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사 39 回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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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방치해 6도 올라가면 대멸종, 1.5도 상승에서 막아야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아베르캄프(Hendrik Averkamp, 1585~1634)는 주로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을 그렸다. 비록 그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하는 농인(聾人)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활기차게 표현했다. 그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는 군중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화폭에 담았다. ‘운하의 겨울 풍경(Winter Scene on Canal)’ 은 1620년 작품이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잡다하게 등장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아베르캄프는 사실적인 풍경화가였다. 상상으로 그린 게 아니라 추위를 무릅쓰고 현장에 나가서 실제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런데 겨울에 운하 위로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놀이를 하는 풍경을 이제는 네덜란드에서 거의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운하는 이제 꽁꽁 얼지 않으며 배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일도 더 이상은 없다. 17세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다.
| ▲ ‘운하의 겨울 풍경’ (헨드릭 아베르캄프 1620년 작)은 17세기 소빙하기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겨울 풍경이다. 운하가 꽁꽁 얼어서 배가 다니지 못한다. 당시 평균 기온은 이전 시대보다 단지 0.2도 낮았을 뿐이다. | |
17세기엔 0.2도 떨어져 소빙하기
17세기 추위는 비단 네덜란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린란드 북동부에서는 빙상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가 해안까지 이동하면서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던 장소가 사라져 버렸다. 알프스에서도 빙하가 이동하면서 강을 막아 산기슭에서 홍수가 자주 발생했다. 마치 아베르캄프의 그림에 나오는 네덜란드 운하처럼 런던의 템즈 강도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어서 아침마다 강 위에서 시장이 열리곤 했다. 모두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추위가 단지 겨울 풍경만 바꾼 게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눈사태와 홍수가 빈발해지면서 경작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1800년에는 밀 가격이 1500년보다 열 배나 비싸졌다. 또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1641년부터 1838년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대기근이 발생했는데 그 원인은 모두 추위였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어서 『조선왕조실록』은 현종 때의 경신 대기근(1670~71)과 숙종 때의 을병 대기근(1695~96)을 기록하고 있다. 경신 대기근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임진왜란을 겪은 노인들이 “왜란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 라고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보통 기근은 지역적으로 발생하는데 두 차례의 대기근은 조선 팔도 전체가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추위와 기근은 혁명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1642~51)이 일어났고, 독일에서는 30년 전쟁(1618~48)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스텐카 라진의 난(1670~71), 중국 명나라의 이자성의 난(1641~44)도 이때의 일이다.
도대체 17세기에는 지구 기온이 얼마나 떨어졌던 것일까? 17세기는 소빙하기였다. 굳이 앞에 소(小)라는 떨어지기도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평균하면 불과 0.2도 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활동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소빙하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한때 태양의 흑점 수가 감소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우세했지만 현재는 흑점 수와 소빙하기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소빙하기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 2 탐보라 화산의 위치.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자 이듬해인 1816년에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동부에서 여름이 사라졌다. | |
탐보라 화산 폭발로 유럽 · 북미 여름 사라져
다시 네덜란드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치도 다르고 재앙의 규모도 다르다. 1815년 4월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였다.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000㎞ 떨어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이 과거 1000년을 통틀어 가장 큰 분화를 일으켰다. 폭발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1500㎞ 떨어진 수마트라 섬에서도 대포 소리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해진다. (물론 나는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한 폭발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원래 높이 4200m였던 탐보라 산은 폭발로 꼭대기 1400m가 날아갔다. 150㎦의 화산재가 방출되었으며, 탐보라 인근 지역은 순식간에 화산재에 파묻혔다. 당시 숨바와 섬에는 약 1만2000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생존자는 단 26명이었다. 화산 폭발에 이은 쓰나미로 인도네시아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화산재는 무역풍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이탈리아와 헝가리에 갈색 눈이 내렸다. 지표면에서 고도 10~50㎞에는 성층권이 있다. 화산재는 성층권까지 이르러 햇빛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탐보라 화산이 폭발한 이듬해인 1816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에는 ‘여름이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로 기록된다.
정말로 여름이 사라졌다. 런던에서는 8월 31일에 눈이 내렸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내륙 지방에서는 6월 6일부터 3일 동안 15㎝의 눈의 내렸으며 한여름인 7~8월에 얼음이 얼 정도의 추운 날이 며칠씩 계속되었다. 코네티컷의 예일 대학의 기록에 따르면 1816년의 기온은 예년에 비해 평균 13.8도 낮았다.
탐보라 화산폭발의 결과 기후의 변화는 컸지만 다행히 그 영향은 일시적이고 국지적이었다. 1816년에 조선 · 중국 · 일본에는 기상이변이나 기근의 기록이 없다.
온난화라는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 21세기에 굳이 17세기의 소빙하기를 거론한 까닭이 있다. 소빙하기의 기후변화는 규모가 작았지만 인간 활동에 끼친 영향은 심각했다. 소빙하기의 영향을 파악하면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에 어떤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 따르면, 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 기온이 무려 6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한다. 주말의 기온이 금요일보다 6도 높다는 것은 외출할 때 두꺼운 외투는 집에 놔둬도 된다는 의미일 뿐이지만,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오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7만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엄청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화산재가 햇빛을 가려서 지구 평균 기온이 6도 떨어지자 지구상의 인류는 거의 절멸할 뻔했다. 전 세계 인구가 4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온도가 6도 떨어지면서 인류가 거의 멸종할 뻔했다면, 온도가 6도 오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도 오르면 남 · 북극 빙하 사라져
하지만 앞으로 100년 안에 온도가 6도나 오를 것이라는 예측은 과도하다. 그러나 가장 보수적인 학자들조차도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앞으로 100년 동안 온도 상승의 폭이 1.8~3.4도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의 활동은 어떻게 변할까? 지구온난화의 최전선 현장을 추적하고 있는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s)는 『6도의 멸종』에서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온도가 1도 오르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빙이 사라지고, 산 아래 사람들은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며, 세계 각지의 희귀 동식물이 서서히 멸종할 것이다. 온도가 2도 오르면 그린란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해안가에 있던 도시들이 물에 잠기며, 이산화탄소의 절반이 바다에 흡수되면서 석회질로 된 생물들이 죽어간다. 3도 오르면 양의 되먹임 현상으로 온난화는 가속된다. 아마존 우림지대가 거의 붕괴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이탄(泥炭)층이 불에 탄다. 지구 평균 기온이 4도 오르면 남극 빙하가 완전히 붕괴한다. 시베리아 · 알래스카 · 캐나다 북부의 영구동토층이 녹고 메탄하이드레이트에 포획돼 있던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된다. 5도 오르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모두 사라지고 정글도 불타 없어진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 6도 오르면 죽은 생물들의 시체에서 발생한 황화수소가 오존층을 파괴해 자외선을 크게 증가시킨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된다.
산업 혁명 이후 최근 150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0.85도 올랐을 뿐이다. 이 정도 기온 상승은 대멸종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대구에서 키우던 사과를 파주에서 키울 수 있을 정도로 경작의 남북방 한계선이 이동한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온 상승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우리의 손으로 어쩔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그 임계점을 2도로 보고 있다.
| | |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 앞에서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구 온도상승 억제 목표 1.5도 설정과 선진국의 책임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 |
5도 오르면 남 · 북극 빙하 사라져
지구온난화 문제에는 분명히 출구가 있다. 현재의 기온 상승은 자연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활동 결과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인간으로 인해 발생했다면 해결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출구는 넓지 않다. 매일 매일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행동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인류는 기후 파탄이 명백해진 다음에야 결심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멈춘 다음에도 지난 30년간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지구온난화의 충격은 천천히 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2도라는 임계점까지 감내해서는 소용이 없다. 지구온난화 활동가들은 1.5도에서 막는 방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빈번히 발생하는 이상 기후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지구는 우리에게 계속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파멸에 이르지 않으려면 우리가 지금 당장 나서야 한다. 1.5도에서 막아야 한다.
… 중앙SUNDAY 제464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6.01.31
이정모의 자연사 38 回 기린 목에 숨겨진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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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길어 혈압 높은 기린 중풍을 어떻게 피할까요
기린과 사람, 그리고 고래는 모두 젖먹이동물(포유류)이지만 생김새는 크게 다르다. 기린은 네 발로 서지만 사람은 두 발로 서고 고래는 발이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목에서 나타난다. 기린의 목은 엄청나게 길지만 사람의 목은 짧고 고래는 목이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겉모습을 벗겨내고 뼈대만 살펴보면 놀랍게도 같은 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 중앙SUNDAY 제461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6.01.10
이정모의 자연사 37 回 이솝이 몰랐던 박쥐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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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생존모델 ‘체급별’ 특화… 약육강식 대신 나눔으로 생존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라는 아주 따뜻한 과학책이 있다. 여러 종의 동물이 릴레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이다. 인간이 박쥐에게, 박쥐가 꿀벌에게, 꿀벌이 호랑이에게. 글쓴이는 도시공학과 생명공학 그리고 환경학을 공부한 동아사이언스의 윤신영 기자. 윤신영은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또 다른 동물들에게 남기는 자연과 환경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철학 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 편지는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다. 안부를 묻는 첫 번째 대상이 하필 박쥐라니…. 박쥐는 우리가 그리 안타깝게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요즘 박쥐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박쥐에 대해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박쥐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을 심어준 사람은 이솝이다.
