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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13. 미국 서부의 아이콘, Monument Valley 2016, 7.2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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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Monument Valley다. 우리가 익히 서부극에서 자주 보았던 사막의 황량한 들판과 장엄하고 숨막히는 풍경을 떠올리면 된다. 조금은 설레지는 마음이다. 이곳 Hatch에서 그곳 까지는 250마일, 400km의 거리다. 자동차로 4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직선거리로만 따진다면 그 절반인 132마일 211km이지만 Kanab을 거쳐 아리조나 Page로 내려갔다가 다시 유타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길이 최선이다. 유타에서 아리조나를 들어갔다가 다시 유타로 들어가는 이른바 유타-아리조나 경계를 오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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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피로도가 겹쳐가는 지 서두르는 기색이 약해졌다. 아침식사도 집앞의 Galaxy Dinner. 종업원들의 밝은 표정과 친근한 서비스가 인상적이다. 웬일인지 웨이터 겸 서버가 춤을 추면서 음식을 나른다. 그의 제스쳐로 보면 금방 손님들을 크게 웃길 것 같은 표정이다. 우리 같으면 ‘뭐 잘못 먹은게 있나?’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이들에게는 몸에 밴 일상으로 보였다. 이들이 자기 직업에 긍지를 갖고 또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커피도 더 주고 다른 부족한 것도 달라는 대로 인심 좋게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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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40분 출발. US-89를 타고 남진, 아리조나 주계에 가깝고 Grand Canyon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Kanab(UT)을 거쳐 계속 동진한다. 1시간을 달려오니 길가에 노점상을 벌려놓은 인디언을 만났다. 주로 목걸이, 팔찌 등 장신구를 가지런히 진열해 놓았는데 손님은 우리뿐이다. 여기서도 두 여인은 뭔가를 사 주려고 이것저것 살피지만 마음에 드는 것 고르기가 쉽지 않은듯하다. 주변은 검고 볼품없는 바윗덩어리 조각이 널리 펼쳐 있다. 원주민도 물건을 팔아도 안 팔아도 관계가 없는 양 손님에 대해 무관심이다. 순박하다고나 할까? 오히려 외부 손님을 맞는 것이 부끄럽다는 표정이다. 정면에서 사진 찍는 것은 결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셔터 누르기가 조심스러웠다. 이곳 근처에 콘도르 서식지가 있었다는 표지로 미루어 이 지대가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age 근처에서 Vermillion Cliffs 이름이 적힌 표지가 보였다. Page에서 Oljato-Monument 쪽으로 아리조나 대평원을 지난다. 이곳을 대체로 높은 지대가 7천피트(2,000m)이고 낮아도 보통 5천피트(1,500m)인데도 모두가 평평하게 보여 고지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원주민은 상품 진열을 가지런히 잘 하고 있었다.
