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시티(Vatican City)/바티칸 박물관 (Musei Vaticani) NO.8
키아라몬티관(Chiaramonti Museum)
키아라몬티 박물관(Chiaramonti Museum)
'키아라몬티 박물관(Chiaramonti Museum)'은 교황 비오 7세 키아라몬티(Pope Pius VII Chiaramonti)'에 의해 로마시대의 조각과 흉상들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박물관은 1807년 네오클래식주의 조각가인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이 곳에는 로마 시대의 황제들과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신들을 표현한 조각상들과 조각 파편, 그리고 조각 띠를 말하는 '프리즈(Friezes)','석관(Sarcophagi)' 등을 포함한 약 1,000개의 조각상들이 현재 보관되어있다.
▲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nus Pius)-우측
정식 이름은 '티투스 아르렐리우스 풀부스 보이오니우스 안토니우스 피우스(Titus Aurelius Fulvus Boionius Antoninus Pius)'로 '피우스(Pius)'란 "경건한 자"를 뜻한다. 120년에 '콘술(Consol,집정관)'이 되고 또 이찰리아의 사법행정을 지배하였으며, 뒤에 아시아주 총독을 지냈다. 황제 '하드리아누스(Emperor Hadrianus)'의 양자가 되고 그가 죽은 뒤 즉위하였고, 원로원으로부터 '피우스(Pius)'의 칭호를 받았다. 관대하고 인자하며 온건하여 거의 대부분 로마를 떠나지 않고 정치를 하여,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치세를 누렸다.
▲ 코린트 인의 헬멧(Corinthian Helmet)을 쓴 '페리클레스(Pericles)'-좌측 & 쥬피터로 분한 '티베리우스(Tiberius as Jupiter)'-우측
'페리클레스(Pericles)'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장군. 총명한 예지와 시원시원한 변설로 알려진 명 정치가로서 B.C. 450년경 아테네 정치의 실권을 쥐자, BC. 480년 '페르시아 전쟁(Persia War)' 시 파괴된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부흥 계획을 세워 건축가 '익티노스(Iktinos)', '칼리클라테스(Caliclates)', 조각가 '페이디아스(Peidias)' 등을 기용하여 '파르테논(Partenon)', '프로필라이아(Propillaia)'를 건립하는 등, '아테네(Athene)' 미술의 황금시대를 열어놓았다. 우측 쥬피터로 분한 '티베리우스 황제(Emepror Tiberius Caesar Augustus)'는 로마제국 제2대 황제로 '아우구스투스 황제(Augustus)'의 정복사업을 도왔고, 즉위 후에는, 공화정치의 전통을 존중하여 제국통치를 잘 유지하다가 후에 공포정치를 자행하였다.
▲ 헤라클레스와 텔레포스(Hercules and Telephus)-좌측 & '헤르메스(Hermes)'-우측
좌측의 '헤라클레스와 텔레포스(Hercules and Telephus)상'은 캄포 데 피오리 광장(Campo De' Fiori)'에서 발견되어 바티칸 콜렉션에 들어간 첫 번째 조각품으로, 헬레니즘 후반기 그리스 원작을 모사한 2세기 경의 로마시대 모사본이다. 헤라클레스는 '테베(Thebe)'에 사는 '암피트리온(Amphitryon)'의 아내 '알크메네(Alcmene)'와 '제우스(Zeus)'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Zeus)'의 아내 헤라(Hera)'는 남편과 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Hercules)'를 미워하여 사사건건 그를 괴롭혔다. 이와는 반대로 '제우스(Zeus)'는 그를 무척 사랑하여 뛰어난 힘과 씩씩한 기상을 주었으며 많은 달인들로부터 무예와 음악을 배워 훌륭한 무인이 되었다. '텔레포스(Telephos)'는 '헤라클레스(Hercules)'의 아들로, '아레우스(Aleus)'왕의 딸, '아우게(Auge)'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사실을 자신의 아버지가 알까 두려운 '아우게(Auge)'는 '텔레포스(Telephos)'를 '파르테논(Partenon) 산속에 버리고 '텔레포스(Telepos)'는 암사슴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양치기들이 거두어 '파르테노파이스(Partenophais)'와 함께 길렀다. ‘암사슴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뜻의 '텔레포스(Telephos)'이다.
