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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강의(經史講義) 19 ○ 중용(中庸) 3 갑인년(1794)에 김근순(金近淳), 이존수(李存秀), 조만원(趙萬元), 서준보(徐俊輔), 조석중(曺錫中), 이면승(李勉昇), 유태좌(柳台佐), 홍낙준(洪樂浚), 유원명(柳遠鳴), 김희락(金煕洛), 구득로(具得魯), 송면재(宋冕載), 신현(申絢), 강준흠(姜浚欽), 홍명주(洪命周), 황기천(黃基天), 이동만(李東萬), 김이재(金履載), 김처암(金處巖), 이영발(李英發), 홍석주(洪奭周) 등이 대답한 것을 뽑았다 ○ 김이재(金履載)는 경술년(1790)에 뽑은 것을 그대로 붙였다. 김처암(金處巖), 이영발(李英發), 홍석주(洪奭周)는 을묘과(乙卯科)로 나중에 뽑아 넣었다.
[서(序)]
도통(道統)이라는 두 글자는 이 서문(序文)의 주재(主宰)이자 핵심이다. 처음에는 “도통의 전함이 유래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두 번째에는 “도통의 전함을 이었고”라고 하였고, 끝에서 또 총괄하여 말하기를 “비록 도통의 전수(傳受)에 대해 감히 망녕되이 논의할 수는 없으나”라고 하였다. 이렇게 간곡하게 거듭거듭 말하여 마음을 쏟은 데에는 어찌 숨은 뜻이 없겠는가. 그런데 유독 말을 꺼내는 첫 구절에서는 도리어 말을 바꾸어서 도학(道學)이라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도학과 도통이 과연 차이가 없는가? 허동양(許東陽)의 학설에는, “도통(道統)은 유위자(有位者)로써 말한 것이고 도학(道學)은 위아래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통(統)을 말하면 학(學)은 그 안에 들어 있고 학(學)을 말하면 통(統)이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채허재(蔡虛齋)의 학설에는, “도학(道學)은 강도(講道)로써 말한 것이고 도통(道統)은 전도(傳道)로써 말한 것이다. 도학에 이룸이 있는 자라야 비로소 도통에 참여할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두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를 또한 상세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김희락이 대답하였다.]
순(舜)과 우(禹)가 주고받은 것은 열여섯 글자이고 만세토록 이어졌으니, 이 통(統)에 접속하고자 하는 자는 이 학(學)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도학(道學)이라는 두 글자로써 책의 첫 장에 으뜸가는 의리를 삼은 것입니다. 통(統)은 학(學)을 바탕으로 서는 것이고 학은 통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것이니, 허재(虛齋)가 이른바 ‘도학에 이룸이 있는 자라야 비로소 도통에 참여할 수가 있다’라고 한 학설이 더 나은 학설일 듯합니다.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대한 논의가 유가(儒家)의 논란거리가 된 지가 오래다. 대개 주자가 주기(主氣)니 주리(主理)니 하는 학설로 말의 실마리를 꺼낸 뒤로 당시의 주자 문하에 있던 선비들에게도 이미 다르게 갈라진 의논들이 있었다.
황면재(黃勉齋)는 일찍이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인심을 삼고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도심을 삼아서, 이공회(李公晦)와 함께 글을 주고받으며 변론을 하였는데, 그가 이른바 ‘희로애락은 도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주자가 이른바 ‘희로를 해야 할 때 희로를 하는 것은 도심이다’라는 가르침과 비교해 보면 아주 서로 다른 말이다. 면재(勉齋)같이 곧바로 전수받은 자로서도 오히려 이러하였으니, 더구나 다른 사람인 경우이겠는가.
우리나라 유자들에게 이르러서는 그 학설들이 더욱 번잡해졌다. 인심은 기(氣)가 발하고 이(理)가 타는 것이고 도심이 이(理)가 발하고 기가 따르는 것이라는 것은 퇴도(退陶) 이황(李滉)의 학설이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모두 기(氣)가 발하고 이(理)가 타는 것인데 발하는 것은 기(氣)이고 발하게 하는 것이 이(理)라는 것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학설인데, 혹 이 두 학설을 아울러 비판하는 학설이 있어, “퇴도는 인심과 도심에 주기(主氣)와 주리(主理)의 나뉨이 있는 줄만 알고 이와 기는 간격 없이 뒤섞여서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몰랐다. 그러므로 이가 발하면 기가 따른다는 학설은 그렇게 이름 붙여 말하는 데에 옳지 않음이 있다. 율곡은 인심과 도심이 모두 기가 발하고 이가 타는 것인 줄만 알고 발할 때에 이미 이가 기를 타거나 기가 이에 붙거나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므로 인심이 되고 도심이 되는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어 놓지를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런 학설을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이 서로 옳으니 그르니 다투면서 논쟁을 그치지 않았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단 칠정이니 인심도심이니 하는 변론들이 아득히 안개 낀 바다와 같아서 끝까지 이치를 따져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과연 반복하여 토론하면서 하나하나 상세히 상고할 수 있겠는가?