좌우 풍경이 눈에 익고 갈 길이 멀어 자연히 김박에게 인문학 강의를 부탁했다. 심심치 않게 달리기도 하지만 아직도 2시간 이상 달려야하므로 유박은 시간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목을 가다듬은 김박, 뜬금없이 김종필 선생의 회고록 이야기를 꺼낸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그 사람이 정권을 한 번 잡았다면 우리 현대사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느냐?’는 질문이다. 더 좋아졌을까? 더 나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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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김종필 선생만한 정치인이 나오기 힘들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분과 관련된 고사성어가 자동차 속 강의의 시작이 되었다. 제2인자로서, 또는 킹메이커로 역할하며 나름대로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수행한 분이라는 점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얼마 전 그분의 어느 신문에 게재된 회고록을 읽어보면 ‘장경오훼’(長頸烏喙)라는 고사와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누구도 그분의 회고록을 읽지 않았고 또 한자로 어떻게 쓰는 지도 몰라 귀만 열어놓고 있는데 답답했는지 한자 풀이부터 해준다. ‘긴 長은 알 것이고 頸(경) 자는 목이고 까마귀 烏는 알고 있을 것이고 喙(훼) 자는 주둥이 즉 부리인데 말이야 --- ’頸‘자와 ’喙‘자는 잘 쓰지 않아 좀 어려워 ---’ 나도 참 어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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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려운 한자성어 ‘장경오훼’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범려가 월왕 구천(勾踐)의 관상을 표현한 말이라고 했다. 아마 운정과 박대통령과의 관계를 중국의 역사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다가 장경오훼라는 주제가 범려의 비범함으로 이어졌다. 월나라 범려가 월왕 구천을 도와 춘추 오패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나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 구천의 相이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를 닮아 그런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나눌 수 없다고 절친한 친구이자 越나라 大夫인 친구 文種에게 일러준 편지 내용을 이야기 했다. 범려는 월왕을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만 그의 사람됨을 알고 제나라로 미련 없이 피신한 사람이다. 여기서 兎死狗烹(토사구팽)과 鳥盡弓藏(조진궁장, 새가 다 없어지면 활이 필요 없게 된다)이라는 사자성어 이야기와 연결시키니 감칠맛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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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월나라와 오나라 사이의 이야기이니 吳越同舟가 자동으로 따라 나오고 여기서 범려의 美人計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져 중국의 4대미인 이야기를 질의응답식으로 진행하니 우리 모두가 재미있게 들었지만 특히 여성 대원들의 관심이 높아 수업열기?가 뜨거워졌다. 김박이 양귀비와 서시 이름을 대고 또 누구더라 하는 순간 관심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유박이 초선이라는 이름을 댄다. 어떻게 미국생활 40년이 넘은 사람이 그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나도 한 사람 왕소군을 기억해내 천거했다. 이 4미녀가 통칭 중국의 4대 미인이라는데 잠정적으로 동의했다. 모두 특징적인 미모를 갖춘 여인들이지만 이중 이야기 중심은 서시. 그녀가 서호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니 물고기들이 그녀의 미모에 취해 물속에 빠져버렸다는 이야기(沈魚의 美貌)는 두 여인을 즐겁게 해주는데 성공적이었다.
장경오훼가 잘못된 주종관계이지만 김박은 동 시대 조(趙)나라의 인상여(藺相如)와 廉頗(염파)장군의 예를 들어 刎頸之交(문경지교)를 꺼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도 한쪽 끼어들어 두 사람 이야기의 중요한 메시지는 ‘秦나라가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염파장군이 있고 내가 있어서 그런거지 둘 중 한 사람만 있었다면 이미 조나라는 망해 있었을 것’이라는 인상여의 국난 위기시 단합을 강조한 점이 아닐까? 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떠올리며 한 말이었다. 또 서시와 범려의 최후를 확인하려고 정설은 아니지만 범려와 서시가 몰래 다시 만나 제나라로 들어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설에 대한 김박의 견해를 물으니 김박 왈, ‘그럴 수도 있겠지만 ---“ 정사에 없는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조심스럽고 史家다운 의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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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과 관련되다 보니 자연히 전투와 전략에 대한 兵家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김박이 先勝求戰과 有備無患을 강의하고 나아가 구체적 사례로 조나라와 진나라 전쟁시 조나라 명장 조사와 그의 아들 조괄의 병법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조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함께 才勝德이 넘치면 才勝德薄이 되는 이치를 알려주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전개해 나갔는지 미세스 유께서 그 이야기를 좀 적어달라며 종이와 연필을 꺼낸다. 강의료 없는 명강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주변 풍광은 눈에 담고 귀로는 공부하며 입으로는 맛있는 간식과 즐기며 아리조나 주 경계에 들어섰다. 11시 40분. 출발지 Hatch에서 Page까지 2시간 가까이 소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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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휴게소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니 주차장 곁에 다리가 나오고 그 입구에 ‘Navajo Bridge’ 동판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콜로라도강을 건너 나바호 보호구역(Navajo Indian Reservation)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던 것이다. 차에 계속 앉아 있다는 게 말이 쉽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바깥 경치가 좋다하더라도 더운 날 다리 한 번 편히 뻗지 못하고 오랜 시간 견딘다는 것은 고역이다. 다만 즐거운 고역일뿐. 콜로라도강!, 이름만 들어도 친근한 강. 우리가 젊은 시절 ‘콜로라도의 달밤’이라는 노래를 배워서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미시시피가 위대한 어머니의 강이라면 콜로라도강은 미국 의 아름다움을 모두 품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삶과 영혼이 깃든 위대한 강이기 때문이다. 뛰다시피 다리로 나갔다.
