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다케시타(竹下登)가 총리였던 시절, 일본국회 예산실의
의원회의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질문에 나선 公明黨의 오쿠보(大久保直彦)의원이 난데없이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대정부질문중의 돌연한 움직임에 멈칫했던 장관들과 의원들은 낭독이 계속
되면서, 그것이 한편의 童話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가 반구비쯤 넘겼을
무렵, 좌석 여기저기에 손수건이 등장했다. 눈물을 훔치기 위해서다.
그리고 15분간의 낭독이 끝나자, 회의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장관이건 방청객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편을 가를 것이 없이 모두가 눈시울에,
뺨에 흐르는 눈물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독 큰소리로 엉엉 울어 [靜肅요망]이란 경고메모까지 받은 것은 가네마루
(金丸三郞)총무처장관. 탁자에 쌓이던 몇 차례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룩
주룩 눈물을 흘렸던 가네마루장관은 회의가 끝난 후 [오랜만에 실컷 울었다]고
조금은 멋쩍어했다.
국회를 울리고, 거리를 울리고, 학교를 울리고, 결국은 일본전체를 울려버린
[눈물의 피리]가 바로 [우동 한 그릇]이라는 동화다.

삿뽀로의 時計臺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듣다가 눈물 때문에 앞이보이지않아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거짓말 같은 체험담까지 등장한다. 몇 달 전의 주간지가 [우동 한 그릇 揭載號] 라는 광고
하나로 불티나듯 팔려나간다. 주간지 표지에는 [편집부원도 울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작가]구리 료헤이(栗良 平)의 목소리에 실린 동화테이프가 1백만 개 넘게 팔려 나가고 있다.
감격에 굶주렸던 풍요한 일본인들에게 [우동 한 그릇]은 참으로 오랜만에 [감동연습] [落淚
연습]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신문이 [울지 않고 배겨 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도 한번 읽어 보라]고 추천한 [우동 한 그릇]의 사연을 쫒아 가보자.

北海道 舊 道廳廳舍
눈 많기로 이름난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北海道)의 우동집 北海亭. 오가는 발길로 붐비던
섣달그믐날의 거리도 밤 12시를 넘기자 인적이 뜸해졌다. 설날차비를 위해 일손들도 서둘러
돌려보내고, 하루 일을 마감하려 할 무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열렸다.
포장을 위로 젖히며, 두 사내아이의 손을 잡은 채 젊은 티가 그대로인 한 여자가 가게 안에
들어섰다. 두 꼬마는 여섯 살 열삼쯤 됐을까. 엄마는 유행이 지난 낡은 반코트, 사내아이들은
설빔으로 장만한 듯 한 운동복차림. 여느 손님과 달리 쭈뼜쭈뼜하던 엄마가 마치 어려운
부탁이라도 꺼내듯 주문을 했다.
“ 저...우동...한 그릇만 시켜도 되나요? ”
이 순간 엄마의 등 뒤에 숨어 있듯하던 두 꼬마의 걱정스런 눈길이 여주인의 얼굴에 부딪쳐
왔다. “그럼요, 그럼요...어서 앉으세요” 일부러 예사 때보다 흥을 낸 여주인은 세母子를 난로
옆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며, 주방을 향해
“우동 한 그릇” 하고 외쳤다. 아까부터 늦은 밤의 손님과 아내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방속의
남자주인은 “우동 한 그릇...” 하고 따라 외치며, 우동국수를 손에 잡았다. 보통 때의 1인분에
伴人몫을 더 얹어, 데우기 시작했다. 금방 데운 우동국물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우동
한그릇을 놓고, 세모자는 이마를 모았다. “맛있네” 하는 형을 뒤따라, 동생은 젓가락으로
우동국수를 감아 엄마 입으로 가져갔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운 세모자는 우동값 1백 50엔을
치르고, “ 잘 먹었어요”라며 문 밖으로 나섰다. 눈길을 밟아가는 세모자를 향해 여주인은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라며 인사말을 던졌다.

