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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나는 [복성루] 벽에 붙어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 걸이에요. [복성루]는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중국집이지만 나는 이 집이 좋아요. 왜 좋으냐고요? 으음, 주인인 성복이 아저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거든요. 손님들이 오면 나는 손님들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요. 그게 재미있고 좋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심심할 것 같아요. 밖에 비가 무지무지하게 내리거든요. 이런 날은 손님이 없어요.
“딸랑딸랑.”
어? 문에 매달린 종이 울리고 할아버지 한분이 들어왔어요. 젖지도 않고 우산도 없이 들어온 걸 보니 음식점 바로 앞에서 차를 내렸나 봐요.
기태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 와 배꼽인사를 했어요.
“어서 오세요 !”
할아버지는 중국 ‘오자도’ 그림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기태가 쪼르르 달려가 물과 단무지를 가져다 테이블 위에 놨어요.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주문했어요.
“짜장면 하나 다오.”
나는 할아버지를 살펴봤어요.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었는데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 비싼 시계를 차고 있는 멋쟁이였어요.
기태가 주방을 향해 목소리를 돋구었어요.
“짜 하나.”
“오우케이.”
주방에서 성복 아저씨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딸랑딸랑.”
꽁지머리에 몸이 퉁퉁한 남자가 들어왔어요. 사진작가네요. 사진작가는 우산을 접어 문간에 놔둔 통 속에 세웠어요.
“안녕하세요?”
기태가 반가워했어요.
“잘 있었니?”
사진작가는 선풍기 바람이 잘 닿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사진작가는 서울에서 사는데 작업실이 이곳에 있어 자주 와요.
“간짜장요?”
기태가 물었어요. 단골이라서 뭘 주문 할지 잘 알고 있어요.
“그래.”
기태가 다시 소리쳤어요.
“간짜 하나.”
“오우케이.”
“딸랑딸랑.”
배낭을 맨 누나가 비에 흠뻑 젖은 채 들어왔어요. 얼음골에 온 것이 틀림없어요. 한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이 누나는 늦었네요.
기태가 텔레비전 옆에 있던 수건을 가지고 쪼르르 달려갔어요. 나는 픽 웃었어요. 기태는 예쁜 누나를 참 좋아해요. 쪼그만게…….
“어머, 고마워.”
누나가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닦으며 물었어요.
“너 참 귀엽다. 몇 살?”
“여섯 살.”
누나가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어요. 동그란 얼굴에 웃음 감도는 입이 성격 좋게 보였어요.
“짜장면.”
“짜 하나 !”
기태가 소리치자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던 누나가 웃었어요.
기태는 뒤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도 물과 단무지를 갖다 주고 쪼르르 제자리로 돌아가 보던 만화 영화를 봤어요.
나는 오자도 그림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신경 쓰여요. 할아버지는 두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요.
“탁, 탁, 탁 !”
주방에서 면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우리 아빠는 직접 면을 뽑아요.”
기태가 손님들을 돌아보며 설명했어요. 저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기태가 참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기태는 턱을 받치고 다시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어요. 사진작가도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누나는 수첩을 꺼내 뭔가 쓰고 있어요.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짜장 냄새가 음식점 안을 가득 채웠어요.
“조그만 기다리면 맛있는 짜장면이 나올 거예요.”
기태가 또 설명했어요. 기특한 녀석!
잠시 후 긴 앞치마를 입은 성복이 아저씨가 나왔어요. 눈치 챘죠? [복성루]가 아저씨 이름을 거꾸로 해서 붙인 것이라는 것을 말예요. 기태 할아버지가 개업하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대요.
“안녕들 하세요?”
성복이 아저씨는 시원하게 인사했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할아버지 앞에 짜장면 그릇을 놨어요.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세월이 빨라.”
할아버지는 낮은 소리로 대답하고 짜장면을 내려다봤어요.
성복이 아저씨는 사진작가 앞에도 면과 짜장 그릇을 내려놨어요.
“작업실에 풀 많이 자랐죠?”
사진작가가 고개를 훼훼 흔들었어요.
“말도 말아요.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어요.”
“쉬는 날 풀 베는 기계 가지고 가서 시원하게 한번 깎아 드릴게요.”
“역시, 기태 아빠야. 고마워요.”
사진작가는 흡족한 얼굴로 짜장 그릇을 집어 들었어요.
“얼음골에 오셨나 봐요.”
성복이 아저씨가 누나 앞에 짜장면을 놨어요.
“예.”
누나는 킁킁킁 짜장면 냄새를 맡았어요.
