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에 크나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국산 SUV는 성에 차지 않고, 프리미엄 SUV는 부담스러운 여러분을 위해 <모터 트렌드>가 직접 타본 일곱 대의 수입 소형 SUV를 소개합니다.
혼다 HR-V
한줄평
“이 차를 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 이만큼 실용적이면서 생동감 넘치는 소형 SUV도 없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에 나오는 타임머신의 이름은 ‘타디스’다. 영국의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타디스에는 한 가지 특이한 면이 있다. 겉모습보다 실내가 더 넓다는 거다. 혼다 HR-V는 바로 그 타디스를 닮았다. 넉넉한 공간은 HR-V의 첫 번째 장점이다. 타디스, 아니 HR-V는 겉으로는 영락없는 B 세그먼트 SUV다. 그런데 테일게이트 안의 적재 공간과 그 너머로 보이는 실내 공간이 터무니없이 넓다. 살짝 쿠페 같아 보이는 뒷모습에서 결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적재 공간이 훌륭하다. 넓기도 넓지만 바닥이 낮고 천장이 높아서 활용도가 매우 크다. 6:4로 나눠 접히는 뒤 시트를 모조리 접으면 자전거 두 대도 실을 수 있다.
SUV나 왜건, 해치백의 공통적인 골칫거리는 적재함 커버다. 커버가 없으면 트렁크 안의 물건이 밖에서 다 보여 지저분하거나 보안에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 커버가 거추장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해치백에 있는 단단한 하드보드로 만든 커버나 SUV의 롤러식 커버의 경우는 뒷자리를 접고 짐을 가득 실으려면 커버를 들어내야 하는데 무겁거나 부피가 커 그 자체로도 공간을 잡아먹기 일쑤다. 하지만 HR-V의 적재함 커버는 유리창에 붙이는 햇빛 가리개처럼 아주 얇고 질긴 망사를 둘레의 와이어로 팽팽하게 당긴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사용할 땐 트렁크 안쪽 양옆에 있는 홈에 맞춰 밀어 넣으면 되고, 필요 없을 땐 햇빛 가리개를 접듯이 두어 번 비틀어주면 큰 접시만 한 크기로 납작해진다. 적재함 매트 아래로 넣어버리면 끝이다.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실제로 이 장르의 차를 타본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HR-V의 하이라이트는 뒷자리다(아래 영상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동급은 물론 중형 SUV에도 견줄 수 있는 넉넉한 무릎 공간이 여유롭다. 매직 시트는 정말 마법 같다. 왜 우리는 뒷자리를 접을 때 등받이를 앞으로 접어 트렁크를 넓히는 것만 생각했을까? HR-V는 마치 극장 의자처럼 등받이는 그대로 둔 채 시트 쿠션만 위로 접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키가 큰 물건을 실을 수 있다. 화분을 옮겨야 할 때 트렁크에 눕혀 실을 순 없지 않은가? 이건 동급 최고가 아니라 우주 최고다. 화분을 시트 쿠션과 등받이에 밀착시킨 다음 안전벨트로 고정하면 흔들릴 염려도 없다. 이젠 어머니가 항아리를 가져가라고 하셔도 걱정 없겠다. 칸막이를 움직여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컵홀더도 돋보인다.
출처: 혼다 홈페이지
HR-V는 차 자체로도 괜찮은 녀석이다. 1.8리터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과 CVT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타보면 이 급에는 굳이 디젤 엔진보다 반응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이 제격임을 느낄 수 있다. 승차감도 탄력이 살아 있어 생동감이 좋다. 야무지지만 거칠지 않다. HR-V는 두루두루 생동감이 넘치는 즐거운 차다. 복합 공인연비도 리터당 13.1킬로미터로 휘발유 SUV를 통틀어 가장 좋다. 디젤 모델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속도가 올라가면 조금씩 허둥대는 서스펜션과 갑자기 커지는 실내 소음 등을 보면 HR-V가 도심을 신나게 달리는 용도에 최적화된 시티 커뮤터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다. 크기에 비해 값이 비싼 게 큰 걸림돌이기는 하지만 HR-V는 재치와 아이디어는 물론 기본기까지 잘 갖춘 좋은 차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가족이 자전거 타기나 분재 가꾸기 같은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거나, 이케아 같은 창고형 가구 매장에서 자주 가구나 소품을 사집을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HR-V 역시 부지런한 성격으로 훌륭한 가족의 일원이 돼줄 것이다. 틀림없이.
매일같이 양재동 꽃시장에 들러 화분을 사야 하는 플로리스트나 가구 조립이 취미인 부지런 쟁이. 작고 실용적인 수입 SUV를 찾는 야무진 성격의 소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