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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16
삶의 우선순위 / 한서노회
- 먼저와 그 후에 -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 절망의 현실 가운데서도 낙심치 말고 소망의 미래를 가지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죽음에 이르는 경제 재앙
열왕기상 17장 12절에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막다른 생존 골목에 가버린 한 여인의 하소연입니다. 인간 생존의 마지막을 알리는 고별의 소리 같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살던 그 시대가 만난 경제적 위기의 위험수위가 어느 정도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는 저 구약의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통치 어간입니다. 그가 통치하던 전 이스라엘은 무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큰 한재의 재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약 5:17). 그 결과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왕상 18:2).
그래서 온 지면은 갈라지고 수원(水原)은 말라 버렸습니다. 사람과 짐승들은 식물을 얻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경제공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선지자 디셉 사람 엘리야의 예언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 예언은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한 사실입니다(왕상 17:1).
요한계시록 11장 6절에는 이 사실을 더 설명하기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이 엘리야와 아합 시대에 만난 경제적 재앙을 언급하기를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눅 4:25).
그러한 경제 재앙의 원인은 아합과 이세벨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18절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들을 좇았음이라」고, 엘리야는 아합 앞에서 그와 그 백성이 만난 온 땅의 큰 흉년, 사마리아에 임한 큰 기근의 원인을 규명하여 주었습니다. 통치자의 불신앙과 우상숭배와 선지자 박해의 죗값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만난 경제적 재앙의 위기는 아합이 하나님의 명령을 버려 우상숭배한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엘리야는 다시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9:10).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너희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레 26:19, 20)고 하신 하나님의 진노에 해당된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13-17절 중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주시는 땅에 들어가 살면서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청종할 때는 그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 내려 줄 것이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넉넉히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축을 위하여 들판에는 푸른 풀이 자랄 것이고, 사람들은 배부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마음에 미혹을 받아 다른 신들을 섬기며 거기에 절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며 온 땅으로 소산을 잃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아합과 이세벨과 그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
고 있는 경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명기 28장 23절에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라고 규정함으로, 그 시대가 만난 총체적 경제난국의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여기에 백성들의 불신앙이 합세하기도 하였습니다(왕상 18:21). 그 결과 하늘이 놋이 되고, 땅이 철이 되고, 티끌과 모래들로 온 백성이 죽음에 이르는 경제적 위기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사르밧의 한 과부도 죽음에 이르는 막다른 골목까지 오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왕상 17:12). 그는 엘리야 앞에서 조금 후에는 자신과 그 아들이 죽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Ⅱ. 살 수 있는 축복의 법칙은 ‘먼저’와 ‘그 후에’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3, 14절에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에 이른 경제적 위기 중에 당신의 종 엘리야와 진리의 선지자들의 생존을 주장했습니다. 7,000명의 선지자들을 분산시켜 은밀한 섭리 중에 살게 하였습니다. 예컨대 100명의 선지자를 50명씩 둘로 나누어 굴속에서 궁내대신 오바댜의 도움을 받게 하는 방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왕상 18:1-4). 또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 중에 또 다른 방법으로 저들의 생명을 보호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경우는 특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명하여 그릿시냇가로 보내고, 또 까마귀를 명하여 엘리야에게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늘게 흐르고 있는 그 시내의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왕상 17:3-6).
그러나 얼마 후에 다시 시내는 말랐고, 까마귀의 공급도 중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고, 그곳에 사는 한 과부에게 명하여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하였습니다(왕상 17:9). 하나님께서 전권(全權)으로 사용하시는 비상 수단의 역사(役事)입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엘리야는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엘리야가 성문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지시하신 그녀가 떡을 굽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접근하면서 그릇의 물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왕상 17:10). 그녀가 물을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는 다시 그녀를 불러 네 손으로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청에 청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왕상 17:11).
그때 그녀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7:12).
갈 데까지 가버린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 모자에게 확실한 미래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배가 고파서 죽을 것이라는 절망뿐이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캄캄한 미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로 불안과 절망과 공포의 미래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암담한 미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①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② 당신의 말대로 나무를 주워 떡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③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로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④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7:13).
⑤ 그리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하는 생존의 미래를 약속하였습니다. 가루도, 기름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7:14).
