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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지구의 미래
프란츠 알트
-생태적 기적, 한국에서도 유효한 질문인가?
우석훈
2002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환경 지수 작업을 했는데 한국은 여기에서 136위라는 등수를 얻게 된다. 이 사건으로 국내에서는 이 치욕적인 등수를 잊지 말자고 ‘136포럼’이라는 게 조직되었지만 사실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동강 댐 역시 동강의 비극을 잠시 정지시키는 수준으로 결국 인근 지역의 난개발과 관광으로 인한 피해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로도 한국의 생태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을 뿐이다. 중요한 사건들만 간단히 나열하자면, 서해안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기수 지역, 즉 강물과 바다가 직접 만나는 새만금 갯벌은 결국 막히게 되었고, 한강 물을 전기를 이용해서 퍼 올려 방류시키는 ‘청계 인공 하천’이 생태 복원으로 둔갑되었다. 뉴타운 열풍은 전 국토를 아파트 현장으로 만들고, 골프장 300개로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한국형 뉴딜’이 국토를 휩쓸었다. 급기야는 한반도 대운하에서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급히 변경한 ‘자연 대 개조’가 하나의 막아 낼 수 없는 악의 힘으로, 한국은 ‘토건 한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생태 파괴의 절정을 달리게 되었다.
프란츠 알트는 에너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사람이다. 에너지 문제로 출발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가이아 이론’으로 70년대 이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임스 러브록을 들 수 있을 텐데, 그는 기후 변화 문제에 집중하면서 수 년 전부터 강한 원자력 찬성주의자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 바람에 제임스 러브록을 오랫동안 지지했던 린 마굴리스 여사 같은 사람들의 입장이 좀 난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종 다양성, 생태계 복원성, 지역 생태계와 지역 경제의 문제 등 생태학 혹은 생태주의 내에도 쉽게 환원하기 어려운 쪽에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로 설명하면 가끔은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만나게 되는데, 그 대신 분명해지고, 단순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는 대중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과 대안의 가능성을 알기 쉽게 풀어 준다. 아마 전 세계에서 이 문제를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제시한 사람이 <불편한 진실>의 제작자이자 미국 부통령 출신인 앨 고어였다면, 그다음 프란츠 알트를 거론하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침묵의 봄>의 레이첼 카슨,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의 반다나 시바와 함께 우리 시대의 가장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저자 중의 한 명으로 프란츠 알트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을 에너지의 관점으로 볼 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등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사용량은 6위다. 그러니까 산업 구조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고, 경제 성장에 다른 에너지 투입량, 즉 탄성치가 높은 편이다. 또한 세계 2위의 석유 수입구이다. 석유가 나지 않으니, 결국 수입에 전량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일본과 프랑스는 수년 전에 추월하였고,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1인당 사용량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한다. 국민소득은 절반가량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외국에서 에너지 관점에서 한국을 설명하는 몇 가지 예시들이 있다. 한국은 ‘냉장고를 필수로 두 대씩 쓰는 나라’가 대표적이다. 김치 냉장고가 등장하며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다. 21세기에 들어서 다단계가 한국을 휩쓸고 간 이후에는, 어느덧 제빙 기능을 가지고 있는 대형 정수기가 집집마다 하나씩 보급되었다. ‘디시 워셔’라고 부르는 식기세척기는 아직 대부분의 요리가 국물 요리라는 특성 때문에 보급이 늦어질 뿐일 것이다.