[조석중이 대답하였다.]
면재(勉齋)가 희로애락으로 인심을 삼고 인의예지로 도심을 삼은 것은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의 사단 칠정에 대한 학설과 뜻은 비록 다르지만 말은 대략 서로 같습니다. 문순공의 사단 칠정설에 대해서는 기대승(奇大升)이 이미 의논을 바쳐 논란을 하였는데, 이가 먼저 발하기도 하고 기가 먼저 발하기도 한다는 학설에 대해서는 선정신 이이가 또 이와 기를 두 물건으로 삼고 심(心)과 성(性)을 두 근본으로 볼 병통이 있을까를 염려하였기 때문에 “인심과 도심은 모두 같이 기가 발하고 이가 타는 것인데,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것이 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두 같이 기가 발하고 이가 타는 것’이라면 두 물건이 아니고, 그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것은 이’라면 또한 하나의 물건도 아닙니다. 문성(文成)이 어찌 소견도 없이 주창하였겠습니까. 그런데도 혹자의 학설 두 조목은 퇴계와 율곡을 싸잡아 비난하고자 하였으니, 그 또한 생각이 깊지 못한 것입니다. 기대승의 사단 칠정론을 문순(文純)이 이미 자신의 견해를 버리고 그것을 따랐으니, 만약 문성의 이 학설을 가지고 문순이 살아 계시던 때에 미쳐서 스승으로 삼고 여쭈어 보았다면 또 문순이 자신의 견해를 버리고 그것을 따르지 않았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나라 유학자의 학설에 “인심(人心)인데도 사욕(私欲)에 흐르지 아니하고 의리(義理)에 합치하면 인심도 도심(道心)이며, 도심인데도 기(氣)에 가리어져서 곧게 나가지 못하면 도심도 인심이다.”라고 하였고, 또 그 학설을 비판하는 자는 이르기를, “인심이 비록 의리에 합치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인심이 도심에게 명령을 받는 것일 뿐이니 그것을 바로 도심이라고 할 수는 없고, 도심이 비록 곧게 나가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도심으로서 중절(中節)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니 곧바로 인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이 두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가? 앞의 학설로 보자면, 인심과 도심이 서로 나중과 처음이 되어서 하나의 생각 안에 공(公)과 사(私)가 섞여 있으니, 두루뭉수리같이 엉켜 있는 병통에 가깝지 않겠으며, 뒤의 학설로 보자면, 인심과 도심이 분명한 경계가 있어서 성(性)에 두 갈래의 발(發)이 있고 정(情)에 두 가지 근본이 있는 것이니, 또한 어수선하게 쪼개져 있다는 비판을 받기 쉬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지 아니하고 이 두 학설 이외에 참다운 풀이를 찾아내자면 장차 어떻게 학설을 세워야 옳겠는가?
[신현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이르기를, “도심이 주인이 되면 인심도 또한 변화하여 도심이 된다.”라고 하였고, 또 “도심이 있어서 인심이 절제(節制)를 받으면 인심도 모두 도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인심이 이미 변화하여 모두 도심이 되었다면 곧바로 도심이라고 불러도 안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위(危)라는 것은 안(安)의 반대이고 미(微)라는 것은 저(著)의 반대이니, 인심이 위(危)한 것이라면 도심은 안(安)한 것임을 알 수가 있고 도심이 미(微)한 것이라면 인심은 저(著)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이 안(安)으로 위(危)에 대응시키고 저(著)로 미(微)에 대응시키지 아니하고 도리어 위(危)와 미(微)를 대응시켜서 말한 것은 어쩌면 또한 문장을 교차시켜 뜻을 보인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의의가 있는 것인가?
정자(程子)는 이르기를, “인심유위(人心惟危)는 인욕(人欲)이고 도심유미(道心惟微)는 천리(天理)이다.”라고 하였다. 도심이 천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이의를 달 수 없으나 인심을 인욕이라고 한 것은 여전히 의심이 남는다. 대개 주리면 먹을 것을 생각하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생각하고 할퀴면 아픔을 느끼고 긁으면 따가움을 느끼는 것은 성인(聖人)이나 범인(凡人)이나 마찬가지인 바로서, 주자가 이른바 ‘비록 상지(上智)라도 인심이 없을 수가 없다’라는 것이다. 어찌 인심을 바로 인욕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주염계(周濂溪)가 일찍이 맹자의 과욕에 대한 가르침에 오히려 미진함이 있다고 여겨서, “줄이고 또 줄여서 없음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하였다. 지금 만약 인심이 곧 인욕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장차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에도 겨를이 없이 해야 할 것인데 또 어찌 위태하다고만 하고 말 일이겠는가. 이 때문에 《어류》에 “인심은 본래 선하지 아니함이 없다.”라고 하였고, 또 “위(危)가 바로 안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자의 은미한 뜻을 볼 수가 있는데, 연화전 주차(延和殿奏箚)를 지음에 미쳐서 또 도리어 인심을 인욕이라고 한 것은 어찌해서인가? 같이 주자에게서 나왔는데도 이렇게 전혀 다름이 있으니, 장차 누가 이것을 절충할 것인가?