“으음. 냄새 죽이네요.”
누나는 서둘러 젓가락을 집어 들었어요.
“끅 !”
이상한 소리가 오자도 그림 옆에서 들려왔어요. 사람들이 돌아봤어요. 기태만 못 들었는지 만화영화를 봤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얼른 내게 와 두루마리 화장지를 끊어갔어요. 그리고는 조용히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줬어요. 할아버지가 입에 물었던 짜장면을 힘겹게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고맙네.”
들릴 듯 말듯 말하고 휴지로 입가를 닦았어요. 손님들은 각자 자기 음식을 향해 머리를 돌렸어요.
사진작가가 짜장을 면에 부어 쓱쓱 비빈 다음 젓가락 가득 면을 집어 입에 가득 넣었어요. 사진작가는 보는 이도 침을 삼킬 만큼 복스럽게 먹어요. 그러고 보니 사진작가는 언제나 간짜장만 먹네요.
“후르룩 후르룩.”
누나도 먹는 것은 사진작가 못지않네요. 배가 많이 고팠나 봐요.
할아버지만 빨리 먹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뒤적거렸어요. 그러다가 한입 조금 먹고 숨을 크게 내 쉬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먹었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기태에게도 짜장면을 갖다 줬어요. 기태는 입맛을 다시며 짜장면 비벼 주기를 기다렸어요.
그때,
“찰칵.”
소리와 함께 전깃불이 나갔어요.
“어머나!”
누나가 비명을 질렀어요.
“아, 죄송합니다. 차단기가 내려갔나 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둠 속에서 성복이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금방 전깃불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찰칵 소리를 내며 불이 다시 나갔어요.
“초, 촛불 켜.”
떨리는 목소리가 오자도 그림 쪽에서 들려왔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다시 차단기를 올려 전깃불이 켰어요. 그런데 금방 다시 전깃불이 나갔어요.
“초, 초를 켜.”
할아버지가 애원하듯 말했어요. 이상해요. 불이 나가긴 했지만 창문으로 거리의 불빛이 들어와 아주 어둡지도 않은데 왜 저렇게 무서워할까요?
성복이 아저씨가 촛불을 세 개 들고 뛰어왔어요. 먼저 할아버지 앞에 촛불을 세우고 고개 숙여 사과 했어요.
“죄송합니다.”
“내가 미, 미안하네. 내가 어, 어둠 공포증이 있어….”
할아버지는 이마의 땀을 닦았어요. 놀란 탓인지 할아버지는 짜장면 먹을 생각은 않고 촛불만 물끄러미 쳐다봤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사진작가와 누나 앞에도 촛불을 갖다 놓았어요.
“낭만 있어요.”
누나가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박수까지 쳤어요.
잠시 먹기를 중단했던 사진작가는 그릇을 들고 나머지 음식을 입에 쓸어 넣었어요. 후룩후룩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누나도 벌써 짜장면을 다 먹고 물을 마셨어요.
“아, 맛있어. 정말 맛있게 먹었네.”
혼잣말을 했어요.
“비도 오고 죄송하기도 해서 제가 맛있는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성복이 아저씨가 손님들에게 물었어요.
“기태아빠가 볶은 커피는 최고지. 고마워요.”
사진작가가 걸걸한 목소리로 좋아했어요.
“아저씨가 직접 커피를 볶는다고요? 좋아요. 저도 주세요.”
누나도 좋아하고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주방으로 갔어요. 비 오는 소리가 더 커졌어요.
“우리 아빠는 나중에 커피집도 할거래요.”
짜장면을 다 먹은 기태가 의자에서 뛰어 내려 내게 왔어요. 두루마리 화장지를 세 마디씩 끊어 손님들에게 주고 저도 쓱쓱 입을 닦았어요.
“저, 저기. 촛불을 한데 모아 놓고 앉으면 안될까?”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아직도 무서운가 봐요.
“좋아요.”
누나가 발딱 일어나 빈 짜장면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익숙한 솜씨로 그릇을 탑처럼 쌓고 그 속에 단무지 그릇을 넣은 다음 한 손으로 받쳐 들었어요. 기태가 졸졸 따라다니며 물 컵을 모았어요. 한 손에 하나씩 들으니 한 개가 남았어요.
“이 건 내가 가져갈게.”
누나가 나머지 한 개를 들었어요.
사진작가가 휴지를 가져다가 자기 테이블을 닦고 촛불을 모았어요. 할아버지가 촛불에 이끌리듯 와서 의자에 앉았어요.
“멋있어요.”
