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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sh16229@naver.com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법학과 졸업
2000년 합천 귀농
합천수필문학회 회원
[수상 소감]
윤성희
문학적 상상력과 이를 표현하는 문장력이 많이 부족한 저의 글을 좋게 보아준 에세이스트 편집실과 심사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에세이스트의 훌륭한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글쓰기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22년 6월의 어느 여름날 오전 밭일을 끝내고 읍내 시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읍내 로터리 현수막 걸이대 맨 위쪽에 걸려있는 백남오 교수님의 수필교실 모집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감적으로 이제 글을 쓸 때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나를 억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풀어헤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개강한 지 2주가 지나 있어 지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자기 생각과 감정, 느낌을 표현하는 글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던 것도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와 수필교실 문우들의 응원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기대와 문우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감수성과 서정성, 작가로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저를 치유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글들은 저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독자를 위한 글 이전에 저를 위한 글입니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무쏘의 뿔처럼 혼자 걸어온 저를 위로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투박하고 거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기에는 마음의 문이 아직 안 열린 것 같습니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부족한 저를 추천 해주신 것도 하루라도 빨리 독자를 향해 나아가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간절할 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서 있어 준 지도 교수님과 문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 세상과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아와서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서툽니다. 천재일우! 합천 같은 소도시에서 문학에 대한 사랑과 수필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찬 문우들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문우들이 각자 가진 장점들을 찾아내어 이끌어주시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시는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에세이스트 일원이 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다시 한번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상작품]
합천으로
윤성희
혼자서 일주일째 빈집을 수리 중이다. 전형적인 남부식 남향의 3칸 촌집이다.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려있는 아궁이가 있고 그을음으로 시커먼 벽면에는 채반 등을 올려놓는 긴 시렁과 그릇을 넣는 찬장이 있다. 아궁이 옆으로 부엌살림을 보관하는 쪽방이 있는데 뒷 벽체는 허물어져 없다. 부엌에서 밥상 등을 방으로 바로 나를 수 있게 한지를 바른 낡은 쪽문이 나있다. 부엌문은 옛 판자 문이다. 두 칸의 방을 나누는 벽은 무너져 방바닥에 흩어져 있고 천장은 머리에 닿을 듯 낮다. 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툇마루 우측 아래에는 두 번째 방 아궁이가 있다.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툇마루 판자들은 뒤틀려 있었으나 다행히 갈라지거나 깨진 곳은 없다. 그러나 우측 툇마루 난간은 부서져 있다.
본채 좌측으로는 집으로 들어오는 대문을 겸하는 한 칸의 처마가 있는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중간기둥이 부러져 마당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진 쪽의 벽체는 무너져 마당에 쏟아져 있다. 사랑채 옆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소나무 판자로 만든 작은 곳간이 있는데 비를 맞아 나무가 썩어 가고 있다. 수돗가가 있는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마당 우측 끝에는 집채만 한 바위들이 있고 그 옆으로 소를 키운 마구간과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기둥들은 기울어져 넘어지기 직전이고 지붕의 슬레이트도 바람에 날아가서 반쪽만 남아있다. 마당 앞에는 어깨높이의 돌담이 있는데 전체 중 반은 무너져 있다. 돌담 밑에는 이 집에 딸린 100평 남짓의 텃밭이 있고 밭 아래쪽에는 마을을 가로질러 개울이 흐르고 있다.
