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의 독서일지 (1)
(24.03.30~04.20)
봄(春), 집근처 산(山)에 오르듯
-1일차
‘생각하며 읽을 책을 고르기’. 그래서 소설은 고전 분야를 선택했는데, 벗어나고픈 현실이 ‘지금 우리나라’여서 서양 문학인 <오디세이아>, <서머싯 몸 단편선 2> (민음사) 2권이다. 독서에 관한 근본적인 생각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책 잘 읽는 방법>을, 평소 좋아하는 역사 분야의 정리를 위해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 기독교에 대한 생각에 막연한 편견이 없는 지 싶어 <도스토엡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을, 서양철학을 영화로 읽는다는 제목에 눈길이 끌려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를, 여성을 위한 관심의 일부로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와 ‘박완서’ 선생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장편소설, 이렇게 총 8권을 이번에 골랐다. 기한 내에 다 읽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2일차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부터 읽기 시작하다. 강연 형식의 문체를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는데, 이해가 쉽고 전반적으로 소화하기가 가벼운 내용이다.
비유된 인물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도 해본다.
제3장,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힘> 부분의 ‘장보고’ 편에서 그렇다. 해외에서의 성공으로 금의환향하는 점, ‘청해진 건설’을 신라와 교섭 끝에 이뤄내는 일, 이후 청해진에서의 재도약을 발판으로 신라 권력 깊숙이 관여하는 일 등의 일련의 움직임이 흔한 세속적 ‘성공신화’의 일례를 비추는 것처럼 보여 지고,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 결말이 비참하다는 점에서 ‘인생관’의 훌륭한 사례로 인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씁쓸한 뒷맛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3일차
호메로스 원작의 <오디세이아>를 펼쳐본다. 독일 작가인 ‘아우구스테 레히너’가 원작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작품으로, 일전에 작가의 <니벨룽의 노래>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문학과지성사’판으로 또 선택을 한 책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귀향을 꿈꾸던 ‘오디세우스 함대’는 오랜 전쟁으로 신들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순조롭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드넓은 대양 위에서 폭풍우와 거친 파도로 말미암아 돛대가 부러지면서 항로를 잃은 채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떠도는 여정이 시작된다.
외눈박이 거인 괴물인 ‘키클롭스’와 조우해 부하들이 산 채로 먹이가 되는 등의 혼비백산 끝에 탈출에 성공하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을 건드렸던 탓에 ‘키클롭스’의 저주에 걸려 바다 위에서의 길고도 거친 여정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4일차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를 다 읽었다. 점심 먹고 완연한 봄빛에 주변의 꽃들이 화사하게 핀 근처의 ‘태조산’ 팔각정을 한 시간 반에 걸쳐 등산하고 난 뒤였다.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기술한 탓에 오랜 만에 강연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내용들을 음미하며 지금의 ‘나’ 자신의 현주소를 비교,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은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의 네 개의 소주제를 놓고 관련 자료를 역사의 인물이나 사건에서 찾아 실마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턱이 없다. 중요한 것은 책 안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모든 생각거리에 있어서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밖으로 나왔는데 적당히 데워진 공기가 달착지근하다. 하교한 초등학생 셋이 모여 뭔가 꾸미듯 이야기하는 소리가 듣기에 참 좋다.
-5일차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에 대한 서평을 쓴다. 그리고 <서머싯 몸 단편선 2>(민음사편)를 읽기 위해 가방에 집어넣는다.
*역사의 쓸모
-최태성 지음/다산북스 2019년판
역사에서 ‘중심(中心)’을 발견하다
-오랜 시간 동안 존경받아 온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다 보면 자긍심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략)...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쫓아가다 보면 그들이 굉장히 단단한 중심을 갖고 삶을 살아냈다는 걸 느낄 겁니다. (본문 중에서)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을 향해서 중심을 가진 채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준다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사의 무한한 확장이자 총체다. 그런 관계를 비교적 원만하게 국가 간이나, 인간 사이에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역사는 상세한 교본이 되어준다.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나이의 학생들이나, 사회에 진출했지만 어느 순간 삶에 회의가 오거나 주변 환경에 휘둘려 길을 잃었을 때 이 책은 한 줄기 빛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 책 <역사의 쓸모>는 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2장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3장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4장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라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다시 여러 소주제나 인물, 가치관들을 내세우거나 설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독자의 상세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의 지나간 역사에서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자료를 소급하여 활용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서 역사의 의미와 효용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킨다.
1장은 역사의 효용에 대한 부연 설명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거나 ‘기록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 ‘새날을 꿈꾸게 만드는 실체 있는 희망’ 등으로 역사를 아는 일은 가슴을 설레게 하고 미래의 희망을 가지게 하는 한 마디로 ‘살 맛 나는 행위’임을 전파하고 있다.
