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6시. 박권세(28)씨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는 기상 후 간단하게 조깅으로 몸을 풀고, 밥을 먹고 바로 도서관이나 강의실로 향한다. 오후 5시30분. 그가 듣는 강의나 치르는 시험이 대부분 끝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박씨가 찾는 곳은 술집도 당구장도 PC방도 아니다. 그는 저녁을 먹고 잠시 머리를 식힌 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을 시작한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자정 무렵. 하루 일과가 온통 공부로 채워진 이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 7개월이 넘었다. 박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며 “집이 서울인데도 공부하는 시간 뺏길까봐 집에 다녀온 것은 3~4번 정도”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일과처럼 보이지만 박권세씨는 어엿한 대학생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웅지세무대학이고, 이 학교 1200여명의 학생들은 모두 박씨처럼 생활하고 있다. 재학생의 95%정도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기상, 수업, 자기학습(자율학습), 야간 점호 순으로 짜여진 생활을 하고 있다. 때문에 이 학교를 ‘기숙학원’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웅지세무대의 ‘학원식 교육’이 깜짝 성과를 냈다. 지난 2004년 회계세무계열, 세무행정계열 등 2계열에 입학정원 360명으로 출발한 이 학교가 개교 5년여만에 공인회계사(CPA) 26명을 배출한 것. 이 학교 회계정보과 출신으로 올해 CPA시험에 합격한 11명이 포함된 수치다. 회계정보과에서는 지난 4년간 41명의 세무사 합격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또 세무행정과 등에서 배출한 세무직 공무원도 지난해까지 총 217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도 수십명이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각 지역 세무서에서 일하는 꿈을 꾸고 있다. 웬만한 4년제 대학이 부럽지 않은 성과다.
웅지세무대학 측은 스스로를 “학문하는 대학이 아니라, 교육하는 대학”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이 학교 교원 77명(7월 기준)은 논문 연구보다는 가르치는데 중점을 둔다. 강의도 회계사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에서 가르치는 커리큘럼처럼 짜여졌다. 송상엽 이사장을 비롯한 이 학교를 설립자들의 생각이 반영된 까닭이다. 송 이사장 등은 CPA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CPA는 대학 교수가 출제한 문제로 합격자를 가리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왜 어려울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웅지세무대학은 ‘학원에 갈 필요가 없는 학교’를 목표로, 다년간의 학원 강의 노하우를 대학 강의에 접목했다. 이 학교 부동산정보과 정영숙 교수는 “이 학교 강의의 특징은 수요와 공급 이론을 가르칠 때도 이론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것이 시험에서 어떻게 문제로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함께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모든 수업 교재는 이 학교 교수들이 함께 자체 제작한 것을 사용하고, 모든 강의는 동영상으로 촬영된다. ‘저자 직강’을 듣고, ‘동영상 강의’로 복습을 하는 게 이 학교 학생들의 특권인 셈이다.
교수들만 노력하는 게 아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중간·기말 고사를 보는 게 아니라, 과목마다 2~3주 간격으로 시험을 본다. 학생들은 한 한기 20학점 이상(7과목 이상)을 수강하기 때문에 시험은 거의 매주 돌아온다. 때문에 도서관은 ‘야간 자기학습 시간’은 물론 공강시간에도 학생들로 가득찬다. 세무행정과 손정아(20)씨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2월에 선행학습을 한다고 해 졸업식도 못가고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학교 측의 관리도 엄격하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지정 좌석을 제공하고, 수시로 자기학습 참여여부를 점검한다. 지난학기 성적 부진이나 자기학습 참여율 불량 등의 이유로 50여명의 학생들이 제적됐다. 학생들의 체력관리와 생활관리를 위해 기숙사에서는 야간 점호도 실시하고 있다. 교수들도 학생들과 수시로 상담을 해야 한다. 회계정보과 이인호 교수는 “학생들이 자주 찾아와 시험공부이나 슬럼프 극복방법 뿐 아니라 연애 관련 고민까지 상담을 할 정도로 교수와 학생이 긴밀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들에게는 미팅, MT, 축제 등 ‘일반적인 대학생활의 낭만’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쉬움도 있어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손정아씨는 “3월에 다른 학교 친구들이 친구들이 미팅·소개팅한다고 그럴 때는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면서도 “지금 생활이 싫지 않다”고 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한윤혜(21)씨는 “남들이 4년을 준비하는 것을 2년에 준비해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는 게 이 학교의 장점”이라며 “남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전문 공무원(세무공무원)에 도전할 수 있어서 빡빡했던 학교생활이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 학교 이재민 교무처장의 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학부모님들이 입학식 때 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오셨다가 놀라시는 경우도 많다”며 “그러나 공부도 젊은 시절의 낭만일 수 있는 만큼, 대학시절의 낭만을 공부로 불태우고 싶은 사람들이 이 학교를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