우측의 '헤르메스'는 전형적인 그의 복장, 챙이 넓은 여행 모자 혹은 '페타소스(Petasos)'라 부르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탈라리아(Talaria)'라 부르는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케리케이온(Kerykeion)', 라틴어로는'카구케오스(Caduceus)'라 부르는, 교미 중인 뱀으로 꼬여 있는 지팡이를 들고있다. '헤르메스(Hermes)'의 상징은 지갑, 수탉, 거북이가 대표적 상징물이다. '헤르메스(Herm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행자, 목동, 체육, 웅변, 도량형, 발명, 상업, 도둑과 거짓말쟁이의 교활함을 주관하는 신으로 주로 신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전령이다. 사후세계로 건너가는 영혼이 제대로 길을 찾도록 돕는 것 등과 관련된 신이기도 하다.
실레노스와 펜더(Silenus with a panther) & '가니메데스와 제우스의 독수리(Ganymede and Zeus' eagle)
'실레노스(Silenus)'는 주로 수염이 덮수룩한 늙은 남자로 묘사되는데, 때로 말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Dyonisos)'의 후견인으로, 대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혜가 많은 '요정(Nymph)'으로 그를 붙잡기만 하면 그가 가진 지혜를 빼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프리기아(Pregia)'의 왕 '미다스(Midas)'가 그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체포했을 때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왕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반인반수의 '사티로스(Satyr)'와 혼동되기도 한다. 표범으로 보이는 가죽을 어깨에 들러매고 팬더에게 와인을 먹이고 있다. 우측에'프리지안 모자(Prysian Cap)'을 쓰고 있는 '가니메데스와 제우스의 독수리(Ganymede and Zeus' eagle)는'제우스(Zeus)의 술시중을 든 '트로이(Troy)의 미소년으로 인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 하며 여러 신들이 '제우스(Zeus)'의 시동으로 삼기 위하여 하늘로 채 갔다고도 하고, '제우스(Zeus)'가 독수리로 변신하여 납치해 갔다고도 한다. '프리지안 모자(Phrysian Cap)'는 부드러운 원뿔 모양의 모자로 위로 잡아당가면서 벗고 쓰고 하는 모자로 로마제국 서쪽의 '소아시아(Minor Asia)'의 중부에서 서부에 걸쳐 있던 고대 국가인 '프리지아(Phrysia)' 사람들이 즐겨 썼던 것으로 로마로 들어오며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의미가 되었다.
▲ 활을 구부리는 '에로스(Eros) & 미트라 상(Statue of Mithras)
'에로스(Eros)'는 종종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아이로 등장한다. 그리고 또한 날개를 단 어린아이로도 표현되곤 하며 나중에는 작은 아이로 표현된다. 에로스(Eros)'는 '사랑의 신'으로 BC 6-7 세기 경의 서사시에서는 무서운 힘과 예측할 수 없는 습격을 하는 신, 사랑의 쾌락과 미(美)의 신으로 생각되었다. 또 우주혼돈의 질서화의 원리라고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은 '파르메니우스((Parmenius)' 등의 철학자에게로 흘러들었다.
좌측에 미트라 상(Statue of Mithras) 또는 미트라교의 '횃불 나르는 사람(Mithraic torch-bearer)'은 2–3 세기 경의 로마시대 대리석 조각으로 1785년 로마의 '포르타 포르테세(Porta Portese)' 바깥에 있는 '미트라교(Mithraism)'의 반지하 성전인 '미트라에움(Mithraeum)'출토되었다. '미트라((Mithras)'는 '그리스 -로마 종교(Greco-Roman religion)인 '미트라교(Mithraism)'에서 숭배하던 '미트라교((Mithraism)'의 중심이 되는 신 또는 인물로 천상의 빛의 수호신이다. 해가 뜨기 전에 나타나는 빛으로, 산들의 바위가 많은 꼭데기에 나타난다.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며 누구도 '미트라((Mithras)'를 속이지 못한다. 낮에는 네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하늘을 가르며 밤이되면 여전히 반짝이는 밝음으로 지면을 비추어 '언제나 깨어있고 언제나 살핀다.
