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같은 걸 왜 JP에 말해?” 삼양 전중윤 기합 준 농림부 (64)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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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혁명의 과업은 조국 근대화였고, 근대화의 첫 번째는 경제발전이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제대로 된 자유가 있겠는가. 모두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이미 맹자가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고 말했다. ‘선 산업화 후 민주화’라는 근대화 전략에서 나와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이 통했다. 혁명계획서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해 나갈 기관으로 경제기획위원회(뒤에 경제기획원)를 그려넣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산업 수준은 보잘것없었다. 61년 8월 중앙정보부장이던 나는 실업인들을 만나 애로점을 파악하고 격려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부산에 갔을 때다. 군납 생활용품을 활발히 생산한다고 알려진 한 제조공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공장을 둘러보니 생산품의 질이 형편없었다. 장병들이 여기서 만든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기 일쑤여서 ‘탈모비누’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칫솔은 입안에서 두 번만 왔다갔다 하면 솔이 전부 빠졌고, 치약통은 뚜껑을 돌리면 안 열리고 옆구리가 터져 치약이 삐져나왔다. 공장이라고 있는 것이 대개 그런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