...... 퉁리의 볼거리는 1월 2당 3교 이며
소교유수인가 (小橋流水人家) 라는 말이 있으니 작은 다리, 흐르는 물에 주민가옥이란 뜻이랍니다.
이 오래된 마을에는 "나성주" 라고 있으니.... 동리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으로
세개의 종교가 혼합된 사원 으로 중국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곳이라고 합니다.
나성주 섬 에 도착하면 대웅보전이 있는 불교 사원 을 만날수 있으며..... 아기자기한
사원들과 잘 가꾸어진 화원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은 장소인가 합니다.
운하를 구경하면서 보니 자전거 차인 쌈러 를 모는 사람이 있는데, 길을 둘러가면 멀다고 생각했는지
홍예교를 건너는게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둥글게 생긴지라 넘어 오는데 애를 먹는 모습을 봅니다.
문득 어제 퉁리에서 수학여행 을 온 건지 수백명의 중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것을 보았던 생각이 나는데
권지언 특파원이 뉴스핌에 올린 글 “한국, 양육비 가장 비싼 나라.... 2위는 중국” 이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전 세계에서 양육비가 가장 비싼 나라로 한국 이 꼽혔다. 30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SCMP)
는 최근 베이징 인구·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위와인구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18세까지 자녀를 기르는데 드는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나라는 한국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녀를 18세 까지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 (GDP) 의 7.79배
로 세계 에서 가장 비쌌다. 한국에 이어 양육비가 비싼 곳은 중국으로 GDP의 6.9배 가 드는 것으로
확인됐으니 GDP 의 3.64배가 드는 독일 이나 2.08 배인 호주, 2.24 배인 프랑스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위와인구연구소는 중국에서 자녀를 한명 낳아 17세까지 기르는 데 48만5천위안(약 9천400만원)
이 들며, 대학 졸업 까지 시킬 경우에는 62만7천위안(약 1억2천만원) 이 든다고 추산했다.
이어 도농 격차도 극심해 중국 도시에서 자녀를 17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63만위안 으로 농촌의 두 배 이상 이라고 밝혔다.
운하를 거닐다 보니.....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 수' 칼럼에 쓴 “양귀비의 죽음”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북방의 말과 무소 갑옷으로 무장한 반란군이 지축 흔들며 쳐들어오자,
황제는 양귀비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자신도 결국 재가 되었지.
군왕으로서 진작 그녀가 나라 망칠 줄 알았더라면,
황제의 가마 굳이 마외(馬嵬) 언덕을 지나 피란 갈 일 있었겠는가.
(冀馬燕犀動地來, 自埋紅粉自成灰. 君王若道能傾國, 玉輦何由過馬嵬.)
―‘마외(馬嵬)’ 제1수· 이상은 (李商隱· 812∼858)
당 현종 이 총애한 양귀비 가 죽음을 맞은 건 안녹산의 난 직후 피란길에서였다. 그녀의 죽음
에 얽힌 역사의 기록. 피란 이틀째, 황제 일행이 마외 언덕길에 다다르자 호위
하던 금군(禁軍) 이 ‘반란의 화근 ’ 인 귀비를 죽이지 않으면 발길을 떼지 않겠노라고 했다.
이에 황제도 어쩌지 못하고 귀비와 결별을 고했고 환관 고력사(高力士) 가 귀비를
불당으로 데리고 가 목을 졸랐다.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시인은 마외
언덕에서의 변고를 떠올리며 미색에 취해 국사를 망친 현종 을 호되게 질타한다.
군주로서 경국지색(傾國之色) 을 경계했다면 난리를 초래하지도, 또 피란길에 나설 필요도
없지 않았냐는 것이다. 연작시로 된 제2수의 풍자는 더 신랄해서 ‘왜 사십여년
이나 황제 노릇을 했으면서, 아내 막수(莫愁) 를 챙겨준 평민 노씨 보다도 못한가’ 라고 했다.
한편 양귀비에 대한 시인 묵객들의 찬사, 황제와의 비극적 사랑을 안타까워 한
노래도 넘쳐나는데, 그중의 백미(白眉) 는 백거이의 ‘장한가 (長恨歌)’.
시인이 장장 840자를 할애하여 저들의 사랑을 동정하고 찬양한 장편 서사시다.
양귀비를 ‘후궁 미녀 삼천 명이나 되지만, 삼천명 받을 총애를 한 몸에 다 받았다’
라고 묘사했고, ‘하늘과 땅 장구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이들의
한(恨), 면면히 이어져 끊일 날 없으리라’ 며 그 애틋한 사랑을 못내 아쉬워했다.
아침 일찍은 시간 인데도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니 이 사람들은 잠도 자지
않고 관광을 다니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들 보다도 늦게 나온 청소부 들은 나룻배를
타고 나타나니 한명은 노를 젖고 다른 한명은 뜰채로 부유물들을 수거하는 모습을 봅니다.