▲ 달의 여신 '다이아나(Daiana)'& 술과 풍요의 신 '디오니수스(Dionysus)'
좌측에 '빛나는 것'이라는 뜻의 '디아나((Diana)'는, 또는 '다이아나'라고도 하는데,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Artemis)'와 동일시 된다. 원래는 '숲의 여신' 또는 '수목의 여신'이었으나, 나중에 숲속에 사는 동물의 수호신, 사냥의 신, 나아가서는 가축의 신이 되었다. 또한 임신과 출산을 돕는 신으로 숭배된다. 한편 그리스신화에서 '아르테미스(Artemis)'가 달의 신 '셀레네(Selene)'나 '헤카테(Hekata)'와 동일 시되는 것처럼, '디아나((Diana)'도 '달의 신' '루나(Luna)'나 '트리비아(Trivia)'와 같은 여신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우측에'디오니수스(Dionysus)는'바카스(Baccus),·바쿠스, 바커스 등으로도 불리우는데, '바쿠스(Bacchus)'는 어머니가 둘인 자라는 뜻이다. '디오니수스(Dionysus)'는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신인 한편, 포도재배와 관련하여 술의 신이 되기도 한다. '제우스(Aeus)'와 '세멜레(Semelle)'의 아들이다. 이 술의 신에 대한 의식은 열광적인 입신(入神)상태를 수반하는 것으로, 특히 여성들이 담쟁이 덩굴을 감은 지팡이를 흔들면서 난무하고, 야수를 때려죽이는 등 광란적인 의식에 의해 숭배되는 자연신이었으나, 그리스에 전해져서는 이 신의 제례에서 연극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 키아라몬티(Chiaramonti Museum) 신관-브라치오 누오보(Braccio Nuovo)
▲ 아우구스투스 프리마 포르타(Augustus Pirma Porta)-좌 & 헤라클레스와 아들 '텔레포스(Hercules and Telephus)-우
좌측 연설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우구스투스 프리마 포르타(Augustus Pirma Porta)'는 1863년 4월 20일 로마 근처에서 발견된 2.04m 높이의 '아우구스투스 캐사르(Augustus Caesar)'의 상이다.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Emperor Augustus)'가 갑옷을 입고 한 팔을 들고 연설하는 모습을 나타낸 대리석상으로, 1863년 로마의 북쪽 '프리마 포르타(Prima Porta)'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케사르(Augustus Caesar)'의 부인 '리비아 드루실라(Livia Drusilla)'의 별장터 에서 발견되었다. 우측에 '헤라클레스'는 '테베(Thebe)'에 사는 '암피트리온(Amphitryon)'의 아내 '알크메네(Alcmene)'와 '제우스(Zeus)' 사이에서 태어났다. '테베(Thebe)'가 해마다 공물을 보내야 하는 이웃나라 '오르코메노스(Orchomenos)'의 왕을 쓰러뜨렸다. '테베(Thebe)'의 왕 '크레온(Creon)'은 이 전공(戰功)을 기리어 자기의 딸 '메가라(Megara)'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으나, 몇 해 후 그는 그를 미워하는 여신 '헤라(Hera)'의 저주로 정신 착란을 일으켜, '메가라(Megara)'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을 죽여 버렸다.
▲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 &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Emepror Titus Flavius Domitianus Augustus)
'아폴론(Apollon)'은 '코로니스(Coronis)'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코로니스Coronis)'가 '이스큐스(Iscus)라는 남자와 눈이 맞았다는 까마귀의 말만 믿고 진노하여 '코로니스(Coronis)'를 죽여 버렸다. 뒤늦게 이를 후회한 '아폴론(Apollon)'은 까마귀에게 화풀이하여 몸 색을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어 버린 다음, 재빨리 '코로니스Coronis)'의 몸 속에서 아들을 꺼내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였다. 케이론(Aesculapius)'에게 의술을 배운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는 뛰어난 의사가 되어 죽은 사람까지 살려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는 에피오네(Epione)'와 결혼하여 두 명의 아들과 네명의 딸을 두었다. 우측에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Augustus)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Emperor Vespasianus)'의 아들. 형 '티투스 황제(Emperor Titus)'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처음부터 전제적 경향이 짙어 자신을 '주인이자 신'이라고 부르게 하고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하였다. 또한 원로원을 제압하여 비판자를 탄압하였으나, 속주통치, ·변경방위에서는 치적을 올렸다. 특히, '브리튼(Brithen)섬에서는 장군 ''아그리콜라(Agricola)'가 로마화에 힘썼고, 군대를 '칼레도니아(Caledonia,지금의 스코틀랜드)'까지 진군시키는 한편, 라인, 도나우강 지방에서는 국경방위를 위한 방벽을 쌓았다. '다키아(Dakia)'인의 침입 때에는 화평을 맺어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근위장관과 결탁한 황비에게 암살되었다.
