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 題
生 平 自 謂 我 無 愁 (생평자위아무수) 내 평생에 시름없는 사람이라 하였건만
天 步 艱 難 是 可 憂 (천보간난시가우) 나라가 어려워지니 그것이 걱정이로다
酒 褒 微 醺 罔 晝 夜 (주포미훈망주야) 술에 취한 기운은 밤과 낮 따로 없는데
書 中 大 義 有 春 秋 (서중대의유춘추) 글 속의 역사속에는 대의가 들어있구나
傾 家 不 顧 千 金 富 (경가불고천금부) 집안 기울어도 천금 부자 돌아보지 않고
投 筆 唯 思 萬 戶 侯 (투필유사만호후) 붓을 던지고는 오로지 백성들만 생각해
處 世 難 知 心 內 事 (처세난지심내사) 세상에 살아가며 마음 속 알기 어렵지만
慨 然 此 外 更 何 求 (개연차외갱하구) 분노 외에는 다시 그 무엇을 구하겠는가
<지은 이>
오성술(吳成述, 1884~1910), 본명은 인수, 자는 성술, 호는 죽파(竹坡)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전남 광산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한 선비였다. 부친은 참봉인
영선으로, 지역사회에서 부호(富豪)였다고 한다. 당시 호남지방의 거유(巨儒)였던
오준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의병활동에 나서 1907년 고향 마을에서 2백여명을 모아
거병하였다. 나주 출신 의병장 김태원과 연합하여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다. 1908년에
1월부터 독립의병대를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동년 8월 나주 용문산 전투에서
패하여 사로잡히다. 1910년 대구 감옥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追敍)하였다. 위의 시는 선생께서 의병활동 중에 지닌
감회를 읊은 칠언 율시이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선생의 기개가 넘쳐나는 시이다.
2026년 9월 15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것을 이곳에 옮겨 보았다. 6구의 끝자인 侯가
페이스북에는 候로 올라왔는데, 侯가 맞다고 생각하여 필자가 수정하여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