그릇을 가져다 두고 온 누나가 박수를 쳤어요. 얼굴도 예쁘지만 분위기도 환하게 만드는 누나에요.
“학생네 집도 음식점 하나? 일하는 솜씨가 보통 아냐.”
사진작가가 칭찬했어요.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누나는 할아버지와 사진작가 앞에 앉았어요. 세 개 모인 촛불이 환하게 세 사람 얼굴을 비쳤어요.
“드드륵 .”
주방에서 커피 가는 소리가 들리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솔솔 풍겼어요.
“여기 사장님 특이해요. 중국집에서 커피를 볶다니 말예요.”
“이따 먹어 봐요. 깜짝 놀랄 거예요.”
사진작가가 자기 집 커피 자랑하듯 했어요.
기태가 와서 누나 옆에 앉았어요. 기태가 사진작가에게 물었어요.
“왜 아저씨는 간짜장만 먹어요?”
아, 기태도 나처럼 그게 궁금했나 봐요.
사진작가가 하하하하 웃었어요.
“그게 궁금했어?”
“예.”
“얘기 해주면 아빠 풀 깎을 때 와서 사진 모델 해 줘,”
“좋아요. 약속.”
기태와 사진작가는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복사하고 프린트까지 요란하게 끝냈어요.
“어렸을 때 친구 중에 마늘 장사하는 집 아들이 있었어요.”
사진작가는 서둘지 않고 사람들을 둘러본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 친구는 집에서 돈을 조금씩 훔쳤어요. 옛날 돈 통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젓가락 같은 것으로….”
사진작가는 말똥말똥 쳐다보는 기태와 눈이 마주치자 이야기를 건너뛰었어요.
“항상 돈이 있었던 그 친구는 우리들에게 짜장면을 사 주곤 했어요. 그런데 저는 꼭 간짜장을 먹는 거예요.”
누나가 손뼉을 짝 치면서 웃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간짜장에 한이 맺혔군요.”
“맞아요. 간짜장은 어떤 맛일까? 오랫동안 궁금했고 부러웠지요. 그 후부터 난 언제나 간짜장에요.”
기태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어요.
“호호호. 재미있어요. 저도 이야기 할게요.”
누나가 자세를 바로 했어요. 기태는 괜히 벙글거리며 누나를 올려다봤어요. 쪼고만게 예쁜 누나는 엄청 좋아해요.
“우리 외할머니 이야기에요. 외할머니는 시골에 살았는데 읍네 중학교에 들어갔대요. 입학식 날 외증조부께서 외할머니를 중국집에 데려갔대요.”
누나는 기태에게 친절하게 설명했어요.
“외증조부는 외할머니의 아버지를 말하는 거야.”
누나는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생전 처음 중국집에 들어간 외할머니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대요. 자리에 앉자 외증조부가 짜장면 한 개와 우동 한 개를 시켰대요. 짜장면은 외증조부 것이고 우동은 외할머니 것이었지요.”
“왜? 애들은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사진작가가 물었어요.
“외증조부께서 ‘짜장면은 느끼해서 넌 못 먹을 것이다’ 말씀 했대요.”
“짜장면, 안 느끼한대?”
기태가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했고 누나는 자즈러지게 웃었어요. 사진작가도 껄껄껄 웃고 할아버지도 보일 듯 말듯 미소 지었어요.
“외할머니에게 우동 맛은 집에서 먹었던 국수랑 똑 같더래요. 우동을 먹으면서 외증조부가 짜장면 잡수시는 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봤대요.”
“하하하. 학생 외할머니도 짜장면에 한이 맺혔겠어요.”
“예. 외할머니는 중국집 갈 때마다 짜장면을 잡수셨어요. 짜장면을 잡수실때마다 입학식 날 이야기를 하셨고요. 호호호. 저는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이 나요.”
한바탕 웃고 나니 조용해 졌어요. 모두가 슬그머니 할아버지를 쳐다봤어요. 할아버지는 촛불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어요. 사진작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어요.
“할아지는 짜장면에 대한 추억 없으세요?”
“나?”
할아버지가 놀란 듯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어요.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짜장면에 사연이 있으실 것 같아요.”
누나도 조심조심 말했어요.
할아버지는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어요.
“사람에게는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서러움이 있지……. 그게 나에게는 짜장면야.”
기태가 고개를 까닥했어요. 아, 어린 것이 뭘 안다고….
“나는 어렸을 때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어.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새어머니가 나까지 키운 거야. 새어머니는 무서운 분이셨어. 아마 가난해서 더 그랬을 거야. 놀다가 옷을 더럽혀도 때렸고 밥 먹다가 밥알을 흘려도 때렸지. 나에게는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새어머니에게서 난 아들이었어. 그 동생도 반찬투정 한다고 많이 맞았어.”