나바호 브리지 동판 (1928년 건설) 이 다리가 나바호 나라 입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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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브리지는 신.구 두 다리가 있는데 이것은 구 다리로 차량통행이 안된다.
콜로라도강 나바호 브릿지 아래에서 보트투어 여행객잉 보인다.
뒤에 보이는 다리가 옛날 다리 - 자동차는 안된다.
과연 푸른 물이 붉은 흙으로 이뤄진 직각의 협곡 아래 도도히 흐르고 있다. 너무 잔잔하게 흐른다. 아마 상류의 Powell Lake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높이가 142m로 꽤 높아 강위에서 보트를 타고 탐험하는 여행객이 조그맣게 보인다. 다리는 옛날의 다리와 새로 놓은 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지만 차량은 왼쪽의 새로 놓은 다리로만 다닌다. 주변은 그야말로 붉은 사막지대로 특별히 시선을 끄는 것은 없지만 원주민이 운영하는 정보센터 건물은 꼭 굴속에 토담으로 지은 집처럼 보이지만 미국국기와 함께 이곳 나바호 국기가 당당하게 걸려있다. Navajo 국기란 이곳이 자칭 Navajo Nation(1868년 협정에 의함)이며 공식적으로는 Navajo Reservation(나바호족 보호구역)이랄 수 있다. 이곳은 원주민이 운영하기 때문에 이곳 원주민을 편히 볼 수 있다. 외관상 이들은 아시안과 비슷해 만약 이들이 서울에 온다면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들도 물건 파는데는 관심이 없다. 시간에 쫒기는 우리에겐 그만큼 기념품 살만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림과 사진이 맘에 들었지만 점원이 이젠 안 보인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왼쪽에 미국국기와 나바호 국기가 함께 걸려 있다. 토담 벽돌집이 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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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모뉴먼트를 찾아 들어가는 과정 길 위에서 멀리 바위다운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이름도 없지만 관리도 허술하다. 철조망이 쳐져 있어 인디언 보후구역 경계인지 아니면 이 땅이 사유지여서 그런지 잘 모른다. 다만 미국국기와 함께 나바호국기가 함께 걸려 있다. 관리자도 없다. 처음 보는 경관이라서 신기하기는 했지만 인기 있는 지점은 아닌 듯. 왼쪽으로 서 있는 성모상처럼 보이는 바위가 시선을 끈다. 여기도 들어가는 길이 없다. 이제 시작인 것. 맛보기 같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고고히 서 있다. 이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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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이 쳐져 있고 길도 없다. 예수를 끌어않고 있는 성모상으로 보였다.
