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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개 요****
▩산 행 지 : 백두대간 남진 33구간(복성이재 ~ 여원재)
▩일 시 : 2019. 06. 23(일)
▩산행 코스 : 복성이재(05:49) - 601.4봉(06:09) - 아막성터(06:23) - 복성이뒷재(06:30) - 784.8봉(06:50) - 좌갈림길(07:07) - 721.7봉(07:37) - 새맥이재(07:55) - 692.5봉(08:20) - 헬기장(08:46) - 사치재(08:56) - 554.4봉(09:06) - 625.3봉(09:21) - 유치삼거리(09:56) - 매요휴게실(10:07) - 572.5봉(10:39) - 안부네거리(10:58) - 698.8봉(11:22) - 통안재(11:45) - 포장도 좌갈(12:13) - 고남산(12:28) - 805.6봉(12:36) - 614.3봉(13:00) - 방아치(13:15) - 565.3봉(13:44) - 안부네거리(13:54) - 여원재(14:08)
▩산행 거리 : L= 20.61km (누적 L=703.74km, GPS상 거리)
* 대간 L= 20.16km, 누적 대간 L= 666.62km
* 접속 L= 0.00km, 누적 접속 L= 35.47km
* 차량 L= 0.00km, 누적 차량 L= 4.65km
* 알바 L= 0.45km, 누적 알바 L= 1.65km
▩산행 시간 : 산행 08시간 19분(산행 평균속도 : 2.48km/h)
* 누적 산행 시간 : 312시간 42분 (본인 기준)
▩참 가 비 : 나홀로, 택시비:30,000 (누적금액 : 1,510,000)
▩출 발 지 : 04시 00분 ( 성서 우리집 앞 )
▩산행 종류 : 횡단형 산행
▩산행 날씨 :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의 개요 :
***복성이재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며,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복성이재에서 서북쪽으로 내려가면 번암면 논곡리 복성이 마을이 있고, 복성이재의 지명도 복성이 마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변도탄이라는 사람이 국가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대비 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국가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이에 변도탄이 전란을 대비하여 북두칠성 중에 복성 별빛이 멈춘 곳에 자리를 잡아 움막을 지었다하여 복성이재라고 전해진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쌀가루로 만든 움막은 군량미로 사용되어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조정에서 변도탄의 충성심을 인정하여 큰 상을 내리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복성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막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 경상남도 함양군과 접경을 이루는 아영고원의 서곽능선 봉화산에서 남으로 뻗은 660고지에 북면하고 있다.
운봉고원과 황산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 아막고원은 백제의 아막산, 신라의 모산성 등으로 불린 곳으로, 삼국시대에 신라국경의 요새로서 신라와 백제를 잇는 팔량치(八良峙)를 지켰다.
602년(진평왕 24)에 백제가 아막성을 침공하자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을 보내어 백제군을 물리쳤으나 두 사람은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아막(阿莫, 阿谷)의 뜻은 주성(主城)·주곡(主谷)의 의미로, 이 지역이 섬진강의 계곡분지를 나타내는 지형상의 특색과 중요한 방어진지라는 데에서 나왔다.
성지는 비고(比高) 약 220m, 북변은 성벽이 완전히 남아 있으며 거의 직선으로 길이가 15.07m, 동변도 거의 직선으로 길이가 147.1m, 서변은 길이 126.9m, 남변은 곡선을 이루는데 길이가 208.1m이며, 주위는 632.8m에 이른다.
남변 성벽의 능선 연결 부분에는 공호(空濠 : 물이 마른 못)를 설치하였다. 성내에는 삼국시대의 와편과 백제계의 도자기편 등이 퇴적되어 있는데, 북문지 수구(水口) 동편에는 지름 1.5m의 타원형의 석축 우물터가 있다.
***사치재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광주대구고속국도가 지나간다. 구 88올림픽고속국도는 이 고개를 터널 없이 넘어갔으나 현재는 '백두대간사치재터널' 이 뜷려있다. 백두대간이 통과한다.
'이슬재'라고도 하며 사치(모래재 마을 : 장수군 번암면 소재)는 과거 백제의 영토였으며, 신라 영토인 가산리(남원시 아영면)와는 양국의 국경 분쟁지 였었다.
