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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기 행복 걷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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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산행) 이야기 빛고을 광주(光州)와 목포의 유달산은 영원하리 20161001
무무 추천 0 조회 318 16.10.01 11:06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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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10.09 17:51

    첫댓글 카토나,! 고생이많았습니다. 11명이나되는 우리동료들을 맛있는음식,편안한취침 추억이될만한관광을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해준 카토나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우리가 다녀온 기행문도 너무나 훌륭히 정말멋지고 맛갈나게 잘쓰셨네요? 정말성의있고 황홀한 표현은 어느누가 따를사람이 있을까~~ 그 성의있는 표현을보니1박2일로 다녀온 보람이실감나네요. 카토나! 자네의노고에 깊이 고마움을 느끼며 오늘하루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라네!. 2016년 10월1일. 이부춘.

  • 16.10.10 10:55

    1951년도9~10월쯤인지는 확실치는 않치만 강원도철원에서 미군트럭으로 피난길에 올랐지,그때가 초등학교4학년 때야. 포천에서 하룻밤을자고 의정부까지 와서 석탄을 열료로하는 화물차(증기기관차)로 전라북도 이리 (익산)라고하는 곳에서 다시 1박을하고 전라남도 광주라고하는 곳에 도착을했지요.이곳에서 3개월간 수용소생활을 했고 ( 배치관계로) 환경이 좋지않아 전염병이 들끓어, 어린유아나 나이많은 일부노인은 사망도 했어, 이런 기가맥힌 추억어린 곳을 이번에 가게될줄이야!~~.2016년9월24~25일 1박2일로 간다니 마음이 다른사람들보다 훨신들떠있는것은 당연하지 않을까?!,~~목포,!? 인근에있었고 한,두번인가 간 적은있었으나

  • 16.10.03 16:41

    유달산이 어디쯤에 있는지에대해서는 관심밖이였다.왜냐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기때문이다. 열심히 벌어야되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이해도않되고 너털웃음만 나오지만 이는 엄연한 당시의현실이었다. 세월은 흘러 시간을내서 가도되지만 그게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광주로와서 굉주도청이나 충장로거리등이 과거5.18 당시 광주시민들을 진압군이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변화가 있어 알고보니까 그렇지 도무지 몰라보게 많은발전을 가저온것에대해 감탄을 연발할수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나도1년을 이곳굉주에서 생활했는대도 거리를 도무지 알수가 없었으니까?~~ 추억이 새삼스레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의

  • 16.10.19 19:53

    거리를 뒤로하면서~~ 광주일고앞의 일송정 이라는 한정식집은 우리들 11명의 피곤한 여독을 즐겁고 신나게 휘나래할수있도록 원기와즐거움을 북돋아준 가장 양심적이고 호남을대표하는 한정식집이라고해도 이이가 없을정도로 아주만족들 했지.(두고두고 기억에 남을집) 감사합니다. 2016년 10월 1일 이 부춘. (빛고울 광주의 무등산과 목포의 유달산,삼학도는 역사깊은 우리의 자랑걸이이자 보배다.)

  • 작성자 16.10.03 09:34

    위짜추는 법적으로는 막내중에 막내이지만 자칭 형이라고 하니 이제는 형 대접을 해주면 어떨까요. 형 대접은 그저 술 한잔 마실 때 한잔 더 따라주고 동기생 이름을 헷갈리면 아 ~~~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구나 이렇게 인정하자요???.6.25동란으로 1.4후퇴, 하여간 피난살이를 하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있는군요. 그의 아픔은 겪어 본 사람 이 까토나는 너무나 절절하게 느끼고 살고있지요. 먹기 위하여 살기 위하여 낱담배와 양키껌을 한손에 들고 구걸하던 모습 아직도 가슴을 아립니다. 온몸이 어름같이 굳어와도 뚫어진 신발에 양말은 언감생심 버얼겋게 언손을 입김으로 녹이던 모습 뇌리에 선명하요 통일은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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