또한 ‘공조 장치’라고 부르는 공기 청정기 등 강력한 공기 조절 장치를 새로 생기는 아파트마다 설치하고, 이것을 개별 공조로 하고 있는 나라로도 설명된다. 이는 최근의 건축 및 주거 양식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고층 주상 복합이 재개발 이후의 수익률 모델이 되면서 자살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창문을 사실상 없앴는데, 자연 환기가 불가능해지니 그 문제를 인위적 공조 장치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주상 복합의 공조 장치에서, 승용차의 대형화와 경차의 몰락, 김치 냉장고의 폭발적 보급, 지난 10년간 말 뿐이었고, 그 어디에도 진실로 에너지 절약이나 생태적 진화를 추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 약간의 불편으로 기름 값을 1/3 정도 줄일 수 있는 ‘스틱’은 ‘오토’에 밀려 진화적으로 멸종해 가는 종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에너지 낭비형 문화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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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 국가들은 자연이 50만 일 동안 연소시킨 만큼의 석탄과 가스, 석유를 오늘날 단 하루 만에 연소시킨다. 이로써 날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톤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온실 효과 때문에 우리의 행성에는 사막이 날마다 3만 헥타르씩 늘고 있다. 또한 침식으로 인해 8600만 톤의 비옥한 땅을 잃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42,000헥타르의 숲을 벌목함으로써, 동식물이 150종씩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토대를 파괴하고 있다.
26,000명의 사람이 날마다 굶주림과 물 부족 때문에 죽어간다. 지구가 현재 인구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음과 같은 문제를 생각에서 밀어내서는 안 된다. 지구에 사는 65억의 인구가 현재와 같은 삶의 수준을 계속 누리려고 하면, 전체 인류의 미래나 우리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에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귄리를 반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공업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12억의 사람이 오늘날 이미 재래식 에너지를 개발도상국 주민들보다 1인당 여덟 배나 많이 소비하고 있다.
국제 연합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이 행성은 1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것도 유전 공학 없이 말이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다”
미국 전 대통령 조지 부시는 인간의 책임을 아주 다르게 정의한다. 부시 대통령은 악의 없는 교토 의정서(기후 변화 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2005년 미국 남부에서 발생한 태풍의 재앙 이후 폭풍과 살인적인 파도로 수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억에 이르는 피해가 생겼다고 자문 위원들이 조목조목 계산했을 때에도 부시 대통령은 기후 보호에 충분히 투자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시민들에게 애도하고 기도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신성 모독이다! 우리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것과 범죄에 대해 신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자원들은 점점 더 모자라게 되고,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석유가 무기가 된다. 독일 외무 장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나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예고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독일 국방 장관 프란츠 요셉 융은 자원을 보호하는 데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탈리아 경제 장관은 에너지 싸움을 보면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이 생각난다고 했다. 21세기의 중요한 정치적 질문은 이것이 될 것이다.
“석유를 둘러싼 전쟁인가, 아니면 태양 에너지를 통한 평화인가?”
태양 내부의 온도는 평균 섭씨 1600만 도이다. 그 태양이 8초마다 우리 행성에 인류 전체가 1년간 소비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원은 태양의 덕을 보고 있다. 숲 속의 나무와 들판의 식물은 물론이고, 수백만 년 전의 태양 에너지가 저장된 석탄층, 석유층, 천연가스층 역시 그렇다.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순환은 태양의 오고감에 좌우된다. 태양이 생명의 원천이다.
태양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있어 문제는 기술의 오류나 원료의 부족이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에너지 경제에 대한 수많은 정치인의 종속
원자력과 석탄 에너지에 대한 정치 및 조제상의 특권
재생 에너지에 대한 거의 모든 에너지 소비자의 무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조지 부시는 석유 산업에 대단히 의존해 있고, 석유 산업의 위임을 받아, 심지어 석유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총리 에드문트 슈토이버가 석탄 로비에 의존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저 일대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청사진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한히 많은 자극, 본보기가 되는 모범과 전략들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연구가들은 동양 말벌의 외부 골격에서 태양 전지와 같이 기능하는 유기 반도체 크리스탈을 발견했다. 곤충들은 이것으로 전기와 열을 만들어 내고, 신진대사 과정과 같은 운동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곤충들은 전기 에너지를 유해 물질 없이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저장도 하며 꿈같은 효율도 달성한다.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자와 생물학자, 생체 공학자들은 살아 있는 태양 전지가 머지않아 태양광 발전 기술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말벌들로부터 배워라!