***매요마을은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4㎞ 지점까지 군도 8호선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으며, 마을 뒤로는 광주 대구 고속도로가 통과한다. 고남산과 황산의 날줄기로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았다 하여 ‘말 마(馬)’자와 ‘허리 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馬腰里)라 칭하게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정유재란이 7년 만에 끝나자 고승 사명당(유정(惟政))이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였다.
사명당은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 하여, 그 후부터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
약 400년 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진주강씨와 양성이씨(陽城李氏)가 왜적의 침범이 잦을 것을 예상하여, 지리산 능선을 따라 서북쪽으로 수정봉과 고남산을 차례로 지나 이곳에 터를 잡고 중시조가 되었다.
본래 운봉군 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임리 일부와 장수군 하번암면 와룡리 일부를 병합하고, 매요리라 통칭하여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운봉읍 매요리가 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매요(매요개)·점촌이 있다.
고남산과 황산의 날줄기로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날줄기가 마을을 포옹하듯 휘감고 있다. 북쪽 뒷산이 구릉을 이루어 방풍(防風) 구실을 하니 풍해와 수해가 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농사에 더없이 좋은 환경으로 알려져 있다.
점촌은 매요 8반으로 질그릇을 굽던 곳으로 한때 15가구가 살았다. 1951년 마을 안에 운성초등학교를 설립하였으나 1994년 2월 28일 개교한 지 43년 만에 31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전해오는 유적으로는 진주하씨 부인 정려가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84세대 170명이 살고 있는데, 남자가 72명, 여자가 98명이다. 주요 시설로는 매요보건진료소, 예수교장로회 매요교회가 있다.
***고남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의 산.
높이는 846.5m이며 가재-수정봉-고남산-여원치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맥상에 놓여 있다. 특히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산동과 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위치상 옛날부터 전쟁의 요충지가 되었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에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여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개하고 산신제를 올리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남산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이 전해지는데 여원치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은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세를 보고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 까지 뻗어 내린 모습이 마치 긴 다리를 이어 놓은 것 같다하여 장교리(長橋里)라 지었다. 또한 고남산 아래에서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일가의 권세가 크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여원재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가다보면 여원치(여원재)를 넘는다. 해발 477m의 여원치는 그 이름의 유래가 깊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갯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를 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갯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렇듯 이 고개 이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남원에서 운봉을 향하다 여원치 정상 바로 못 미쳐 한 굽이 휘돌다 우측의 옛도로 수풀사이에 발을 디디면 남원분지의 너른 들판과 지리산 시루봉을 비롯해 서쪽으로 장쾌하게 펼쳐진 산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 즉 여원낙조는 운봉팔경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등산동호인이나 문화유산 답사 애호가들은 지리산 연봉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곳이 바로 이곳 여원치라고 대답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는 운봉대장군 석물상을 지나치면 들녁 끝에 지리산 산줄기에서 뻗어 나온 부운치와 팔랑치, 바래봉의 장엄한 능선이 펼쳐진다. 바래봉은 봄철 철쭉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산행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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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 궤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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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
*들머리(복성이재) :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산 63-1
*날머리(여원재) : 젼북 남원시 운봉읍 준향리 651-3
*이용택시: 인월택시(010-3680-5123) - 30,000
언제나 그렇듯 차량이 없는 새벽에 시원스레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88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지리산 나들목을 빠져 나오니 어젯밤 늦게까지 내린 비로 인해 지방도로는 운무가 가득하여 분위기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지방도를 따라 잠시 가다보니 여원재라는 나지막한 고개가 나를 기다려 애마를 멈추고 여원재로 내려오는 산객 두명과 대화를 나누며 예약한 택시를 기다린다.
산객 두명이 북진하는 것을 보고 택시를 타고 지난주에 내려왔던 복성이재에 올라가니 어젯밤 소나기가 그리웠던 나뭇잎은 굵은 물방울을 연신 흘러내리고 있더라.
간단히 산행준비를 하고 풀잎 가득한 산길을 따라 들어가니 금새 바지가랭이가 젖어가기 시작하는데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알바를 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3분정도의 알바로 정신을 차리고 물방울 가득한 풀잎들을 치우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름길을 쉬엄쉬엄 올라가니 묘지 뒤에 601.4봉이 숨어있고 임도를 가로질러 가다보니 아막성터가 돌무더기를 한껏 지고 나타난다.