분주하던 한해가 눈 깜작할 사이에 지나고, 다시 맞은 그해 섣달 그믐날밤. 이제 일을 걷어야지
하며 가게 안을 챙길 무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열렸다. 엄마와 두 꼬마. 엄마의 낡은
반코트차림에서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는 여주인에게“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되겠어요? ”라며
미안한 듯 주문을 해왔다. 여주인은 “그럼요, 그럼요” 라고 선선하게 응답하며 작년의 그 자리
난로옆 2번 테이블로 모자를 이끌었다. “우동 한 그릇” 하고 크게 외친 여주인이 남편에게
다가가 “서비스하는 생각으로 세그릇분을 데워요” 라고 귀엣말을 건네는 것이 난로 옆에서
언 손을 녹이던 세모자에겐 들리지 않았다.
“ 안 돼. 그럼 오히려 불편할거야...” 하는 남편의 대꾸도 물론 작은 목소리였다. 곱절 분량의
우동 그릇을 마주한 세가족은 “맛있네...” “올해도 北海亭에서 우동을 먹은 거야...”라고 주고
받더니, 우동값 1백50엔을 치루고 자리를 일어섰다. “ 다음에 또 오세요. 복많이 받으세요”
라는 여주인의 인사가 찬바람을 가르며 몇 차례나 이들 모자 일행의 어깨위에 얹혀졌다.

어느새 닥친 섣달 그믐날, 가게 주인부부는 서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밤이 이슥해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레었다.
남편은 [우동 2백 엔]이라고 적힌 나무로된 가격표를 뒤집어 걸었다. 올 여름 값을 올리기
전의 정가인 [우동 1백50엔]이란 가격표로 바꿔 건 것이다. 난로 옆의 2번 테이블에 [예약석]
이란 표찰을 올려놓은 것은 안주인이었다.
형은 중학교교복차림,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었던 듯 한 잠바를 입고, 엄마 손을 잡은 채 가게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10시를 넘어서였다.
“ 저...우동 두그릇만 시켜도 되겠어요? ” 라는 엄마를 2번 테이블로 안내한 여주인은 [예약석]
이란 표찰을 슬그머니 치워 등 뒤로 감췄다. “우동 두그릇”하며 외치는 아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남편은 아내와 눈길을 맞추며, 3인분의 우동국수를 더운물에 집어넣었다.
무뚝뚝한 남편과 조금 수다스런 아내가 따뜻한 눈길로 2번 테이블을 감싸고 있는 사이, 세모자가
주고받는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가 귓전에 와 닿았다.
“엄마가 할 이야기가 있단다...”
“하실 이야기라니요? ”
“실은 말이야 돌아가신 아빠가 낸 교통사고 있지 않니. 그 때문에 여덟 사람이 다쳤거든. 보험만
으론 피해보상을 다 할 수 없어 엄마가 다달이 5만 엔씩을 갚아왔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말야. 내년 3월까지 갚아야했는데, 이달로 다갚게 됐단다”
“엄마, 그게 정말이야?”
“그럼, 넌 신문배달까지하고, 淳(동생)이는 심부름이다, 저녁준비까지 도와주는 바람에 안심하고
회사에서 일을 해 이번 특별수당을 받아 갚은 거란다”
“그럼 우리도 엄마한테 비밀이야기를 해드릴께요. 사실은 淳이가 글짓기 대회에서 1등으로 뽑혔
거든요. 그렇다고 담임선생으로부터, 글짓기발표회에 참석해달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런데
엄마에게 말씀드리면, 회사를 쉬시게 될까봐, 내가 대신 갔었어요...”
“그랬었어?...그래서 어떻게 됐어”
“글짓기내용이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것이었나봐요. 그런데 淳이가 1등으로
뽑힌 글짓기를 일어나서 읽는데 제목이 ‘우동 한 그릇’이 잖아요. 야, 이것 北海亭이야기구나
라고 금방 알게 됐어요. 야, 淳이 녀석 창피하게 하필 그걸 썼나하는 생각 때문에 얼굴이 붉어
졌어요. 섣달 그믐날 셋이서 먹는 우동 한 그릇이 정말 맛있었다....아빠의 교통사고 때문이지만...
세 사람이 한 그릇을 주문해도 가겟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선뜻 들어주고...가게 문을 나서면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새해 복많이...’ 하며 큰소리로 인사까지 해준다. 그 아저씨, 아줌마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꺾이지마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 라고 응원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나도 크면 형편이 어려운 손님에게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본 제1의 우동집 주인이
되겠다....이런 내용이예요”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 샌가 주인부부의 모습이 가게에서 사라졌다. 주방한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수건 한 장의 양편을 서로 쥐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淳이의 엄마 대신 형이 이 자리에 나와 있다면서, 인사말을 하라고 하시잖아.....처음에는
말이 나와야지. 그래서 한참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내줘 고맙다. 동생이
매일 저녁밥을 지어야하기 때문에 클럽활동 중에 먼저 빠져나와야 해 미안하다. 淳이가 [우동
한 그릇]을 낭독할 때 처음에는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淳이가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읽어가는
동안 [우동 한 그릇 이야기를 부끄러워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을 시킬 수 있었던 엄마의 용기를 잊어버리지 않겠다.
淳이와 함께 언제까지나 엄마를 지키고 보호해 드리겠다....이렇게 끝을 맺었어요“
작년보다 한결 밝은 표정의 세 母子, 손을 꼭 쥐고 돌 구르듯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다독여주기도 하고....세가족은 [歲暮우동]을 다 먹은 후 우동 두그릇값 3백 엔을 치르고,
가게 문을 나섰고, 주인부부는 이들이 길모서리를 사라지기까지 큰소리로 “새해 복많이 받으
세요”라고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말을 보냈다.