오늘날 수많은 독일인이 10년 전보다 고기를 덜 먹는다면, 그것은 금욕이 아니라 건강 예방책이고 환경을 아끼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다. 해외에서 독일로 들어오는 가축 사료의 거의 절반 정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고, 따라서 환경 파괴적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보다 평균 4년을 더 산다. 클린턴 대통령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미국인들이 고기를 10% 덜 먹는다면, 6000만 명의 사람이 덜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부유한 공업 국가들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20%가 오늘날의 자원 중 약 80%가량을 소비한다. 독일인 한 사람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제3세계 평균보다 약 스무 배가 많고, 방글라데시나 탄자니아의 주민들보다 마흔 배나 많다.
독일의 평균 가정에서는 연간 시간당 4,000킬로와트가량의 전력을 소비한다. 그러나 대형 발전소는 석탄, 가스, 석유, 원자력 등 투입되는 에너지의 단지 1/3만 사용한다. 따라서 독일의 모든 가정에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1만 2천킬로와트의 에너지가 대형 발전소에 투입되어야 한다. 단지 사적으로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말이다. 투입되는 에너지의 나머지 2/3는 공중이나 강으로 내보내져, 온실 효과를 높이게 된다.
에너지 절약이란, 투입되는 에너지를 지금보다 현명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소비되는 벤진의 1/4만 사용하여 자동차 운행하기
*자동차로 인한 환경오염을 1/4로 줄이면서도 한 사람을 수송할 수 있는 공공 교통수단
이용하기
*오늘날 소비되는 전력의 1/3로 에너지 기구들 사용하기
*오늘날에 비해 90%까지 난방 에너지를 절약하는 집짓기
*전류와 열을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가 두 배로 이용되는 소규모 지역난방 시설을 통해 에너지 공급을 분산하여 조직하기.
바이오매스는 엄청난 에너지원으로, 지속적이고 생태적으로 관리되어 시간적으로 무제한적이고 저장 가능하며 전 세계에서 사용 가능하다. 계속 재생 가능한 바이오매서는 에너지 원료를 모든 집합 상태, 즉 고체나 액체 또는 기체로 제공한다.
*갈대, 짚, 목재와 같은 바이오 연료는 작은 조각, 작은 덩이나 먼지로서 지역난방 시설을 통해 열과 전기로 변환될 수 있다.
*야채나 유기체 잔여물에서 얻어진 부산물이자 부엌과 들, 숲에서 생긴 바이오가스는 마찬가지로 열, 기계,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약 1,600개의 바이오가스 시설이 가동 중이다.
바이오매스에서 얻어진 에너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장점이 있다.
바이오매스 에너지와 석유, 가스, 석탄이나 벤진에서 얻어지는 에너지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이오매스를 사용하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기후에 해롭지 않다는 점이다. 바이오매스의 경우 우리는 한 해 한 해, 그러니까 다음 해에 다시 생겨나는 것을 소비할 수 있다. 석탄과 가스, 석유의 경우에는 현재 자연이 50만 년 동안 축적한 것을 한 해에 소비한다.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미래지향적이므로 책임감 있지만, 석탄과 가스 석유의 에너지는 미래지향적이지 않으므로 무책임하다.
바이오매스는 어디에서나 자국의 에너지원으로 이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석유와 가스, 석탄이나 벤진처럼 문제없이 저장될 수 있다.
3. 거의 모든 공업 국가에서 농업 합리화로 인해 농촌의 인구 감소가 더욱 심해지는 시대에, 전답과 숲에서 얻는 친환경적인 에너지는 농민들에게 생존을 보장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공한다. 시골에서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나고 식물계는 파괴 대신 성장이 장려되며, 이농 현상이 멈추고 시골이 경제적으로 다시 활기를 띨 수 있다. 또한 유기체적인 쓰레기와 똥오줌, 폐수 정화 때 생기는 침전물 등이 의미 있고 수익성 있게 사용될 수 있다. 미래의 농토 주인이 또한 에너지 주인이 된다면, 농촌의 젊은이들도 다시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식량을 생산하는 식물은 전체 식물의 1%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의 식물 중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빨리 성장하고 수확이 많거나 화학비료가 거의 필요 없는 식물들을 찾아낸다면 의미 있고 친환경적이며 자연에 좋을 것이다. 갈대와 같은 소위 C4 식물(광합성에서 이산화탄소의 초기 고정 산물로서 옥살아세트산을 생성하는 식물)이 가장 적합하다.
