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장
몇 가지 이유에서 당구를 무협소설에 나오는 무술에 비교를 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물론 걍 재미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당구 얘기라는 것이 워낙 빤~하기 때문에 그냥 심심풀이로 하나 만들어보고자 함이다.
둘째는 그 동안 장난 비슷하게 당구를 무술에 비유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왔으니 이것을 조금 체계적으로 가다듬어 글로 정리해보자는 생각이다.
셋째는 어느 순간 잠시 스쳤던, 어쩌면 나 혼자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한 생각 때문이다.
사실 난 무림이라고 불리우는 세계, 혹은 무술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며, 무협지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그 방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당구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러므로 굳이 이 둘을 비교하면서 생각을 하자면, 무술에 있어서 이해가 잘 안되는 점을 당구에 비추어 생각을 하면 풀리는 과정이 되어야 사리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실제로는 그 반대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한번 생각해보자.
당구에서 스트록이라는 것을 무엇인가, 그것과 공이 굴러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또 시스템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감각으로 친다는 말은 무엇인가.
자주 사용하는 샷이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명확하게 답이 나오는가?
답이 그려지는 사람에게는 이 세번째 이유는 헛소리가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당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2. 병장기
대개 무술(무협소설에 나오는 무술을 말한다. 나는 실제 무술에 대해서는 완전히 백지이며 심지어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의 대가가 되려면 몇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그 첫째가 내공이며, 둘째는 초식, 셋째는 병기이다.
이 세가지는 무협소설에서 기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때로는 갈등의 진원지로도 많이 이용된다.
가령 무슨 비급이라거나 고대로 부터 내려오는 신병이기 등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 같은 것이 소설의 전체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병이기는 물론 대가가 갖추고 있는 세번째인 병기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비급은 내공이나 초식에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옛날의 무협소설에서는 비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주로 초식과 관련된 것이었으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이것이 심법이라고 표현되는, 내공을 연마하는 비급으로 주종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내공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즉 전통적인 무협소설에서는 내공이란 오랜 기간 동안의 엄격한 수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해석한 것에 비해(사실 이러한 해석이 무술의 본령에 맞을 것이다), 근래에는 내공이 어떤 비급을 통해 특별한 방법으로 속성 수련이 가능한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내공을 쌓기 위해서(혹은 단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은 각각 가는 길이 다를 뿐 그 추구하는 바와 본질은 같아서 결국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연마를 했느냐가 내공의 깊이를 가름해 준다고 한다. 즉 어느 방법이든 느닷없이 며칠 만에 몇년 혹은 몇 십년 분량의 내공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짜피 소설이란 그럴듯한 이야기이므로 어떤게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지만 무술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내공에 대한 해석은 과거의 전통적인 무협소설의 그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술에 관해서는 이 정도의 내용을 서로 공감하는 것으로 하고 이제 이것을 당구에 비교해 보기로 하자.
앞서 대가들이 갖추고 있는 3가지를 이야기한 바 있다. 내공과 초식과 병기.
이 중에서 병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당구로 치자면 큐를 말하는 것이다.
병기 전체를 뭉뚱그려 한꺼번에 이야기하자면 큐이고, 병기를 잘게 구분하는 것-가령 검과 도, 그리고 기타 변형 무기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팁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사용되는 암기 같은 것은 쵸크 쯤에 해당될텐데, 어짜피 승부의 본령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깊이 생각하지 말자.
또 테이블이나 클로스(당구지, 나사), 당구공 등은 개인의 병기라기 보다는 서로에게 공통되는 것으로 말하자면 승부를 겨루는 장소 쯤에 해당할 것이다.
대나무 밭에서 싸우자면 긴 창을 무기로 삼는 무사보다는 검을 쓰는 사람이 다소 유리할 것이며, 갈대숲에서는 도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병기인 것 처럼 어떤 테이블과 당구지에서 어떤 큐가 유리하느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큐는 자신의 특성에 맞게 만드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 이 팁과 큐에 관해서는 다른 글이 있으니 그걸 보아주었으면 한다.
3. 초식
병기를 그렇게 간단히 해석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내공과 초식인데, 사실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 이 부분이라 일부러 뒤로 돌린 것이다.
먼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근래의 무협소설에서는 내공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전통적인 무협소설에서는 내공과 초식이 대개 5:5 이며, 혹은 초식이 내공에 비해 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최초의 무협소설이라고 할만한 군협지에 나타난 것을 보아도 주인공이 대성을 이룰 때 까지 하는 일이 초식을 연마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이다.
물론 초식과 내공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한다는 것이 상당히 무리한 일이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다른 사람이 당구 경기를 하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려면 어떤 것을 주로 보게 되는가.