먼저 허물어져 있는 중간 벽체를 없애서 두 개의 방을 하나로 만들었다. 집 뒤편에 반쯤 깨져서 버려져 있던 시멘트 굴뚝을 다시 고쳐서 세운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 보았다. 불은 잘 들어갔다. 구들은 손보지 않아도 되었다. 낡은 벽지를 뜯어내고 신문지로 초배를 한 다음 한지로 천장까지 도배했다. 창호지에 구멍이 숭숭한 방문 네 짝은 뜯어내어 철 솔로 깨끗이 씻어 말린 후 새로 창호지를 발랐다. 허물어진 부엌 벽체는 시멘트 블록으로 쌓고 낮은 부엌 바닥은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 메꾸어서 시멘트로 마무리를 했다. 판자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부엌문은 떼어내고 주워온 합판 문으로 바꿔 달았다. 툇마루는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았다. 부서진 난간은 나무를 덧대어 수리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건너에 있는 세 가구는 식수를 마을 위쪽 계곡에서 끌어와 사용하고 있었다. 계곡의 작은 소에 고무통을 묻고 PVC 수도관을 계곡을 따라 집까지 연결하였다. 이 집은 수도시설이 마당밖에 없어서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관을 찾아 부엌까지 새로 놓았다. 사랑채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새 기둥을 세워 보강했다. 무너진 벽체의 흙을 치우고 마당의 풀도 베었다. 창고와 마구간은 기둥을 최대한 바로 세우고 나무를 받쳐 넘어지지 않게 했다. 마지막으로 마당 쪽으로 무너진 돌담의 돌들은 모아서 마당 한쪽에 쌓아 두었다. 잠은 침낭에서 자고 밥은 여행용 버너로 해 먹으면서 일주일 정도 집을 수리했더니 그런대로 이사 올 정도가 되었다.
벼농사를 짓고 싶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안동은 물론 논이 있지만 고추 콩 담배 등 밭농사를 많이 한다. 그리고 북쪽이라서 겨울에는 춥고 근처에 안동댐과 임하댐이 있어서 봄 가을에 안개가 많이 끼어 농사에 불리한 조건이다. 논농사 짓기 쉬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10만 분의 1 지도 대사전을 꺼내 경남 부분을 폈다. 본가가 부산이라 경남에서 귀농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울주 밀양 창녕 함안 의령은 도시와 너무 가깝고 하동 산청 함양은 지리산을 둘러싼 관광지에 교통의 요지다. 거창은 높은 산지가 많고 사과 농사를 많이 짓는다. 고성 사천 남해는 바닷가를 끼고 있다. 최적의 장소로 합천이 떠올랐다. 경남에서 제일 오지로 땅값이 싸고 다른 군에 비해 개발될 가능성이 적어 보여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합천 지도위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귀농 조건과 정착하고 싶은 마을 형태에 맞는 곳을 몇 군데 표시하였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발행하는 귀농 통문을 받아 본다. 귀농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근황과 전국 각지로 귀농한 사람들의 귀농 소식을 주로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정착해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정착과정과 농촌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마침 합천 용주면에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는 목사님의 글이 실려 있었다. 전화를 걸어 합천에서 논농사를 짓고 싶으니 주변에 적당한 마을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함께 공동체를 꾸려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가족농으로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거절하자 그럼 직접 내려와서 같이 적당한 곳을 물색해 보자고 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도로 옆의 마을을 벗어나자 제법 큰 계곡의 초입이 나타났다. 계곡 옆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2km가량 따라가니 삼거리가 나왔다. 왼쪽으로 가파른 좁은 길을 500m 더 오르니 마을의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보였다. 마을에 들어서자 막 낮일을 끝내고 툇마루에서 쉬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목사님과 같이 들어가 인사를 하고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낯선 이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경계의 눈초리를 먼저 보낸다. 더구나 젊은 사람이 이런 골짜기에 들어와서 농사를 짓고 싶으니 빈집을 구해달라고 하니까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동네 반장이 집에 없으니 내일 다시 와서 반장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다음날 동네 반장을 찾아갔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미심쩍어하면서도 일단 빈집을 하나 보여주었다. 작년까지 할머니 혼자 사신 집인데 동네 빈 집중에서 그나마 제일 괜찮다고 했다. 마을 뒤쪽 논과 밭으로 올라가기 위해 놓여있는 조그마한 다리 건너편에 있는 양철지붕의 촌집이었다. 집에서는 마을 앞의 계단식 논들과 마을로 올라오는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 보였다. 당산나무 옆으로는 작은 안산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소룡산 자락 깊숙한 곳에 남동향으로 안온하게 자리잡은 마을로 멀리 의령의 한우산과 자굴산이 보였다. 마음에 든다고 하니 대구에 사는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서 연락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이 집을 구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합천 지도에 표시해둔 마을 중 한 곳이었다.