우리는 지금 영감의 사람 엘리야의 입에서 나온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의 말에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대한 비결이 무엇인가? 바로 「먼저」와 「그 후에」라는 생존의 법칙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존의 우선순위를 알려준 것입니다. ‘먼저는 엘리야를 위하고’, ‘그 후에는 너와 네 아들’이라고 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생존의 법칙이요, 축복의 법칙이요, 순리의 법칙입니다. 이것은 그 모자에게 들려 온 생존의 소식, 아니 구원의 소식, 다시 말하면 복음이었습니다.
먼저 할 것과, 다음에 할 것을 바르게 추구함이 사는 법칙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는 사르밧의 딸에게 주신 생존의 법칙입니다.
「먼저」와 「그 후에」라는 영감의 표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싣고 오는가?
1. 먼저 하나님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그 확실한 이유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먼저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있기 전에 영존하신 분입니다(출 3:12-14). 아니 하나님은 사람을 있게 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이 사람의 생사화복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분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의 주이십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강(江)도, 동물도, 식물도, 온갖 생명의 자원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하나님)께로서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사람된 생명이 빵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2. 먼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지금 그녀에게 주신 엘리야의 명령은 결코 엘리야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7: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을 받고 그릿 시냇가로 갔습니다(왕상 17:5).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하여 까마귀를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입니다. 그는 다시 사르밧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을 받고(왕상 17:8), 그녀에게 온 것입니다. 이미 그녀도 하나님의 섭리적 명령을 받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7:9).
열왕기상 17장 14절에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다는 것은, 바로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떡(물질)도 있고, 생명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 세계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가라사대’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창 1: ). 먼저 ‘가라사대(말씀)’가 있었고, 그 후에 ‘모든 만물(물질)’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3. 먼저 믿음과 순종을 행동화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곧 그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5, 16절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4. 목적과 수단의 법칙을 알려주는 뜻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존재하는 수단적 피조물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적 피조물임을 알려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최우선 추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목적 성취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먼저’는 목적으로서의 하나님이요, ‘후에는’ 수단으로서의 인생에게 더함들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맞아, 정말 야단들입니다.
12,000$의 소득 시대가 그 반인 6,000$ 시대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고이자(高利子), 저소득 시대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정말 고통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나 버린 가정 파탄과 사회질서들의 혼란은 걷잡을 수가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6,000$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지구에는 우리 경제와 비교가 안되는 우리 경제보다 더한 고통 속에 있는 나라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성경은 「두려워 말라」(왕상 17:13)고 하십니다. ‘먼저 할 것’과 ‘그 후에 할 것’(나중)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 생존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법칙이요, 생존의 법칙이요, 축복의 법칙입니다. 바로, 사는 길입니다.
사르밧의 여자는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b)고 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는 것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먼저 사는 것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그 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뒤죽박죽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포자기하거나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순간입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간이 만난 최악의 지대는 하나님의 최선의 지대입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고,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며,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어지는 새 축복 경험의 시기입니다. 인간이 인간 되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순간입니다. 여기에서 한국과 한국 교회가 만난 I.M.F. 시대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먼저 하나님의 말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과 순종입니다. 그 다음에(그 후에) 나를 배치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 그것을 위하여 그 후에 내가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놀라운 축복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50년에 만난 6. 25 동란의 비극은 전 국토를 초토화 해 버렸습니다. 유물론적 공산주의 침략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이 나라 전국민이 경험했던 아픔들이었습니다. 비극을 맞지 않은 가정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쟁에 남편을 잃고, 자녀를 잃고, 가정을 잃고, 재산을 잃는 비극을 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새로운 축복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회개와 전도와 함께 일어난 교회 개척 운동이었습니다. 6. 25 사변과 함께 이 나라 전지역에 순교자가 생기고, 교회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던 축복의 경험입니다. 피난의 여로마다 교인들의 모임과 기도와 찬송과 예배와 감사의 연보가 넘쳤습니다.
저들은 죽음의 고난 속에서 먼저 할 것과 그 다음에(그 후에) 할 것을 체험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먼저 예배드리고, 먼저 기도하고, 먼저 회개하고, 먼저 전도하고, 먼저 교회일 하고, 먼저 그 일을 위하여 연보하고, 그 후에 인간의 일들이 수단으로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대구나 부산의 모든 시장경제는 피난 왔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주장(?)될 만큼 되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 그것은 먼저 하나님, 그 후에 사람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I.M.F 시대를 축복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결정적 비결입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