나룻배를 바라보다가 문득 동아일보 객원 논설위원이자 소설가인 김금희씨가 동아일보
에 쓴 “칭다오 맥주 : 칭다오에서 만난 한글 ‘노스탤지어’ ”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한국문학 번역원의 번역 워크숍 사업 일환으로 중국 칭다오 에 다녀왔다. 산둥과학기술대
에서 한국어 공부 를 하는 학생들과 교수님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 소설을, 번역이 아니라 한글로 읽은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어느 면에서 보면 작가는 언어의 물길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한글
로 매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내면서 독자들이 자기만의 기쁨과 즐거움, 성장을
누리기를 원한다. 한국의 작가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한글이 서 있는 자리 이기도 한 것이다.
번역작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은 십여년 전 칭다오에 다녀온 기억이 배경 처럼 들어가 있는 소설이었다.
삼수생인 주인공 ‘나’ 와 모두가 부러워하는 의대에 입학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는 친구의 아픈
성장담이 들어 있는 이야기 였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구도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
그것이 단지 교육뿐 아니라 이 체제 전체에서 일어나는 얼마나 위험한 폭력성 인지를 다룬 소설 이었다.
요즘 중국 대학생들은 대체로 학사 졸업 뒤 대학원에 진학 한다고 했다. 취업 시장이 어려워지자
한국 처럼 일종의 ‘스펙 경쟁’ 에 돌입한 것이었다. 공무원으로 취업하는 데도 대학원
졸업장 이 도움이 되니 나만 하지 않을수도 없고..... 이렇게 점점 더 서로 힘겨운
경쟁으로 ‘말려들어가는’ 현실을 가리키는 ‘네이쥐안(卷)’ 이라는 신조어도 유행 중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식사를 하며 주말 에는 뭘 하나요? 라고 물었을 때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요” 라고 대답했다. 학생 한 명은 한국에서 일 년간 유학 생활을 했는데...... 그 사이
MBTI (성격심리검사) 가 ‘내향인’ 에서 ‘외향인’ 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유럽권 학생들과 번역 워크숍을 했을때 한국어 중에 ‘문득’ 이라는 단어가 와닿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존재하지 않던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 생각의 맥락을
이성적으로 파악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의 힘이 밀어올린 인식의 변화를 느끼는
단어가 ‘문득’ 이라면 적어도 그 학생에게는 그런 연상 작용 이 영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 당시의 기억이 나서 학생들에게 확인해 보자 ‘문득’ 에 대해서는 전혀
이질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감정 이었으며 중국어
로도 충분히 번역이 가능했다. 우리는 한국어 ‘문득’ 을 이해하는 이웃들이었다.
여정중에 한인(韓人) 들과 중국 동포들이 모여사는 청양구도 방문했다. 십여년 전, 한국의 신도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라 나를 놀라게 했던 곳에 더 높은 건물이 서고 개발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년간
한국 기업체가 철수 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7만명이었던 한인타운 인구는 2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한국어학과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럼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청양에도 한글이 모여드는 샘물 같은 도서관 이 있었다. 한인타운 중심가에 자리한 칭다오경향
도서관 에 들어서니 오천여권의 한국 책들이 번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아이들은 멋진 사시나무가 인사하는 이층 창을 보며 한참 동화책을 골랐다.
민간이 운영하는 이 도서관에서는 한글 학교 를 열고 사람들에게 한국 책을 무료로 빌려 주고 있었다.
독서 모임 을 열어 책 이야기도 하고 더 나아가 글도 써보는 공간 이었다. 부모가 한국에 일하러
간 뒤 혼자 자취하며 지내는 어린 학생이나, 직장 때문에 갑자기 중국에 오게 된
한국인, 한국과 중국 다문화 가정 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이 모여드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중국 동포 청소년들이 한글로 시나 소설 을 쓰고 있다는 말에 기대감이 몰려왔다. 그들이 중국
과 한국에서 느낀 모든 것이 문학으로 쓰인다면 한글의 또 다른 물길을 만들어내는 것 일 테니까.
도서관에서는 동포 고등학생이 직접 쓰고 묶은 시집 을 선물로 주었다. 제목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인 ‘노스탤지어’ 였고 시집의 마지막 말은 “기어이 혜성이 되자” 였다. 때론 사회
체제나 정치적 역학 관계가 세상의 전부인 듯 느껴지지만...... 사실 그 세계를 이루는
수없이 많은 개인들이 서 있음으로 해서 결국 세상은 그와 다르게 흘러가고야 만다는 생각을 한다.
단언적으로 말하면 비관은 세상을 단순화 하지만 낙관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변화 시킨다.
그러니 한중 모두 오랫동안의 이 친근감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더 가까이 걷는 자리에 한글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문득문득’ 한몫을 하고 있으리라고 나는 희망을 품으며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제 강남의 10대 수향 마을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저우좡(주장) 으로 가야 하는지라....
배낭을 챙겨 기다리니 호텔 여직원은 오지 않고 2~3 분지나 어떤 나이든 아저씨 가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