아막성터를 뒤로하고 살짜기 내려서니 복성이뒷재가 얼굴을 보이고 20여분 오름짓을 하다 보니 784.8봉이 싱긋이 웃으며 나타나기에 가래떡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물에 빠진 생쥐모양이 되어 금방 추워진다.
한기가 찾아와 서둘러 대간길을 이어가니 널널한 산길이 열려 발걸음이 가벼워지길래 721.7봉과 새맥이재를 단숨에 지나쳐버린다.
새맥이재를 뒤로하고 완만한 오름길을 올랐다가 다시 살짝 내려서길 두어번하다보니 692.5봉을 지나게 되고 헬기장도 접수하게 되더라.
헬기장을 지나 살짜기 내려서니 사치재가 나타나는데 사치재 아래에는 대구광주를 잇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굉음이 끊임없이 이어져 서둘러 지나간다.
사치재를 지나 고도를 서서히 높이는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름짓을 하다 보니 554.4봉과 625.3봉을 연달아 만나게 되고 산길은 유순하기 그지없이 이어져 유치삼거리로 바로 이어지더라.
유치삼거리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산길을 고집하다보니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포장길과 조우를 하게 되네 ㅠㅠㅠ
포장길을 따라 터벅걸음을 하다 보니 추억에 깃든 운성초교와 매요휴게소를 지나치는데 휴게소에서 막걸리 한잔을 하려고 들여다보니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아 아쉬운 맘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매요마을 안으로 들어가 발길을 옮기니 바로 산길로 이어지는데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들어가니 572.5봉으로 이어지더니 다시 안부로 내려앉았다가 698.8봉으로 고도를 높이네 그려.
698.8봉을 지나니 산길이 살짜기 내려앉아 통안재로 이어지는데 아무생각없이 이정표시목 방향으로 따라 갈 것을 괜시리 능선을 고집한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가시낭자들과 십여분 혈투를 벌이게 된다. ㅠㅠㅠ
십여분의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서둘러 빠져나오니 다시 또 포장길과 조우를 하게 되고!!!
포장길을 따라 빙 둘러 올라가니 뺀질뺀질한 산길이 보이는데 얼마나 부끄럽던지 ㅋㅋㅋ
통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목계단도 빠질수없다고 얼굴을 보이네 그려.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가니 정수리 못미쳐 고남산 표석이 앉아있고 한소끔 치고 올라가니 고남산 정수리가 시원스런 조망을 뽐내며 앉아있다.
추억하나 남기고 연이어 나타나는 목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805.6봉과 614.3봉이 연달아 나타나더니 방아치로 산길이 이어지더라.
방아치를 지나 널널한 산길을 가다보니 널따란 임도와 두어번 만나게 되고 다시 살짜기 올라 565.3봉 정수리로 발걸음을 하게 된다.
565.3봉을 뒤로하고 널널하게 내려앉는 산길을 따라 가다보니 안부네거리에서 능선길과 잠시 이별을 하게 만들어 버리네 ㅠㅠㅠ
그놈의 사유지가 대간길을 막아버리고!!!
포장길을 따라 잠시 돌아가니 다시 대간길과 조우를 하게 되는데 얼마가지 않아 여원재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소리에 귀를 막게 된다.
여원재에서 대간길을 멈추고 서둘러 귀구길에 들어가는데 아들놈은 통 연락이 되질 않고 ㅠㅠㅠ
▼ 지난주에 만났던 복성이재
일주일에 보니 반갑기 그지없는데 !!!
새벽까지 내린 비가 풀잎에 가득앉아있어
조금 거시기 하네 ㅋㅋㅋ
일단 출발!!!
▼ 초입에 들어가자마자 풀잎에 있는 물방울 세례부터 받는데
▼ 3분정도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신경을 쓰다보니
갈림길을 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1시 방향으로 가는 우를 범한다
우측으로 틀어 한참을 가다보니 서서히 산길은 거칠어지더니 숨어버리고 ㅠㅠㅠ
맵을 들여다 보니 아뿔싸!!!