“새어머니가 사납기는 해도 공평하셨네요.”
누나가 맞장구쳤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할아버지가 말을 더듬었어요.
“가끔씩 새어머니는 동생만 데리고 외출을 했어.”
기태가 물을 가지고 와 할아버지 앞에 놨어요. 기특한 녀석!
“외출에서 돌아오면 동생에게서 맛있는 냄새가 나곤 했어. 그리고 어느 날은…… 동생 입가에 묻은 짜장을 발견…….”
할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끊었다가 물을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나만 빼 놓고 두 사람이 나가서 짜장면을 먹은 거야. 화가 난 나는 새어머니가 없을 때 동생을 싫건 때려줬어. 그 대가로 나는 이틀이나 캄캄한 광 속에 갇혀 지냈지. 어두운 광속에서 나는 새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어요. 촛불 빛이라서 알 수는 없었지만 눈물을 닦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무서운 생각을 하다니…… 옛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워 담고 싶은 생각야.”
목 메인 할아버지 이야기가 끝났어요.
“철없는 어렸을 때니깐 그랬죠.”
사진작가가 위로했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커피를 들고 나와 한잔 씩 돌렸어요. 커피 향기가 음식점 안에 화악 퍼졌어요.
“나, 손 좀 닦고 올게.”
할아버지가 초 하나를 들고 화장실에 갔어요. 남아있던 사람들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어요. 누나가 미소를 지으며 성복이 아저씨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어요.
“저 할아버지 고향이 여기지요?”
사진작가가 물었어요.
“예. 우리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이 나서 새어머니가 돌아가셨대요. 그 뒤 할아버지는 여기를 떠나셨대요.”
“아!”
사진작가와 누나가 똑 같은 소리를 냈어요.
“해마다 오늘, 새어머니 제삿날에는 여길 오세요.”
할아버지가 돌아왔어요. 할아버지는 마음이 진정 된 듯 했어요. 자리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어요.
“자네 커피는 최고야. 외국에도 이런 커피는 없어.”
할아버지가 칭찬했어요. 성복이 아저씨 입이 귀에 걸릴 듯 벌어졌어요.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청년이 들어 왔어요. 청년은 사람들에게 목례를 하고 할아버지 곁으로 갔어요.
“회장님, 동생분이 언제 도착하시느냐고 전화 하셨어요.”
“커피 마시고 일어날게. 김비서도 커피 한잔 해. 여기 커피 정말 맛있어.”
할아버지가 권했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김비서에게 물었어요.
“저녁은요? 짜장면 한 그릇 해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커피도 됐어요. 저녁 먹고 나서 마셨어요.”
김비서가 점잖게 사양했어요. 할아버지가 빙긋 웃었어요.
“이 친구도 짜장면에 한이 많아. 어렸을 때 짜장면을 하도 먹어서 이제는 짜장면을 안 먹는대.”
기태가 입을 삐죽거렸어요.
“난 매일 먹어도 맛있데….”
모두들 웃었어요.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네요. 짜장면은 그냥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서러움이고, 부러움이고 호기심이었으며 가난이었네요.
“기태. 저녁 먹었어?”
종소리와 함께 기태 엄마가 들어왔어요.
아참, 짜장면은 사람과 사람도 이어줬어요.
성복이 아저씨가 대학생였을 때 아빠를 도와 배달을 하곤 했대요. 그런데 오늘 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가던 성복이 아저씨가 앞서 걸어가는 예쁜 아가씨를 봤대요.
“브르르륵.”
성복이 아저씨는 속력을 높여 달려가 뒤돌아 아가씨를 쳐다봤대요. 그러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졌대요. 그 때 성복이 아저씨가 소리쳤대요.
“뭐야? 너 였어?”
아가씨는 옆집 동생이었거든요. 성복이 아저씨는 못생긴 너 때문에 짜장면 다섯 그릇을 엎었다고 투덜거렸고 내가 어때서 그러냐고 아가씨는 대들었대요.
그리고…… 짐작할 수 있죠?
두 사람이 기태 엄마랑 아빠가 된 것……
짜장면은 면발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네요.
“찰칵.”
성복이 아저씨가 차단기를 올렸어요. 반짝 불이 들어왔어요. 모두들 조마조마 형광등을 올려다봤어요. 불은 꺼지지 않았어요.
“야아!”
누나와 기태는 소리를 지르며 손뼉 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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