날짐승과 들짐승이 숲에서 패권을 다투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박쥐는 날짐승이 우세한 것처럼 보일 때는 날짐승 편에 서고, 들짐승이 우세한 것처럼 보일 때는 표변해 들짐승 편에 선다. 강화조약을 맺은 날짐승과 들짐승은 양쪽을 오간 박쥐를 동굴 안으로 내쫓았다.
이솝은 ‘한쪽에 우직하게 충성을 바치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는 망하고 만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솝우화의 교훈은 단순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너무 단순했다는 게 문제다. 아인슈타인도 말했다. “사물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해지면 안 된다.” 이솝우화는 더 단순했고 여기로부터 박쥐에 대한 온갖 오해가 생겨났다.
흡혈박쥐, 코의 열 센서로 혈관 찾아
사람들에게 박쥐는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한 동물일뿐만 아니라 보잘것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징그럽게 못생겼으며 왠지 병균을 옮기고 사람과 가축의 피를 빨아먹는 놈들 같다. 실제로 흡혈박쥐가 있다.
흡혈박쥐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며 동굴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다. 보통 100마리가 군집을 이루지만 때로는 1000마리 이상의 대군집을 이루기도 한다. 100마리로 이루어진 무리가 1년에 빨아먹는 피의 양은 황소 25마리에 해당한다.
흡혈박쥐는 캄캄한 밤이 돼야 사냥에 나선다. 대개는 잠자고 있는 소와 말이 먹잇감이지만 때로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도 한다. 흡혈박쥐는 아래서 공격한다. 먹잇감 근처에 착륙한 후 네 발을 이용해 접근한다. 액체를 먹기 때문에 이빨이 몇 개 안 되지만 매우 날카로운 이빨로 혈관을 정확히 깨문다. 칠흑처럼 캄캄한 밤에 흡혈박쥐는 어떻게 혈관을 정확히 찾아서 깨물까? 흡혈박쥐의 코에는 열 센서가 있어서 먹잇감의 피부 밑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위치를 정확히 짚어낸다. 이빨로 깨문 다음에 흐르는 피를 혀로 핥아먹는다. 흡혈박쥐의 침에는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아주는 물질이 들어 있어서, 한번 핥아먹기 시작하면 보통 30분은 계속 먹는다. 이 과정에 먹잇감에게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길 수는 있지만 먹잇감이 죽을 정도로 피를 뽑아 먹지는 않는다.
새끼 흡혈박쥐는 피 대신 젖을 먹는다. 모든 젖먹이동물 어미의 심정은 다 똑같다. 자기 새끼에게는 무엇보다도 젖을 먹이고 싶은 것이다. 새끼가 젖을 먹기 위해서는 어미에게 단단히 매달려야 한다. 새끼는 하늘을 날고 있는 어미에게도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다. 새끼는 오로지 체온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미의 젖을 석 달 동안이나 먹는다. 왠지 박쥐는 아주 무서운 놈들 같다. 하지만 걱정 놓으시라. 흡혈박쥐는 단 세 종에 불과하며,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적도 지방에만 산다.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처음 실린 1734년에는 유럽 사람들이 아직 흡혈박쥐를 보지 못했는데 왜 박쥐가 뱀파이어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원시 박쥐엔 레이더 기능 없어 ‘감각 비행’ 박쥐가 오해를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박쥐의 정체는 무엇인가, 날짐승인가 들짐승인가?
우선 박쥐는 쥐가 아니다. 흔히 설치류(齧齒類)라고 하는 쥐목(目)은 앞니가 위아래 모두 한 쌍뿐이며, 쥐 · 다람쥐 · 청서 · 비버 등이 여기에 속하고 약 1730종이 알려져 있다. 박쥐는 박쥐목 또는 익수목(翼手目)에 속하는 젖먹이동물(哺乳類)이다. 기다란 앞다리 발가락과 뒷다리 사이에 피부가 변한 탄력성 있는 날개막이 있어서 젖먹이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제대로 날 수 있는 동물이다.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23종이나 살고 있다. 젖먹이동물 가운데 설치류 다음으로 많은 약 1200종이 있다. 전 세계 젖먹이동물이 약 5400종이니 젖먹이동물 네댓 종 가운데 한 종은 박쥐인 셈이다. 아주 성공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박쥐의 가장 뛰어난 전략은 남들이 다 자는 캄캄한 밤에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박쥐가 밤에 날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물체에 반사된 소리를 인식해서 눈으로 보지 않고도 그 물체의 위치를 감지하는 레이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반향정위(反響定位)라고 한다.
그렇다면 박쥐에게 비행 능력과 반향정위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생겼을까? 이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날개막이나 초음파를 내는 구조 둘 중 하나가 없는 화석을 찾으면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인지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박쥐 연구가와 진화학자들의 오랜 수수께끼였다. 화석으로 남아있는 5200만 년 전 박쥐나 지금 살고 있는 박쥐나 그 모습이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딱히 과학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본인들은 과학자라고 하는) 창조과학 계열의 사람들에게 박쥐는 모든 종들이 지금 이 모습대로 창조된 좋은 증거로 작용했다.
화석은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발견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화석이 발견되었다. 2008년 2월 14일자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던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Onychonycteris finneyi)가 바로 그것.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학예사가 미국 와이오밍의 5250만 년 지층에서 2003년에 처음 발견했다. 지금까지 단 두 표본만 발견된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는 날개막 골격 구조가 현생 박쥐와 거의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뒷발이 조금 크고, 다른 박쥐들이 두세 개의 발가락에만 발톱이 있는데 반해 모든 손가락에 발톱이 다 있다는 정도. 하지만 초음파를 내고 반사음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확대된 달팽이관 구조가 없다.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는 다른 박쥐 화석에는 이 기관이 있다. 이젠 박쥐에게 비행이 먼저냐 반향정위가 먼저냐 하는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비행이 먼저다. 눈이 특별히 더 크다는 증거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초기의 원시 박쥐들은 시각과 후각 그리고 청각에 의존해서 방향을 잡고 사냥을 했을 것이다.
과학이란 질문의 연속이다. 박쥐의 진화에도 여전히 질문이 남아 있다. ‘땅에서 살던 박쥐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날 수 있는 동물로 진화되었을까?’라는 질문에 이제 답할 차례이다.
나눔 전략 탓 열대·아열대로 서식지 한정박쥐는 히어로다. 지금 나이가 50대인 사람이라면 정작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황금박~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박~쥐! 빛나는 해골은 정의의 용사다.” 로 시작하는 만화 주제가가 절로 입에 붙을 것이다. 1968년부터 당시 TBC에서 방영했던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괴상하게 생긴 해골이었지만 박쥐의 날개막을 연상시키는 검은 망토를 입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박쥐라고 여겼다. 50대에게 황금박쥐가 한때 영웅이었다면 젊은 세대들에게는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있다.
그런데 박쥐가 히어로인 까닭은 따로 있다. 박쥐는 현생 젖먹이동물 가운데 가장 고참에 속하면서도 엄청난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박쥐는 다른 동물들처럼 무작정 몸집을 키우는 전략을 취하지 않았다. 박쥐는 크기가 다양하다. 박쥐는 큰박쥐아목과 작은박쥐아목으로 분류된다. 작은박쥐아목에는 2~3g밖에 안 되는 작은 박쥐가 있는가 하면 큰박쥐아목에는 1.5㎏에 달하는 커다란 날여우박쥐도 있다.
작은박쥐아목에서 갈라져 나온 큰박쥐아목은 작은 박쥐들과 같은 먹이를 놓고 경쟁하면서 억누르는 대신 다른 먹이를 택했다. 작은 박쥐들이 먹는 곤충은 작은 박쥐들에게 양보하고 열매와 꽃가루와 꿀을 먹이로 선택했다. 몸집이 커진 만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덕분에 사는 영역을 대부분 열대와 아열대로 한정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모험에 성공했다.
박쥐는 많은 종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생태적 틈새(niche)를 나눔으로써 엄청난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생태적 틈새란 먹이·서식지·산란기 등을 말한다. 생태적 틈새를 나누자 종도 많아졌을 뿐더러 장수하는 동물이 됐다. 박쥐와 크기가 비슷한 쥐와 다람쥐가 기껏해야 각각 2~4년과 3~6년을 사는 데 반해 박쥐는 10~30년을 산다. 박쥐가 히어로인 까닭은 고담시티의 악당을 해치워서가 아니라 ‘나눔’을 통해 종의 다양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윤신영의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의 마지막 꼭지 세 개는 버펄로가 사자에게, 사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마침내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금 인류가 72억5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인류도 사라져 가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우리가 박쥐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박쥐의 터전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바로 우리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박쥐에게서 배우자. 박쥐처럼 살자.