등로를 한참이나 벗어났네 ㅠㅠ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 보니 좌측에 표식이 하나 둘 나풀거리고 있네 ㅋㅋ
▼ 갈림길을 지나 잠시 산길을 가다보니 안부가 하나 나오는데
마을에서 올라오는 농로와 마주하여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고고!!
▼ 서서히 오름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가다보니
▼ 7분만에 601.4봉을 지나게 되는데
풀잎에 빗물이 많아 정수리를 밟지않고 그냥 지나친다
▼ 호젓한 산길을 이어가니
▼ 3분만에 또 다시 농로와 마주하는데 이번에도 고고!!
▼ 산길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수풀을 지나칠 때면
바지가랭이가 물을 흠뻑 빨아들여 신발을 적시고 마네요
▼ 요런길만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은 ㅠㅠㅠ
▼ 10여분 정도 산길을 걷다보니 너덜경이 나오는데
너덜경이 아니고
아막성에 축조되었던 돌들이 허물어져 버린 것이겠지요
▼ 성터 돌을 밟아가며 뒤를 돌아보니
운무에 사로잡힌 산들이 조금은 거시기하네
▼ 4분정도 더 오름짓을 하니
널따란 구릉지가 나오는데
이름하여 아막성터라고!!
▼ 아막성터를 한번 돌아보려는데
그놈의 수증기 개스가 나의 눈을 흐리게 만들어 버리네
▼ 아막성터를 뒤로하고 내림짓을 하는데
▼ 분위기는 묘하게 운무속으로 가버리고!!!
▼ 잠시 수풀속을 벗어나니
멋진 돌탑이 하나 앉아있어 한번 들여다 보고
▼ 내림길을 하니 안부가 하나 나오네
이곳이 복성이 뒷재인가???
아막성터에서 7분 소요되었고!!!
▼ 복성이뒷재를 뒤로하고 완만한 통나무 계단을 따라 오름짓을 하니
▼ 20분후 784.8봉 정수리에 발을 내딛을 수가 있더라
이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가래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바람이 얼마나 불어대던지 젖은 옷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서둘러 내려간다
▼ 누가 아막성산이라 이름을 붙였는가???
여기 또 함부러 이름을 짓는 산객이 하나 있었네 그려
▼ 수풀이 가득한 산길을 가다보니
벌써 바지가랭이는 몸에 찰싹 달라붙어 보기가 흉하고
신발속에서는 철벅거리는 소리가 걸을때마다 장단을 맞춰주는 듯하더라
▼ 7분정도 걸어오니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작은 방굿돌로 이어진 길로 가야 하는데
또 다시 뺀질뺀질한 좌측길로 들어가는 두번째 우를 범하고 만다
다행 금방 알아차리고 바로 되돌아 와 미끄러운 바위를 넘어서 !!!
▼ 솔향내 그득한 솔밭길로 산길을 이어가니
▼ 푹신푹신한 솔갈비 산길이 나의 무릎이 걱정이 되는지
융단길을 깔아놓아 걸어가기가 너무나 좋더라
▼ 융단길이 끝없이 이어지면 좋으련만 ㅠㅠㅠ
우리네 인생길이 그렇 듯
또 다시 걷기싫은 수풀길이 나타나네 그려 ㅠㅠㅠ
▼ 솔밭길과 수풀길이 연달아 나타나며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슬프게 했다
나를 갖고 노네요
▼ 인생길과도 같은 그런 길을 30여분 정도 가다보니
솔향기 그윽한 721.7봉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한번 들여다 보고
▼ 조금 더 걸어오니
멋진 공기돌같은 앙징맞은 방굿돌이 앉아있어 한번 담아준다
▼ 완만한 내림길을 걸어갈 때엔
발걸음 가벼웁게 나폴거리며 신나게 내려가는데 !!!