▲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신성(Divinity of Hera)'-좌 & 행운의 여신 '포르튜나(Fortuna)'-우
좌측 '헤라(Hera)상은 '보르게세(Borghese)' 양식, '피디아스 파(School of Phidias)'의 원작을 모사한 로마 시대 모사본, '토르 보바치아나(Tor Bovacciana, 현 오스티아,Ostia)' 출토, 로마 신화에서 '유노(Juno)'라 하는 '헤라(Hera)'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으로. '크로노스(Kronos)'와 '레아(Rhea)'의 자식으로, 신중의 신 '제우스(Zeus)'의 부인이며, 올림포스 여신 중의 여신이다. 정절의 수호여신으로 열렬히 신앙되어 각지에 성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신전의 본존상으로서 나타내지며, 또한 남편 '제우스(Zeus)'의 바람기에 노하여 그의 연인이나 아들을 박해하는 질투 많은 여신으로서 묘사된다. 우측에 '포르튜나(Fortuna)'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풍요의 뿔을 뜻하는 '코르누코피아(Cornu Copiae)'를 들고 잇으며 다른 한 손에는 운명의 키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로마신회의 '포르튜나(Fortuna)'는 행운, 운명의 여신이다. 영어의 행운을 뜻하는 '포춘(Fortune)'은 '포르투나(Fortuna)에서 비롯되었다. 행운과 기회와 번영을 주관하는 대중적인 여신으로서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수호신으로 삼았으며, 나중에는 도시마다 고유의 '티케(Tyche)'를 섬기게 되었다. '아르고스(Argos)'에 있던 '티케(Tyche)'의 신전에는 '트로이 전쟁(Try War)'의 영웅 필라메데스(Philamedes)'가 자신이 만든 주사위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폴로 키타로에두스(Apollo Citharoedus)-좌 &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Tragic Poet)'에우리피데스(Euripides)-우
'키타라'를 연주하는 아폴로(Cithara-playing Apollo)'는 '아폴로(Apollo)'의 다른 이름으로 '아폴로 무사게테스(Apollo Musagetes)'라 부르는데 이는 '뮤즈(Muses)' 신들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이 조각상은 BC 2세기 경의 알려지지 않은 로마 예술가의 대리석 조각 작품으로 '아폴로 치타로에두스(Apollo Citharoedus)' 스타일의 대표적 사례이다. '아폴로(Apollo)'는 '이오니아 시인(Ionic Bard)'의 옷 같아 보이는 길게 늘어진 옷을 입고 월계수 관(Crowned with Laurel)'을 쓰고있다. 이 조각상은 1774년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위치한 '티볼리(Tivoli)'의 '카시우스 빌라 유적지(Ruins of Cassius Villa)'에서 '7개의 뮤즈 상(Seven Statues of the Muses)'과 함께 발견되었다. 같이 발견된 7개의 뮤즈 상(Seven Statues of the Muses)'은 지금이 자리에 같이 서있다. 우측의 '에우리피데스(Euripides)는'아테네 출생. 므네사르코스의 아들로 3대 비극시인 중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보다 뒤에 출생하였으며, 토박이 아테네 시민으로 태어났다. 인간의 정념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여성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에서는 고대작가들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 생전에는 비교적 불우했던 것으로 전하지만, 사후에 그의 명성은 다른 2대가를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며,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도 절대적이다.
Paolo Tosti - A Vucch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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