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영상이나 내용 모두가 어둡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관객에게 등장인물들이 결코 무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 그것을 뛰어 넘어서 웃기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전모를 파악해보자.
우선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보면 이야기가 시작되는, 즉 사건이 발생하여 박두만이 수사를 시작하기 전 이야기부터 보면 그 시대는 ‘동원의 시대’였다.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데모행렬...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시작부에서는 거론되지 않지만, 이러한 사건 이전의 일들부터 알아야할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은 하수구 속에서 발견된 사체에서 시작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시작부분부터 박두만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를 등장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나는 이 아이의 말과 행동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의미를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주요 장면들을 보면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라고 말하면서 등장하는 시골형사 박두만과 서울형사 서태윤의 첫 만남.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원한 서울시경 출신 서태윤은 한 여인에게 길을 물어보다 연쇄살인범으로 오인 받는다. 마침 그 길을 지나던 박두만은 서태윤에게 격투 끝에 수갑을 채운다. 두 형사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특이한 만남이다. 현장검증씬. 용의자 백광호의 현장검증 씬에서 이야기는 다시한번 뒤집힌다. 잘 나가는가 했더니 백광호의 진실어린 몸부림은 언론에 공개되고 다시금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하수구에서의 서태윤의 서류에 의한 조사(?)를 경찰 간부에게 설명하는 장면은 또 하나의 구성점이다. 초기 수사팀의 주무기인 "육감"과 "워커발"과 "삽"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또한 조금 뒤 나오는 부검실에서의 설명에서는 범인이 피해자가 지닌 물건을 범행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무당의 말대로 부적으로 범인의 형상을 알아보려다 목격한 용의자. 추격씬이 나오며 수많은 인부들 사이에서 용의자를 찾아내는 박두만의 눈빛은 거의 사냥감을 찾는 하이에나의 그것이었다. 양호선생의 진술에 따라 찾아간 한 여인의 집. 여기에서 서태윤은 단서를 잡은 듯 했다. 그러던 중 엽서의 발신자 주소가 확보되고(주요 구성점) 박형규를 잡아들이는데...그러던 가운데 백광호의 진술 녹음테잎에서 백광호가 사건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링겔을 사가던 박두만의 애인은 여중생과 길에서 지나치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범인은 갈등을 하다가 여중생을 살해한다. 여중생의 살해현장에서 감식반이 서태윤이 붙여주었던 밴드를 서태윤이 보는 가운데에서 때어 내는데 그 광경, 그 영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시퀀스가 내가 생각하는 클라이막스의 부분이다. 서태윤은 곧장 용의자 박형규의 집으로 가고 박형규를 잡아 기차터널까지 가는데, 평소의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격분하여 박형규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그러던 중 정액 분석 서류는 도착하고... 박형규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여중생 살해현장에서 기차 터널까지 오는 과정을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며 ‘서류도착’이 더욱더 고조시킨다. 이렇게 ‘추억’ 부분은 끝이 나고 시간은 2003년이 된다. 박두만이 옛적의 사건 현장을 다시금 가 봄으로써 영화는 끝난다.
