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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며 듣는 음악 6
Ennio Morricone : The Lady Caliph(La Califfa) – dinner/noctorne
두 거장이 만나 뭔가를 작당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고귀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태리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와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요요 마(Yo-Yo Ma)
이 둘이 만나 몇 곡의 영화음악을 편집하여
2004년도 9월 하나의 CD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2005년에 사운드를 강화해서 듀얼디스크로 재출시합니다)
Yo-Yo Ma Plays Ennio Morricone
“요요마가 연주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들” 정도로 해석이 될까요.
이미 많이들 아시고 들어보신 음악이며
이 앨범 자체가 너무 훌륭해서 많은 분들이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에서부터
쥬세뻬 토르나또레(Giuseppe Tornatore)의 연작들
그리고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의 작품들
이 외 엔니오 모리꼬네의 명품 영화음악을 대상으로
요요마의 걸출한 첼로연주가 화음을 이루어 하나의 명반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주선율을 어떤 악기가 맡느냐에 따라 음악이 이리 달라지는군요.
첫 곡 “가브리엘의 오보(Gabriel’s oboe)”만 하더라도
기존 오보(Oboe)가 들려주던 여리고 애처롭지만 그 또렷함을 잃지 않는 맛이 좋은데
묵직하면서도 강한 요요마의 첼로로 바뀌니 오히려 절절함과 충만감이 넘쳐납니다.
영화 미션에서 느꼈던 그 감동이 한꺼번에 일어나며
그 음악의 세계로 확 끌어당기는 마력(魔力)이 있습니다.
다른 음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첼로라는 악기가 매력적인 건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도 쉽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총 1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곡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연주가 주옥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한 영화에서 나온 음악을 연속하여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에서는 트랙을 구분하느라 아주 짧은 단절이 발생하고
그 틈새의 짧은 정지상태가 아주 물올랐던 감흥을 살짝 끊어놓는 작용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워낙 원곡 자체가 아름답고 연주가 훌륭해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듣기에 너무 좋습니다.
이 음반의 음악이 주제곡이 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미션, 시네마 천국, 말레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석양의 무법자 등
대개가 유명한 영화로 익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연주를 듣다보면 단편적이나마
영화속 장면들을 반추하며 그 감동으로 다시 젖어들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그 중 마지막 18번 트랙과 19번 트랙의 영화
“The Lady Caliph”은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영화입니다.
첫 도입부에서 약간 꾸물대는 듯한 연주가 곧 끝나고
주선율이 이어지는 이 음악은 왠지 심상찮은 느낌을 줍니다.
먼저 곡을 한 번 들어 보시지요.
(유투브 링크후 광고가 나오면 스킵하십시오)
워낙 유명한 앨범이라 유투브에 여러 개가 깔려 있지만
이 양반 모음이 순서대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영상은 없으니까 이 곡 들으신 다음
열린 목록에서 첫 곡을 누르시고(그냥 두셔도 되네요^^) 본문으로 돌아오시면
글 읽으면서도 연속해서 앨범 전체를 다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가끔 중간에 뜬금없는 광고가 나오면 좀 귀찮지만 스킵하면서^^)
어떠신가요?
제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몹시나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격한 아픔이 있는 선율입니다.
절망적인 큰 고통에 맞서 저항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속의 아픔마저는 결코 녹여내지는 못한 그런 느낌.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픈 선율이 첼로의 활을 타고 처연하게 흐릅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이토록 슬픈 선율을 주제곡으로 삼았을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작정하고 그 영화를 찾아봤습니다.
이놈의 호기심이 늘 인생을 피곤하게 합니다.
국내 영화관이나 방송에서 상영이 된 적이 없는 영화
국내 인터넷에선 어디에도 영상도 없고 자막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어둠의 경로로 들어섭니다.
발견!
La Califfa(The Lady Caliph 칼리프 부인)
1970년, 이태리 프랑스 합작 이태리 영화
알베르토 베빌라쿠아 감독, 우고 토냐찌, 로미 슈나이더 주연
한 마디도 모르는 이태리 말과 영어자막도 없이
1시간 32분짜리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무작정 봅니다.
첫 장면은 넓은 공터 한 가운데 죽어 있는 남자
그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미모의 여인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남편이 시위과정에서 죽게 되고
졸지에 미망인 된 칼리파 부인이 회사로 출근하며 노동자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엔 대립과 갈등의 형태로 만나게 된 사장.
하지만 계속된 접촉에서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되고
그 감정은 점차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이 공장주세력과 노조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여러 해결방안을 찾아 나서보지만 번번이 실패.
서로의 이해관계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세력 사이의 암투가 격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장마저도 결국 죽음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는 비극적인 결말의 영화.
말도 모르고 뜻도 모르고
단지 영상을 보고 느끼며 추론한 것과
여기저기에서 끌어 모은 자료를 종합한 내용입니다.
노사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 그 속에서 일어나는 어지러운 일들.