2장은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이라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이 요청하는 덕목을 설정하고는, 이 덕목들이 역사 안에서 실행되어진 사례들을 들추어봄으로서 개인의 역량 강화에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려 한다.
3장에서는 인간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인생’이라는 화두에 대해 역사 속에서 적절한 길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과거 역사 속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들의 삶의 행적을 쫓아 소개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정도전’, 민중을 위한 대동법의 실천주의자 ‘김육’, 청해진의 건설 ‘장보고’, 일제 강점기의 대법관에서 민족독립투사로 변신한 ‘박상진’, 조선의 거부(巨富)에서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한 삶을 살다간 ‘이회영’ 등을 사례로 들며 삶에서 치열함, 자유, 상상력, 시대정신, 실천 등의 항목을 열거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일련의 열정적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지금까지 소개해 온 여러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소양을 역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는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미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존재인 우리들로서는 불안한 내일을 잘 준비하고 계속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관련 사례들과 자료들을 취합하고, 교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내어 삶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맡겨야 한다.
역사는 결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 필수불가결한 정신적, 문화적 자양분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미 저자의 이 책 <역사의 쓸모>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의미전달을 충분히 받았다.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중 재충전의 의미에서도 한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2024.04)
<오디세이아>의 ‘키르케’편을 읽다.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을 돼지로 둔갑시키는 ‘키르케’, ‘이타케’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 ‘하데스’의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가 항로와 운명을 묻는 장면, 그곳에서 ‘오디세우스’의 어머니를 비롯한 이미 죽었지만 과거 화려했던 영웅들의 영혼들, 그 영혼들은 죽어 이미 이성을 잃어버렸기에 산 자가 제공하는 희생제물의 피를 마셔야만 잠시 영혼을 되찾아 산 자와의 대화가 가능해지는 장면 등등은 오랜만에 음미하는 마법적 환상이다. 마녀지만 늠름한 ‘오디세우스’가 마음에 든 나머지 그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려는 ‘키르케’의 속셈을 엿보는 것도 즐겁다.
-6일차
새벽 3시 반. 문득 잠이 깨어 서재로 가서 독서일지를 수정, 보완하다. 제대로 한 번 써볼 생각이 들어서다. 돌아보면 책을 읽고 서평을 쓴 지도 꽤 된 것 같다. 밀레니엄 전후에 시작한 것 같은데...
‘텔레스코프’가 어머니에게 청혼이란 명목으로 이케타 왕국의 궁전에 들어와 가산을 탕진하며 혼란을 일삼는 청혼자들의 무례한 행동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일련의 행동에 돌입하는 장면을 읽는다.
먼저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행방을 알고자 여신 ‘팔라스 아테나’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의 전 동료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런 다음에 왕위를 물려받아 자신이 무뢰배들을 왕국에서 쫓아낼 건지,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릴 건지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도우려는 여신 ‘아테나’의 신출귀몰한 활약이 눈에 뛴다. 신(神)으로서 여러 인물로의 변신과 순간이동이 가능한 탓이다. 신화와 역사와 환상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함과 이야기의 극적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어릴 때 접하고 이후 오랜만인데 역시 새롭다 이채롭다. 그래서 학생 시절 접했던 고전을 다시 읽으라고 하는 걸까.
-7일차
새벽 5시 반에 집근처 태조산을 오르다. 새벽의 짙은 어둠이 주는 편안함과 따스한 공기 덕택에 오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얼마 만에 오르는 새벽 등산인지... 수건을 챙겨 약수터에서 정갈하게 세수하는 맛도 일품이었고, 어둠이 걷히며 드러나는 산 정상 주변의 꽃 핀 풍경도 좋았다. 노란 개나리 사이로 진달래가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고 있었는데, 매일 새벽마다 산을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오디세이아>를 다 읽다. 무슨 책이든 여러 번 읽으면 감동이 그때마다 새롭다는 것은 삶을 살아온 시간의 두께가 책의 내용에서 오는 감동의 색을 그때마다 다르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 때 읽을 때와는 달리 책에서 종교적인 이채로움과 함께 일상적인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자, 책의 서평을 쓰자.
-8일차
처조카의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다. 서울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자가용을 몰고 다니기에도 교통이 너무 복잡한 도시다. 봄날 한창 꽃이 예쁠 때라 곳곳에서 정체된다.
