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지 석 동
우리 집 옥상에는 70여 개나 되는 선인장이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왜 하필 가시투성이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웃으면서 대답한다. 일반 분재에 비해 키우기가 쉬운데다, 그것들한테서는 맛볼 수 없는 깊은 정서가 있어서라고.
분재관리는 적당한 물주기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주기에 따라서 분재의 성패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인장은 까다롭지 않아서 손수건만큼의 햇볕만 있으면 잘 자란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들이 즐기기에 딱 좋은 식물이 바로 선인장이다.
선인장은 병치레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충도 끼지 않는다. 거기다 한여름에 보름 이상 집을 비워도 말라죽을 염려가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관상거리도 없을 듯하다. 또한, 여느 분재같이 거름 걱정이나 전지를 할 일이 없고, 가을이 깊어도 쓸어낼 낙엽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린애 손가락 같이 나오는 새순을 볼 수 없고, 수줍은 듯이 붉어 가는 꽃망울과 붉게 타는 단풍을 보는 재미가 없는 것이지만, 세월의 더께가 앉아도 변하지 않는 모습이 좋아서 늘 곁에 두고 감상한다.
선인장은 종류에 따라서 꽃피는 시기가 달라, 4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핀다. 그중에 '성성환'은 꼭 머리에 화려한 붉은 화관을 쓰고 있어, 근 한 달 동안 우리의 눈을 호사시킨다. 어떤 녀석은 꽃대를 내미는 데만 이십 일 이상 뜸을 들여, 속을 태우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트럼펫을 불어대면, 그 옆의 것도 시샘하듯 눈부신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여봐란듯이 뽐을 낸다. 그 화려함이 공주의 외출 같다. 단 하나의 흠은 향기가 없다는 것인데, 가끔 벌이 찾아와 코를 벌름거리는 것을 보면 향기가 전혀 없는 것 같지도 않다.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찐빵처럼 동글납작하거나, 절굿공이같이 둥근가 하면,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본 쓸쓸한 돌기둥 같기도 하다. 크기도 호두과자만 한 것에서부터 홍두깨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육각형은 모서리에 난, 가시만 없으면 꼭 옛 포졸들이 들고 다니던 육모방망이다. 유괴범, 강간범, 불량식품업자 같은 파렴치범들이 지면을 더럽힌 날은 '저 가시 방망이로 벌을 주면 범죄가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몇 놈은 손가락만 한 것을 사다가 야구방망이만 하게 키웠는데 꽃 필 생각을 하지 않아, 모이만 축내고 알을 낳지 않는 암탉에게 말하듯
“밥값 좀 해라. 밥값.”하고 핀잔을 주지만 녀석들은 쇠귀에 경 읽기이다. 하지만 쪽 뻗어 올라간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최신식 호화빌딩의 모형을 모아놓은 것 같아 흐뭇하다.
애로점도 있다. 특히 분갈이할 때가 그렇다. 가시가 억센 것은 면장갑으로는 어림도 없어, 코팅한 장갑을 겹쳐서 끼고도 겁이 나 수건으로 선인장을 두어 번 두른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뜨거운 것을 들 때 쓰는 두꺼운 장갑까지 끼고 작업한다. 그리고 시월 들어 아침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가면 실내로 들여놓고, 5도 이상 올라가는 삼월 말이면 볕에 데지 않게 응달에 내놓아 환경에 적응을 시키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놈들도 철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를 닮은꼴이다.
내가 선인장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굳센 모습답지 않게 늘 과묵한 군자 같아서이다. 그래서 녀석들을 자꾸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잎 하나 달지 않은 단출한 모습은 잠잘 때 들어가자던 통 하나가 전 재산이었다는 '디오게네스'의 삶을 연상하게 한다. 또는 청렴 강직한 충신이 모함을 받고 귀향을 온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한 듯 가시를 두르고 앉아 기울어 가는 국운을 걱정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제 푼수를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는 세상인데, 입과 눈은 물론 손발까지 감추고 다소곳이 있다가 억센 가시를 들추고 불끈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마치 추사나 다산이 모진 유배생활을 견디며 이루어낸 위대한 작품을 보는 것 같기도 해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햇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2월 말이다. 기둥선인장 '성성환'이 봄바람이 났는지 꽃망울 내밀 자리마다 하얀 솜털로 뽀얗다. 놈은 나보다 더 봄을 기다리나 보다. 밖에는 아직 바람이 매서운데도 서둘러 분단장을 하고 봄 마중을 나서니 말이다.
나에게 온 지 여섯 해이니 적어도 열 살은 되었지 싶다. 작년 봄에 분갈이를 해주었더니 밑동에 자두만 한 종을 다섯이나 몽글몽글 달았다. 가시투성이지만 살뜰히 품은 모습에서 어머니를 본다.
누에가 뽕을 먹어대듯 먹어대는 우리 팔 남매를 키우느라 허리 펼 날이 없으시던 어머니. 어느 해 봄, 머리에 쓴 수건을 잘 때도 벗지 않아 들추어보니, 칠흑 같던 머리는 간데없고 민머리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여인의 자존심인 머리까지 잘라 파셨던 거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다.
녀석이 내게 올 때는 애호박만 하던 것이 홍두깨만 하게 컸다. 표면에 고깔 모양의 작은 돌기가 촘촘히 나 있고, 그 돌기마다 9개의 연갈색 가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어 사납게 생겼다. 하지만 천성이 부지런해 2월 중순이면 남보다 먼저 동면에서 깨어나 꽃 필 자리에 치장을 한다. 그리고 드디어 3월 초면 생살을 뚫고 핏빛 꽃망울을 삐쭉삐쭉 내밀어 온 집안에 생기가 돌게 한다.
올해도 선인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우리 집의 봄, 거기에는 어머니도 보인다.
첫댓글 오랜만에 글 올려주셨군요.
그동안 건강하셨는지요.
늘 귀한 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인장은 마치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같은 메시아의 모습
물 한모금 없는 사막길 걸어 당도한 듯한~~
작가의 심중에 간직한 이토록 많은 형극의 서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