최종 목적지 Monument Valley는 서쪽에서 보면 Kayenta에서 41km, 동쪽의 Mexican Hat에서 38km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US-163을 타고 가다가 Monument Valley Road 오른쪽으로 굽어가면 된다. 길에 버린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다. 163번 도로를 타고 가며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지구를 떠난 다른 행성에 온 기분을 자아낸다. 영어표현으로 fabulous scenery라고 하는데 정말 매력적인 풍경이다. 익히 서부극에서 자주 봤던 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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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입구에서 처음 만난 풍경은 검게 높이 솟은 바위, 볼품은 별로이지만 대평원 같은 넓은 초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이 특히 해 차를 멈춰 섰다. 철조망이 쳐져있어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으나 관리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와 같은 여행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머무는 정도. 별로다 싶었다. 그리고 혹시 영화에서 본 것처럼 갑자기 활을 든 인디언이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미국기와 나바호국기가 촌스러운 쇠파이프 삼각대에 꽂혀 펄럭인다. 미국은 미국인데 좀 특별한 곳이라는 느낌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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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들어가니 서부의 아이콘이랄 수 있는 나바호 Monument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 --- 드디어 왔구나!’라는 감탄사와 함께 가슴이 설랬다. 내 머리 속 서부영화가 시작되는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감흥을 주기에 충분한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 곳이다. 서부의 대표적 아이콘 사진의 하나가 이곳이 아닐까? 존포드 감독과 존웨인이 생각났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높아 일직선의 곧바른 길 끝 꼭지점에 모뉴먼트가 아주 작게 그리고 조용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급한 마음은 유박도 마찬가지. 세워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기 좋은 위치에 차를 세운다. 바로 이곳이 톰 행크스가 출연한 영화 <Forrest Gump>에서 주인공이 괴로운 사랑 때문에 뛰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자신이 제일의 장기인 달리기를 멈춘 곳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에서 본 모뉴먼트 벨리의 모습
영화에서 본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 사진의 명소가 되었다.
다소 은유적이지만 자신의 불우한 신체적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달리기, 다시 말해 인생의 변곡점이 된 달리기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새로운 시발점이기도 했다. 우리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모뉴먼트를 배경으로 도로 한 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어보려 하나 차들의 왕래가 잦고 또 고속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찍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완전히 영화보다 더 실감나는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즐겼다. 길 한편에는 미국기와 나바호국기를 걸어놓고 이 지점이 포레스트 검프 영화 촬영장소라는 표지를 세워놓았다. 두꺼운 박스의 인쇄되지 않은 뒷면에 비뚤비뚤 초등학생이나 쓸 서투른 솜씨로 쓰였다. 이들의 교육수준이 높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우리처럼 멈춰서는 차량이 심심치 않았다. 천만 덮어 바람에 쉽게 날아갈듯한 텐트 밑에서 더위를 피하는 원주민은 무얼 하려고 여기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무관심의 자세다. 말도 걸어주지 않는다. 눈인사도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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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트 가는 길엔 원주민 인디언이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풍경
조그만 정보센터 및 트레이딩 포스트 건물 밖에 세워진 원주민 조형물
참 달통한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런 믿음은 비지팅 센터를 향해 가면서 주위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정보, 쇼핑, 지프투어 등 관광객을 받는 조그만 공간인데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도 인사도 없고 반가워하지도 않는다. 물론 쇼핑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원주민 모습을 나타낸 철제 조각품이 뒤쪽의 우뚝 솟은 바위 산 Butte와 뾰쭉 솟아난 바위 Spire와 어울려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키지만 이곳 원주민은 외래인을 특별히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움인지 자신감의 결여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랜 문화적 산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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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트 벨리 4마일 전 풍경