[이면승이 대답하였다.]
안(安)으로 위(危)에 대응시키고 저(著)로 미(微)에 대응시킨다면, 선(善)과 악(惡)의 기미를 어디서 볼 수 있으며, 정(精)과 일(一)의 공부를 어디서 해 나가겠습니까? 주자가 인욕에 대한 정자의 말을 풀이하면서, “인욕이라는 것은 완전히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위(危)라고 한 것은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함을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연화전 주차에 인욕이라고 말한 것도 또한 이런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성(李文成)이 일찍이 “주자의 만년의 정론에는 인심을 인욕이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에 다른 말을 더할 것이 없습니다.
정일집중(精一執中)을 혹은 용(用) 공부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체(體)와 용(用)을 겸한 공부라고 하기도 한다. 어느 것을 정설로 삼아야 하는가? 미발(未發) 때에는 하나의 이치로 뒤섞여 있고, 인심과 도심이 나뉘어지는 것은 반드시 오성(五性)이 감동(感動)한 뒤에 있는 것이니, 용(用) 공부라는 학설이 바로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정설인가? 성찰(省察)은 이발(已發)한 뒤의 공부가 되고 존양(存養)은 미발(未發)일 때의 공부가 되는데, 학문을 하는 방도는 반드시 동(動)과 정(靜)을 꿰고 본(本)과 말(末)을 함께 갖춤을 귀히 여기니, 또한 체와 용을 겸한다는 학설을 올바르고 분명한 학설로 삼아야 하는가?
대저 미발(未發)의 중(中)이라는 말은 자사(子思)로부터 처음 나왔고, 요순(堯舜)의 집중(執中)의 중(中)과 공자(孔子)의 중용(中庸)의 중(中)은 모두 사위(事爲)를 가지고 말한 것이니, 후대의 유자들이 반드시 정일집중(精一執中)을 오로지 용(用) 공부에 소속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달도(達道)가 행해짐은 반드시 대본(大本)이 확립됨을 말미암는 것이니, 사위가 그 중(中)에 맞음이 또한 어찌 근본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겠는가.
그리고 저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바야흐로 그 멍하니 깨달음이 없을 때에는 혹 혼매하고 박잡한 병통을 면치 못하니, 비록 혼연자재(渾然自在)의 중(中)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갑자기 이것을 이발(已發)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이러한 때에 마음을 가다듬어 지경(持敬)을 하지 못하고서 반드시 이발(已發)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정일(精一)의 공부를 한다면, 이것은 이발(已發) 이전을 한결같이 그 혼매하고 박잡한 상태로 내버려 두어서, 담연허명(湛然虛明)한 체(體)가 끝내 스스로 드러날 수가 없는 것이니, 주자가 이른바 ‘모습은 비실거리고 말은 벙어리이고 눈은 장님이고 귀는 귀머거리이고 생각은 꽉 막힌 사람’과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주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미발 때에는 공부를 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고, 또 일찍이 이연평(李延平)이 말한 ‘정좌(靜坐)하여 미발의 기상(氣象)을 본다’는 것을 논하여 이르기를, “본다고 하면 곧 미발의 경계(境界)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마치 체(體)에서는 공부를 끝내 미루어 나갈 수가 없다고 하는 의논인 듯하다. 어째서인가? 그에 대한 말을 듣고 싶다.
[홍석주가 대답하였다.]
유정(惟精)이라는 것은 성찰(省察)의 공부이고 유일(惟一)이라는 것은 존양(存養)의 공부입니다. 정(精)은 치지(致知)에 속하고 일(一)은 지수(持守)에 속하니, 치지와 성찰은 참으로 모두 동(動)일 때의 공부입니다만, 지수와 존양이야 어찌 동(動)과 정(靜)을 함께 꿰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사물이 교접하지 않을 때에는 전혀 지수와 존양의 공부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자가 이른바 ‘공부를 할 수가 없다’는 것도 또한 ‘공부를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일찍이 ‘전혀 공부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정물재(程勿齋)의 말에, “허령(虛靈)은 심(心)의 체(體)이고 지각(知覺)은 심(心)의 용(用)이다.”라고 하였고, 육가서(陸稼書)는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부연하기를,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는 허(虛)와 영(靈)을 대응시켜 말하였으니, 허(虛)가 체(體)가 되고 영(靈)이 용(用)이 된다. 《중용》 서문에서는 허령과 지각을 대응시켜 말하였으니, 허령이 체가 되고 지각이 용이 된다.”고 하였다. 이 학설이 그럴듯한데, 주자의 말로써 검증해 보자면, 어긋남이 없지 아니하다.