▼ 그렇게 18분정도 내려오니
새맥이재라는 안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
▼ 새맥이재를 지나니 또 다시 수풀길이 나타나는 모양새가 보이는데
▼ 다행히 걷기좋는 오솔길이 나타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더라
▼ 느긋하게 완만한 오름길을 14분정도 올라오니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12시방향의 곧은 길은 672.8봉으로 가는 길이라 무시하고
좌측으로 틀어 내림길을 따라 내려가니
▼ 다시금 완만한 오름길로 변해 걷기 좋은 산길로 이어지더라
▼ 널널하게 가다보니 다시 또 한소끔 오름짓을 하더니
▼ 11분만에 692.5봉 정수리로 산길이 이어져
가뿐숨을 토하게 만들더라
거칠게!!!
▼ 692.5봉을 지나니 다시 또 산길이 유순해지더니
▼ 또 다시 수풀길이 ㅠㅠㅠ
오솔길과 수풀길이 연달아 나타나더니
▼ 바위 하나 있는 조망터가 나타나 가야할 산길을 보여주더라
▼ 고개를 우측으로 돌려 보니
가야할 고남산이 저멀리 아득히 떨어져
어서오라 손짓을 하는 듯한데
▼ 이름모를 아랫동네는 평온하기 그지없더라
▼ 완만한 내림길을 쉬엄쉬엄 내려오니
26분후 헬기장에 발을 내딛게 되고
▼ 수풀속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니
▼ 10분 후 사치재가 얼굴을 내밀더라
사치재가 이렇게 널따란 개활지였던가???
십여년 전 북진할 시에는 사치재를 수로박스로 기어서 넘어온 것 같은데???
▼ 일단은 사치재임을 알리는 이정표시목 한번 들여다 보고
▼ 건너편 산자락에 달라붙으니
역시나 수풀가득한 산길이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더라
▼ 수풀속을 헤집고 올라서니
아이고 !!!
이 무슨 조화일꼬???
너무나 멋들어진 오솔길이 눈앞에 펼쳐지네 그려
▼ 힐링길을 10여분 걷다보니 554.4봉이 살짜기 지나가는데
▼ 산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니 서서히 내려앉는 것 같더니
▼ 4분후 동네 뒷길로 산길이 이어지더라
▼ 포장된 임도를 따라 가다보니 바로 또 산길로 이어져
▼ 묘지옆으로 잠시 따라 가더니
▼ 고도를 높이려는지 서서히 오름길로 변하더라
▼ 13분정도 걸어오니 너덜지대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 2분 후 625.3봉 정수리에 발을 내딛게 만들더라
▼ 그리고는 계속 힐링길이 눈앞에 나타나더니
▼ 새로 확장된 88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 널널한 산길을 27분정도 걸어오다 이곳 공터에서
주저앉아 신발속에 들어있는 물을 쏟아내고
양말을 벗어 힘껏 짜니 물이 엄청 많이 흘러내리더라
일단 한숨 돌리고 과일로 허기를 채우고
▼ 2분정도 내려오니 유치삼거리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 유치삼거리가 눈앞에 나타나네요
▼ 동학혁명표석 한번 올려다 보고
▼ 유정리임을 알리는 버스승강장도 한번 담아본다
▼ 유치삼거리를 지나 포장길을 잠시 걸어오다가
능선길을 고집하여 우측 묘지뒤로 올라가니
▼ 널따란 산길이 열려 기분좋게 가다보니
▼ 2분도 안되어 다시 포장길에 접하게 되더라
▼ 포장길을 4분정도 걸어오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매요리로 가는 좌측길을 무시하고 우측 오름길을 따라 가니
▼ 볼록거울이 노견에 하나 서있어
모처럼만에 나만의 장난에 들어가본다
▼ 포장길을 따라 4분정도 걸어오니
좌측에 오래된 건물이 하나 서있어 들여다 보니
오래전에 폐교된 운성국민학교 인것 같은데
▼ 매요마을 뒤로 저 멀리 고남산이 보여 한번 훔쳐본다
▼ 조금 더 걸어오니 운성국민학교 정문이 있어 한번 들여보고
▼ 알림판을 들여다 보니
아주 오래전 나의 출생년대에 개교한 학교인 것 같아
정감이 가서 한번 담아보고
▼ 채 1분도 안된 거리에 있는 매요휴게실에 가보니
인기척이 없어 막걸리 한사발 먹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ㅠㅠ
▼ 매요휴게실을 지나 마을쪽으로 내려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대간방향인 우측으로 틀어서 들어간다
▼ 이정표 한번 들여다 보고
▼ 100여미터 들어가니 마을회관이 보이는데
회관 우측으로 계속 이어가니
▼ 마을 안 오거리 갈림길이 나오더라
골목길 바닥에 쓰여져 있는 백두대간이란 글을 따라 들어가니
▼ 1분 후 돌담이 있는 집 아래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좌측으로 틀어서 고고!!