다음은 영상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모든 시퀀스를 분석할 수는 없기에 기억에 남는 장면들만을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처음부분, 논에서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를 보면 커트가 거의 없이 롱 테이크로 찍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카메라가 박두만이나 그 외의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에 따라 패닝을 하거나 따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두만의 집에서 박두만의 애인이 박두만의 귀지를 파내주는 장면에서는 쇼트, 역쇼트가 반복되다가(물론 여기에서의 쇼트들은 화성구조와 다중변각에 의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장면이 편집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빠져들게 한다.) 투샷으로 가고 있다. 이는 영상 속에 보이는 인물을 한 개의 각도와 크기로 찍는 것이 아닌 여러 각도와 크기, 거기에다 영상 편집 시에 커트의 길이를 길고 짧게 리듬있게 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 속에 빠져들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촬영․편집 기법은 서울에서 내려온 서태윤이 박두만의 차를 타고 가는 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다음은 산속에서 백광호를 취조하는 장면인데 여기에서는 등장인물․카세트 녹음기를 줌인과 동시에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함으로써 관객이 등장인물과 동일시된다. 그 다음으로 현장검증씬을 보면 백광호가 자신이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고, 그를 잡기위해 형사들이 뒤쫓아가는 장면에서는 슬로우모션을 함으로써 백광호의 표정이나 논두렁 위의 군중들의 얼굴까지도 보게 함으로써 미묘한 감정까지도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경찰서에서 여경이 라디오 음악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여경을 먼저 보여준 뒤 그 다음에는 프레임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suture(봉합-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묶는다.)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여경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당연시 여길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박두만은 무모증인 사람을 찾는다고 하여 목욕탕을 전전하고 서태윤은 엽서의 발신주소를 찾기 위해 방송국에서 수사하는 과정을 교차편집 함으로써 둘의 대립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밤 공동묘지 시퀀스는 훔쳐보기(관음주의.voyeurism)이 잘 나타나고 있다. 변태가 하는 행동을 묘지 뒤에 숨어서 조용히 바라보는 세 명의 경찰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빛이 난다. 이러한 훔쳐보기는 ‘박형규를 감시하기 위해 차안에서 잠복근무를 하는 서태윤’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음산한 산길에서 범인이 박두만의 애인과 여중생을 바라보는 장면은 훔쳐보기의 절정이다.
중학교 뒤쪽 언덕배기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집에서의 카메라는 여자의 심리를 말하듯이 계속 흔들린다. 또한 이야기가 여인의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집을 모화면으로 잡아줌으로써 설정하고 있다. 또한 카메라를 똑바로 보는 여인의 눈을 관객은 바라보며 동일시 되게 된다.
기차터널에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용의자 박형규와 범행을 했는지 집요하게 묻는 박두만’장면은 교재에서 배운 눈길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론이 아닌 실제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총을 쏘자 쓰러졌다가 유유히 어둠속으로 일어나 걸어가는 박형규의 모습과 터널 안쪽에서 밖에 있는 박두만과 서태윤을 찍은 장면은 둘의 허무한 심리를, 그리고 박형규와 박두만, 서태윤이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마지막 시퀀스인 박두만이 예전 사건현장을 찾아온 장면에서 하수구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박두만의 눈을 카메라와 일치시키고 있으며, 점점 줌 아웃을 하다가 카메라가 방향을 바꾸어 줌인으로 바뀌는 것도 내가 볼 때는 특이한 영상 중 하나였다.
사운드를 분석해 보면, 우선 카메라가 경찰서에서 보일러 실로 가는 과정을 수사반장 음악을 통해 사운드 브릿지로 사용함으로써 편집되었다는 것을 감추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장면이 넘어갈 수 있게 한다. 경찰서에서 조명이 다 꺼진 가운데 범죄 자료를 보고 있는 서태윤의 모습과 함께 나오는 사운드는 서태윤의 심리를 잘 나타내고 있다.
데모시위 장면에서 나오는 비속의 여인 사운드는 현장에 여경이 투입되는 장면까지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나오며 이 음악이 차 안 라디오에서 나옴으로써 사운드는 논디에제틱 사운드에서 디에제틱 사운드로 바뀌게 된다.
남편을 마중 나가는 듯한 빗길 속을 걷는 한 여인의 장면에서는 갑자기 들리는 휘파람 소리가 나오며 끊겼다가 빗소리, 즉 잡음을 더 강조하였다가 다시금 휘파람 소리를 들리게 함으로써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있다. 범죄가 행해지는 순간 사운드와 고함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데 여기에서 전화벨 소리는 경찰서로 영상이 바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변태 용의자가 출현하였을 때는 조금씩 커지는 발소리가 관객까지도 긴장하게 만들며 추격씬에서의 사운드는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다. “사운드 쥑이네~” 용의자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도주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들리는 음향효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정도의 긴박감을 관객에게 주고 있다. 사운드로써 상황을 더욱 잘 살린 것 같다.
이제는 context분석을 하고자 하는데 이는 작품, 즉 text의 배경이 되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보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한 바가 있지만 이 시대는 일단 ‘동원의 시대’였다.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데모행렬...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시작부에서는 거론되지 않지만, 이러한 사건 이전의 일들부터 알아야할 것 같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80년대 중반 태안의 인구는 약 3만명. 하지만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단 5명뿐이었고 한다. 5명이 지키기에는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고 말이다.
