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쇼핑하는 재미
지난겨울 눈 내리는 날이 이십여 일 계속되면서 아내와 딸의 쇼핑에 따라나서는 때가 많았다. 방구석에 홀로 있을 내 처지를 위로하며, 함께 가자고 끄는 데야 못 이기는 척 따라가곤 했다.
얼마 전에는 날씨가 꿀꿀하여 기분전환으로 대전의 코스트코Costco 매장에 나들이를 했었다. 아내와 딸은 물건 값이 저렴하다며 바람도 쐴 겸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곳에 쇼핑을 가는데, 특별한 일이 없을 땐 나도 동행한다. 매장이 무진장으로 크고 별의별 상품이 산처럼 쌓여있다. 각지에서 모여드는 쇼핑객이 매장에 넘쳐났다. 상품은 대용량으로 포장하여 도매가에 판매하므로, 소비자들은 충동구매를 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진열대 코너를 돌며 물건을 훑어보고 쇼핑을 한 뒤, 계산대에 물건을 잔뜩 쌓아놓는다. 잘 샀다고 좋아할까? 다시는 안 가겠다며 후회할까? 자주 갈 곳은 못 되는 것 같다. 두어 시간 매장을 돌다 보면 다리도 뻐근하고 하루 걷는 운동으로는 좀 지나친 편이다. 가족들이 헤어지면 휴대폰으로 연락하여 찾는다. 나는 카트를 밀고 다니며 운전에 신경을 쓴다. 오른쪽으로 밀고 다니면 좋을 텐데,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짜증이 났다. 군데군데 시식대에서 이것저것 먹다 보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초콜릿, 쇠고기, 빵조각, 와인, 커피, 과일 등 골고루 맛을 보았다. 아내는 캘리포니아산 석류 등 과일을 샀고, 나는 USB와 포스트 잇 등 문방구를 골랐다. 사람이 소비하는 물품이 이리도 많은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코스트코는 미국의 회원제 창고형 대형할인업체인데, 마진율 15% 원칙을 고수하며 세계 6백여 개의 매장에서 4천여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1개의 매장이 성업 중이다.
가정주부들은 쇼핑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남자도 그럴 것 같다. 우리 부부는 가끔 동네 마트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산다. 소비자들은 매장에 물건이 많이 쌓여있어야 신선하고 값이 쌀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네 마트를 외면하고 자꾸 대형매장으로 몰리는 이유다. 나는 E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매장에도 종종 들러 문방구와 아이들 장난감을 산다.
J마트는 재래시장과 대형할인매장을 합쳐놓은 것 같다. 수요일에만 할인행사를 하는데, 꽤 저렴한 편이다. 서민들이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모여든다.
아파트단지 안에는 매주 목요 장터가 열린다. 주로 식료품을 구매하는데, 배달도 해주므로 가끔 이용하고 있다.
재래시장은 그런대로 흥정하고 덤을 받는 재미가 있어 가끔 들른다. 아내는 모래내시장의 고객이었는데, 멀리 이사 온 뒤 재래시장에 못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좌판을 벌여놓고 있는 할머니들과 흥정을 하는 아낙네들의 그림이 아름답다. 옛날 5일장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1km쯤 떨어진 시골 장에 가끔 가보았다. 초등학교 옆에 장이 열려 하굣길에 들러보기도 했고,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가 엿가락이나 캐러멜을 사 먹기도 했다.
아내는 어느새 TV 쇼핑몰에서도 옷가지를 사고 화장품도 구매한다. 젊은이들은 해외 직구도 한다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가정주부가 1주일 동안 마트에 안 간다면 어찌 될까? 아니 못 가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미치고 말 것이다. 쇼핑을 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세상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의 일생 중 많은 시간이 시장을 돌아보며 장보기 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현대는 소비시대다. 소비가 없는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쇼핑 중독은 우려할 일이다. 그렇다고 지나친 소비 억제는 국가 경제를 침체케 하는 원인이므로 적정한 소비는 권장되어야 하겠다.
매장에서 카트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30분 이내에 3만 원 범위에서 장보기를 하면 알뜰 쇼핑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합리적인 소비생활이 이뤄지고 냉장고에 신선한 음식재료가 정리될 것이라고 한다. ≪하루 정리 15분의 힘≫을 쓴 윤선현 씨의 충고다.
기왕 쇼핑을 따라다닐 바에야 물가 감각을 익히며, 좋은 물건을 고르는 법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특히 과일, 채소, 생선 구매요령을 익히고 있는데, 매번 아내의 알뜰 쇼핑에 놀라고 있다.
요즘 시장에 먹거리는 풍성해졌으나, 먹고 싶은 것은 별로 없으니 왜 그럴까?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아내와 함께 삼례 장에 나가 산닭과 홍어를 사 왔다. 옛날 고향 집에서 맛본 입맛이 되살아날지 모르겠다.
(2015. 4. 24.)
첫댓글 사모님과 쇼핑으로 남이 모르는 재미들 속에서 사시는 모습이 잘 나타난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석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