▼ 돌담길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가니
▼ 2분도 안되어 작은 네거리 갈림길이 나오더라
능선방향인 우측으로 틀어서 들어가니
▼ 수풀길이 잠시 나오더니
▼ 이내 호젓한 산길이 열려 기분좋게 걸어간다
▼ 녹음이 잔뜩 우거진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가다보니
▼ 13분 후 무명봉 하나를 만나게 되고
▼ 다시 산길은 유순한 오솔길로 변하기에
발걸음이 가볍더니
▼ 목계단이 하나씩 앉아있는 오름길로 변하더라
▼ 그런길을 12분정도 걸어오니
572.5봉이 반갑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 소나무를 올려다 보니
눈에 익은 표식이 하나둘 보여 한번 담아본다
▼ 그리고 완만한 내림길을 19분정도 내려오니
▼ 안부네거리가 하나 나타나는데
이름은 없는 듯하여 그냥 지나친다
▼ 안부네거리를 지나니 완만한 오름길이 보이더니
▼ 이내 목계단으로 변하는 가파른 오름길로 변하네요
▼ 그런길을 21분간이 오름짓을 하다보니
묘지 한기가 누워있는 갈림길이 하나 나와 좌측으로 턴하여 올라간다
▼ 그리고 3분후에 만나는 698.8봉을 접수하고
▼ 널널한 산길을 따라가니
▼ 23분후에 도달하게 되는데
▼ 통안재에 있는 이정표시목 방향을 보고 그냥 따라 갈 것을
괜히 능선을 고집한답시고 내 방식대로
▼ 능선을 따라 가다 15분 정도 개고생을 하게된다
통안재를 지나 1분도 안되는 거리에 갈림길이 하나 나와
우측길을 버리고 좌측 12시 방향으로 들어가니
잡목과 가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15분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 가시낭자들과 잡목마담들과 싸우느라
팔다리에 생채기를 많이 내고
겨우겨우 피해 나오니
▼ 1분도 안되어 다시 포장길과 조우를 하게 되더라
이런 된장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말없이 포장길을 따라 올라올 걸 ㅠㅠㅠ
▼ 그런 와중에서도 볼록거울이 있어
나만의 장난에 들어가 보는데
얼마나 애를 먹었으면 아직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노???
▼ 생각만해도 진절머리 나는 곳에서 나온 곳을 다시 한번 내려다 보니
소름이 끼치는 데 ㅋㅋㅋ
▼ 울쌍을 짓고 있는 팔다리를 달래며 포장길을 따라 오름짓을 하다보니
▼ 12분후 우측으로 들어가는 등로가 보이네 그려
▼ 무당집 같은 표식이 여럿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가니
(실제 나는 이런 표식 다는 것을 싫어한다)
▼ 3분 후 통나무 계단길로 이어지고
▼ 또 다시 3분후에는 헬기장으로 산길이 이어지더라
▼ 헬기장에서 1분거리에 있는 데크계단길로 들어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통안재에서 능선으로 고집하던 갈림길의 우측길이
이 산길과 연결이 되는강???
확인 하고 가려다 힘이 들어 그냥 패스하기로 하고!!!
▼ 완만한 오름길을 4분정도 올라오니
고남산 표석이 정상아래 앉아 있네요
왜???
▼ 일단 추억하나 남기고
▼ 수풀속으로 오름짓을 하다보니
▼ 사방이 훤히 트이는
▼ 고남산 정수리가 3분거리에 올라앉아 있더라
▼ 고남산 제단지임을 알리는 알림판 한번 들여다 보고
▼ 제단지를 배경으로 추억하나 남기고
▼ 삼각점도 확인을 해본다
▼ 그리고 가야할 대간길을 한번 내려다 보고
▼ 2주후에 걷게 될 지리산 능선도 한번 가늠해본다
▼ 하산모드에 들어가니
제일먼저 데크계단길이 나타나더니
여러번 계단길과 만나게 되더라
▼ 요건 오래전 육군 부대 초소인 듯하고!!!