겨울을 날 준비를 하기 위해 서둘러 이삿짐을 트럭에 실었다. 전세금은 주인이 돈을 마련하는 대로 받기로 했다. 봉화 청량산 아래 귀농한 사람과 3000평에 함께 지은 콩은 타작 후 나누기로 했다. 안동을 빠져나와 의성 들판길을 지나가고 있다. 트럭 앞자리에는 애들 엄마와 3살 된 큰애가 타고 좌석 뒤에는 애기욕조 속에서 이불에 싸인 채 10개월 된 작은 애가 잠들어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금들판이 펼쳐지고 있다, 내년 가을에는 내가 저 속에 서 있기를. 트럭보다 빨리 내 마음은 합천으로 달려가고 있다.
[심사평]
윤성희의 「합천으로」
백남오
윤성희가 응모한 작품 중에서 「합천으로」를 신인상 수상작으로 뽑는다. 이 작품은 합천으로 귀농하여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순수하고 인간적인 작품이다.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아우라가 번득인다. 귀농수필의 한 전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는 합천으로 오기 이전에는 경북 안동에서 살았다. 합천으로 이주한 이유는 벼농사를 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동에도 논이 있지만 고추 콩 담배 등 밭농사를 많이 했다. 북쪽이라서 겨울에는 춥고 근처에 안동댐과 임하댐이 있어서 봄가을에 안개가 많아 농사에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논농사를 짓기 쉬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10만 분의 1 지도 대사전을 꺼내 경남 부분을 폈다. 본가가 부산이라 경남에서 귀농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울주 밀양 창녕 함안 의령은 도시와 너무 가깝고 하동 산청 함양은 지리산을 둘러싼 관광지에 교통의 요지다. 거창은 높은 산지가 많고 사과 농사를 많이 짓는다. 고성 사천 남해는 바닷가를 끼고 있다. 최적의 장소로 합천이 떠올랐다. 경남에서 제일 오지로 땅값이 싸고 다른 군에 비해 개발될 가능성이 적어 보여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합천 지도위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귀농 조건과 정착하고 싶은 마을 형태에 맞는 곳을 몇 군데 표시하였다.
그렇게 합천으로 마음을 정한 후에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발행하는 귀농통문을 받아 보았다. 귀농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근황과 전국 각지로 귀농한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매체다. 마침 합천 용주면에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는 목사님의 글도 실려 있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합천에 정착한 것이다.
윤성희는 처음부터 농부는 아니었다. 소위 명문고 출신이었으며 가정 형편상 부산에 있는 국립대학에 진학했다.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단 4명만 합격한 엘리트 법대생이었다. 청운의 꿈을 꾸며 뜻이 통하는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여서는 세상을 바꾸기로 했을 만큼 야망도 빛났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삶이란 것이 그렇게 생각한 것만큼 만만하게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젊음은 속절없이 흘렀고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태어났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합천으로 들어올 당시 아내와 3살 된 큰애와 애기욕조 속에서 이불에 싸인 채 10개월 된 작은 애가 잠들어 있었다. 그 냉엄한 생존 앞에서 젊은 날의 꿈이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다행인 것은 윤성희는 일단 이상을 접고 현실적 삶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게 벌써 26년 전의 일되었다. 이제 그는 합천의 유지반열에 올랐을 정도로 합천사람이 되었다. 아이들도 모두 성장했고 스스로도 얻은 것이 많다. 집도 땅도 생기고 겨울이면 산불조심 예방요원으로 귀한 직장도 얻었다. 무었보다도 합천에서 문학을 만날 수 있었음은 행운이다.
윤성희의 등단작은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인생이란 고된 항로 속에서도 별빛 같은 희망이 반짝인다. 무엇보다 그의 내부에는 문학이라는 인자가 잠재되어있다. 함께 응모한 「자존감의 탄생」과 「보름달」의 작품도 그가 얼마나 살가운 감성의 소지자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갖추었음이다. 에세이스트 가족이 된 것과 신인상 당선을 축하드린다. 젊은 날 피우지 못한 꿈들은 문학의 바다에서 마음껏 승화시킬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