… 중앙SUNDAY 제458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12.20
이정모의 자연사 36 回 엘라스모사우루스 발견 뒷 담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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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지가 길어서… 앞뒤가 뒤바뀐 도마뱀 ‘엘라스모사우르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3층에 들어서면 지구와 달 모형 사이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중생대 파충류 엘라스모사우루스와 이 엘라스모사우루스가 헤엄치고 있는 중생대 풍경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엘라스모사우루스는 수장룡의 일종이라는 설명문을 본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재치 있게 설명한다. “저기 봐. 엘라스모사우루스는 수장룡이야. 수장룡은 물에 사는 긴 공룡이란 뜻이지.” 아빠들은 수장룡을 ‘水長龍’이라고 이해하고 이렇게 설명하지만 수장룡은 사실 ‘首長龍’으로 목이 길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빠들이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엘라스모사우루스는 물에 살고 길기 때문이다. 엘라스모사우루스를 처음 발견한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Edward Drinker Cope, 1840~1897)는 긴 목을 꼬리라고 생각하고 짧은 꼬리를 목이라고 여겨 꼬리에 두개골을 얹는 실수를 저질렀다.
과학에서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를 비판하는 것은 동료 과학자로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코프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오스니얼 찰스 마시(Othniel Charles Marsh, 1831~1899)는 코프가 재현한 엘라스모사우루스가 매우 모순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꼬리에 머리를 두었다고 지적하며 비판했다. 하지만 코프는 마시의 비판을 도를 넘어선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끝없는 복수가 이어진다.
논문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상대방 염탐도코프는 위대한 고생물학자로 비교해부학 · 양서파충류학 · 어류학 · 화석척추동물학 분야에서 14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코프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 출신으로 19살에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하고 24살에 이미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됐으며 대학교수 자격으로 미국 서부로 답사를 나갔다. 그의 라이벌인 마시에게는 부자 삼촌이 있었다. 마시는 삼촌 조지 피바디를 설득해서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을 세우고 자신이 박물관장으로 취임한다. 38세 때 삼촌이 죽자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풍족한 자금을 활용해 19세기에 가장 저명한 고생물학자 가운데 한 명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석 탐사는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탐사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돈과 협력을 이상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한번은 마시와 코프가 함께 뉴저지의 코프 탐사지로 답사를 갔다. 이곳은 코프의 탐사지다. 그런데 마시는 코프의 일꾼들을 매수했다. 화석을 발견하면 코프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져오게 시킨 것이다. 코프도 마찬가지였다. 코프는 와이오밍에 있는 마시의 사유 탐사지에서 몰래 화석을 채집했다. 두 사람은 협력이 아니라 반목의 관계에 놓이게 됐다. 발표문과 논문, 그리고 책을 통해서 서로를 비난했다.
엘라스모사우루스에 대한 코프의 잘못된 해석을 지적한 마시의 논문도 이때 나왔다. 코프는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그 논문이 실린 저널을 닥치는 대로 사 모았으며, 마시는 코프의 실수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코프는 엄청난 속도로 많은 분량의 논문을 쏟아냈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마시는 코프의 실수를 찾아내 지적하고 조롱했다. 마시라고 해서 실수가 없는 과학자는 아니었다. 아파토사우루스의 골격에 엉뚱한 두개골을 이어 붙여 놓고서는 브론토사우루스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1864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만나 교류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단 9년 후인 1873년 봄 무렵부터는 적개심만 남았다. 코프와 마시는 발굴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공공연히 사용하면서 수많은 화석을 파괴했다. 서로 상대방 탐사대를 매수해 염탐질을 하고 화석을 파괴하거나 발굴지를 흙과 바위로 메우기까지 했다. 심지어 코프와 마시 탐사대가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싸운 일도 있다. 다른 정상적인 탐사대마저 그들의 다툼에 질려서 탐사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프와 마시의 반목은 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코프는 표절과 탐사 자금 낭비 혐의로 마시를 비난했고, 마시 역시 이야기를 만들어 코프를 고발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당시 과학자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는데 특히 지질학과 척추동물고생물학자들은 두 사람의 싸움 속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발견하고 더욱 주춤하게 됐다.
협력 없는 경쟁의 결과는 파멸두 사람의 결판은 결국 나이가 결정하는 듯 보였다. 코프보다 아홉 살이 많은 마시의 동료들은 죽거나 은퇴해 마시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했다. 게다가 사치스런 생활이 마시의 발목을 잡았다. 마시가 과학아카데미 회장직에서 사임해야 했지만 코프는 동물학 교수로 승진하고 미국 과학진흥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싸움은 코프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최고의 고생물학자에게 주는 퀴비에 메달은 마시에게 돌아갔다. 그렇다고 마시의 승리도 아니었다. 둘 다 불행한 말년을 맞았다. 1877년에서 1892년까지 두 사람은 탐사대를 지원하고 화석을 확보하기 위해 화석 사냥꾼을 고용하느라 자신의 재산을 마구 썼다. ‘공룡 화석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둘 다 파산하고 말았다. 코프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화석 수집품을 팔아야 했으며, 마시 역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예일대학에 밀린 임금을 달라고 사정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코프는 1897년 사망할 때까지도 마시에 대한 경쟁심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는 뇌의 크기가 지능의 실제적인 척도로 여겨질 때였다. 죽음을 앞둔 코프는 자신의 두개골을 과학 발전을 위해 기증해 자신의 뇌가 마시의 것보다 크다는 것이 증명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마시는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볼썽사나운 싸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업적은 놀라웠다. 코프와 마시 이전에는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된 공룡이 아홉 가지뿐이었는데, 코프는 56종의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 마시는 무려 80종의 새로운 공룡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발견이 갖는 과학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알로사우루스·카마라사우루스·코엘로피시스·디플로도쿠스·스테고사우루스·트리케라톱스가 모두 그들의 발견 목록에 있다. 두 사람의 발견 없이는 어떤 공룡 관련 책도 쓸 수 없을 정도다.
뿐만 아니다. 당시 고생물학자들과는 달리 그들의 이론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새는 공룡이 후손이라는 마시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고생물학자와 진화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동물 몸 크기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논쟁해 왔는데, 주요 이론 가운데 하나가 코프의 법칙이다. 코프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종을 형성하는 집단의 몸 크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커지는데, 이것은 몸이 크면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들고 먹이는 더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코프의 법칙과 잘 맞아떨어지는 고생대 데본기의 동물의 몸집 증가 증거가 발견됐다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팀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발표되기도 했다.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코프와 마시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의 싸움은 고생물학계에 오랜 시간 혼란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능가하기 위해 발견한 뼈를 무턱대고 조립하고서는 새로운 종으로 발표한 경우가 많았다. 두 사람이 죽은 후 수십 년 동안 고생물학자들은 그들의 실수를 되돌리느라 고생했다. 협력 없는 경쟁이란 결국 속도전이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의 결말은 파멸이다. 두 사람의 지나친 경쟁은 자신뿐만아니라 미국 고생물학계 전체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학회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목뼈가 71개나 되는 엘라스모사우루스엘라스모사우루스는 공룡이 아니다. 공룡은 육상에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물고기와 비슷하게 생긴 어룡도 아니다.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로 구성되는데, 트라이아스기부터 살았던 어룡은 백악기에 들어서자 점점 줄어들었다. 물고기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얇은 판 도마뱀’이라는 뜻의 엘라스모사우루스는 육지에는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가 살고 하늘에는 거대한 익룡 케찰코아틀루스가 날던 중생대 백악기 말에 북미 바다에 살았던 수장룡이다. 요즘은 수장룡을 장경룡(長頸龍)이라고도 부른다. 말 그대로 목이 길다는 뜻이다. 목뼈가 무려 71개나 된다. 척추 동물 가운에 이만큼 많은 목뼈가 많은 동물은 거의 없다. 사람과 고래 그리고 기린은 모두 목뼈가 일곱 개다. 장경룡이라고 하면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틀린 설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엘라스모사우루스는 목이 길었지만 심해에 살지는 않았다. 다른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물 위로 목을 내밀고 허파로 숨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목을 바다 바깥으로 내밀어서 날아다니는 익룡을 잡아먹지도 못했다. 엘라스모사우루스의 목은 위아래로 별로 꺾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녀석의 목구멍은 매우 좁았기 때문이다. 바다에 빠진 익룡이라도 삼키는 날에는 질식사했을 수도 있다. 물고기나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을 주로 잡아먹었다. 그렇다면 알은 육지에 낳았을까, 아니면 수중분만 했을까?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엘라스모사우루스는 멋지고 거대하고 재밌는 이야기 거리가 많은 동물이다. 그런데 관람객을 안내할 때 엘라스모사우루스 앞에만 서면 코프와 마시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길게 설명하게 된다. 덕분에 엘라스모사우루스마저 뭔가 꺼림칙한 동물이 돼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엘라스모사우루스의 잘못이 아니다. 오로지 연구자들의 잘못으로 멸종한 동물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 같아 매우 미안하다. 혹시 우리도 지금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 중앙SUNDAY 제455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11.29
날개 폭 12m 거대 익룡, 날기 위해선 절벽까지 고된 산행
지구에는 더 이상 쓸 만한 에너지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류는 이미 태양계 바깥에서 에너지의 보고(寶庫)를 발견했다. 판도라(Pandora) 행성이 바로 그것이다. 판도라는 지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운옵타이늄(unobtainium) 광석이 무한정 존재한다. 운옵타이늄은 커다란 산을 통째로 공중에 띄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자기장을 형성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귀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법. 판도라 행성의 대기에는 독성 성분이 있어서 지구인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운데다 토착민인 나비(Navi)족과의 관계도 쉽게 풀리지 않아 협조를 받을 수도 없는 상태인데, 나비족은 이크란(Ikran)이라는 비행 생명체와 신경망을 통해 연결돼 힘들이지 않고도 하늘을 날 수 있어서 제압하기도 어렵다. 나비족이 위기에 빠질 때면 이크란보다 훨씬 더 큰 비행 생명체인 토루크(Toruk)를 타고 다니는 영웅 토루크 막토(Toruk makto)가 어김없이 등장해 그들을 침략자로부터 구해준다. 나비족의 전설에 따르면 지금까지 토루크 막토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눈치챘겠지만 여기까지는 2154년을 배경으로 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2009)’ 의 배경 설명이다.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의 러브라인과 판도라 행성을 지키려는 주인공 제이크와 나비족처럼 우리도 우리 행성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카메론 감독의 메시지는 놔두고 우리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생명체 이크란과 토루크에 집중해 보자.
