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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북한산성 입구 → 가사당 암문 → 부왕동 암문 → 청수동 암문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 백운동암문(위문) → 북문 → 서암문(시구문) → 대서문 → 북한산성 입구'의 15km, 8시간 코스를 환종주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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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北漢山]
높이: 837m
위치: 서울특별시 도봉구
북한산국립공원은 15번째 국립공원으로 1983년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8.5㎢,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 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 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 정상에 서면 맞은편의 깎아 지른 듯 인수봉이 서 있다. 국망봉, 노적봉 등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있음은 물론 도봉, 북악, 남산, 남한산, 관악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모두 눈앞에 들어온다. 시계가 넓은 날에는 서쪽으로 강화도, 영종도 등 서해상의 섬들도 볼 수 있다.
백운봉 서쪽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은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다. 주 능선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대성능선 및 형제봉능선이, 북쪽으로는 숨은벽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능선 등이 뻗어 내린다.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있어 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진흥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비봉에는 복사본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산 명칭
북한산은 백운봉(백운대 836m), 인수봉(810m), 국망봉(만경대 800m) 세 봉우리가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데서 유래해 고려 시대부터 근대까지 1000여 년 동안 삼각산이라 불려 왔다. 1915년 조선 총독부가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북한산이란 명칭이 공식화됐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한강 이북의 서울지역을 가리키는 행정구역명인 '북한산'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둥 말 둥 하여라.” 병자호란 때 김상헌(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읊었던 그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공식문서와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서울 강북구는 2003년 10월 백운봉 등 3개 봉우리가 있는 지역이 삼각산이란 이름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서울시와 중앙정부에 명칭복원을 건의하고 '삼각산 제 이름 찾기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삼각산 제 이름 찾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기 명산 [3위]
국립공원 북한산은 수려한 경관과 문화유적 등이 많고 산행코스와 기점이 다양하여 도시민들의 휴식처로 사계절 두루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최고봉인 백운대를 위시하여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경관이 수려하고 도시민들의 휴식처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북한산성, 우이동계곡, 정릉계곡, 세검정계곡 등이 유명.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수많은 고찰이 있다. – 한국의 산하
코로나 19 판데믹 직전 마지막 등산방 공식 산행이었던, 2월 일요 정기산행은 포천 국망봉에 도전했었다[산행기]. 쉽게 오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국망봉 도전은 실패하고 신로봉에 만족해야 했던 산행이지만. 그 산행에서 3월 일요 정기산행으로 오랜만에 북한산에 오르기로 했다. 2월 4주 차 토요 정기산행이 숨은벽 코스라, 그와는 다른 12 성문 종주로.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정부의 권유에 따라 등산방 차원의 공식적인 산행은 무기한 연기했다. 물론 등산방이 아니라 개인적인 산행은 계속했다.
모든 공식 산행이 취소 또는 연기되는 바람에 3월 일요 정기산행 북한산성 12 성문 종주도 취소했다. 그런데 한 번도 12 성문 종주에 도전해 보지 못한 몇몇 동무는 그 산행에 기대가 컸었던 거 같았다. 번개로 친구 몇이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12 성문 종주 얘기가 나왔고, 나는 기억이 없지만, 내가 가이드를 하겠다고 했다는 거다.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다. 기억이 나든 아니든 가이드를 하겠다고 했으면 해야지! 해서 3월 21일 토요일 몇몇 친구가 모여 북한산성 12 성문 종주에 도전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9월 16일 정기산행으로 했던 종주 산행[산행기] 이후 2년 만이다. 그때와 차이를 두기 위해 이번에는 의상봉에서 시작해 원효봉으로 하산한다.
비정기에 일요 산행이라 생각보다는 적은 순희 누님, 홍 원장, 주행, 영한, 흥수에 나를 포함 총 6명이 함께할 예정이었다. 늘 고민하는 점심은 산불통제 기간인 만큼 버너를 사용하지 않는 간단한 김밥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만, 그래도 잘 먹어야 한다는 모토에 맞게, 따듯한 콩나물국과 파김치, 달래장을 따로 용기에 담아 디팩에 넣었다. 물론 위스키와 비상식도. 그리고 대조 시장을 지나다 족발을 사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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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에 북한산성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만큼 평소보다 늦은 7시 30분경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8시 30분이다. 이번 산행인 12 성문 종주는 의상능선 암릉이 가장 험하고 힘든 코스인 만큼 등산화도 미리 준비해둔 5.10을 신었다. 대조시장을 지나며 족발을 찾아보았으나 10시나 되야 준비가 된다는 안내문만 보일 뿐이었다. 해서 대안으로 삼오순대의 수육을 사 배낭에 넣었다.