당시 1960년대 후반 유럽 전역이 그랬고 이태리가 그랬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영화는 당시 매우 시사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스토리의 전개나 영상적인 측면은 매우 미숙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영화내내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답게 흐릅니다.
“햐~ 영감쟁이! 하여간, 젊었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감성 하나는 쥑여주는구만.”
충분히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깊은 여운을 남길 만한 음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딱 좋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무거운 주제와 관련 없이
가끔 반라(半裸)의 자태로 훌륭한 “슴가”를 보여주는 미모의 여배우
왠지 므흣한 감정으로 그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질 말았어야 했는데.... 이놈의 호기심!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
1938년생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배우
15세때 영화에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활동.
1958년 알랑 들롱과 첫 만남 이후 약혼하여 1963년 결별.
그 뒤 두 번의 결혼이 이어졌으나
첫 번째 남편은 이혼 후 몇 년이 지난 1979년 자살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 1981년 7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음
아들의 죽음으로 술과 약물을 시작했고
1982년 5월 약물과다로 프랑스 파리의 어느 아파트에서 사망.
사후 부검에서 심장마비로 결론.
프랑스 중북부 Bolssy-sans-Avoir에서 그녀의 아들과 함께 영면.
향년 43세.
옛 연인 알랑 들롱(Alain Delon)이
짧은 인생을 살다 갑작스레 간 그녀의 죽음을 접하고 떠올린 말.
한 때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말.
“지나간 사랑보다 차가운 것은 없어요!”
들롱은 그녀를
그녀가 그토록 가슴에 품고 아파했던 아들과 함께
영원히 안식할 수 있도록 같이 묻고 그녀의 묘비에 이렇게 새겼다합니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을 위해 몇 마디의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Ich Liebe Dich, Mein Liebling! (사랑해요, 내 사랑!)”
이런, 젠장!
결국 촐랑대던 저의 호기심이 사고를 쳤네요.
햐~ 앞으로 이 음악을 어떻게 들을지....
영화와 현실 모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은 이 여인.
역시 인생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 음악을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율이다.”고 격하게 표현했는데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정말 슬픈 음악이고 슬픈 사연입니다.
사람의 이면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
여러모로 살아가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이놈의 호기심!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마지막으로 이태리 국민여가수 밀바(Milva)가
1972년 엔리오 모리꼬네에게 바친 헌정 앨범에서 나온
La Califfa를 들으며 오늘 음악은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앨범 사진을 누르시면 유투브로 연결됩니다. 광고가 나오면 스킵.)
*** 음악이 시작되면 아래 가사 보러 오세요
* La Califfa....가사
Tu non credere perche
Questa crudelta di padroni
Ha visto in me
Solo una cagna che
Mi mett' anch'
Io alla tua catena
Se attraverso la citta
Questa ipocrita, tua citta
Il corpo mio
Che passa tra di voi
Eun invettiva contro la vilta
Tu ritroverai con me
La pi splendida proprieta
Un attimo di sole sopra noi
Alla ricerca di te
당신은 믿지 않아요
당신의 줄에 스스로 얽매인
개에 지나지 않는 내게서
가진 자의 잔인함을 보았기에
위선으로 가득 찬
당신의 도시를 거닐면
당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나는
비겁자에 대한 분노의 울부짖음
나와 함께 당신은 다시
가장 찬란한 것을 찾으리.
당신이 찾는
우리 모두에게 태양이 비추는 순간을.
가사에서 참으로 잘 드러나지요.
절망과 분노, 그리고 격한 슬픔
그리고 이루지 못한 작은 희망과 그 속에 자리 잡은 깊은 아픔.
휴~
사람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첫댓글 첼로의 음색을 좋아합니다
그 진중한 진동이 느린칼님의 글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문득 듭니다
느린칼님의 호기심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느린칼님..^^
으음.....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귀한 칭찬을 받아보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월나무님, 틀림없이 삼생(三生)에 홍복(洪福)이 있으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음악에 대한 느린칼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1978년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를 크게 틀어놓고 한없이 울었던 기억, 미션에서 장중하게 울려퍼지던 음악들 ... 아스라이 사라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글을 통해 행복을 주시는 느린칼님 성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미천한 소생에게 성불까지 말씀하시니....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리발님의 말씀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그 말씀하신 뜻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리발님이 내어주신 그 마음 그 뜻이 반조(反照)되어 꼭 그대로 성불하시길 기원합니다. _ ()_
대단하다는 말이외 할말이 없음
대잔하다
음악도 모르면서 오디오 타령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확실히 좋은 오디오는 듣기 편한 좋은 소리를 냅니다.
좋은 오디오 갖추기. 여건만 된다면 한 번 추구해 보고 싶은 취미입니다. 반갑습니다.^^
@느린칼 님의 글을 읽고 요요마와 모리꼬내 씨디를 샀습니다. 좋아하는 첼로 소리가 더욱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붉은분필 님의 응답에 감사하며.... 좋아하는 첼로 소리.... 마음 껏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