익룡은 공룡 아닌 날개 달린 도마뱀 토루크는 ‘마지막 그림자’라는 뜻이다. 이 섬뜩한 이름은 토루크의 사냥법 때문에 생겼다. 토루크는 하늘에서 먹잇감을 향해 내려꽂듯 날아가 덮친다. 가련한 먹잇감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 자기를 덮치는 거대한 그림자를 본다. 바로 토루크의 먹잇감이 본 마지막 그림자인 것이다.
벼의 학명(學名)이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이고 사람의 학명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 것처럼 토루크에게도 학명이 있다. 레오노프테릭스 렉스(Leonopteryx rex)가 바로 그것이다. 레오는 ‘사자’, 프테릭스는 날개를 뜻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주인공인 백악기 말에 살았던 거대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Tyrannosaurus rex)에도 있는 렉스는 ‘왕’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봐도 토루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동물일지 짐작할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아무런 단서도 없는 것을 상상해 낼 수는 없다. 창의성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고 편집하는 능력이다.
이크란을 보는 순간 누구나 익룡(翼龍)을 떠올린다. 익룡은 영어로는 프테로사우루스(pterosaurus)라고 하는데 프테로는 그리스어로 날개라는 뜻이다. 즉 익룡은 ‘날개 달린 도마뱀’ 이라는 말이다.
흔히 익룡을 두고 ‘하늘을 나는 공룡’ 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공룡은 다리가 골반에서 수직으로 내려오고 땅에서 살았던 파충류를 말한다. 예전에는 여기에 ‘중생대’라는 제한이 있었으나 이제는 이 제한을 풀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신생대에 여전히 살고 있는 새도 공룡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새·박쥐처럼 앞다리가 날개로 변화익룡은 공룡은 아니지만 일부 공룡(새)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몸이 가벼워야 하고 여기에 덧붙여서 날개가 있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동물 가운데 곤충을 제외한 익룡·박쥐·새에게는 앞다리가 변해서 만들어진 날개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의 경우 발가락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뼈가 하나로 합쳐져 있으며 날개는 깃털로 덮여 있다. 이에 반해 포유류인 박쥐와 파충류인 익룡의 날개에는 깃털이 없으며 발가락으로 지탱하는 날개막이 있을 뿐이다. 박쥐와 익룡의 날개막에도 큰 차이가 있다. 박쥐는 길게 발달한 네 개의 발가락 뼈로 날개를 지탱하는 데 반해 익룡은 길게 자란 네 번째 발가락 하나로 날개를 지탱하고 나머지 발가락은 날개 바깥으로 나와 있다.
익룡은 새와 가까운 동물이다. 새와 마찬가지로 뼈 속이 비었고 공기로 차 있다. 가슴뼈에는 비행을 위한 근육이 붙어 있도록 커다란 용골돌기가 있고 뇌가 상대적으로 커서 비행과 관련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익룡과 새는 관절·근육·피부와 평형기관에서 오는 신호를 종합하는 뇌의 한 부분인 소엽(小葉)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는 척추동물 가운데 유난히 소엽이 커서 전체 뇌 질량의 1~2%를 차지한다. 그런데 익룡의 소엽은 뇌질량의 7~8%를 차지한다. 아마도 커다란 날개와 주고받는 신호의 양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익룡은 땅에서 어떻게 걸어다녔을까? 이것을 알려면 익룡이 걸어다닌 발자국 화석이 있어야 한다. 백악기 익룡 발자국이 발견된 나라는 전세계에서 9개 나라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한국과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다. 2009년 천연기념물센터 임종덕 박사는 경북 군위군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 발자국은 세 개의 발가락이 있는 앞발의 자국이었다. 일반적인 익룡 보행렬에서 발가락이 네 개인 뒷발자국과 발가락이 세 개인 앞발자국이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익룡은 네 발로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바타’에 나오는 이크란을 보고서 나는 익룡 가운데 프테라노돈(Pteranodon)을 떠올렸다. 북아메리카 백악기 후기 지층에서 1200개 이상의 화석 표본이 발견됐으며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유명 자연사박물관에 골격이 전시돼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익룡이다. 프테라노돈이라는 이름은 날개(ptera)는 있지만 이빨(don)은 없다(no)는 특징을 알려준다.
프테라노돈은 날개를 펴면 그 폭이 6m에 달한다. 꽤 큰 편이다. 하지만 사람을 태우고 다닐 정도는 아니다. 2015년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에서는 익룡이 사람을 뒷발로 잡아서 날아가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익룡은 날개가 한번 찢어지면 영원히 날 수 없어서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프테라노돈의 비행막은 두께가 1㎜에 불과하다. 프테라노돈은 무리를 할 이유가 없다.
케찰코아틀루스, 땅에선 네발로 걸어그렇다면 ‘아바타’의 토루크에 해당하는 익룡은 어떤 것일까? 중앙아메리카 아즈텍 신화에는 날개 달린 뱀 모습의 신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케찰코아틀(Quetzalcoatle)로 바람과 태양과 풍요와 평화의 신이다.
케찰코아틀의 이름을 딴 익룡인 케찰코아틀루스(Quetzalcoatlus northropi)는 6800만 년 전 중생대 끝 무렵인 백악기 후기에 북아메리카에 살았다. 날개를 펴면 그 폭이 10~12m에 달하는 거대한 익룡이었다. 서 있을 때 키가 오늘날의 기린 이상이었다. 케찰코아틀루스는 한때 물고기를 먹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다른 익룡들과 달리 이빨이 없으며 대부분 화석이 강가의 퇴적층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뱀잡이수리나 우리나라의 황새처럼 육지의 작은 동물을 먹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작은 공룡 새끼도 부리로 잡아올린 후 꿀꺽 삼켰을 것이다.
케찰코아틀루스는 1971년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도대체 어떻게 날았을지가 최대의 의문이었다. 종명(種名)을 항공기 개발자이자 공기역학 전문가인 존 노스롭(John Knudsen Northrop)의 성에서 따와 노르트로피(northropi)라고 정했을 정도다. 케찰코아틀루스가 비록 F-16만 한 날개가 있고 또 비행막의 두께도 팔꿈치 쪽은 무려 23㎝일 정도로 매우 두꺼워서 비행 중 쉽게 찢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머리 길이만 거의 사람 키만 하고 몸무게도 100㎏에 육박하는 몸체를 날개를 퍼덕여서 하늘로 날아올랐을 것 같지는 않다.
연구자들은 케찰코아틀루수의 화석이 강가에서 발견되는 이유가 먹잇감 때문이 아니라 비행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케찰코아틀루스는 네 발을 이용해 경사가 있는 지형이나 절벽으로 이동한 후 여기서 뛰어내려 활강해야 비행이 가능했다. 경사로를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둑 같은 지형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케찰코아틀루스의 다리 골격 비율이 오늘날의 발굽동물의 다리 비율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하늘을 날아다니기보다는 네 발로 어기적거리면서 육지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2014년 9월 중국 랴오닝성의 1억 2000만 년 전 백악기 초기 지층에서 새로운 형태의 익룡이 발견되었다. 키는 75㎝이고 날개를 펴면 폭이 1.5m에 불과한 작은 익룡이다. 그런데 아래 턱 끝부분에 특징적인 판 모양의 돌출부가 달려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펠리컨의 목 밑에 처진 살처럼 신축성이 좋은 턱주머니라고 생각한다. 발견자들은 이 새로운 익룡을 이크란드라코 아바타르(Ikrandraco avatar)라고 불렀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이크란과 닮은 익룡이라는 뜻이다. 문화 현상이 과학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과학 역시 문화현상의 영향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 중앙SUNDAY 제452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11.08
‘표리부동’ 디메트로돈… 외모는 공룡, 속 보면 포유류 조상
공룡과 포유류, 누가 먼저 생겨났을까? 사람들은 대개 파충류인 공룡이 포유류보다 먼저 살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1억6000만 년 동안 육상을 지배하던 공룡들이 66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멸종하고 그 자리를 포유류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포유류는 공룡과 함께 출연했다. 때는 트라이아스기의 3분의 2 지점인 2억3500만 년 전.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로 나뉜다. 공룡과 포유류는 후기 트라이아스기부터 중생대 전체 기간을 거쳐 나란히 발전했다. 다만 공룡은 매우 큰 동물로 진화했고 포유류는 주먹만 한 크기의 야행성 동물로 진화했을 뿐이다.
