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님이 유가사지론을 번역하고 당태종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때 당태종이 내린 서문이 성교서이다.
왕희지의 후손이며 승려인 회인은 태종황제의 허락을 받아 왕희지의 서첩을 두루 열람하였다.
그리고 25년간에 걸쳐 성교서의 내용을 집자하여 비문에 새겼다.
서예가들의 희세진보 왕희지 성교서는 이런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다음은 당태종이현장법사의 요청에 의하여 유가사지론의 서문으로 내린 대당성교서의 내용이다.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 ---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가 글을 짓고, 홍복사(弘福寺)
사문(沙門) 회인(懷仁)이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다.
듣자하니 천지에는 형상이 있어, 하늘은 덮고 땅은 싣는 모습을
드러내어 중생을 포용하고, 사계절은 형상이 없으나 춥고 더움에
잠겨서 만물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살펴보면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그 끝을 알지만 음양을 통합함에는 현철도
그 이치를 규명하는 자가 드물다. 그러나 천지는 음양을 포함하고
있으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그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이 천지간에 있지만 어려운 것은 그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을 알면 증거로 드러내니 비록 어리석더라도 미혹되지 않고,
형상이 없어 보이지 않으면 지혜로운 사람도 오히려 미혹되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허무를 숭상하고 유심(幽沈)하고 적멸(寂滅)함을
취지로하여,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시방세계를 다스린다.
위령(威靈)을 올리면 위가 없고, 신력(神力)이 내려가면 아래가 없으니
이를 크게하면 우주에 두루미치고 이를 작게하면 극미한 곳에도 들어간다.
멸도 없고 생도 없어, 천겁을 지내도 헌것이 되지 않는다.
숨은 것 같고 나타난 것 같아 백복(白福)을 운용하여 새로움을 길게 한다.
미묘한 도리는 심히 오묘하여 이를 따르면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법의 운용은 맑고 고요하여 이를 헤아려 봐도 그 근원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범인들은 작고 비루하니 그 뜻을 말해 준다고 한들
의혹하는자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즉 불교의 흥성은 서역에서 기초하였고, 한(漢)의 궁전에 올라와 명제에게
현몽하였으며 그 광명이 동토(凍土)를 비추는 자비를 베풀었다.
예전에 석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말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교화는 이루어 졌고,
석가가 재세(在世)한 시대에는 중생이 부처의 덕을 존중했고 그 가르침을 따랐다.
석가여래가 그림자를 감추고 진여(眞如)로 돌아가니 모습도 바뀌고 세대가 멀어지게
되었다. 부처의 몸은 금빛모습으로 색을 덮었으므로 삼천광명을 비추어 볼 수가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져, 부질없이 삼십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미묘한 말씀이 널리 교화를 하여 삼도(三道)에서 중생을 구원했고,
유훈(遺訓)은 멀리까지 전해져서 십지(十地)에서 중생들을 인도하였다.
그런 즉 불교의 흥성은 서역에서 기초하였고, 한(漢)의 궁전에
올라와 명제에게 현몽하였으며, 그 광명이 동토(凍土)를 비추는
자비를 베풀었다. 예전에 석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말이 전해
지지 않았으나 교화는 이루어졌고,석가가 재세(在世)한 시대에
는 중생이 부처의 덕을 존중했고 그 가르침을 따랐다. 석가여래
가 그림자를 감추고진여(眞如)로 돌아가니 모습도 바뀌고 세대
가 멀어지게 되었다. 부처의 모습은 금빛 모습으로 색을 덮었으
므로 삼천광명을 비추어 볼 수가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은 그림
으로 그려져 부질없이 삼십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미묘
한 말씀이 널리 교화하여 삼도(三道)에서 중생을 구원했고, 유훈
(遺訓)은 멀리까지 전해져서 십지(十地)에서 중생들을 인도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교리는 알기가 어렵고, 그 뜻이 귀착하는 곳을
일치시킬 수가 없으니 곡학(曲學)하는 이들이 쉽게 따랐고,
정사(正邪)가 여기에서 어지러워졌다. 그러므로 공론(空論)과
유론(有論)이 혹세 속의 논리로 시비를 따지게 되니,
대승과 소승이 잠시 시대를 따라 흥성하고 쇠퇴를 하였다.
현장법사는 법문의 영수이다. 어려서부터 바르고 영민하여
일찍이 삼공(三空)의 도리를 깨달았고, 길이 신정(神情)과
기약하였으며, 먼저 사인(四忍)의 행을 굳게 수행했다.
솔바람과 물에 비친 달도 그 맑고 빛남을 비교할 수 없었으니,
선로(仙露)와 명주(明珠)도 어찌 그 명랑하고 수윤함을
바로 할 수 있겠는가?
무릇 정법(正法)을 선양(宣揚)하였으니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경문을 확대할 수 없고, 미묘한 말씀을 천명(闡明)하였으니
현인이 아니면 그 취지(趣旨)를 정의(定義)할 수 없다.
진여성교(眞如聖敎)라는 것은, 모든 법의 종지(宗旨)요,여러 경전의
근간(根幹)이 된다. 크고 고원(高遠)한 도리를 총괄하였으니,
그 오묘한 뜻이 깊고 멀어, 공종(空宗)과 유종(有宗)의 미묘함을 다했고,
생멸(生滅)의 중요한 이치를 체득하였다. 말이 무성하고 도가 넓어니
이를 찿는 사람은 그 근원을 규명하지 못하고, 문장은 더러났지만 의미가
유현(幽玄)하여,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그 끝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의 자비를 입으면, 업(業)이 선하여져 복덕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 부처의 교화가 펼쳐지면, 인연이 약하더라도
악업을 반드시 끊고, 법망(法網)의 줄을 끊어 버리게 되며,
육도(六度)의 정교(正敎)를 넓혀서, 중생을 도탄의 고통에서 구하고,
삼장(三藏)의 비밀한 문을 열게 됨을 알 것이다.
사진은 당태종 어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