모뉴먼트 벨리 나바호족 공원 비지팅 센터, 오른쪽으로 The View Hotel이 있다
Visiting Center 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크게 눈에 들어온 첫 번째는 West Mitten Butte였다. 그 오른쪽으로 East Mitten Butte가 보이고 더 고개를 돌리니 Merrick Butte가 나온다. 마치 3형제 바위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간격이 몇 백미터가 넘는다. 멀리 있기 때문에 가까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쭈욱 들어가니 처음으로 메마르고 거친 사막 가운데 건물다운 건물을 보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여행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곳에는 정보센터와 Visitor Center가 있고 그 2층에 기념품가게(trading post)가 있다. 또 바로 곁에 언덕 쪽 위로 그럴싸한 수준급의 The View Hotel이 있다. 만약 다음에 이곳을 찾는다면 바로 이 호텔에 묵을 생각이다. 시간절약과 함께 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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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ument Valley - 나바호족의 성지 중 성지
Visitor Center 전망대에서
정보센터에서 이 지역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읽은 후 빠른 걸음으로 Merrick Butte를 비롯한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포토 존이랄 수 있는 전망대?로 나왔다. 사진찍기에 가장 좋은 위치다. 과연 숨이 멈춰선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금 과장한다면 억겁의 신비와 태초의 땅을 동시에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높은 위치라서 이곳 모뉴먼트 밸리 전체가 파노라마로 한 눈에 들어온다. 아득한 태초의 대지라 생각할 수도 있고 거친 들판에 시간이 멈춰선 진공의 공간이랄 수도 있으며 태양과 구름, 바람 및 대지의 신들이 인간의 영혼과 함께 즐기는 신들의 광장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서둘러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자동차 투어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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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ajo Tribal Park에서 발간한 Monument Valley 안내 브로셔에서 이곳을 한마디로 ‘Where the Earth meets the Sky’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지와 하늘이 서로 만나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세속의 찌든 먼지를 씻어내야 했다. 시각적으로는 유타주와 아리조나주 양쪽의 풍경이 함께 들어오지만 보다 오묘하고 감동적인 풍광은 아리조나주 쪽이었다. 투어 시작할 때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곳의 자동차 투어시 몇 가지 유의사항을 알고 있어야 했다. 차량이라고 모든 차량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터사이클과 RVs는 안된다고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별도 허가를 받았는지 가끔 그런 차량이 눈에 띄었다. 규정 따로 실무적 관행이 있는지 모르겠다. 전체 거리가 17마일 27km의 비포장도로로 전체를 다 돌려면 최소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 반이 소요된다고 했다. 표지 지시에 따를 것, 반드시 정해진 루트를 따를 것, 술 반입 불허, 바위 오르지 말 것이며 동식물이나 바윗돌들을 괴롭히지 말 것, 지역주민 사진 찍을 때는 허가를 받고 답례(gratuity) 할 것, 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해 줄 것 등 상식선이나 사진 찍는 것은 주의를 요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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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장은 이 코스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듯 여유가 있고 관광 안내원 못지않게 보이는 대상물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았다. 와보지도 않고서 대상물의 특성과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공부를 하고 왔다는 것이다. 대장은 잠도 안자고 언제 공부를 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름난 관광 포인트가 아니어도 뭔가 좋다고 느끼는 곳 어디에서라도 차를 세워줄테니 말씀만 하시라고 큰 인심을 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자기가 스스로 차를 세우고 먼저 뛰어가 사진을 찍는다. 미세스 유와 김영감을 챙기느라 바쁘게 뛰는 유박의 모습이 괜찮다. 보기 좋았다. 출발 지점은 영화 역마차(1939년작)와 수색자(1956년작)에 나오는 mesa trio 앞이다.