진화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인간’이라는 계단식 발전 개념이다. 혹시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모든 지식인이 하던 착각이고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파충류와 포유류는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그 공통 조상은 무엇일까?
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양막류의 등장가장 먼저 육상으로 진출한 동물은 양서류다. 양서류는 말 그대로 물과 뭍, 양쪽에서 산다는 뜻이다. 말이 좋아서 양쪽에 다 산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물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양서류는 물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는 물에서 헤엄을 친다. 그 후에야 겨우 뭍으로 올라올 수 있다.
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동물은 양막(羊膜)류다. 양막류는 달걀 같은 껍데기나 질긴 가죽으로 둘러싸인 알을 낳는다. 알의 수분은 증발하지 않지만 산소는 들어오고 이산화탄소는 배출된다. 발육 중인 배아가 바깥 세계로부터 보호되므로 굳이 물속에 알을 낳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올챙이 같은 어린 시절도 겪지 않는다. 양막류는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포유류의 공통 조상이다. 그러니까 네 발 달린 동물 가운데 양서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양막류에 속하는 셈이다.
양막류는 고생대 석탄기(3억6000만 년 전~3억 년 전) 후기 동안 폭증했다. 3억3000만 년 전부터 2억6000만 년 전까지의 7000만 년은 지구 대기에 산소가 가장 많았던 시기다. 석탄기 동안에 양막류가 급증한 이유는 분명하다. 육상에 낳은 알은 습기를 보존해야 하므로 껍질에 있는 구멍은 매우 작고 적어야만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산화탄소를 바깥으로 배출하기도 어렵고 바깥에서 알 속으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는 것. 산소가 없으면 알은 발달할 수 없다. 양막란이 생존하려면 산소 수준이 오늘날과 비슷하거나 훨씬 높아야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석탄기는 최초의 양막류가 등장하기에 최적의 시점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양막류들이 이때 발톱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육식 양막류가 먹을 것이라고는 대형 절지동물뿐이었다.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절지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발톱과 함께 강한 턱이 필요했으며, 강한 턱은 강력한 근육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석탄기가 끝나기 전에 양막류는 독립적인 세 혈통으로 갈라섰다. 서로 갈라서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커다랗고 강력한 턱 근육 때문이다. 근육이 커다랗게 성장하면서 두개골을 짓눌렀다. 일부 양막류는 양쪽 눈구멍 옆에 또 다른 구멍이 우연히 생겼다. 그러자 커다란 근육이 있어도 두개골을 짓누르지 않게 되었다. 이 구멍을 관자뼈창(temporal bone window) 또는 측두창(側頭窓)이라고 한다. 관자뼈창의 가장자리에 턱뼈 근육이 붙어 있다.
페름기의 최고 포식자였던 단궁류작은 구멍이 큰 차이를 가져왔다. 관자뼈창의 개수에 따라 혈통이 무궁류, 단궁류, 이궁류 등 세 개로 갈라졌다. 무궁류에서 거북이 나왔고, 단궁류에서 포유류가 나왔으며, 이궁류에서 거북을 제외한 모든 파충류(악어·뱀 · 도마뱀 · 익룡 · 어룡 · 공룡)와 조류가 비롯됐다.
단궁류가 가장 먼저 번창했다. 대략 3억2000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후반에 처음 등장하였다. 디메트로돈(Dimetrodon)은 가장 대표적인 초기 단궁류다. 하지만 아직 포유류로 발전하지는 않은 상태다. 많은 사람들이 디메트로돈을 공룡으로 착각하고 심지어 이것이 공룡이라고 설명해 놓은 자연사박물관도 있지만 디메트로돈은 공룡이 아니다. 이런 착각에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중 ‘봄의 제전’의 책임이 크다. 애니메이션에는 디메트로돈이 다른 공룡들과 함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공룡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야 등장하지만 디메트로돈은 고생대 페름기에 이미 등장했다. 디메트로돈은 생긴 것과는 달리 도마뱀 같은 파충류보다는 포유류에 더 가까운 동물이다.
디메트로돈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di) 크기의(metro) 이빨(don)’, 즉 큰 이빨과 작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주 자세히 보면 어금니, 송곳니, 앞니가 조금 구분된다. 이것은 아주 획기적인 특징이다. 이빨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궁류는 턱을 구성하는 뼈 가운데 상당 수가 귓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위턱과 아래턱의 관절 부위가 달라졌다. 또한 관자뼈창이 단 하나만 있는 대신 커다랗기 때문에 턱을 닫는 근육이 두 개 발달했다. 그 결과 턱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단궁류의 후손인 우리도 입을 위아래뿐만 아니라 양옆으로도 움직인다. 단궁류는 먹이를 삼키기 전에 충분히 작은 조각으로 잘라낼 수 있다.
이에 반해 이궁류는 턱관절 부위가 유연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남았다. 관자뼈창이 두 개나 생겼지만 그 크기가 작았다. 덕분에 턱 닫는 근육은 오로지 한 개밖에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궁류들은 턱을 위아래로만 움직인다. 즉 한 가지 방식으로밖에 씹지 못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궁류는 이빨도 한 가지다. 모두 고기를 찢기 좋은 송곳니든지 아니면 모두 식물을 으깨기에 좋게 생긴 이빨인 식이다. 이궁류는 힘들게 씹어서 대충 삼킨다.
따라서 현생동물도 이빨만 보면 포유류(단궁류)인지 파충류(이궁류)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빨의 종류가 여러 가지면 포유류, 한 가지면 파충류다.
현대의 도마뱀은 다리가 몸통 옆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걷거나 뛰면 몸통이 물결처럼 한쪽으로 뒤틀렸다가 반대쪽으로 뒤틀린다. 왼쪽 다리가 전진하면 오른쪽 폐가 눌리는 식이다. 따라서 발걸음 사이에만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에 뛰면서 숨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동물이 처음 육상에 정착했을 때부터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불리한 동물이 육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야만 했다.
단궁류는 다리의 형태도 변화시켰다. 디메트로돈은 현생 도마뱀처럼 걸었지만 단궁류의 다리는 진화를 거듭할수록 몸통 아래로 내려갔다. 걸을 때 몸통이 뒤틀리는 게 줄어들었고 움직이면서도 숨을 쉬게 되었다.
대멸종 거치며 이궁류가 지구 지배단궁류는 석탄기 후기에서 페름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산소 절정기에 다양하게 번성했다. 페름기가 시작할 무렵인 3억 년 전쯤에는 디메트로돈과 같은 단궁류가 육상 척추동물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몸길이도 3.6m 이상으로 커졌다. 디메트로돈은 등에 돛처럼 생긴 구조물이 달려 있어서 더 크게 보였다.
이 돛 모양의 구조물은 오전에 체온을 급속히 올리는 데 쓰이는 체온조절 장치였다. 돛이 아침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돌아앉아 큰 몸을 재빨리 덥힌 디메트로돈은 다른 동물보다 먼저 움직여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0㎏의 양막류 체온을 26도에서 32도로 높이는 데 205분이 걸리지만 돛이 있는 디메트로돈은 80분이면 됐다. 돛은 사냥 시간을 더 늘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위협과 짝짓기를 위한 과시용으로도 쓰였다. 그것으로 족했다. 산소 절정기에 포유류의 조상인 단궁류는 온혈성을 아직 진화시키지 않았다. 그냥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 페름기 동안 모든 대륙이 하나로 뭉쳐 판게아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됐다. 살기 좋았던 해안선은 줄어들었고 내륙은 사막으로 변했다. 대기의 산소 수준은 30%에서 20%로 급격히 떨어졌고 시베리아에서는 대규모의 화산이 터지면서 온갖 가스가 분출됐다. 100만 년에 걸쳐서 지구 생명의 95%가 멸종했다. 이궁류에 비해 온갖 장점이 있던 단궁류 역시 파국 앞에서 무기력했다.
파국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다. 이번에는 이궁류가 기회를 잡았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들어가자 이궁류는 공룡 · 익룡 · 어룡이 돼 지구를 지배했다. 트라이아스기로 살아 넘어온 극소수의 단궁류는 이제야 양막란 대신 태반을 통해 번식하고 항온성을 획득한다. 마침내 포유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단궁류는 이제 더 이상 최고 포식자가 아니다. 주먹만 한 크기의 야행성 포유류는 공룡 세상에서 숨죽이며 살아간다.
포유류는 공룡이 멸종한 다음에 생긴 게 아니다. 공룡과 같은 시기에 생겼다. 다만 그때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덕분에 포유류는 66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에 살아남는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기나긴 진화사에도 통한다.