독일 국내에 있는 세 개의 탄소 원자를 갖는 C3 식물(광합성에서 캘빈회로만으로 이산화탄소가 동화되어 당을 합성하는 식물)과 달리, C4 식물의 분자는 네 개의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카룰스루에 근교의 포르흐하임에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야채 재배를 담당하는 연방 시설이 1988년부터 갈대를 재배하고 있고, 매연 건조 바이오매스를 1헥타르 당 30톤 까지 수확한다. 이것은 석탄 14톤 또는 석유 12,000리터가 만들어 내는 에너지와 맞먹는 양이다. 1년에 1헥타르에서 말이다. 열다섯 명의 농부가 각각 10헥타르씩 갈대를 재배한다면, 주민이 1,000명인 마을에 전류, 열, 자동차 연료 등을 완벽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미 연탄은 짚에서, 열은 갈대에서, 전류는 지역난방 시설에서, 자동차 연료는 식물성 기름에서, 종이와 옷, 포장재는 삼에서 얻고 있다. 농민은 전기와 열 및 자동차 연료를 점점 더 사탕무, 겨자, 유채, 해바라기, 삼, 연전초, 아마 등으로부터 얻게 될 것이다.
1리터의 벤진으로 1만 리터의 공기를 오염시킨다. 이것에 대해 미래 세대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미래에는 근본적으로 환경에 보다 좋고 훨씬 안전한 철도 교통과 같은 대안이 흔할 텐데 말이다.
독일의 도로에서는 날마다 평균 열다섯 명의 사람이 죽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한다. 예전에는 탱크가 전쟁터에서 한 짓을 오늘날에는 자동차가 우리의 도로에서 저지른다. 전 세계에 걸친 이런 전쟁 때문에 2006년에도 약 120만 명의 사망자와 1억 명 이상의 부상자가 생겼다.
이것은 온갖 무장 충돌 때문에 생긴 희생자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인명 피해가 난 사고의 순서대로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적절하지 못한 속도, 앞지르기할 때의 부주의, 충분하지 못한 앞차와의 차간 거리, 차선 변경 시의 실수, 잘못된 도로 이용, 알코올의 영향, 일반적인 운전 실수, 보행자에 대한 잘못된 행동 순이다.
자동차가 오염시킨 공기는 독일 도시들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주로 어린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오염된 공기는 수많은 유적 보호자가 하소연하는 것처럼 돌을 녹이기까지 한다. 자동차는 사회적인 마약과 같다. 정치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자동차 위주의 교통 정책을 펴 왔다.
지난 50년 동안 독일의 자동차 정책은 도시의 삶을 파괴했는데, 그 정도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인한 파괴보다 심할 정도다. 우리의 도로에 실제로 존재하는 마력 숭배는 꽤나 공격적이어서 사람들 역시 공격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마력 숭배는 생명에 대해 폭력적이다. 긴장이 제거된 이동성이야말로 진짜 삶의 질을 높인다. 그런데 자동차 도로에서 우리는 흔히 전쟁 상황을 체험한다.
독일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더 이상 길거리에서 놀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교통 정책의 모토가 ‘여러분, 자녀들을 집에 가둬 두세요. 밖에서 자동차들이 편안하게 계속 놀 수 있도록 말입니다’라는 의미가 된 셈이다. 독일의 도시들이 아이들보다 자동차에 훨씬 더 적합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나 진배없다. 독일 연방 공화국의 고령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아이들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에도 그 원인이 있다. 독일에는 아이들의 방보다 주차장이 훨씬 많다.
공공 교통에 있어서는 스위스 철도의 경영자들이 독일의 경영자보다 까마득히 앞서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2002년에 철도 100주년 기념사를 가졌다. 모토는 ‘똑똑한 사람은 기차를 탄다.’였다. 스위스 사람들은 매년 독일인들보다 거의 세 배 이상 철도를 많이 이용한다. 독일인들이 스위스 사람들을 따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차를 타고 스위스를 돌아다닐 때면, 몇 분 또는 몇 초까지의 정확성만이 아니라 콜버스에 이르기까지 운행 시간표의 조정 시스템도 납들이 갔다.
