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 바닷물에 손을 담그다./ 2020.7.4(토)
세상사 '하나 얻는 것이 있으면, 하나 잃는 것' 도 있게 마련인가 보다. 정년퇴임 후, 뒤늦게 농사체험을 시작 하면서 일석삼조( 一石三鳥)를 했다. 첫째 건강 관리 둘째, 몸소 가꾼 싱싱한 푸성귀 먹기, 세번째 '주말 텃밭 가꾸기' 라는 소재의 글을 투고(부평구청)하여 수상도 하였다. 그런데 잃은 것도 있으니 말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척추협칙증으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병상생활을 했다. 이뿐이 아니다 맨손으로 흙을 만진 때문인지 손바닥에 백선현상이 생겨 무척 신경이 쓰인다. 항진군제를 구입하여 발라보지만 잘 듣지를 않는다. 그래서 어제는 바다 짠물에 담그면 혹여 치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람도 쐴 겸, 화성시 서쪽 끝에 붙어있는 제부도 바닷가를 찾았다.
집안청소을 끝내고 10시 반경, 몸담고 있는 신동탄 아파트를 출발하였다. 제부도는 하루에 두 번씩 소위 바다길 모세현상이 생기는 이름난 명소이다. 바닷길 출입장에 도착하니 정오 12시이다. 화성시 관광안내 책자에서 본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넓은 지역(市)' 이라는 글이 '정말이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인천 부평에서 강화도 해수욕장 가는 코스보다 더 지루하고 시간도 배 이상 걸리는 것 같다.
교단교사시절 현장연구 논문 작성하느라, 개학이 임박한 늦은 여름에 왔었던 기억이 반추된다. 지금은 40대 성인이 된 두 아이가 "아빠! 추워서 물에 못 들어 가겠어요" 하는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오는듯 하다. 지금 제부도는 상전벽해(桑田碧海) 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펜션과 작은 호텔 그리고 상점으로 해변가가 빼곡히 들어찼다. 앞으로는 '케이블 카' 가 설치될 예정이라고 합석한 동생 남편 친구가 말문을 연다.
영일횟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동생 가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조개탕이 담긴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70년대 후반, 송현동 J 학교 근무시 자주 들렸던 선술집 모습이 생각난다. 차 운전 때문에 반주는 캔콜라지만 해변가에서 모처럼 먹어보는 해물 칼국수가 입에 달라분다. 식사후 자리를 옮겨 모래 해수욕장에서 1시간 가량 바닷물에 손과 발을 담갔다. 오늘 따라 날씨가 좋아서일까! 젊은 가족단위의 바캉스를 즐기는 모습들이 너무나 정겹게 시야에 들어온다. 바다 길이 다시 뚫린 오후 5시가 지나서야 귀가하였다.
***크리스탈 명심일기***
첫댓글 제부도 하니 생각나는 일이 있군
졸업후 첫발령지가 화성군이었다
화성군청에 모두 모였는데 모두들 어디로 발령을 받을지 몹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화성군 장학사라는 사람이 나에게 오더니 제부도로 가지 않겠냐고 묻더라
발령후에 반발을 없애려는 조치라고 사전에 희망자를 찾고 있었다
그당시 제부도는 한달에 한번정도 비정규선이 드나들뿐 육지와 소통을 하지 못하는 오지중 하나였다
지금 내맘음엔 멋진 첫 출발을 해보겠다는 마음이 가득하던때 그런 제부도가 내맘에 들리 없었다
그러고 얼마후에 발령장을 나눠주었다
나는 조암으로 첫발령장을 받아들고 수원역앞에서 조암행 버스를 탔다
지금처럼 승진를 갈구하던 때 같으면 제부도를 희망했을것 같다는 생각은 한참 후에나 했다
인연이란 정말 희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숭의동 교정 2년간은 제대로 된 대화, 아니 만남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喜壽를 맞이하는 늦은 나이에 기홍씨 교사생활 첫 근무지에서 소일하며 지낼줄이야...더군다나 퇴임후(2007.4)에는 LA에서
사모님 폐 끼치면서 미국 서부-동부 여행한 일 잊혀지지 않습니다. 근자 생활의 터전이던 판매사업도 접고 카메라 들고 사진
촬영 많이 다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 역시 1주일에 2~3일은 아들이 사 준 디-카 들고 화성-오산시 누비고 있답니다.
글쓰기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 생각되어 계속 쓰렵니다. 팔불 같은 글 접하고 소회 달아주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