주자가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에, “지각은 기(氣)의 허령처(虛靈處)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에 근거하면 허령과 지각을 나누어서 말할 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반겸지(潘謙之)에게 답한 편지에는, “마음의 지각은 이 이(理)를 갖추고서 이 정(情)을 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근거하면 지각(知覺)이라는 두 글자에는 절로 체(體)와 용(用)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어떻게 허령과 지각을 딱 잘라 나누어서 하나는 체에다 소속시키고 하나는 용에다 소속시킬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혹 정물재(程勿齋)의 학설을 주장하는 자가 말하기를, “허령과 지각이 과연 체와 용으로 나뉨이 없는 것이라면, 주자가 이미 허령을 말해 놓고 또 지각을 말한 것은, 무엇 때문에 그 하나의 뜻을 거듭되게 말하였겠는가. 그리고 아래 글에 지각부동(知覺不同)이라는 구절에 지각(知覺)만을 거론한 것은, 어쩌면 체(體)는 같지 아니함이 없는데 용(用)에서 비로소 같지 아니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학설은 과연 어떠한가?
[황기천이 대답하였다.]
정물재는 마음의 체단(體段)을 알지 못하였고 육가서는 분석이 너무 지나치니, 주자의 본지(本旨)가 아닐 듯합니다.
지각(知覺)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물건인가? 찰식(察識)하고 변별(辨別)함을 지각이라고 하는데, 예지(禮智)의 지(智)도 또한 ‘시비(是非)를 분변함이다’라고 하니, 지각의 지(知)와 예지의 지(智)가 과연 이와 같이 변별됨이 없는가? 작용성각(作用省覺)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바이지만 인지(仁知)의 지(知)는 성인(聖人)이 아니면 있을 수 없다면, 지각의 지와 인지의 지는 과연 같지 아니한 바가 있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심(心)이라는 것은 사람의 지각이다.”라고 하였으니, 지각은 곧 심(心)인데, 횡거(橫渠)는 “성(性)과 지각이 합하여 심(心)이 된다.”고 하였으니, 지각은 또 이 심(心)의 체(體)를 다 포괄하기에는 부족하다. 주자는 말하기를, “지(知)라는 것은 마음의 신명(神明)이다.”라고 하였으니, 지각은 곧 신(神)인데, 염계(濂溪)는 일찍이 이르기를, “신(神)이 지(知)를 발(發)한다.”라고 하였으니, 지각은 또 신명의 용(用)에 지나지 않는다. 같고 다름을 비교해 보거나 논변의 차이를 참고해 보면 여기저기에서 서로 어긋나서 의문스러운 것이 이와 같다. 어떻게 보면 되겠는가? 분명하고 정확한 의논을 듣고 싶다.
[유태좌가 대답하였다.]
지각이라는 두 글자는 이 마음의 오묘함을 형용한 것인데, 예지(禮智)의 지(智)는 성(性)으로써 말한 것이고 지각의 지(知)는 심(心)으로써 말한 것이고 인지(仁知)의 지(知)는 덕(德)으로써 말한 것입니다. 찰식과 변별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같지만 사덕(四德)이 갖추어져 있음과 이(理)와 기(氣)가 합쳐져 있음에는 같지 않은 바가 있습니다. 작용(作用)이나 성각(省覺)은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이 균등하지만 천리(天理)의 밝음과 기품(氣稟)의 어두움은 서로 거리가 멉니다. 주자는 사람에게 있는 이 심(心)을 가리켜 말하였고 장자(張子)는 이 심(心)의 소유래(所由來)를 가리켜 말하였으니, 심(心)이라는 글자와 지각(知覺)이라는 글자는 위아래로 서로 바뀌었지만 심(心)이 되거나 지각이 되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주자(朱子)는 지각이 나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말하였고 주자(周子)는 지각이 말미암는 바의 근본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지각이라는 글자와 신(神)이라는 글자는 앞뒤로 서로 바뀌었지만 지각이 되고 신명이 되는 바는 한가지입니다.
여기 “반드시 도심(道心)을 일신(一身)의 주인이 되게 하고 인심(人心)은 항상 그 명(命)을 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뜻을 상세히 말할 수 있는가? 저 심(心)이라는 것은 하나일 뿐인데, 다만 그 감응하여 발(發)하는 것이 의리(義理)와 형색(形色)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의리에 순수한 것을 일러 도심이라고 하고 형색에서 나온 것을 일러 인심이라고 하는 것이니, 그 실제는 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도심이 주인이 되고 인심은 그 명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마음이 있어서 주인이 되고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 있어서 명을 듣는 것으로서 위치가 분명히 다르고 경계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인가? 그리고 석씨(釋氏)의 관심(觀心)을 우리 유학에서 비판하는 것은 심(心)으로써 심(心)을 보는 병통이 있기 때문인데, 심으로써 심의 명을 듣는 것이 과연 심으로써 심을 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주자의 말이 이러한 것은 어찌해서인가?
