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24일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천 여 매를 수집·정리 중이고,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 국가기록원 제공 >> 연합뉴스
1951년 6월 26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 포로들에게 천주교를 선교하는 미국인 신부
1951년 9월 28일 전선 현장에서 국군에게 은성 훈장을 수여하는 미 제10군단 바이어스 소장.
1951년 5월 14일 고아원생들을 위해 부산에 정박된 병원선 갑판 위에서 파티를 열어주는 미 해군.
1951년 8월 18일 피난민촌에서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로 밥을 짓고 있는 어린 소녀.
1951년 5월 18일 헌병대 사이에서 이동을 준비하고 있는 피난민 가족
1951년 4월 20일 일부 무너진 수원화성 사이로 지나가는 트럭.
1951년 6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6.25전쟁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
1951년 4월 29일 중공군의 폭격으로 부상당한 어린이
1951년 4월 4일 북한강을 도하하는 미군.
1950년 12월 3일 일부분이 파괴된 대동강 철교.
1951년 4월 23일 38선 인근에서 가족의 부축을 받고 있는 여성.
1951년 4월 18일 대구에서 전방부대에 물품 운반 역할을 하는 지게부대.
1952년 7월 7일 피난민 수용소에 마련된 거주 텐트.
1951년 6월 18일 자동차가 서울로 들어오기 전 통행증을 확인하는 헌병.
1951년 4월 15일 38선 인근 마을에서 쌀을 가득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녀들.
1951년 3월 23일 의정부에서 중공군에 대항해 공격하는 유엔군.
1951년 12월 10일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돼 온 공산당 포로들.
1951년 4월 29일 두 다리를 잃고 서울로 향하는 피난민.
1953년 11월 25일 북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남한으로 탈출한 아들을 얼싸안고 기뻐하는 어머니.
1952년 1월 1일 순찰을 목적으로 벙커진지로 이동하는 미 제2사단 제23보병연대 제2소대.
1951년 4월 18일 대구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 신병들.
1951년 10월 27일 미국인들이 보내온 의류를 어린이들에게 입혀주고 있는 미 제7사단 제17연대 군목.
1951년 12월 13일 대구에 마련된 서울 피난 학생들을 위한 피난민촌 임시 초등학교에서
DDT를 어린이들에게 살포하는 모습
1951년 11월 20일 중공군 적진을 폭파하기 위해 곡사포를 장전하는 미 제25사단 소속 군인들.
1951년 3월 13일 고향으로 돌아가는 피난민과 미 제1기갑사단 보병대.
1951년 11월 13일 국군수도사단에서 심문받고 있는 공산당 여성(이전에는 부산지역 학생으로 당시 나이 20살).
1951년 10월 25일 금화지구에서 임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유엔군 참전 터키여단 정찰소대 군인들.
구호품 의류를 받고 즐거워 하는 어린이의 모습. XML
1951년 12월 22일 부산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전쟁 고아들.
당시 유일한 개폐식 다리였던 부산 영도다리.
1951년 11월 26일 적진을 향해 포격하는 미 제25사단 소속 탱크부대.
주먹밥을 배급받는 포로들의 모습. XML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2년에는 한복 차림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오른쪽)와 함께 파주 '자유의 마을'을 방문한 모습.
군종목사와 함께한 어린이의 모습.
1951년 10월 11일 금화지구에서 중공군과의 전투에 앞서 아침 배식을 받고있는 미 제25사단 제14연대 군인들.
서울의 옛 중앙청 모습.
평양 포로수용소의 모습
정전협상이 열리고 있던 판문점
탱크에 올라 즐거워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이승만 초대 대통령(가운데) 1950년 8월 훗날 국무총리와 외무부 장관을 지낸 변영태 당시 고려대 교수(오른쪽),
적십자사 단원 등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포로수용소의 생활 모습.
수용소에서 중국군 포로에게 담배를 나눠주는 모습.
유엔군 전사 장병을 안장한 부산의 유엔군 묘지(현 유엔기념공원).
미군 병사가 부상당한 중국군 병사에게 응급처치를 해주는 장면. XML
1950년 12월 대구에서 촬영한 피난민들
북한 측 포로들이 무릎을 꿇은 채 심문을 받는 장면. XML
1950년 11월 미군 지휘관과 함께한 이기붕 당시 서울시장(오른쪽).
평양 포로수용소의 모습. XML
수용공간이 부족해 임시 천막을 대거 지어놓은 포로수용소의 전경.
1950년 11월 원산에서 붙잡힌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이 이송되기 전의 순간. XML
1950년 12월 대구에서 촬영한 피난민들.
마이크 물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공군참모총장이 한국전 참전 중이던
1951년 경남 진해에서 촬영한 나무하는 어린이
1951년 경남 진해에서 촬영한 어린이들의 어깨동무 사진.
1950년 12월 대구에서 촬영한 피난민들.
포로수용소의 생활 모습
포로수용소의 생활 모습.
1951년 경남 진해에서 촬영한 소달구지.
1951년 남아공 참전용사 마이크 물러 공군 소위가 경남 진해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1951년 남아공 참전용사 마이크 물러 공군 소위가 경남 진해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누더기 옷을 걸친 채 울상을 짓는 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