트리어 대학의 교통 계획자 하이너 몬하임에 따르면 현대적인 교통 정책은 약 20년 뒤에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미 오늘날 스위스에서 그런 것처럼, 독일에서도 2025년에는 철도가 더 매력적일 될 것이다. 서비스가 만족스럽고, 철도와 버스 그리고 수백만 대의 택시 사의 연결 시간 및 연결망이 만족스럽게 구축되며, 매력적인 가족 요금은 자동차보다 철도를 이용하게 만들 것이다.
*독일에서는 차량 공유 자동차가 400만 대나 운행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여러 대를 공유하는 것이다. 자동차 한 대의 수명을 볼 때, 사용 가능한 시간 중 평균 3%만 사용되고 나머지 97%는 저절로 녹이 슨다. 더 비경제적이서는 안 된다. 어느 기업주가 수명만 이처럼 긴 기계를 구입하겠는가?
*2만 대의 지역 철도 전동차가 혁신적인 민간 지역 철도 기업의 감독 하에 평지 선로의 촘촘한 철도망으로 지역 교통을 도울 것이다.
*150개의 지역 자치구 철도 기업은 1만 대의 새 전차와 교외선 및 도시 고속 전철이 중대형 도시에 다니게 할 것이다.
*최대한 고객 가까이 있기 위한 전제로서, 역은 오늘날보다 열 배나 많아질 것이다.
*단일 전화번호와 인터넷 접속 시설을 갖춘 2만 개의 이동 센터가 현대적인 이동 수단을 관리할 것이다.
*일반 정기권 한 장만 있으면 누구든 문제없고 저렴하고 빠르고 쾌적하게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택시와 차량 공유 역시 이러한 정기권에 통합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95%까지를 건물들 안에서 보낸다. 석유 난방 시설이 매연 입자와 미세 먼지를 방출한다는 것은 그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집안의 공기가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시의 거리들보다 훨씬 나쁜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 독일의 어린이 둘 중 한 명은 천식이나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독일사람 넷 중 한 명은 면역 체계에 손상이 생겼다. 유럽 연합의 한 연구에 따르면, 매년 독일에서 67,000명이 매연 입자와 미세 먼지가 원인이 되어 앞으로 죽는다.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는 자동차 아니면 집이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제곱미터 당 내년 15리터 내지 18리터의 난방유를 소모하는 집에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집의 벽을 보다 열 차단이 잘 되게 하고 지붕을 보다 두껍게 덮는다면, 지금 소비하는 에너지의 1/4만 가지고도 난방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비용을 아낄 수 있게 하고,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유해 전자파를 일컫는 전기 스모그, 미세 먼지. 매연 입자, 소음, 방사선 물질 등이 우리의 집을 병들게 한다. 여기에서는 우리의 잘못된 에너지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석유와 가스를 연소시킴으로써 환경만 파괴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건강 역시 해친다. 예컨대 석유 대신 목재 가공 부산물로 만든 우드펠릿을 연소시키는 사람의 집에서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나무 향이 난다. 그리고 연료의 비용도 절반에 불과하다.
건축가, 도시 계획가, 지방 자치제의 정치인 등이 드디어 어디가 남쪽인지 배운다면, 다음 수십 년 안에 태양 에너지 건축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남쪽 방향으로 난 수많은 창문, 조명 계획, 열저장과 냉방을 위한 건축 자재 등 건물들에서의 태양 에너지의 소극적 사용뿐만 아니라 열 교환 시스템을 통해서도 난방비용을 90%까지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되었다. 잔여 열은 장차 태양열 집열기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독일과 유럽에서는 의사를 양성할 때 건강한 음식과 건강의 연관성에는 관심도 없고 가르치지도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의 농업이 화학 비료 농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예전에 생명을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식량 생산이 먹는 수단으로서의 식량 생산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먹는 수단으로서의 식량은 배부르게는 하지만 갈수록 생명을 위한 수단은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 거의 담겨 있지 않다. ‘질 대신 양’, ‘배부른 게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값이 싸다는 것이다.’ 등은 식량 생산의 표어다. 주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본래 질병 비용인 소위 건강 비용이 끝없이 올라가서 지불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현재 독일에서는 매년 750억 유로가 잘못된 음식 때문에 생긴 병의 치료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 즉 우리는 아프려고 먹는 것이다.
