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轉換點, turning point)을 만드는 것은 시의 맛을 내기 위한 것이다. 4월 첫 주 청풍호 주변은 벚꽃이 절정까지 피어오르다 비를 맞고 한순 꽃잎을 모두 쏟아부었다. 떨어지는 꽃잎도 피어나는 풍경이었다. 이것이 바로 전환점이 아닐까. 길을 가다가 돌아올 지점이 있듯이 시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고, 전(轉)에서 회전(선회)해야 한다. 이것은 이성복 시인의 ‘백스윙/피니쉬’ 이론과 상통한다. 골프를 치려면 백스윙을 잘해야 한다. 뒤로 갈 때 돌아오는 점이 있듯 시도 그 점을 잘 만들어야 한다. 등산을 하면 어느 점에서 내려오는 점이 있다. 그게 바로 탁, 치는 절정이며 전환점이다. 탁 치는 절정이 변곡점(變曲點)이다.
시에는 轉換點이 없으면 심심하다. 탁 치면, 여운이 생긴다. 이것이 시의 맛을 살린다. 오 헨리의 단편은 마지막 부분에 탁 친다. 그것을 서프라이즈 엔딩(surprise ending)이라 한다. 그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마지막 부분에 한 무명의 예술가의 죽음이 한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을 적용한 시들이 꽤 있다. 물론 시의 첫 행은 신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첫 행이 감전되듯 한다면, 긴장하면서 끝까지 읽게 된다. 나희덕 시인의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기막힌 반전이다. 물론 양괄식처럼 마지막 연에도 반전이 있다.
글에는 두괄식, 중괄식, 미괄식을 많이 사용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에는 전환점이 핵이다. 그러면 탁 치는 시적 표현은 어디에 있으면 좋을까?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숨 막히는 절정의 순간에서 轉換點을 삼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시 창작에서 탁 치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 시들은 기승전결에서 전(轉) 부분에 이것이 있다. 몇 편의 시를 통해 시인들이 어떻게 감정을 탁 치는지, 어떻게 전환점을 만드는지 알아본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들은 이 전환점을 진정한 시의 맛으로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삼촌의 죽음 – 겨울판화 4 / 기형도
그해엔 왜 그토록 엄청난 눈이 나리었는지, 그 겨울이 다 갈 무렵 수은주 밑으로 새파랗게 곤두박질치며 우르르 몰려가던 폭설, 그때까지 나는 사람이 왜 없어지는지 또한 왜 돌아오지 않는지 알지 못하였다. 한낮의 눈보라는 자꾸만 가난 주위로 뭉쳤지만 밤이면 공중 여기저기에 빛나는 얼음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어른들은 입을 벌리고 잠을 잤다. 아이들은 있는 힘 다해 높은 음자리로 뛰어 올라가고 그 날 밤 삼촌의 마른기침은 가장 낮은 음계로 가라앉아 다시는 악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밤을 하얗게 새우며 생철 실로폰을 두드리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단상]
고요하고 엄숙한 눈이 내렸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그것으로 끝나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시의 轉換點은 “그 날 밤 삼촌의 마른기침은 가장 낮은 음계로 가라앉아 다시는 악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삼촌은 돌아가신 것이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것을 시인은 깊이 느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밤을 ‘하얗게 새웠다’로 시를 마감한다. 그 밤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시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감 / 장석남
파르스름한 접시에 연시를
한 세 개만 담아 오세요
창밖에 눈이 오도록만 바라보고 앉았다가
감속에 까맣게 서 있는 씨앗들 보이도록만
앉았다가 일어서겠어요
감을 주세요
연애는 그토록 슬픈거니까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듯 슬픈 거니까
[단상]
‘감’ 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어려웠다. 필자는 한 달에 한번 시를 갈아 끼우는 액자가 있다. 액자에 「감」 시를 걸어두고 한 달 동안 보았다. 시인은 연시를 먹다가 시상이 떠올랐을 거라 생각한다. 창밖엔 눈이 내렸을 정황이다. 감 씨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속이 드러날 때 씨앗도 드러난다. 이 시의 轉換點은 “감을 주세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듯 슬픈 거니까. 순탄치 않은 삶이 씨앗처럼 까맣게 서 있다. 달콤한 연시 속에 까맣게 서 있는 씨앗들이 보이도록 기다리지만 그 연애는 달기만 하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만나는 인연인데 이별 없는 연애면 좋겠다. “연애는 그토록 슬픈 거니까”라고 말한다. 물체는 그림자를 지니듯 사랑도 슬픔을 지니는 것 아닐까.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세계 위에, 지붕과 풍경들 위에,
내 몸을 풀어놓고 싶구나,
나의 꿈속에서는 쥐를 쫓는
불타는 욕망과 함께.