-9일차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원작/아우구스테 레히너 평역/김은애 옮김/문학과지성사2017년판
오랜 여정과 귀환, 인생의 축소판
1
신은 늘 엄숙하고 두려운 존재다. 평범한 인간이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현대의 일상에 뿌린 내린 모든 종교가 그러하다. 현대 문학에서 신이 등장하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됐다. 일상은 신이 주재하는 성스러운 영역과 평범한 인간들이 각자 살아가는 세상, 이렇게 이분화 혹은 신과 인간이 적당히 공존하며 살아가는 제 3지대 정도를 추가해서 살아가는 정도다.
<오디세이아>에는 그런 분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테나’ 라는 여신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수시로 등장해 변장하고,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인간들 앞에서 사라진다. 모든 중요한 일에는 신탁이 있어야 하고, 인간의 운명은 신들에 의해 주관되고 결정된다. 그런데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신들의 상호관계는 인간관계의 또 다른 버전이다. 그런 관계로 자신의 운명에 결정권이 없는 인간은 근심을 하고, 불안을 느끼긴 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의미할 뿐이다.
2
어떤 면에서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환경은 인류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래서 많은 시간이 흐르고 주변 환경이 문명이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변화되긴 했어도,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각종 장면-전쟁, 폭력적이고 야성적인 문화, 남녀 간의 사랑과 시기-들을 현재에 유추해 볼 때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면 이건 터무니없는 발언일까.
<오디세이아>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오디세우스’의 ‘트로이’ 전쟁터로부터 고향 ‘이타케’를 향한 귀환 여정,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아버지의 행적을 알기 위한 여정(오디세우스의 동료들 방문), ‘이타케’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정적들(아내 페넬로페에 대한 청혼자들)에 대한 복수다.
3
호메로스가 살던 무렵에는 신과 인간이 공존했다. 인간이 활동하던 모든 영역, 전쟁터, 바닷가, 신전, 궁전 등 민가의 대장간 등 곳곳에서 신들의 활약이 있었고 인간은 신과 교류했다. 그들은 때때로 신들의 분노를 사서 저주를 받거나 추방을 강제당하기도 했지만 신과 인간, 서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중세로 들어서면서 신은 인간의 영역에서 그 실체적인 모습이 사라진다. 대신 여러 천사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지극히 예외적이었다. 신과 인간의 공존이 그 전 세계보다 미미해졌던 것이다.
그랬던 세계는 현대로 들어서면서 인간을 제외한 비이성적 존재는 모두 인간이 사는 땅에서 사라진다. 신은 종교를 믿어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일상에서 신을 언급하는 자는 소외를 당하고 만다.
신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각종 매스컴 매체를 통해 소통하는 현대가 신과 인간이 공존하며 수시로 다양하게 교류하던 호메로스 시대보다 감성적인 면에서 더욱 풍요롭고 일상을 만족시키는 시대인지 장담할 수 없다.
4
저자 ‘아우구스테 레히너’는 고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독자들에게 전달함으로서 고전의 넓고 깊은 세계에 흥미를 가지게 한 작가다. 일전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니벨룽의 노래> 또한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믿고 골랐던 것이다.
작가는 갈수록 위축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고전 세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거침없는 모험과 방랑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극복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교훈을 보여주기 위해 고전 작품의 평역에 몸을 담았다고 한다.
원작 <오디세이아>는 애초 이 책과 서술방식과 전개가 다르고 ‘서사시’의 형태를 띤 탓에 현대인들이 읽기에 다소 생소할 수도 있었고, 그 탓에 흥미가 반감할 수도 있었지만 작가의 실력으로 전체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 재편집함으로서 이해와 흥미를 증폭시켰다고 하겠다.
5
시간이 다소 흘러 인생에 대한 경험을 좀 더 축적하여 시야가 깊어질 수 있다면, 그 때 세 번째로 이 책을 다시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때 세상은 또 얼마나 달라지고 변화했을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그 시간을 기다려 보겠다.
(2024.04)
-10일차
산에 오르다 보면 등산길 초입에 빈대떡을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그 뒤로는 그 젊은 여주인이 사는 집이 한 채 있다. 그녀의 정원이 아름다웠던 것이다.
하얀 목련이 마당 한 켠에서 커다란 나무 위로 하얀 불꽃을 피운 것처럼 만개했을 무렵 올 첫 등산을 시작했는데, 정원 한 편의 텃밭에서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붉고 노랗게 어울린 채 활짝 핀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 산은 앞으로도 계속 예쁜 모습을 보여 줄라나.
<서머싯 몸 단편선 2>은 정성을 들여서 읽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편 <춤꾼들>, <행복한 커플>, <비둘기의 노랫소리>의 세 편을 읽었는데, 각 작품의 배경과 이야기를 달리하며 독자를 빨아들이는 솜씨가 예사수준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인간 본능의 적나라하면서도 다채로운 내면 풍경(한편으론 변덕이 심한)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할까.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