8시 50분경 도로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북한산행 버스를 기다리며 텔레그램을 보니, 영한은 기상이 늦어 별로도 합류하겠다는 글을 남겼고, 홍 원장은 일이 생겨 참여하지 못한다는 글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순희 누님, 주행, 흥수, 나 네 명이 2년 만에 12 성문 종주에 도전하는 게 된다. 9시가 좀 넘어 도착한 북한산행 버스에 탈 때만 해도 빈 자리가 많이 있었는데, 연신내 버스 정류장에서 수많은 등산객이 타 거의 움직이기 힘든 콩나물시루로 바뀌었다. 세계적인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거의 도로가 텅 비고 산악회는 성원을 채우지 못해 산행을 취소하는 마당에 가까운 산행지는 만원이다. 그걸 보고 든 생각이 차라리 장거리 산행의 산악회가 더 안전하다는 거였다. 최소한 산악회 버스는 서로 몸이 닿는 경우는 없는데.
만원 버스를 타고 9시 26분 북한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거의 승객의 70%가 내렸다. 나도 버스에서 내려 약속 장소인 들꽃 식당을 향해 갔다. 코로나 19 덕인지 날은 화창하고 맑아 시야는 더없이 좋았다. 등산객 무리의 뒤를 따라 산성 쪽으로 가자, 저 멀리 보이는 식당 입구에 순희 누님과 주행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식당 앞으로 가 인사를 하고 흥수를 기다렸다. 좀 있으니 흥수가 전화해 산성 입구로 오라고 했다. 우리가 대화하느라 한눈판 사이에 우리를 지나쳐 올라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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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를 쫓아 산성 입구로 올라가며 등산 앱을 켰다. 2년 만의 12 성문 종주의 시작이다. 김밥을 사고 오는 흥수를 만나 같이 산행을 시작해 9시 42분에 의상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다른 해보다는 의상봉을 오르는 등산객이 적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의 등산객이 의상봉을 향해 같이 올랐다. 우뚝 솟은 의상봉을 향해 올라가 의외의 모습에 놀랐다. 진달래였다. 진달래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생강도.
원래 의상봉은 산성 입구에서 보면 우측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위압감이 대단하다. 당연히 워밍업도 없이 그걸 오르는 건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의상봉 갈림길에서 의상봉 정상까지는 1.2km에 불과하지만, 급경사의 암벽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공단에서 안전시설과 계단을 많이 설치해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뒤에 쳐져 의상봉 정상의 첫 번째 휴식처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주행과 흥수가 앉아 쉬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남아 있던 막걸리를 비우고 누님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더 올라가 주변을 구경했다. 건너 삼천사에서 올라오는 리지에는 많은 등산객이 몰려있었다. 과거에 나도 저기를 지나 용출봉에 올랐던 적이 있지만, 내가 알기로 비법정임에도 저렇게 많은 등산객 모여 있다는 거에 감탄했다. 과거에는 그 봉우리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까먹었다. 어쨌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봉우리고 등산로다. 이유는 들머리가 군부대 유격장이라!
시야가 넓고 날이 화창해 주위에 보이는 전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저 멀리 우리가 가야 할 백운동암문 과거에는 위문이라고 불렸던 암문이 보일 정도였다. 당연히 그 너머 오봉도 손에 잡힐 듯했다. 백운대와 암문, 만경대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이번 산행 처음이자 마지막 단체 사진이다- 도봉산 오봉을 배경으로도 각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의상봉 정상에 11시 7분에 도착했다. 5시 48분경 의상봉 갈림길을 떠났으니 1시간 20분가량 걸렸다.