― 파블로 네루다, 「고양이의 꿈」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단상]
살다가 보면 한두 번 겪는 일이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에는 가판대에 Play Boy 같은 도색잡지가 있었다. 종이컵 믹스 커피가 얼마나 달콤하고 정신이 들었는지. 한 눈 팔기 딱 좋은 휴게소. 이 시의 轉換點은 “바닥에 남은 커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중요했던가” 커피를 두고 올 생각을 왜 못했던가?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 사소한 것에 목숨 걸다가 삶을 망가뜨린 경우가 종종 있다.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女僧 / 백석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설어워졌다
平安道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 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 꿩도 설게 울은 슳븐 날이 있었다
山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금덤판 : 금광, 섭벌 : 일벌, 머리오리 ; 머리카락
[단상]
백석의 시는 슬픈 정서가 있다. 여승이 된 사연이 슬프다. 지아비는 어디 갔을까? 한없이 섧고 밉다. 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일벌처럼 나간 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십 년이 지나갔다. 이 시의 轉換點은 “섭벌(일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 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사투리를 적절히 사용하여 시를 쓴 백석의 서정시는 백미다. 여인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머리카락을 깎는 절마당에는 꿩도 섧게 울었다. 시집 <백석 시선집>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단상]
첫 연에서 사람의 일상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것을 시인은 풍경이 피어난다고 한다. 반복하면서 시의 절정에 이른다. 시인은 제목을 잘 짓는다. 제목이 주는 느낌은 예사롭지 않다. 이 시에서 轉換點은 둘째 연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 풍경을 시인이 그리는 것인지 저절로 피어나는 풍경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보는 풍경이 참 아름답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마치 젊은 여인이 유모차에 ‘예쁜 아이를 태우고’ 가는 모습을 보고 ‘애기 참 이쁘다’라고 말하면 애 엄마는 한없이 행복하게 웃는다. 남이 보기에도 행복한 풍경을 그리며 살아야겠다. 우리는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멋진 그림처럼 그런 풍경이 되고 싶다. 시집 <나는 별아저씨>
빗소리 / 장옥관
비 오시는데……
빗소리는 하염없이 쌓이고
또 쌓이는데
기차도 버스도 타지 않고
어떻게 찾아왔을까, 저 빗소리
몸도 없이
무작정 안기기부터 하는 바람처럼
빗소리……
제 자식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어미처럼
소리는 풀죽은, 겁먹은 비를
지상에 서둘러 부려놓고
[단상]
비 오는 날은 시를 쓰고 싶다. 비 오는 날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싶다. 비 오는 날은 같이 걷고 싶다. 빗소리는 연인이 생각나게 한다. 빗소리는 그리움을 불러온다. 비는 인간이 고독하다는 것을 알린다. 이 시에서 비는 빗소리를 데리고 왔다.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시의 轉換點은 “빗소리……” 슬픔을 서둘러 지상에 부려놓고 도망가는 어미 같다. 빗소리 들린다. 그날의 빗소리……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포옹 / 김행숙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단상]
포옹은 무얼까. 캄캄해지는 걸까. 검정일까. 파도처럼 부서지도록 안는 것일까. 그런데 이 시에서 轉換點은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포옹은 아무 생각도 없이 캄캄한 그 지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한다면 포옹하고 싶은 게 아닐까. 사랑이여, 포옹하자. 그것이 사랑이고 아름다운 길이다. 캄캄해지면 어떠랴. 몸짓은 마음의 표현.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세한도 가는 길 / 유안진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령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 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단상]
시인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생각하면서 어려운 삶을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라고 표현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삶은 歲寒圖와 비슷하다. 이 시의 轉換點은 “닳고 터진 알 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얼음장에 맨발로 서면 얼마나 시릴까. 그렇게라도 가야한다고 김정희의 세한도를 해석한 시인은 “오십령 고개부터는” 세한행이라고 말한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시.
세한도 / 유자효
뼈가 시리다
넋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도의 위리안치
찾는 사람 없으니
고여 있고
흐르지 않는
절대 고독의 시간
원수 같은 사람 그립다
누굴 미워라도 해야 살겠다
무얼 찾아 냈는지
까마귀 한 쌍이 진종일 울어
금부도사 행차가 당도할 지 모르겠다
삶은 어차피
한바탕 꿈이라고 치부해도
귓가에 스치는 금관조복의 쓸림 소리
아내의 보드라운 살결 내음새
아이들의 자지러진 울음 소리가
끝내 잊히지 않는 지독한 형벌
무슨 겨울이 눈도 없는가
내일 없는 적소에
무릎 꿇고 앉으니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질긴 목숨의 끈
소나무는 추위에 더욱 푸르니
붓을 들어 허망한 꿈을 그린다
[단상]
세한도(歲寒圖)를 시의 소재로 하여 승부를 걸만하다. 그만큼 ‘세한도’는 슬프다. 슬픔은 시가 된다. 김정희의 그림은 뼈가 시린 사연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의 ‘세한도’ 역시 뼈가 시리다로 시작한다. 그것은 절대 고독의 시간이리라. 삶은 한바탕 꿈! 이 시의 轉換點은 “무슨 겨울이 눈도 없는가 내일 없는 적소에 무릎 꿇고 앉으니” 질긴 목숨 하나 붓을 들어 허망한 꿈을 그린다. 쓸쓸히 소나무는 무언가 깊은 말을 하고 있다. 세한도는 극한의 추위와 고독을 지닌다. 누구나 세한도 가는 길을 걷는 자가 아닐까? 정지용문학상 수상시(시와시학, 2005, 여름호) - 이기호 시인(牙虎).
[출처] 이기호의 시론(詩論) 9 - 탁 치는 전환점을 만들어라|작성자 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