… 중앙SUNDAY 제449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10.18
곤충천하였던 3억 년 전, 하늘엔 독수리만 한 잠자리
가을이다. 황금빛 들판에 고추잠자리가 짝을 찾아 헤매고 있다. 고추잠자리는 몸 길이가 5㎝, 양날개를 펴면 너비가 8㎝ 정도 된다. 이런 잠자리를 보고 공포에 떨 일은 없다. 비록 잠자리가 영어로 드래곤플라이(dargon fly)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날개폭이 75㎝, 몸통 길이가 40㎝가 넘는 잠자리 떼가 들판 위에서 짝짓기 비행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그런 들판에서 아이들을 뛰어놀게 놔둘까?
실제로 이런 거대한 잠자리가 있다. 이름은 메가네우라(Meganeura). ‘거대한 신경’이라는 뜻이다. 투명한 날개에 있는 날개맥이 마치 신경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다. 메가네우라는 몸통이 지름 3㎝로 가늘지만 눈이 크고 턱이 튼튼하다. 또 다리에는 가시가 있어서 먹이를 붙잡기 좋다.
물론 이런 잠자리가 사는 곳이라고 해서 다른 벌레들도 모두 거대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몇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커다란 놈들이 더러 있다. 날개폭이 48㎝인 하루살이, 다리 길이만 50㎝에 이르는 거미, 길이가 1m인 지네, 무게가 25㎏이나 나가는 전갈, 길이 1m가 훌쩍 넘는 노래기. 아무리 벌레 매니아라고 하더라도 이런 벌레들과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주 오래 전 고생대의 일이니까.
5억4100만 년 전에 시작하는 고생대는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데본기-석탄기(3억6000만~3억 년 전)-페름기(3억~2억5000만 년)로 나뉜다. 그러니까 석탄기와 페름기는 고생대의 마지막 두 시기인 셈이다. 거대 곤충들이 대량으로 살았던 시기는 3억3000만 년 전부터 2억6000만 년 전 사이로 석탄기 중기에서 페름기 초기에 걸친 약 7000만 년 동안이다. 에계! 겨우 7000만 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공룡이 멸종한 후 시작된 신생대가 겨우 6600만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거대 곤충의 시대는 우리 포유류의 시대보다도 더 길었다. 게다가 3억 년 전에는 아직 새도 없고 파충류도 변변치 못했으며 양서류가 있었을 뿐이니, 거대 곤충은 육상의 지배자였다고 할 수 있다.
탱크만 한 개미는 구조상 불가능날개가 있다고 다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날개를 갖고도 날지 못하는 새들이 많다. 타조가 그렇고 펭귄이 그렇다. 사람이나 코뿔소에게 날개를 달아준다고 해서 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날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너무 무거워서 날지 못한다.
곤충은 날개가 있거니와 몸집이 작아서 날 수 있다. 곤충이 다른 동물보다 작은 이유는 허파와 심장 그리고 뼈가 없기 때문이다. 뼈 대신 외골격(外骨格)이라고 하는 단단한 겉껍질이 있어서 형태를 유지하지만 한없이 커질 수는 없다. 한때 파리가 자동차를 번쩍 들어올리고, 개미가 탱크만 하고, 보잉747만 한 사마귀가 등장하는 B급 공상과학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곤충은 불가능하다. 개미를 사람만하게 확대하면 개미의 키틴질 외골격은 제 풀에 부서지고 만다.
곤충은 허파와 심장 대신 외골격에 뚫려 있는 기관(氣管)이라는 가는 관을 통해서 숨을 쉰다. 기관은 가는 가지로 나뉘어 각 세포들과 연결되어 있다. 산소는 기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진다. 비능동적인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곤충이 무한정 커질 수는 없다.
사람들은 오래 달리지 못하고 금방 숨이 찬다. 이것은 육상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표범이나 치타도 마찬가지다. 운동하는 근육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육에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면 근육세포는 산소로 영양분을 태우지 못하고 산소 없이 당분을 분해한다. 이때는 발생하는 에너지가 훨씬 적을 뿐더러 젖산이라는 독성 성분이 근육에 노폐물로 쌓인다.
곤충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를 귀찮게 하는 파리를 생각해 보라. 파리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잘도 날아다닌다. 파리에게는 젖산 때문에 근육에 피로가 쌓이는 일은 절대로 없다. 곤충은 유산소 운동으로만 비행하기 때문이다. 날아다니는 곤충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대사율이 높다.
만약 메가네우라가 지금 살고 있다면 날지 못할 것이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대한 곤충이 날기 위해서는 공기의 밀도 자체가 아주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떠 있을 수 있다. 기압은 공기 중에 얼마나 많은 공기 분자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공기 중의 질소의 양은 일정하다. 산소가 늘어난다고 해서 질소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산소가 늘어나면 공기의 밀도와 압력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대기 중에 기체 분자 수가 많으면 거대한 곤충들이 더 잘 날 수 있다.
또 산소의 농도도 현재의 21%보다는 훨씬 높아야 한다. 그래야 무거운 몸을 띄우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산소 농도가 높으면 기관 속에서 산소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져서 더 멀리 확산될 수 있다. 몸집이 커도 기관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비행에 사용하는 근육에 산소가 더 많이 공급되면 조직이 두꺼워지고 곤충의 몸집은 더 커진다. 몸집이 커지면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들도 줄어들고 부피 대(對) 표면적의 비율이 줄어들어 에너지를 더 보존할 수 있어서 유리하다.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곤충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메가네우라가 살던 시기에는 산소 농도가 지금보다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나무 썩게 만드는 미생물도 없던 시절3억 년 전에 메가네우라 같은 거대 곤충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당시 산소 농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연구에 따르면 3억 년 전 석탄기에는 대기의 산소 농도가 35%에 달했다. 도대체 이렇게 높은 산소 농도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그 비밀은 석탄에 있다.
석탄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최초의 나무들이 지구에 생겨났다. 높이 20~30m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해안과 늪지에서 고산지대에 이르기까지 육지를 온통 뒤덮었다. 기후는 따뜻했고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산업혁명기의 열 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뿌리가 변변치 못해서 쉽게 뽑혔다. 또 초대륙 판게아가 형성된 상태였으므로 넓은 평원은 쉽게 물에 잠기어 습지가 되었다. 물에 잠긴 나무는 숨을 쉬지 못하고 죽었다.
죽은 나무는 썩는다. 그리고 나무가 썩으려면 나무를 썩게 하는 미생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무의 섬유 성분인 리그닌을 소화하는 세균들이 극히 적었다. 나무가 처음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균들은 리그닌을 쉽게 분해하지 못한다. 지구에 리그닌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형성되는 데 반해 분해는 거의 일어나지 못했다. 석탄기는 숲이 썩지 못하고 매장되는 시기였다.
매장된 나무의 운명은 석탄이었다. 리그닌은 열과 압력을 받아 석탄이 되었다. 탄소로 구성된 유기물이 고스란히 매장된 것이다. 거대 곤충이 지배했던 7000만 년 동안 전 세계 석탄의 90%가 생겼다. 육지 생태계의 바닥에 나무가 있다면 (당시에는 아직 풀이 없었다.) 바다 생태계의 바닥에는 플랑크톤이 있다. 플랑크톤의 시체도 바다 밑바닥에 쌓였다.
산소 농도가 균형을 유지하려면 나무가 광합성을 통해 생성한 산소는 다시 나무를 분해하는 데 쓰여야 한다. 즉 리그닌의 탄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어야 할 산소들이 공기 중에 산소로 그대로 남은 것이다. 바다에 쌓인 플랑크톤의 시체는 메탄 형태로 저장되었다. 결국 대기의 산소 농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덕분에 곤충은 거대화될 수 있었다.
파충류 · 포유류도 높은 산소 농도 덕 봐곤충도 아니면서 외골격이 있는 동물들이 또 있다. 새우 · 게 · 가재 같은 갑각류도 단단한 껍데기가 있다. 뾰족머리옆새우 · 참옆새우 · 모래벼룩 같은 단각목(端脚目)도 갑각류에 속한다. 바다에는 수천 종의 단각류가 살고 있는데, 극지방에 사는 단각류가 열대지방의 단각류보다 훨씬 크다. 극지방의 바다에는 열대지방의 바다보다 산소가 두 배나 더 녹아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수천 종의 단각류는 극지방 먹이사슬의 밑바닥을 차지한다.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해양 단각류는 어린 대구의 먹이다. 어린 대구는 바다표범의 먹이이며, 바다표범은 다시 북극곰의 먹이가 된다.
만약에 우리가 3억 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석탄을 모두 태워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의 산소 농도는 낮아지고 지구 온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매년 산소 농도는 0.000002%씩 낮아지고 있으며 지구온난화도 엄연한 사실이다. 단각류에서 북금곰에 이르는 먹이사슬이 깨질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작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된다. 화석연료를 다 태워 없애면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높은 산소 농도는 곤충을 7000만 년 동안이나 육상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왕좌도 영원하지 않다. 높은 산소 농도로 기회를 얻은 동물이 또 있었다. 동물들이 물이 아니라 육상에 알을 낳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결국 이제 파충류와 포유류의 진화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된다.