현재의 도축장인 칼루드비히 슈바이스푸르트는 오늘날 전반적으로 농업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식량의 질을 대단히 잘 평가할 줄 안다. 예전에 그는 종업원이 5,000명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큰 정육점의 사장이었다. 오늘날 슈바이스푸르트는 생태적인 경작의 선구자들 중 한 명이다. 어느 날 생각과 삶을 완전히 바꿔 버린 그는 전기 <소시지가 문제라면>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점점 더 많은 기술과 화학물질을 써서, 생명의 수단인 식량을 ‘보다 안전하고’ 오래 가게 만들고 점점 더 좋게 보이게 하고 점점 더 싸 보이게 하는 것을 함께 체험했다. 식중독과 병의 전염에 관한 한 식량은 오늘날 실제로 더 안전하고, 청결한 관리와 냉각과 포장 때문에 더 오래 가며, 세계 이곳저곳으로 수송되고 상점의 선반에 보관될 수 있다. 식량은 점점 더 보기 좋게 포장되고, 자연 향과 유사하게 온갖 향료와 맛을 강하게 해주는 물지 ㄹ덕분에 맛 또한 아주 좋다.
그러나 생명의 수단인 식량 어디에 과연 생명이 남아 있을까? 생명은 가열을 통해, 정제와 경화와 표백을 통해, 수많은 화학 물질과 식품 첨가물을 통해 – 이 모든 것은 법률이 정한 것에 부합한다 – 고양이의 발처럼 서서히 눈에 뜨지 않게 생명의 수단인 식량에서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의 접시에는 주로 죽은 식량이 올려져 있다.
우리가 오늘 먹는 것이 앞으로 30년 뒤에는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의사이자 독일 ‘영양 고문들’의 대부인 막스 오토 브루커 박사는 말한다. 거의 50년간 여러 병원에서 수석의사로 지낸 경험을 통해 브루커는 생명력을 빼앗긴 식품이 주로 안, 심장과 순환기 질환 및 류머티즘 등 거의 모든 문명병을 야기하거나 그것의 공동 원인이 된다고 확신했다. 2001년 1월에 사망한 브루커 박사는 아흔이 넘은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야말로 비극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비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식품일수록 그만큼 더 믿게 될 정도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자연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것처럼, 모든 식품에 대한 불신이 인간의 뇌리에 너무 단단히 박혀서, 인간이 이러한 불신을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이것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 자체에 대한 이러한 불신을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속적인 그릇된 정보로 인해 자신의 본능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말해 주는 징표다.
음식 습관처럼 천천히 변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음식 습관은 우리를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변화시킨다.
벨기에의 한 연구는 모든 암 종류의 약 10%가 농약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농민과 포도 재배자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신경 질환, 피부병, 호흡 곤란, 뇌 손상 등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들은 화학 약품과 살충제, 제초제를 뿌리기 때문에 이러한 피해를 입는다.
토끼의 건강에 관한 세 편의 박사 논문은 생태적인 동물 사료와 종래의 동물 사료의 질적인 차이를 입증하고 있다. 첫 세대에는 종래의 사료와 생태적 사료를 먹은 토끼들 사이에 인식할 만한 건강상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세대에 이르자 종래의 사료를 먹은 토끼가 생태적 사료를 먹은 토끼에 비해 잇병과 관절 질환에 걸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세 번째 세대에서는 종래의 사료를 먹은 토끼들이 불임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세 세대에 걸쳐 생태적 사료를 먹은 토끼들에게서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의 경우에도 그릇된 영양 섭취로 인한 건강 손상의 결과는 종종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