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198
■ 1부 황하의 영웅 (198)
제3권 춤추는 천하
제26장 여희, 신생을 죽이다 (6)
우시의 노래를 들은 이극(里克)은 서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답답한 마음이 더하여 뜰로 나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무거운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등불을 끄고 침상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우울하던 마음은 극도의 초조감과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우시(優施)는 한갓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진헌공의 총애뿐 아니라 여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곧 진헌공이나 여희(驪姬)의 말이나 마찬가지.
'뭔가 구체적으로 일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을 우시(優施)는 이극에게 암시하려고 일부러 그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극은 더 이상 침상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복을 불러 명했다.
"지금 당장 우시(優施)의 집에 가서 그를 불러오너라.“
분부를 받은 가복은 우시의 집으로 달려가 이극(里克)의 말을 전했다.
우시(優施)는 침상에 앉아 있다가 소리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이극의 앞에 선 우시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이 야밤에 웬일이십니까?“
"아까 저녁나절에 네가 말한 원목과 고목에 대해 확인할 것이 있어 불렀느니라.“
"말씀하십시오.“
"원목이 해제(奚齊) 공자를 말함이고, 고목이 세자 신생(申生)을 가리킴은 나도 짐작할 일이다.
그런데 '도끼의 날이 찍히는 날'이라는 것이 대관절 무슨 뜻이냐?
혹 내궁에서 곡옥의 세자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냐?
만일 그렇다면 너는 나에게 그 일을 숨기지 말고 고하라."
이에 우시(優施)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대부의 짐작이 맞습니다.
본시 저는 오래 전부터 내궁의 일을 고해 드리려 했으나, 대부께서 신생(申生)의 스승뻘인지라 머뭇거렸던 것뿐입니다.“
"주공께서 결심하셨다는 뜻인가?“
"그러합니다.
주공께서는 신생을 죽이고 해제(奚齊) 공자를 세자로 삼으려는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단순히 폐세자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 죽인단 말이냐?“
"세자뿐 아니라 그 당(黨)까지 제거할 뜻을 품고 계십니다.“
"그 당이라면...........?“
"세자의 스승인 두원관과 그리고.....“
우시(優施)는 그 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극(里克)이 어찌 이를 짐작하지 못하겠는가.
"나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부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라면?“
"대부께서는 신생(申生)의 스승을 역임하셨을 뿐 지금은 아닙니다.
주공의 뜻에 따르신다면 오히려 화가 복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나보고 주공의 편에 서서 세자를 죽이는 일에 앞장서라는 말인가?“
"모든 것은 대부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내 어찌 주공의 편에 서서 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하다.“
"........................!"
"하지만 세자를 도와 주공에 대항하는 것 또한 나로서는 할 도리가 못된다.
너는 나에게 원목으로 옮겨 앉으라고 했지만, 나는 원목으로 건너가지 않겠다.
그렇다고 고목에 남아 도끼질을 받지도 않겠다.“
"중립입니까?“
"굳이 말하라면 그러하겠지.
주공께서도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실 것이다.“
"대부께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으신다면.... 대부에게는 해도 득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시(優施)는 이런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극(里克)이 다시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이미 자정이 훨씬 넘은 뒤였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이극(里克)은 수레를 대령시켜 대부 비정(丕鄭)의 집으로향했다.
비정은 외교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대부로서 어느 무리에게도 선뜻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소위 중립 노선을 걷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이익과 안전에만 급급해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 굳이 당을 나누라면 나는 공실의 당(黨)이오.
언젠가 이극(里克)이 여희로 인해 어지러워지는 공실의 앞날과 비정(丕鄭)의 거취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밝힌 바 있었다.
- 공실이 곧 주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소?“
- 반드시 그렇지는 않소.
주공이 공실을 어지럽힐 때는 나는 주공의 뜻에도 반대할 것이오.
이런 면에서 비정은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날 아침 이극이 비정(丕鄭)의 얼굴을 떠올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비정의 집에 당도하자 이극은 좌우 사람을 물리치게 한 후 황급한 어조로 말문을열었다.
"큰일났소이다.“
"공실에 무슨 변(變)이라도 생겼소?“
"변이라면 변이지요.
지난밤에 우시(遇施)가 우리 집에 와서 이런 말을 남기고 갔소.
주공께서 신생을 죽이고 해제를 세자로 세울 뜻을 굳히셨다고 말이오."
"대부의 속뜻을 염탐하러 온 것이로군.“
"염탐?“
비정(丕鄭)의 말에 이극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이 염탐이었던가.
이극 자신은 회유라고 생각했었다.
"대부는 뭐라 답하셨소?“
"주공의 뜻에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주공에게 대항할 뜻도 없다. 이렇게 대답했지요.“
"어허, 이거 큰일났구려.
그대 같은 사람이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다니?“
"뭐가 잘못되었소?"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시(優施)라는 자는 대부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일부러 찾아와 그런 말을 한 것이오.
이제 세자의 소부를 지냈던 그대가 중립 입장을 표명했으니, 이는 타오르는 불 속에 가랑잎을 집어넣은 격이 되었소.
여희(驪姬)가 손뼉치며 좋아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오.“
"하지만 주공에게 대항할 수도 없는 일 아니오?“
"누가 대항하라고 했소?
반대 의사만 표시해도 주공은 선뜻 세자를 제거할 수 없소.“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겠소?"
"내가 대부를 위해 한 가지 계책을 말씀드리겠소.
대부는 앞으로 여희(驪姬)일당의 음모가 마땅치 않다는 태도를 취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속으로 뜨끔해서 감히 세자 죽이려는 계책을 서둘지 못할 것이외다.
그 기회를 잃지 말고 서둘러 세자를 도우려는 동지들을 모아 당을 이루십시오.
그러면 세자의 지위는 탄탄해질 것이며, 그런 후에 주공께 간언하여 주공의 마음을 바로잡으십시오.
이 길만이 공실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피할 수 있소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계속 중립적인 태도를취하면 세자의 목숨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오."
비정(丕鄭)의 말에 이극을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좀더 일찍 그대를 찾아왔어야 할 것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이극(里克)은 비정의 집을 나왔다.
머릿속이 오락가락했다.
한편으로는 우시의 간교함에 당한 것 같아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시에게 자신의 중립적인 뜻을 밝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
다.
그런 중에 수레바퀴가 길가의 돌멩이에 걸려 수레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 바람에 이극(里克)은 몸의 중심을 잃고 수레에서 그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으나 그 순간 이극은 자신의 마음을 정했다.
그날부터 그는 다리가 다쳐 꼼짝할 수 없다고 칭병한 후 일체 궁중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 열국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기님^^^^^^
댕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