물론 간단히 득점 수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보게 되겠지만, 때로는 그것이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실 당구를 좀 친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경기를 볼 때 득점 수도 보지만, 그 외의 요소를 놓치지 않고 확인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그 외의 요소란 무엇일까?
자세라거나, 대화 내용이라거나, 심지어 쵸크를 칠하는 동작에 이르기 가지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일단 테이블 안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한정을 하자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공이 구르는 모양과 공의 진로.
이 두 가지 이외에 다른 것들, 가령 공을 맟추는 두께, 회전의 정도, 키스와 관련된 것 등 다른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이들 모두 앞선 두 가지로 귀결된다.
말하자면 이 두 가지가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고 할 것이다.
먼저 공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공이 어떤 길로 다니는가 하는 것 말이다.
우선 기초적으로는 이러이러한 배치에서 어느 길을 골라 칠 것이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아웃사이드 앵글샷(우라)과 반대쪽 숏 앵글샷(하꼬), 뱅크샷이 있을 때 어느 것을 택하는가 하는 것 말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것과 자신의 선택대로 공을 보내는 것은 무술에 비견하자면 초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처음 당구를 배울 무렵 앵글 샷의 진로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배우고 그 길대로 시도를 해서 성공했을 때 느꼈던 환희를 기억하는가.
무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서생이 길에서 우연히 주운 무술책(비급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에서 본 대로 주먹을 휘둘러 동네 불량배를 한 대 때리는데 성공하여 기뻐하는 장면과 같은 것이다.
그 무술 서적에는 결코 한 가지의 초식만 써 있지는 않을 것이다.
체계가 잡혀 있는 책이라면 제 1초, 2초, 3초...번호를 붙여가면서 여러 가지 초식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책이라면 그저 죽 나열 해 놓았을 것이다.
어떻든 꽤 많은 초식이 담겨 있을텐데, 대개는 이 서생의 능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무슬을 조금 한다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초식들이며, 심지어 무술의 초보자들도 알고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서생이 길을 가다가 주울 정도의 책이니 당연히 고급의 내용을 담은 비급 수준의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초식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팔을 뻗어 얼굴을 치는 방법, 다리를 올려 가슴을 차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뒤로 피하는 상대방의 오른쪽 무릎을 가격하여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린 후 몸을 한 바퀴 돌려 왼쪽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방법과 같은 복잡하면서도 실전적이고 대단히 구체적인 고급 초식도 있는 것이다.
마치 이런 배치에서 키스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수구에 오른쪽 3팁의 회전을 주어 제 1적구의 왼쪽 4분의 1을 맞추되 제 1쿠션에 닿은 후 수구가 솟아 오르도록 큐를 잡아주고 제 3쿠션 이후에 조금이라도 길게 떨어지도록 3 레일의 힘으로 친다는 그런 식이다. 또 3레일 뱅크샷을 하기 위해 2.5 포인트을 쳐야한다는 것도 초식의 세부 사항에 해당한다.
쿠션에 붙어 있는 제 2 적구를 맞추기 위해 수구에 회전을 많이 실어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제 1 적구를 두껍게 맞추는 방법을 구사하는 것도 초식이며, 키스를 염두에 두고 수구를 빠르게 보내기 위해 회전을 조절하는 것도 초식이다.
이렇게 공이 다니는 길을 무협 소설에 비유하면 모두가 다 초식이며, 이것을 다른 당구 용어로 표현하면 시스템이라는 말이 된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
첫댓글 흥미진진합니다~~~좋은 글 기대해 봅니다,,,,군협지는 최초로 접한 무협지의 입문서 였더랬습니다...주인공이 서원평인걸로 기억되는데.....안타까운 러브 스토리도 아련히 기억되는군요
입시 공부 해야 되는데 ,군협지 붙들고 밤새던 생각이 아련합니다........
서화님 글좀 퍼가겠습니다. 그런데 복사가 안되네요
서화님께 양해를 구해 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당구의 실력을 내공과 초식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독특하군요. 앞으로 글을 쓸 때 이 분석의 틀을 벤치마킹해도 될런지요....?
자작나무님의 아파트에 방한칸 내 드려도 되겠지요???....그냥 뒷페이지로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브 코스구요, 화이 낫이겠습니까?
감사합니다......아파트 월세는 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구~~ 허락을 구하실 사항도 아닌 것 같은데요...ㅎㅎ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미진진... 읽으면서 서화님 직업이 궁금해집니다...ㅎㅎ
서화님 퍼가도 되는거지여 퍼 갑니다,,,감사히 ...공감이 많이 가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