황금 들판을 나는 고추잠자리를 보면서 산소가 충만했던 3억 년 전 거대 곤충들이 날아다니며 짝짓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 중앙SUNDAY 제446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09.26
이정모의 자연사 32 回 살아있는 화석, 거북 |
| ▲ ‘향년 176세’ 다윈의 거북, 기네스북 오른 최장수 동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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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176세’ 다윈의 거북, 기네스북 오른 최장수 동물
2006년 6월 24일 전 세계 언론에는 어떤 거북의 부고가 실렸다. 1831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리엇이 전날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것이다. 향년 176세. 해리엇은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고 돌아올 때 데려온 세 마리 거북 중 한 마리였다. 찰스 다윈은 한 해군 장교에게 거북을 맡겼는데, 그 장교가 호주로 부임하면서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수컷인 줄 알고 해리라고 불렀지만 유전자 조사를 통해 암컷임을 알고 이름을 해리엇으로 바꿨다. 해리엇은 세계 최장수 동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거북이 장수하는 까닭은 등과 배에 있는 단단한 껍질이 내장과 머리를 포함한 온몸을 감싸주기 때문이다. 단단한 껍질이 있는 동물은 많지만 껍질의 구조가 거북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게의 껍질은 피부가 단단하게 변한 것이다. 게는 껍질을 바꾸기 위해 연한 몸이 단단한 껍질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하지만 거북의 껍질은 갈비뼈, 배갈비뼈, 척추 그리고 어깨뼈와 일부 엉덩이뼈를 포함한 49~50개의 뼈가 통처럼 변형된 것이다. 따라서 무거운 껍질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고 껍질을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는 만화영화의 장면은 불가능하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허파가 있는 동물들은 가슴을 확장시키면서 숨을 들이쉬고 가슴을 수축시키면서 숨을 내쉰다. 거북은 이게 불가능하다. 거북은 갈비뼈가 등딱지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는 숨쉴 수가 없다. 배 근육을 수축시키거나 목 바닥을 진동시키는 특이한 방식으로 공기를 허파로 들이쉬어야 한다. 다른 동물들이 거북과 같은 껍질을 발달시키지 않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창조론자들 “진화의 중간형태 없다” 주장거북은 개체의 수명만 긴 것이 아니다. 거북류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파충류의 한 분류군이다. 등딱지(背甲)와 배딱지(腹甲), 두꺼운 가죽 피부, 느린 움직임으로 거북은 다른 동물군과 쉽게 구분된다. 바다 거북에게는 헤엄치기에 좋은 지느러미발이 있고, 육지 거북에게는 단단하고 짧은 다리가 있다.
거북은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2억 1000만 년 전의 거북도 오늘날의 거북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거북의 등딱지와 배딱지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화석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등딱지와 배딱지는 진화론자들에게는 초기 파충류 진화에 있어서 가장 큰 수수께끼였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거북의 진화는 척추동물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거북이 다른 척추동물에 비해 더 잘 보존된 화석을 많이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거북의 기원을 알려주는 초기 화석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창조론자들은 거북을 창조의 강력한 근거로 주장했다. 정말로 진화가 일어났다면 초기 파충류에서 거북에 이르는 진화 경로를 보여주는 전이 형태가 쉽게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 중간화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초기 파충류에서 등딱지와 배딱지가 생기는 과정은 미묘한 것이 아니라 확연한 변화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나타난 거북은 현대 거북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지닌 매우 발달된 형태의 거북이었음을 창조론자들은 강조한다.
그들은 또한 등껍질이 없던 동물이 등껍질을 진화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불완전한 등딱지는 보호 기능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점보다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가신 방해물이 되는 단점이 더 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창조론자들은 거북은 처음부터 등딱지와 배딱지 같은 거북의 독특한 특징을 완전히 갖추고 창조됐으며, 이것은 각 동물들이 종류대로 창조됐다는 성서의 말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살아 있는 화석인 거북은 진화라는 것이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이렇게 서툰 논거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위험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전이과정을 보여주는 화석이 하나라도 나타나면 한번에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화석 증거들이 최근 10년 사이에 속속 나타나면서 거북의 진화 과정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창조론자들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거북은 2억 1000만 년 전에 살았던 프로가노켈리스(Proganochelys)다. 물론 프로가노켈리스도 현생 거북과는 달리 입 끝이 뾰족하고 이빨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소소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쳐주자. 거북에게 중요한 특징인 등딱지와 배딱지는 완벽하니 말이다.
| ▲ 에우노토사우루스 (Eunotosaurus) | |
시간은 진화론자들에게 미소진화론자들이 거북류의 조상동물로 거론하는 화석 생물은 2억 6000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에 살았던 에우노토사우루스(Eunotosaurus)다. 에우노토사우루스는 갈비뼈 아홉 개가 넓적하게 확장되었다. 거북의 특징이다. 하지만 현생 거북에서 보이는 확장된 척추는 보이지 않는다. 등딱지와 배딱지도 없다. 에우노토사우루스는 전문화된 등딱지가 있는 현생 거북과 다른 파충류 사이의 중간 형태의 해부학적 특징이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에우노토사우루스의 발견을 거북의 딱지가 다른 신체구조와 마찬가지로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변형돼 형성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제 에우노토사우루스(확장된 갈비뼈)-프로가노켈리스(이빨)-현생 거북 (배딱지 ㆍ 등딱지 ㆍ 부리)이라는 연결이 확인됐다.
하지만 완고한 창조론자들에게는 턱없는 소리였다. 그들에게 에우노토사우루스의 확장된 갈비뼈와 거북의 등딱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 다른 중간화석을 요구했다.
마침내 2008년 중국에서 거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2억 20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오돈토켈리스(Odontochelys)가 바로 그것이다. 오돈토켈리스의 배딱지는 완전히 발달했지만 등딱지는 부분적으로만 형성되었다. 오돈토켈리스는 에우노토사우루스와 현생 거북의 중간 형질을 갖는다. 배딱지가 먼저 형성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거북류의 배아 발생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거북류의 수정란이 발생할 때 항상 배딱지가 등딱지보다 먼저 형성된다. 그런데 오돈토켈리스의 뼈에는 잠수병의 흔적인 무혈성 괴사 흔적이 있다. 배딱지와 잠수병의 흔적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육상에서 기원한 파충류가 물로 들어갔다. 밑에서 공격하는 포식자를 막을 수 있는 배딱지는 만들었지만 아직 수중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신생대까지도 나타나던 거북류의 잠수병 흔적은 현생에 들어서야 사라졌다.
거북류에서 등딱지는 훨씬 후에 발생하는데 그 시기는 공룡이 등장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등딱지는 갈비뼈와 척추 그리고 어깨뼈가 융합돼 만들어진다. 이때 어깨뼈는 어쩔 수 없이 갈비뼈 아래로 이동해야 한다. 실제로 현생 거북의 배아발생 과정에서도 어깨뼈가 처음에는 갈비뼈 위쪽에 있다가 갈비뼈 아래로 이동한다. 오돈토켈리스의 경우 어깨뼈가 두 번째 갈비뼈에 걸쳐져 있다. 아직 등딱지는 없지만 등딱지가 생기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젠 에우노토사우루스(확장된 갈비뼈)-오돈토켈리스(배딱지)-프로가노켈리스 (이빨)-현생 거북(배딱지와 등딱지, 부리)이라는 연결이 확인됐다. 그러면 이젠 창조론자들이 두 손을 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또 다른 중간화석을 요구한다. 하지만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과학 매거진 ‘네이처’에는 2억 4000만 년 전 원시 거북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독일과 미국 공동연구팀은 독일 남부 벨베르크에서 몸 길이 20㎝의 원시 거북 화석을 발견하고 파포켈리스(Pappochelys)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어로 ‘할아버지(Pappos)’와 ‘거북(chelys)’의 합성어다. 거북의 조상 에우노토사우루스와 거북의 아버지 오돈토켈리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파포켈리스는 에우노토사우루스와 오돈토켈리스의 중간 형태를 띤다. 파포켈리스는 예상한 대로 막대 모양의 뼈가 늘어선 형태의 배 구조를 갖고 있다. 이젠 에우노토사우루스(확장된 갈비뼈)-파포켈리스(막대 모양으로 늘어서 갈비뼈) -오돈토켈리스(배딱지)-프로가노켈리스(이빨)-현생 거북(배딱지와 등딱지)이라는 일련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거북의 배딱지와 등딱지 형성은 생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진화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면서 초기 파충류 진화의 극적인 사건이다.
공대 교수의 창조론 강의는 부적절
거북은 장수한다. 거북류는 정말로 오래된 분류군으로 남아 있고, 거북의 진화를 부인하려는 창조론자들의 노력도 참으로 오래간다. 최근 연세대의 한 공과대학 교수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창조론 강의를 개설했다가 여론에 밀려 취소했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전공자가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창조론 관련 강의는 상당수가 지질학자나 생물학자가 아닌 공학자와 신학자가 개설한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이며 학문적인 근거 없이 신앙을 강요하는 행위는 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다.