West Mitten Butte
왼쪽으로부터 West Mitten Butte, East Mitten Butte, 그리고 Merrick Butte
유박은 미리 공부를 하고 와서 그런지 아는 게 참 많다. 여기 와 번역 없이 Butte나 Mesa 또 Spire라는 단어를 접하면 그저 아는 척 듣기만 했는데 그 구분을 잘 해보라는 의도로 우리에게 개념의 차이를 일러준다. Mesa는 위로 솟아난 봉우리 맨 위가 뾰쭉하지 않고 평평한 모습의 臺地 또는 바위나 산을 의미하고 Butte는 평지에 올라선 외딴 언덕이나 산 또는 우뚝 솟은 봉우리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지질 변화과정으로 보면 Mesa가 초기라면 그것이 침식작용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좀 더 뾰쭉하게 되는 단계가 Butte이고 그 다음 단계가 Spire라는 것이다. Spire는 약한 부분이 오랫동안 씻겨 나가고 단단한 석질만 더욱 삐쭉삐쭉 솟아있는 형태가 된다. 비전문가인 우리로서는 Mesa와 Butte의 구별이 쉽지 않다. 이곳 설명자료에 의하면 Spire는 Butte의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바위가 강한 부분만 살아남아 좁아진 것. 이곳에 살아있는 그 실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조금 뒤에 볼 Three Sister와 Totem Pole이라는 것이다. 지질학 공부 좀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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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은 우리가 움직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느낌의 폭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곳을 보려면 말보다는 평정한 마음으로 대자연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이 필요하다. 보고 가는 순서대로 말하자면 먼저 유명한 Mesa Trio, 즉 Merrick Butte와 East and West Mitten Butte는 그야말로 서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는 풍경이다. 특히 東과 西의 두 뷰트는 두 손을 들어 기도 하거나 영적인 감흥을 끌어내기 위한 동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형태가 벙어리 장갑과 같은 모습의 거대한 조각품으로도 보인다.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모두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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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Elephant Butte는 코끼리라 이름 지어서 그렇게 보이지 꼭 코끼리라고 할 수 없다. Three Sisters 바위도 세 자매의 다정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카톨릭 신자라면 한 수녀님이 두 제자(pupils)를 마주보고 있는 형상으로 또는 세 수녀의 고고한 삶을 상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어지는 John Ford’s Point는 그야말로 인기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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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 Sisters
The Three Sisters를 배경으로 유박 내외분
이곳은 우선 1939년 서부영화의 고전이랄 수 있는 역마차(Stagecoach)와 My Darling Clementine(1948) 및 수색자(The Searchers, 1956)에서 배경이 된 풍경으로 이름 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뒤에 Mesa Trio와 멀리 보이는 황량한 사막 풍경을 보면서 이곳에 와 느낀 감흥을 못이겨 사진으로나마 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말을 타고 주연배우가 되는 연기를 하기도 한다. 낭떠러지 끝에 말을 세우고 서부를 주름잡는 개척자의 모습. 사실 시간이 있다면 정말 해 보고 싶었다. 값도 싸다. 그냥 말에 타고 찍으면 1달러, 존포드 포인트에서 말타고 찍으면 5달러다. 당연히 돈값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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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장면이 생각나십니가? 희미한 기억이 ... 여기가 바로 존 포드 포인트
한국의 신인 여배우 촬영차? 왔다고 합니다. 그 이름 한국계 Mrs. Yoo
존포드 감독이 이곳을 알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이곳의 경치가 영화 때문에 득을 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곳은 누가 어디에서 보아도 그만큼 마음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포인트다. spectacular한 장관을 즐길 수 있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더욱이 여기에는 인디언 시장이 열려 구경거리가 있고 Native Arts & Craft를 전시한 부스도 있다. 존 웨인 포인트가 다른 곳에 있는지 존 웨인 트레일 안내판 글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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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몰아 Camel Butte와 The Hub를 보면 이름 그대로의 형상임을 알 수 있지만 달리봐도 결코 틀리지 않는다. Hub는 마차바퀴의 중심축의 모양인데 나바호 원주민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가옥 Hogan의 거대한 난로(fire place)로 보았다고 한다. Sand Spring은 넓은 모래언덕을 바라보고 다시 Spire의 전형이라는 Totem Pole에서 이곳의 정신적 신인 The Yei Bi Chei이라는 신을 바라볼 수 있다. Artist Point는 이름 그대로 예술가적 감흥이 솟아나는 곳. 넓은 시야에 광대한 파노라마가 장관이다. 더욱이 역광으로 비춰지는 풍경은 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North Window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다. 좌우로 Cly Butte와 Elephant가 전체 그림의 구도를 잘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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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험한 골짜기까지 아무 불평없이 봉사한 우리의 천리마 벤츠 350E