또 한해가 지난 섣달그믐날, 난로 옆 2번 테이블에는 [예약석]이란 표찰을 올려놓고 [그믐날의
그 손님]을 기다렸건만 세모자는 어쩐 일인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도....또 다음해도 난로 옆 2번 테이블은 빈 채 새해를 맞았다. 그래도 北海亭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몇 년 후에는 낡은 테이블을 새것으로 바꾸는 등 가게를 다시 꾸몄다.
다만 난로 옆 2번 테이블은 옛날의 그런 의자와 테이블을 그냥 놔둔 채....
이후부터 새 테이블 틈에 하나 남은 헌 테이블의 사연은 손님들 사이사이로 번져갔고 언제
부턴가 2번 테이블은 [행복의 테이블]로 불리게 됐다.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이 굳이 다른
자리를 마다하고 그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면서까지 한번 앉았다가보겠다고 할 정도로....

그로부터 한참 세월, 10년인지 11년인지가 더 지난 어느 섣달 그믐날이다. 밤 10시를 넘긴
시각, 올해도 2번 테이블은 주인을 맞지 못한 채 해를 넘기려던 찰에 가게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안에 먼저 들어선 것은 산뜻한 겨울코트차림의 두 청년.
누군가 하고 머뭇거리던 주인부부의 눈길은, 단정하게 정장을 한 初老의 부인이 두청년
사이에 끼여드는 것과 함께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 올라갔다.
“저 ... 우동 세그릇을 시켜도 되겠어요...‘라는 부인의 목소리가 귓전에 와 닿는 순간,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던 주인부부의 눈길은 ”저...우동 한 그릇만...“하며 조심스러워하던
14년 전의 그 모습과 만났다.
이야기는 좀 더 이어진다. 형은 의사가, 동생은 은행에 다니고 있다던가…….
하는 등등의 후일담이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