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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남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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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순 남 씨 성수면 외궁리 안평마을 출신 관세청서울세관통관지원과/계장
그녀의 고향 안평(雁坪)마을은 성수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조선말 130여 년 전 난들이라 불리면서 시작된 몇 가구가 자리 잡고 원외궁 마을로 속해 있었던 이 자리에 면사무소, 파출소, 학교, 농협, 우체국 등의 기관들이 들어서고 5일장이 형성 되면서 소재지 마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 하고 마을의 산세(山勢)와 지형(地形)이 평사락안(平沙落雁)의 혈(穴)이 있다하여 기러기 안(雁)자를 사용하여 안평이라 이름 하였다.
북편의 서낭당(城隍堂) 고개에는 100여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수리나무가 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성지(聖地)였었던 서낭당(城隍堂)을 지키듯 서 있었고, 남쪽의 정상에 조선시대의 봉화대(烽火臺) 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설치(鼠峙)재는 쥐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이었다고 전해진다.
무심하게 지난간 세월의 흔적으로만 남아 지금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농촌인구 감소의 여파로 한때 농산물 거래 등 활발했었던 시장도 사라지고 쓸쓸한 산촌(山村)의 면(面) 소재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 이 고향의 흔적을 그 녀는 가끔씩 자신의 그것과 함께 둘러본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사람 한순남씨는 1959년 안평에서 태어나서 외궁초등학교와 진성중학교를 졸업한다. 그녀가 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총무처 시행 9급행정직 시험에 합격, 군산세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또는 이 직장에서 좋은 남편 이경식(정읍.54)씨를 만나 두 아이 낳아 기르면서 이제는 행복한 세월을 만끽 하면서도 그녀의 가슴 속에 한(恨)으로 새겨진 응어리는 그녀가 열한 살 되던 그 해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워 뒤척이며 잠 못 이루어 두려운 밤 이였던 그 눈물의 세월을 이제 그녀가 자라서 어른 되어 어려운 이 사회 현실생활에 잘 적응 한다 자신하며 그렇게 확인하다가도 또 그렇게 마음에 새겼다가도, 그렇게 하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어릴 적 어머니 따라서 들렸었던 한적한 산사(山寺)의 풍경(風磬)소리가 부처님 앞에 근행(覲行)하는 불자(佛子)들의 풍경(諷經)소리에 어우러져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와의 사별 이후 그녀의 방황이 그랬듯이 그녀의 인생에 관한 커다란 회의(懷疑)의 시절이었다고 그녀는 그렇게 기억한다.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엄마는 지금 어디만큼 가 계시는 것일까?, 억겁(億劫)의 시공(時空)을 건너 단테의 그 고난의 여정을 따라서 삼계(三界)의 거친 들녘을 지난다 해도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와의 영혼(靈魂)의 재회(再會)를 그녀는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그랬다.
그녀는 가끔씩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선시(禪詩)를 음미하면서 어머니를 추억한다고도 했다. 그것은 그녀의 사바세계에서나 또는 현실세계에서의 챙길 수 있었던 극락왕생(極樂往生)에 관한 믿음, 그것이라고 했다.
淸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료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료무노이무석혜)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논 서마지기, 밭 사흘갈이의 그 재산이야 차치 하고라도, 일곱 자매의 셋째로 태어난 그녀의 당시의 세상으로 향하는 본심이야 어쨌든, 당시 공부 조금 하는 소녀들이 가졌었던 청운(靑雲)에 관한 그 꿈은 그녀에게도 있었다. "틀림없이 인생은 누구나가 규칙에 따라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기란다.
"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거짓투성이에다 오염된 현대사회의 허위허식과 무신경, 약육강식, 비속함 등의 낯선 두려움에 관한 고독을 그녀에게 그렇게 전해 준다. 서울에서의 그녀의 현실세계는 상실이고 체념이고 고독 이었다.
시부모를 포함하여 여섯 식구가 스물다섯 평의 전셋집에 수학여행 길의 그들처럼 북새를 치르면서 몇 년인가 살았다. 관우회의 청산금을 포함하여 공무원으로서의 자신들을 담보하고 서울생활 몇몇 년에 내 집이라고 둥지를 틀던 날, 이 넓은 서울 땅에 내 집이 생겼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문득 살아 온 세월의 서러움에 목 놓아 울었단다. 어머니를 부르면서 그렇게 울었더란다.
그녀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 온 이 공무원의 길을 누가 뭐라 하여도 긍지로 자랑스럽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그랬다. 그녀는 자신이 소속한 직장을 자신만큼이나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녀의 관세청은 『세관행정의 수요자인 기업과 국민에게 보다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불법 대외 거래로부터 우리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여, 국민이 편안해 지도록 최선을 다 하는 세계 최고의 관세행정을 구현하겠다.』는 의미의 비전을 갖고 국민에게 다가선다. 그 속에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향사람 한순남씨가 있다.
우리의 고향사람 한순남씨. 그녀의 자랑스러운 가치관이 우리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가치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의 긍지가 이 나라에 관한 절대적인 긍지임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가 좌우명(座右銘)으로 갖고 있는 유교경전 『예기』에 일러「湯之盤銘에 曰 苟日新이면 日日新하고 又日新이라.」 (탕(湯)임금의 반명(盤銘)에 이르기를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진다.") 라고 하였다.
그녀의 귀향(歸鄕)에 관한 철학(哲學)은 수구초심(首丘初心)에 관한 완성이지만 어쩌면 슬픈 귀향이 될 것 이란다. 그래도 그녀는 그 귀향길을 갈 것이며 그것을 준비하여 방송통신대 농학과 4학년에도 재학 중이다.
어머니에 대한 오랜 추억을 정리하고 고향의 언덕 위에 들국화도 심어놓고 아카시아 꽃잎 따서 엄마의 묘역에 뿌리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 갈 것이란다. 연락번호 : 010-9700-8366 /서울취재본부 |
첫댓글 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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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