보이는 butte나 spire 하나하나가 다 독특하지만 다른 것과 함께 하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고 자리를 바꾸거나 생각을 바꿔 바라보면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준다.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전체가 되는 자연의 예술작품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본 엄지손가락 Thumb가 장갑의 엄지가 아니라 이곳 풍경이 최고 또는 제일이라는 상징으로 세워놓은 것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지만 또한 그렇게도 해석 가능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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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시인이자 작가인 Kazantzakis가 만약 인류가 신과 대화할 대표선수 한 사람을 파견한다면 쉑스피어를 파견해야 한다고 했는데 난 쉑스피어를 어렵게 신에게까지 보낼 것이 아니라 손쉽게 이곳으로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많은 신들이 이곳에 있으니 말이다. 일찍이 스피노자는 자연과 신을 동일한 존재로 보았는데 궤테는 그 철학자가 자신에게 ‘자연 속에 살아 있는 신과 신 안에 존재하는 자연을 보는 방법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고 한 말을 확장하면 내 생각도 결코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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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40여분의 자동차 투어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낌이 생각난다. 먼저 이곳은 포장된 도로가 아니고 곱고 부드러운 오랜지색 흙먼지가 계속 날린다. 자동차는 물론 사람들도 그 흙먼지와 함께 호흡하게 된다. 더욱이 길이 평평하지 않아 조금만 방심하면 굴곡진 곳이나 움푹 파인 곳에서는 자동차 밑바닥이 크게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 차도 몇 차례 비명을 질러 대 유대장이 밑바닥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와 같이 투어를 하지만 원주민이 운영하는 지프투어를 하는 외국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느꼈다. 좋은 차 가지고 이런 야생지대를 오느냐? 차는 좋지만 너희들 좀 그런 것 아니야? 라는 비판적 시각인 것이다. 그들의 눈총이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승용차 투어는 이곳 지형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만약 비록 비용은 크지만 원주민 지프를 이용해 투어를 한다면 보다 제한된 대상물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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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에 익숙해 그런지 ‘왜 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데 도로를 손질하지 않고 이렇게 버려두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대한 정답을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원주민들의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해 가능한 도로사정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물론 예산도 적으니) 원주민이 운영하는 자동차투어를 이용하게 하기 위한 것과 다른 이유 하나는 자연보호라는 명분으로 개발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자연보호정책이라는 신념일 것이라는 주장. 어느 것이 맞는 지는 확언할 수 없었지만 승용차 투어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고급 승용차는 이런 야생의 대지를 다니기에는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개를 만났다. 야생인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의 자유로운 삶을 이 견공도 습득한 것 아닐까? 포장하지 않고 지금처럼 불편한 길이 오히려 이곳을 찾는 여행객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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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반 출발을 서둘렀다, 여기는 아리조나주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이번 여행의 가장 남쪽이고 오늘의 숙소는 유타주의 Bluff다, 거리는 168마일, 271km이니 3시간 정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렸는지 8시 35분 도착이다. 거의 1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유박사의 운전솜씨가 어떻다는 것 말 안해도 잘 알겠지만 차안에 있는 사람들도 깜깜한 어두움 속인지라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저녁 9시가 지나면 가게가 모두 문을 닫고 오늘 저녁도 못 먹을 줄 모른다. 숙소 Kokopelli Inn에 책크인을 하자마자 바로 멀지 않은 Twin Rock라는 인디언 원주민 식당을 찾아갔다. 9시 몇 분전이니 가슴을 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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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관광 포인트나 다름 없는 풍경이다. 어둠이 짙어가는 시간에 역광으로 두 개의 높이 솟은 큰 바위가 신비하게 보였다. 찾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좋은 식당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에도 손님들이 꽉 찼다. 메뉴판을 보고 전통음식을 먹어본다고 Navajo Twin Burger를 주문했더니 그 양이 크게 넘쳤다. 이곳 사람들의 식샤량이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절반만 먹었다. 사실 맛도 별로였고 --- 하지만 이곳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 식당이며 기념품도 함께 팔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정갈하고 안온한 카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어둠이 짙게 내린 Twin Rock 식당 - 두 형제 바위가 독특하다.