[조석중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일찍이 구방심(求放心)을 논한 글에 이르기를, “하나의 심(心)으로써 다른 하나의 심(心)을 구(求)하는 것이 아니다. 구할 줄을 안다면 심(心)은 곧 존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도 ‘단지 주인으로 삼을 줄을 알면 곧 이미 그 명을 듣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필시 하나는 주인이고 하나는 명을 듣는다는 명목(名目)을 빌려서, 그 의리(義理)의 심(心)이 항상 형기(形氣)의 사(私)를 이길 수 있음을 말한 것이지, 저 마음을 가지고 이 마음의 명을 듣는다는 것이 아니니, 석씨가 말한 ‘마음으로써 마음을 본다’는 것은 여기에 견주어 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 “천명(天命)과 솔성(率性)은 도심(道心)을 말한다.”고 하였다. 성(性)과 심(心)이 과연 이와 같이 변별이 없는 것이라면 왕양명(王陽明)이 말한 ‘심(心)이 곧 이(理)이고 심(心)이 곧 도(道)이다’라는 학설에 대해 또한 무엇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비난을 하는 것인가? 대저 강서학파(江西學派)가 돈오설(頓悟說)에 깊이 빠져서 끝내 총령기미(葱嶺氣味)를 면치 못한 까닭은 바로 심(心)을 성(性)이라고 여긴 데에 있는데, 나정암(羅整菴) 등의 유학자들이 저들의 그릇됨을 크게 호통쳐 배척한 것도 또한 심과 성이 분별이 없다고 한 것일 따름이니, 만약 저들 가운데 교활한 자가 이 학설을 빌려다가 근거를 삼아 말하기를, “심(心)이 곧 이(理)이고 심(心)이 곧 도(道)라는 말은 주자(朱子)가 이미 말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장차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여기에는 필시 같은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것이 있을 것이다. 각기 그 평소에 강구한 바를 말해 보라.
[구득로가 대답하였다.]
도심(道心)의 도(道)는 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도(道)로서, 성명(性命)의 정(正)에 뿌리를 둡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명과 솔성은 도심을 말함이다’라고 한 것이니, 대개 도심은 이(理)와 합치하여 천명과 솔성과는 같은 한가지 이(理)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지, 심(心)과 성(性)에 분별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디 ‘천명과 솔성은 도심을 이름이다’라고 하였지, 어찌 일찍이 “천명과 솔성은 심(心)을 이름이다.”라고 한 것이겠습니까.
맹자(孟子)가 자사(子思)에게서 수업(受業)을 하였다는 것은 그에 대한 학설이 하나가 아니다. 《사기(史記)》에는 “자사의 문인에게서 수업하였다.”라고 하였고 《공총자(孔叢子)》에는 “자사에게서 직접 수업을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조기(趙岐)와 왕소(王劭)는 《공총자》의 학설을 위주로 하였고 사마정(司馬貞)과 공영달(孔穎達)은 《사기》의 학설을 위주로 하였다. 지금 연표(年表)를 상고해 보건대, 위 혜왕(魏惠王) 35년(B.C.336)에 맹자가 양(梁)에 갔고 애왕(哀王) 7년(B.C.312)에 연(燕) 나라가 제(齊)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맹자는 이때에 제(齊) 나라에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공자와의 거리는 160년이고 자사와의 거리도 또한 100여 년보다 적지 아니하니, 《사기》에 이른바 ‘문인에게서 수업하였다’라는 것이 옳은 듯한데, 혹자는 “자사의 문인 가운데에는 후세에 이름이 난 자를 들어 보지 못하였다. 마땅히 직접 수업(受業)을 하였다는 학설을 정설로 삼아야 한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이 과연 이런저런 의논들을 논파할 수가 있는 자세한 증거가 있는가? 널리 아는 그대들은 각기 아는 바를 모두 말해 보라.
[구득로가 대답하였다.]
자사는 주(周) 나라 위열왕(威烈王) 22년 정축(B.C.404)에 돌아가셨고 맹자는 주 나라 열왕(烈王) 4년 기유(B.C.372)에 탄생하셨으니, 맹자의 탄생은 자사가 돌아가신 지 30여 년 뒤입니다. 그렇다면 《사기》를 따르는 것이 또한 근거가 있습니다. 맹자가 이르기를,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서 사숙(私淑)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자사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 말이 어찌 이러하였겠습니까?