동물 이름에 장수도마뱀, 장수지네, 장수하늘소처럼 앞에 ‘장수’가 붙는 경우가 많다. 오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장군처럼 크다는 뜻이다. 장수거북도 마찬가지다. 현생 거북 가운데 가장 큰 종인 장수거북은 놀랍게도 등딱지가 없다. 가죽이 등을 덮고 있다. 거북의 진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창조론자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 중앙SUNDAY 제443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09.06
이정모의 자연사 31 回 全頭類 물고기 헬리코프리온 |
| ▲ 입 속에 ‘회전톱‘ 이빨 장착한 지구상 유일무이 생명체, 全頭類 물고기 헬리코프리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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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에 ‘회전톱‘ 이빨 장착한 지구상 유일무이 생명체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에게 무던히도 속고 살았다. “어이 시원하다”라는 동네 할아버지의 탄성에 속아 뜨거운 욕탕에 뛰어들었다가 혼비백산했고,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난다는 할머니 말씀에 속아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번데기 한 번 사먹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른 말씀이 사실인 적이 있다. 아버지는 목재소에 가면 큰일 나니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목재소 담벼락을 지날 때마다 ‘윙’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너무 궁금했다. 과감히 들어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소리의 정체는 회전톱이었다. 가만히 한 곳에서 돌고 있는 둥근톱을 향해 목재를 밀면 나무가 가지런히 잘렸다. 당시 좋아하던 TV 프로그램 ‘배트맨’에서 악당 조커에게 사로잡힌 배트맨이 컨베이어 벨트에 묶인 채 거대한 회전톱으로 밀려가는 장면이 생각났다. 내가 TV에서 본 가장 끔찍한 장면이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최후의 순간 로빈이 배트맨을 구해주지만 내겐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내게 회전톱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끔찍한 장치다. 당연히 이 장치는 아름다운 자연에는 있을 리가 없고 조커 같은 나쁜 인간이나 만드는 장치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 처음 발명한 장치는 거의 없다. 모든 것의 원형은 이미 자연에 있다.
몸과 따로 떨어져 발견된 둥근 톱 화석
1899년 러시아 지질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알렉산더 페트로비치 카르핀스키 (Alexander Petrovich Karpinsky)는 카자흐스탄에서 나선형으로 배열된 톱날 화석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에는 암모나이트나 앵무조개의 껍데기와 닮았지만 카르핀스키는 이 화석이 근처에서 발견된 길이 6m의 물고기 화석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물고기에 헬리코프리온(Helicoprion)이란 이름을 붙였다. ‘나선형 톱’이란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석이 그렇듯이 이 나선형 톱이 몸체와는 따로 떨어져서 발견됐기 때문에 도대체 이 신체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현재 살고 있는 생물에서 그 답을 찾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카르핀스키는 현생 톱가오리에서 답을 찾았다. 톱가오리의 위턱은 나무를 자르는 톱처럼 생겼다. 실제로 위턱을 몇 번 휘저으면 먹잇감이 잘게 분해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톱상어는 대부분 톱가오리다. 톱상어는 몸통 옆에 아가미가 있고 톱날 중간에 수염이 있지만 톱가오리는 아가미가 배 쪽에 있으며 톱날에 수염이 없다).
카르핀스키는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톱이 섭식(攝食)장치라고 여겼다. 구조적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빨처럼 생긴 나선이 위턱에서 이어진 주둥이의 끝이며, 몸의 단단한 장식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듬해 세기가 바뀌어 20세기가 되자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다른 생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의 고생물학자 찰스 로체스터 이스트먼(Charles Rochester Eastman). 이스트먼은 이 거추장스러운 장치가 얼굴에 붙어 있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1900년 논문에서 나선형 톱이 몸 등쪽 어딘가에 붙어 있으며 방어용 무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동조하자 카르핀스키조차도 1902년에는 나선형 톱이 꼬리 끝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생물학에서는 아무리 화려하고 근사한 추론이라도 보잘 것 없는 화석을 이길 수는 없다. 1907년 나선형 톱이 얼굴 앞에 놓인 화석을 미국 어류학자 올리버 페리 헤이(Oliver Perry Hay)가 발견하자 나선형 톱은 카르핀스키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다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단 몇 개의 화석만으로 나선형 톱이 위턱인지 아래턱인지, 아니면 위 아래에 모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형 톱이 먹이를 먹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방어용 무기라는 이스트먼의 주장은 여전히 공감을 얻었다.
학부생과 교수 논쟁이 본격 연구로 이어져
이때부터 거의 50년 동안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은 채 온갖 상상도만 난무했다. 여기에는 한 고생물학자의 무심함도 한몫했다. 덴마크 출신의 고생물학자 스벤 에리크 벤딕스-알름그렌(Svend Erik Bendix-Almgreen)은 1950년에 미국 아이다호의 몬트필리어 인근에 있는 인(燐) 광산에서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을 발견하고 IMNH 37899라고 목록에 기록했지만, 16년 후인 1966년에야 이 사실을 밝혔다. IMNH 37899는 심각하게 부서진 상태였지만 톱니 모양이 선명하게 남은 이빨 117개가 지름 23센티미터의 나선에 얹혀 있었다. 벤딕스-알름그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선형 톱이 아래턱 끝에 붙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IMNH 37899는 특별한 화석이었다. 윗턱과 두개골에서 떨어진 작은 연골 조각도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딕스-알름그렌은 여기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표본이 관절에서 빠져나와 있고 부서져 있어 헬리코프리온을 재구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30여 개의 턱 화석과 함께 박물관 수장고에 처박아 뒀다.
1907년 이후 50년 동안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상상도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이 입 안에 혀가 있을만한 자리 또는 목구멍 쪽으로 더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해 아랫입술을 지나 턱 아래쪽을 향해 엉성하게 말려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 아이다호 자연사박물관의 지구과학부 학예팀장이자 아이다호대학 지구과학과 교수인 레이프 타파닐라(Leif Tapanila)는 학부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제스 프루이트(Jesse Pruitt)와 함께 헬리코프리온 화석을 뒤지고 있었다. 프루이트는 헬리코프리온의 턱을 들추면서 질문을 쏟아냈다. 프루이트는 나선형 이빨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죽은 다음에 생긴 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도교수인 타파닐라는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라는 게 과학계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알려주었다. 학부생에 불과한 프루이트가 지도교수의 주장에 수긍하고 또 지도교수가 학생의 생각을 무시했다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협업’으로 해답 찾아
타파닐라와 프루이트는 세밀한 조사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자세히 볼 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다. 예전 같으면 돋보기나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CT 스캔 기술을 사용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타파닐라는 네 명의 과학자와 고생물학 아티스트인 레이 트롤(Ray Troll)을 연구팀에 합류시켰다. 연구팀은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고해상도 엑스레이 CT 장치를 사용해 3D 모델을 추출한 후 3D 프린터로 헬리코프리온의 턱을 복원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결정적인 모습 두 가지가 새로 밝혀졌다. 우선 수십 년간 생각해 왔던 것처럼 얼굴 앞으로 길게 튀어나온 턱은 없었다. 턱을 길게 표현한 대부분의 복원도와 달리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은 전체가 아래턱을 채우고 있었다. 턱관절은 바로 뒤에 있으며 양쪽 턱 연골이 나선형 이빨을 받쳐주고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헬리코프리온의 위턱에는 이빨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이것은 이 물고기가 상어가 아님을 말해 준다. 헬리코프리온은 대백상어(great white shark)나 배암상어(tiger shark)의 선조가 아닌 것이다. 헬리코프리온 두개골의 연골에는 매우 특이한 이중 연결부가 있는데 이것은 흔히 은상어라고 알려진 전두류(全頭類)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전두류는 4억 년 전에 상어에서 갈라져 나왔다. 헬리코프리온의 이빨 구조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전두류와 일치했다.
타파닐라는 헬리코프리온이 은상어 그룹의 선조 멤버였다고 생각한다. 타파닐라 연구팀은 재빨리 물고기의 가계도를 다시 그렸다. 현재 헬리코프리온은 상어에서 갈라진 전두류 가지 쪽에 배치돼 있다. 1899년 발견된 이후 상어로 알려졌던 헬리코프리온이 2013년에야 제대로 분류된 것이다.
115년 만에 헬리코프리온의 괴상한 나선형 이빨의 수수께끼가 풀렸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남아있다. 헬리코프리온은 단지 한 개의 톱날만으로 어떻게 먹이를 잡아먹었을까? 타파닐라는 레이 트롤의 복원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이 트롤은 수백 장의 복원도를 그렸다. 타파닐라는 모든 복원도에서 나선형 이빨 모양이 목재소에서 사용하는 회전톱과 완벽하게 닮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빨이 단지 톱날처럼 생겼다는 것이 아니다. 턱을 닫으면 나선형 이빨은 회전톱날이 도는 것처럼 뒤쪽으로 향해 이동했다. 이런 방식으로 2억7000만 년 전 바다에 살았던 오징어를 비롯한 해양 연체동물을 먹었을 것이다.
헬리코프리온의 수수께끼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이 결합해 풀었다. 그리고 어린 학부생의 끊임없는 질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 과학은 질문과 논쟁으로 시작해 협업을 통해 발전한다. 아직도 의문은 남아있다. 왜 이렇게 희한한 이빨 배열이 하필 페름기 말에, 지구 생명의 역사에 유일하게 등장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목재소에 대한 내 악몽은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 중앙SUNDAY 제440호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201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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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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