서빙하는 나바호족 아가씨?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9시 50분. 시원한 맥주가 그렇게 맛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맥주 한 잔으로 해소된다는 것이 경이롭다. 애주가 김영감께서 식사후 맥주 한 두 잔은 필수코스다. 술이 있으면 이야기보따리가 풀린다. 유대장 체력만 좋은 줄 알았는데 우리 김영감 체력이 그에 못지 않다. ----- 아! 나의 머릿속에는 모뉴먼트 벨리 그 신비한 풍경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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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해야 할 하루!!
너희는 자유인, 나는 자유견!
존 포드 포인트 말타기 광고문
첫댓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사진들 모두 잘보고 갑니다.
방장님, 사진이 이렇게 되어 죄송합니다. 잘 배워 가야 했는데 ---
거친 글 읽어주셔 고마워요.
@전춘옥 담아오신 사진들 잘 정리하셔서 여행 시진첩 만들어 두시면 귀한 보물 되시겠습니다.
나도 모뉴멘트를 돌아 다닐때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트럭 투어를 먼저 하고 그리고 나서 트렉킹을 할까 생각을 많이 하다가 현장에서 결정하겠다고 생각했지. 트럭 투어가 40분이라니 그걸 끝내고 2-3시간 다시 걸으면 되겠지 했는데 우리가 시간이 많지 않았고 워낙 무더운 날씨라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지. 그래서 차에 무리가 있더라도 직접 차를 몰고 간거야. 얼마후 차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조금 후회했지만 지나고 보니 차를 직접 몰았던 것이 좋았어. 마음대로 어느 곳에나 내려서 구경할 수 있었고...그 곳에 가고 싶은 사람은 밑 바닥이 높은 SUV 를 몰고 가면 최고일 것같아. 갔다가 와서 차를 점검할 각오를 해야 하고
에피소드 하나-나바호족의 경게선에 들어 설때 information center 에 들른 적있었지. 나바호 브리지 있었던 곳. 그 안에서 sales woman 을 찍었더니 자기 허락을 안 받고 찎었다는 거야. 그 녀 앞에서 사진을 지우고 그녀에게 다시 확인 시킨 기억이 나. 김영감과 전 교수의 춘추 전국시대의 대화는 나에게 어려운 거였고...초선이란 이름이 어떻게 갑자기 떠 올랐는지 모르겠고...고등학교때 다른 책은 안 읽고 삼국지 연의만 10번 이상을 읽었으니...
유박 차는 고생했지만 우린 마음대로 쉬고 보고 오히려 좋았지. 하지만 자동차 상처가 클까봐 걱정이었지.
좀 덥기는 하지만 우리 다리로 걸어 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유일용 그래 맞아. 원주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봐. 어디서 보았는데 나바호족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달아난다고 생각한다고 해. 우리가 호간이라는 전통 가옥을 보지는 못했는데 그 집에서 사람이 죽어가면 그 집에 안산다고도 해.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 그래도 그 사람들 너무 순박해 --
@전춘옥 소가 가끔씩 어슬렁 거리며 길 가에서나 사막에서 발견되기도 했지만 집 소냐 야생 쇼냐 논쟁만 하다가 끝내 누구한체 물어 보지 못한 것도 기억에 남아. 보기에는 집 소겉은데... 그리고 인디언들 정말 순진했지...만져 보기만 하고 사지 않아도 순진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 사진이 정말 더위 먹었는가 봐. 내가 한국갈때 내 셀폰에서 많이 옮겨 줘야 겠구먼.
우리가 고등학교때 몰래 본 서부활극의 무대가 많이 나오니 반갑고...
원주민 가게가 이번에 우리가 다녀온 실크로드의 고비사막 풍경과 비슷하네...ㅎㅎㅎ
잘 다녀 오셨어! 반갑워요. 실크로드 팀 재미있었겠네. 재미있는 이야기 기대하오.
13회 차네! 김종필=笑而不答. 전교수님 말씀따라 영화의 배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행 내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드리고 ---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