오도(吾道)가 제대로 전수되지 아니하고부터 이단의 말들이 시끄럽게 일어난 지가 오래다.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공리(功利), 손자(孫子)와 오자(吳子)의 권모(權謀), 장자(莊子)와 열자(列子)의 허탄한 말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의 종횡설(縱橫說)에서부터 방사(方士)들의 허망한 학설들과 신선(神仙)의 연단술(煉丹術)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인들 도(道)를 해치고 경(經)에 어긋나는 이론이 아닌 것이 없는데, 주자가 이른바 ‘이치에 가까워서 진(眞)을 어지럽히는 것’이 유독 노불(老佛)의 무리들에게만 있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대개 노불이 ‘이치에 가까워서 진을 어지럽히는 것’은 대략 들자면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우리 유학에서는 영각(靈覺)이라고 하는데 불씨(佛氏)는 원각(圓覺)이라고 하고, 우리 유학에서는 허정(虛靜)이라고 하는데 노씨(老氏)는 허무(虛無)라고 하고, 우리 유학에서는 진심지성(盡心知性)이라고 하는데 불씨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이라고 하고, 우리 유학에서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이라고 하는데 노씨는 수심연성(修心煉性)이라고 하는 따위가 이것이다.
이제 미세한 부분까지 비교해 분석하고 참과 거짓을 명백하게 분변하여 저 진짜와 사이비의 차이를 명료하게 눈앞에서 판가름 나게 하려면 그런 학설은 어디에 있는가?
[유태좌가 대답하였다.]
술(術)이 교묘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의혹되지 아니하고 말이 이치가 있으면 분변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저들이 운용(運用)을 전도시킨 잘못과 이치를 없어지게 하고 법도를 어지럽힌 죄는 도리어 다른 이단들보다 심합니다. 주자가 유독 불로(佛老)만 거론하고 다른 학설들은 언급하지 아니한 까닭은 그 또한 우리 부자(夫子)가 “정(鄭) 나라의 음악을 물리쳐야 한다.”라고만 말하고 위(衛) 나라의 음악은 언급하지 아니한 것과 같은 예일 것입니다.
위는 서(序)이다.
[序]
道統二字。卽此序之主宰關鍵也。一則曰道統有自。再則曰接夫道統。而末又總結之曰雖於道統之傳。不敢妄議。是其齗齗乎重言複言。屢致意焉者。夫豈無微意之所在。而獨於首句引起之處。乃反變文言道學者何也。道學與道統。果無同異歟。許東陽之說曰道統以有位者言。道學兼上下言。言統則學在其中。言學則統不外焉。蔡虛齋之說曰道學以講道言。道統以傳道言。道學之有成者。始得與於道統。二說之孰得孰失。亦可詳言歟。
煕洛對。舜禹授受十有六言。而萬世相承。欲接乎是統者。非是學不能。故必以道學二字。爲開卷第一義。統因學而立。學因統而傳。則虛齋所謂學之有成者始得與於道統之說。似長。
人心道心之爲儒家說叢也久矣。蓋自朱子主氣主理之說。引而不發之後。當時及門之士。已有歧異之
論。黃勉齋嘗以喜怒哀樂爲人心。仁義禮智爲道心。與李公晦貽書辨論。而其所謂喜怒哀樂之不可爲道心者。較諸朱子所謂當喜怒而喜怒者爲道心之訓。則已相去逕庭矣。夫以勉齋之嫡傳而猶如此。則况於其他乎。逮夫東儒。其說益繁。人心氣發而理乘。道心理發而氣隨者。退陶李滉之說也。人心道心同是氣發理乘。而發者卽氣。所以發者卽理者。栗谷李珥之說也。而或有幷詆二說者曰。退陶知人心道心有主氣主理之分。而獨不知理與氣之渾融無間。元不相離。故理發氣隨之說。失之名言之間。栗谷知人心道心之同是氣發理乘。而獨不知發之之時已有理乘氣氣寓理之不同。故於爲人爲道之間。未能分明劈破。是數說者。胥相甲乙。聚訟不已。而至于今四七人道之辨。浩如烟海。莫可窮詰。果可以反復討論。而歷辨詳覈耶。
