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제자의 삶
오늘 복음에서 착하고 신심 깊은 한 남자가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의 제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합니다. 이 초대는 좋 아하는 것(부, 권력, 명예)을 포기하고, 싫어하는 것(십자가)을 선택하라는 요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상기시키시며, 당신을 따름으로써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보상을 받을 거라고 약속하십니다.
오늘날의 부자 중에서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남자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업이나 경제 분야, 또는 정치에서 큰 성과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가족의 압력이나 가문의 계승, 재정적 또는 사회적 야망에서 직업을 선택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고 집 으로 돌아올 때 공허감이나 절망감으로 무기력해집니다. 이룬 성취나 업적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나 공동체에는 물 론이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며, 이에 대해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관심사 가 오직 부와 권력과 명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일명 악덕 자본가나 폭군으로 불립니다.
악덕 자본가의 마음이 이익에 가 있다면, 폭군은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부류입니다. 봉사나 지도력이 아니라, 지배나 승리(또는 보복)에 관심이 있기에, 폭군은 가혹하고 잔인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감추어진 동기는 탐욕과 개인적인 안정이며, 이런 이들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 만한 곳에 안전 장치를 마련하곤 합니다. 권력자를 기쁘게 함으로써 자리 를 차지하고, 급기야 그 자신이 권력자가 되기에 이릅니다. 이들은 큰 권력을 쥘 수 있겠지만, 언젠가 성안에 고립되고 머지않아 주변에 친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폭군들은 권력이 있기에 어린 시절에 겪었던 거부 와 배반에 대한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할 기회가 더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급기야 자신이 더이상 멸시당하지 않을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할 거 라고 독한 결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결정권과 지배권을 행사하며 아동기 때의 분노를 행동화하는 비뚤어 진 카타르시스를 즐깁니다. 우리 사회에는 매일 만나게 되 는 수많은 작은 폭군들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힘은 약하겠 지만, 그들의 잘못된 행동은 주변에 해를 입힙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은 종교를 이용해 명예와 권력을 유지했고, 사두가이들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부(재물)는 제자 직분을 수행하는 데 방해물이 됩니다. 가난 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의 사명을 이루는 데 있어 가 장 기본이 되는 생활 방식입니다. 복음에서 가난은 가난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기 부정보다는 오히려 사도적인 성격에 가까우며, 선교 사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 문종원 베드로 신부 | 주교좌 기도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