또한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워커발"과 "삽"이 대변하는 그 당시 취조 분위기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주술문화도 나타나고 있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수사를 해야 할 형사들이 무당집을 전전하는 등의 행위는 우리의 80년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영상 중에서 박정희의 모습이 보였던 것 같은데 이는 우리나라의 권위주의적 사회성향을 보여준다. 이는 경찰서 내부에서도 보여 지고 있는데 좋은 예가 취조 시 구타를 하지마라고 말 하면서 부하를 구타하는 상사의 모습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우리는 이 영화를 더욱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수사반장’ 세대가 아니다. 그러한 점도 영화의 목표수용자를 설정할 때 조금만 신경을 썼었더라면 하는 바이다.
epilogue
영화를 보면서 눈이 충혈 될 정도로 정리를 했던 이틀 전이 생각난다. 그 때는 무척이나 힘들었었는데 내가 분석한 글을 보니 의미 있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언론에서도, 그리고 세간에서도 화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찬사만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분명 잘못된 부분은 있을 것이므로 조금의 비판도 나왔으면 하는 바이다.(내가 비판할 능력까지는 없기에...)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시각이 충족되는 영화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6년 동안 10명의 부녀자가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9차와 10차 사건이 불과 2년, 3년 남아있다.
빗속의 두 형사는 그렇게 부르짖는 듯하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범인은 반드시 잡혀야만 한다고 말이다.
음,,, faciest님. 제가 외람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면요, 여기는 그저 자유롭게 영화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의 후기에는 때로 부족한 부분도 많고, 때로 억지스런 부분도 많지만 그런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무 구분
없이 어울리는 장이기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봐요. 애초에 영화에 대한 내공 따위를 겨루려는 의도는 있지도 않았구요,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발전적인 공간이면 더 좋구요. 그래서 글쓴이의 영화에 대한 느낌만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글 자체의 논리전개나 허점을 드러내는 건 조금만
조심해 주셨으면합니다. 안그래도 이곳에 글쓰기 어렵다는 회원분이 너무 많거든요. 전 장선우가 가장 영화감독같이 생겼다며 최고의 한국영화감독 (비록 순위외이지만)으로 꼽으신 희극지왕님과 같은 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논리적이지 않지만 희극지왕님이 얼마나 장선우 감독을 좋아하는지 느껴지지 않나요?^^
첫댓글 여전히 살인의 추억은 회자가 되는군요.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는 있는 영화죠.^^
눈이 마니 아프긴 했지만 글 잘 읽었습니다
비판에는 근거가 있어야겠죠. 어떤 견지에서보기때문에 비판되는가를 우선 밝혀둔다면 말이죠. 너무 찬사를 받는다고 비판받아야된다는 근거는 좀 빈약한듯. 찬사가 있다면 어떤 견지에서의 찬사인가,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보고자 한것은 기술적인부분과 텍스트 분석이었기에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음,,, faciest님. 제가 외람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면요, 여기는 그저 자유롭게 영화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의 후기에는 때로 부족한 부분도 많고, 때로 억지스런 부분도 많지만 그런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무 구분
없이 어울리는 장이기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봐요. 애초에 영화에 대한 내공 따위를 겨루려는 의도는 있지도 않았구요,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발전적인 공간이면 더 좋구요. 그래서 글쓴이의 영화에 대한 느낌만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글 자체의 논리전개나 허점을 드러내는 건 조금만
조심해 주셨으면합니다. 안그래도 이곳에 글쓰기 어렵다는 회원분이 너무 많거든요. 전 장선우가 가장 영화감독같이 생겼다며 최고의 한국영화감독 (비록 순위외이지만)으로 꼽으신 희극지왕님과 같은 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논리적이지 않지만 희극지왕님이 얼마나 장선우 감독을 좋아하는지 느껴지지 않나요?^^
아, 그럼 시비는 어디서 거냐구요? 400번의 구타 있잖습니까^^ 게다가 요즘 살인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으니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시면 언제라도 애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