錫中對。勉齋之以喜怒哀樂爲人心。以仁義禮智爲道心。與文純公臣李滉四七之說。旨意雖殊。而下語略同。文純四七之說。則奇大升已獻議發難。而至於理氣互發之說。則先正臣李珥又懼其有理氣二物心性二本之病。故曰人心道心。同是氣 發理乘。而發者卽氣。所以發者卽理也。其曰同是氣發理乘則非二物也。其曰發者卽氣。所以發者卽理則又非一物也。文成豈無所見而倡之乎。然而或說二條。乃欲幷詆退栗。則其亦未之思矣。奇大升四七之論。文純旣捨己見而從之。則若使文成之此說。及於文純在世之日而叩之於函丈之間。則又安知文純不捨己見而從之乎。
東儒之說曰。人心而不流私欲。合於義理。則人心亦道心。道心而爲氣所掩。不能直遂。則道心亦人心。又有訾其說者曰。人心雖合於義理。而此特人心之聽 命於道心者。不可便喚作道心。道心雖不能直遂。而此特道心之不中節者。不可便喚作人心。二說之中。何者爲得歟。由前之說則人心道心。相爲終始。而一念之間。公私錯雜。得不幾於囫圇紛糾之病。由後之說則人心道心。截有界限。而性有二發。情有二本。亦無近於支離分裂之譏歟。不然而外是二說。拈出眞解。則將如何立說而可。
絢對。朱子曰道心爲主。則人心亦化而爲道心矣。又曰有道心而人心爲所節制。則人心皆道心也。臣愚以爲人心旣化而皆爲道心。則便喚作道心。
無不可矣。
危者安之反。微者著之反。人心惟危則道心之安可知矣。道心惟微則人心之著可知矣。然則聖人之不以安對危。以著對微。而却以危與微對說者。豈亦互文以見意歟。抑別有義意在歟。程子曰人心惟危人欲也。道心惟微天理也。道心之爲天理。固無間然。而人心之爲人欲則尙有可疑者。蓋飢而思食。渴而思飮。掐則覺痛。抓則覺癢。卽聖凡之所同。而朱子所謂雖上智不能無人心者也。豈可以人心直歸之人欲哉。且周濂溪嘗以孟子寡欲之訓。謂猶有未盡。曰寡
之又寡。以至於無。今若謂人心卽是人欲。則是將絶去之不暇。又豈但曰危而已乎。是以語類有曰人心本無不善。又曰危未便是不好。此可見朱子之微意。而及其爲延和殿奏箚則又却以人心爲人欲者何也。同出於朱子。而有此參商。將誰使之折衷哉。
勉昇對。以安對危。以著對微。則善惡之幾。於何看得。精一之工。於何做去。朱子釋程子人欲之訓曰。人欲也未全是不好。謂之危者。欲墮未墮之間也。其延和之箚謂之人欲者。亦以是歟。然李文成嘗以爲朱子晩年定論。不以人心爲人欲。臣於是無間然矣。
精一執中。或謂之用上工夫。或謂之兼體用工夫。當以何說爲正耶。未發之時。一理渾然。而人心道心之分。必在五性感動之後。則用上工夫之說。定是不易之眞詮歟。省察爲已發後工夫。存養爲未發時工夫。而爲學之道。必貴乎貫動靜該本末。則抑當以兼體用之說。爲正法眼藏歟。大抵未發之中。自子思始發之。而堯舜執中之中。孔子中庸之中。皆就事爲上說。後儒之必以精一執中。專屬之用上工夫者此也。然而達道之行。必由於大本之立。則事爲之得其中。亦豈無所本而然哉。且夫常人之心。方其泯然無覺之際。或未免昏昧駁雜之病。則雖未可謂渾然自在之中。而遽以是謂之已發則未也。苟無以提撕持敬於是時。而必待已發然後始用精一之工。則是將已發以前。一任其昏昧駁雜。而湛然虛明之體。終無以自見。其有辨於朱子所謂貌曰僵言曰啞視曰盲聽曰聾思曰塞者。幾何哉。然朱子嘗曰未發之時。著不得工夫。又嘗論李延平之靜坐看未發氣象曰。纔下看字。便不是未發境界。則似若謂體上用工。終是推不得之論者何也。願聞其說。
奭周對。惟精者省察之工。惟一者存養之工。精屬乎致知。一屬乎持守。則致知省察。固皆動時工夫。而持守存養。豈非通貫動靜之工乎。若謂事物不交之際。全無持養工夫。則朱子所謂著工夫不得者。亦不過曰大段著工夫不得。而未嘗曰全無工夫也。
程勿齋之言曰虛靈心之體。知覺心之用。陸稼書因而演之曰大學章句以虛靈對言。則虛爲體靈爲用。中庸序文以虛靈知覺對言。則虛靈爲體。知覺爲用。是其說似矣。而證之以朱子之言。則不能無牴牾者。