▼ 두번째로 나타나는 오르내림이 있는 데크계단길을 건너가!!
▼ 또 다른 데크계단길에서 건너편 805.6봉을 바라보고
▼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들도 한번 들여다 본다
▼ 그렇게 유유자적하며 3분정도 내려오니
805.6봉이 반갑다고 인사를 하네요
▼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슬금슬금 내려가니
▼ 6분후 쉼터인 듯한 것이 보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목계단용 침목이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앉아서 쉼을 하고
▼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오니
3분 후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길을 무시하고 우측 능선길을 고집하여 가다보니
▼ 걷기 좋은 힐링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
▼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콧노래 불러가며 가다보니
▼ 12분 후 614.3봉 정수리를 만나게 되는데
정수리에는 이름모를 묘지 한기가 누워서 잠들어 있더라
▼ 완만히 내려앉는 내림길을 따라 쉬엄쉬엄 가다보니
▼ 15분 후 방아치라는 안부에 발을 내딛는데
▼ 방아치를 알리는 알림판을 들여다 보니
이곳 방아치도 동학혁명의 유적지라고 하네요
▼ 방아치를 뒤로하고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가니
▼ 4분후 가파른 목계단길이 나타나
거친 숨을 토하게 만들더니
▼ 2분후에는 무명봉에 발을 내딛게 만들더라
▼ 그리고 널널한 산길로 이어지더니
▼ 2분후 방아산성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무시하고 곧장 좌측길을 고집하여 내림짓을 하다보니
▼ 산길은 널따란 수렛길로 변하더니
▼ 묘지옆으로 산길이 이어지더라
▼ 그렇게 9분정도 내려오니 갈림길이 하나 나와
널널한 수렛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틀어서 들어가니
▼ 3분후 쉼터바위가 하나 있는 네거리 갈림길로 이어지네 그려
▼ 주변에 마을이 있어서 그런지
농로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열려있는데
대간길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쉽게 산길을 이어간다
▼ 완만하던 산길이
▼ 서서히 고개를 높이더니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지네요
▼ 헥헥대며 3분정도 올라오니 565.3봉 정수리가 얼굴을 내미는데
여기에도 정수리에 묘지하나를 얹고 사는구나
▼ 완만한 내림길을 따라 내려가니
▼ 산길은 갈수록 유순해져 발걸음이 가벼워지는데
▼ 7분정도 이어가니 좌측에 갈림길이 하나 나오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우측길을 고집하다보니
▼ 산길은 바라만봐도 힐링이 될듯한 길로 이어지더라
▼ 발걸음 가볍게 3분정도 가다보니
잘록한 안부하나가 나오는데
원래는 12시 방향으로 직진해야 되는 데
왜 좌측으로 틀어서 가라고 하는 걸까???
▼ 일단 통안재에서 개고생한 기억이 떠 올라
군말없이 좌측으로 따라 들어가니 마을 골목으로 길이 이어지네 그려!!
▼ 골목길을 따라 5분정도 걸어오니
다시 좌측 대간길로 가라는 이정표가 서있어
▼ 좌측 밭 가장자리로 따라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 대간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사유지로 변해져서
우회를 했구나!!!
▼ 허걱!!!
또 막바지에 와서 수풀속으로 들어가라니 ㅠㅠㅠ
▼ 다행히 수풀만 들어서니 이내 좋은 산길이 열려
쫄았던 맘을 진정시킨 뒤 조심스레 산길을 이어간다
▼ 그렇게 9분정도 산길을 이어오니 발아래 여원재가 보이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애마도 보이고!!!
▼ 여원재임을 알리는 이정표를 한번 내려다 보고
▼ 다음 구간에 들머리가 될 운성대장군도 한번 담아보고
▼ 동학혁명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석도 한번 내려다 보고
▼ 이순진 장군이 걸었다는 백의종군로 알림판을 담는 것으로
이번 구간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귀구길에 들어간다
▼ 무탈하게 이번구간을 끝마침을 할수있었음에
조물주에게 감사한 맘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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