朱子之答林德久書曰。知覺卽是氣之虛靈處。據此則虛靈知覺之不可分言可知矣。答潘謙之書曰心之知覺。所以具是理而發此情。據此則知覺二字之自具體用可知矣。又烏可以虛靈知覺。截然分開。而一屬之體一屬之用耶。然或有主程說者曰虛靈知覺。果無體用之分。則朱子之旣言虛靈。又言知覺者。何爲其一意而疊說也。且下文知覺不同一句之單擧知覺。豈不以體無不同。而用始有不同也乎。此說果如何。
基天對。程勿齋不識心之體段。陸稼書分析太過。恐非朱子本旨也。
知覺果何物也。察識辨別。謂之知覺。而禮智之智。亦惟曰辨是非。則知覺之知。禮智之智。果若是無辨歟。作用省覺。衆人所同。而仁知之知。非聖人不能有。則知覺之知。仁知之知。果有所不同歟。朱子曰心者人之知覺。則知覺卽心也。而橫渠以爲合性與知覺爲心。則知覺又不足盡此心之體矣。朱子曰知者心之神明。則知覺卽神也。而濂溪嘗云神發知矣。則知覺又不過爲神明之用耳。較絜乎同異之分。參互乎論辨之間。而左掣右礙。可疑如是。何以看則爲得耶。欲聞明的之論。
台佐對。知覺二字。形容此心之妙。而禮智之智。以性言。知覺之知。以心言。仁知之知。以德言。察識辨別。彼此雖同。而四德之具。理氣之合。有所不同矣。作用省覺。聖凡雖均。而天理之明。氣稟之昏。有所相遠矣。朱子指此心之在人者言。張子指此心之所由來者言。心字知覺字。上下互易。而所以爲心爲知覺一也。朱子以知覺之在我者言。周子以知覺之所由本者言。知覺字神字。先後互換。而所以爲知覺爲神明一也。
此云必使道心爲一身之主。而人心每聽命焉。其義可詳言歟。夫心一而已。而特其所感而發者。有義理形色之不同。故純於義理者謂之道心。出於形色者謂之人心。其實非有二心也。今曰道心爲主。人心聽命。則是將有一心爲之主。又有一心爲之聽命。而位置較異。界分截然耶。且釋氏之觀心。吾儒譏之者。以其有以心觀心之病也。以心聽心。果何異於以心觀心。而朱子之言如是何也。
錫中對。朱子嘗論求放心之說曰。非以一心求一心。知求則心便在。臣亦曰只知爲主則便已聽命 矣。必借得一主一聽之名目。以言其義理之心。常能勝形氣之私也。非謂以彼心聽此心。則釋氏之以心觀心。不可比論於此矣。
此云天命率性。道心之謂也。性與心。果若是無別。則王陽明心卽理心卽道之說。又何爲而羣起共詆之也。大抵江西一派之沉溺於頓悟之說。卒未免葱嶺氣味者。政坐乎認心爲性。而羅整菴諸儒之鰓鰓大呼斥彼之誤者。亦惟曰心性無別而已。如使彼之桀黠者。借是說爲依據曰。心卽理心卽道。朱子之所已言云爾。則將何以置對。是必有似同而實異者。盍各
言其素講者。
得魯對。道心之道。卽率性謂道之道。而原於性命之正也。故此云天命率性則道心之謂也。蓋謂道心合乎理。與天命率性。同一理也。而非謂心與性無分別也。固曰天命率性則道心之謂也。而何嘗曰天命率性則心之謂也哉。
孟子之受業子思。其說不一。史記謂受業於子思門人。孔叢子謂親受業於子思。而趙岐,王劭則主孔叢子之說。司馬貞,孔穎達則主史記之說。今攷年表。魏惠王三十五年孟子至梁。哀王七年燕人叛齊。而孟
子以是時在齊。距孔子後一百六十年。距子思後亦不下百餘年。則史記所謂受業門人。似是實傳。而或謂子思門人未聞有顯名於後者。當以親受業之說爲正。此果有旁引之曲證。可破紛紜之說者耶。博雅者。其各無隱。
得魯對。子思卒於周威烈王二十二年丁丑。孟子生於周烈王四年己酉。孟子之生。在於子思卒後三十餘年。則從史記者亦有據矣。孟子曰予私淑諸人。若親炙於子思。則其言豈若是耶。
自夫吾道失傳。而異言之喧豗也久矣。申韓之功利。孫吳之權謀。莊列之謬悠諔詭。衍儀之縱橫捭闔。以至方士迂誕之說。神仙黃白之術。安往非害道畔經之論。而朱子所謂近理亂眞者。獨在於老佛之徒者何也。蓋老佛之近理亂眞。略擧之有四。吾儒曰靈覺。而佛氏曰圓覺。吾儒曰虛靜。而老氏曰虛無。吾儒曰盡心知性。而佛氏曰明心見性。吾儒曰存心養性。而老氏曰修心煉性之類是也。今欲較析乎秒忽之間。明辨乎眞僞之分。而使夫莠苗紫朱之別。瞭然莫逃於心目。則其說安在。
台佐對。術不巧則人不惑。言有理則辨愈難。彼顚
倒運用之失。滅理亂常之罪。反有甚於諸說。朱子所以獨擧佛老。不及諸說。其亦吾夫子特言放鄭聲。而不及衛者例耶。以上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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