의상봉 정상에서 우리가 가야 할 용출봉의 위압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번 종주 첫 번째 문인 가사동암문을 향해 내려갔다. 물론 바로 아래로 보이는 국녕사의 거대 좌불도 구경하며. 11시 16분에 가사동암문에 도착했다. 이번 12 성문 종주는 주행이 요청해 흥수와 내가 안내를 하는 산행과 다름없었다. 내가 아는 한 북한산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코스가 12 성문 종주라 언제 다시 시도할지 몰라 이번에 주행을 데리고 꼭 12 성문을 방문하리라 결심한 상태였다. 그 중 첫 번째에 도착한 거다. 남은 문은 11개!
다음은 내가 의상능선에서 두 번째로 힘들게 생각하는 용출봉에 올라야 한다. 그리고 11시 32분에 용출봉에 올랐다. 용출봉에서 비봉능선의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을 구경하고 사진으로도 남긴 후 다음 봉우리인 용혈봉을 향해 갔다. 그런데 북한산 주능선 동장대 아래로 과거에 못 보던 건물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절 같은데, 과거에는 본 기억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북한산성을 비롯한 유적이 발굴되고 다시 지어지면서 덩달아 과거의 절도 복구되고 있는 듯하다.
용출봉을 떠나 11시 44분에 용혈봉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용혈봉을 떠나 11시 53분에 증취봉에 도착했다. 주행이 쉽지 않은 암봉 세 개를 넘어야 두 번째 문인 부왕동암문에 갈 수 있다고 투덜거렸다. 해서 저 멀리 보이는 주능선을 가리키며 우리가 가야 할 저기는 두 봉우리 사이에 문이 두 개, 세 개씩 있다고 위로의 말을 해줬다. 앞에 보이는 나월봉의 암벽을 사진으로 남기며 부왕동암문을 향해 내려갔다. 우리가 용출봉을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순희 누님과 헤어져 누님은 의상능선에 집중하고 우리는 12 성문 종주에 집중하기로 했다. 상황에 따라 누님은 중간에서 하산할 수도. 따라서 용출봉부터는 주행, 흥수, 나 이렇게 셋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수시로 누님과 통화를 하며. 그 시점에 영한도 산성입구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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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취봉을 내려가 12시 3분에 부왕동암문에 도착했다. 두 번째 문이다. 남은 문은 10개! 인증을 찍은 후 바로 나월봉에 올랐다. 매번 나한봉과 나월봉이 헷갈리지만, 앞에 있는 게 나월봉이 맞다. 의상능선에서 나월봉에 오를 때면 아주 특별한 경우-요원이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금줄을 넘어 암릉에 올라 나월봉 정상으로 갔다. 그런데 그 금줄이 있는 곳에는 등산객 한 팀이 점심을 먹고 있었고, 요원은 없었다. 단독이나 흥수와 둘이었다면, 바로 금줄을 넘었을 테지만, 흥수는 앞서갔고 주행과 둘이라 넘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산행은 나월봉 암릉이 목적이 아니라 12 성문이 목적이라 설악의 공룡보다 더 좋은 나월봉의 암릉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월봉 암릉을 우회하는 순간 좌로 보이는 삼각산을 구경하며 그냥 빠르게 전진하는 거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렇게 전진하다 나한봉 직전에서 밑에서 올라오는 흥수를 만났다. 우리보다 훨씬 앞에서 전진하고 있는 줄 알았던 동무가 밑에서 올라오다니! 흥수 말에 따르면 갈림길에서 실수로 밑으로 향하는 길로 갔다가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올라오는 길이라고. 어쨌든 다시 셋이 나한봉에 오르자 조선 시대 군 막사가 있었던 평평한 정상에는 두 팀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정상에서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비봉능선의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을 감상하고 다음 목표인 715봉을 향해 성벽을 따라 내려갔다.
쇠줄로 안전시설을 만든 715봉 리지에는 한 무리의 등산객이 나한봉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의상능선을 지날 때면 늘 삼각산 사진을 찍는 명당에는 그 팀의 등산객이 번갈아 자리를 잡고 앉아 인증을 찍고 있었다. 나야 또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무리의 인원이 많아 그들이 다 내려온 다음 올라가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들을 피해 안전시설이 아닌 리지로 바로 위로 올라갔다. 그들이 다 지나고 그 자리에 주행을 세우고 인증을 찍어주려 했지만, 주행이 거절해 가까운 위치에서 찍는 거로 만족했다.
12시 47분에 의상능선의 끝이라 할 수 있는 715봉에 도착했다. 의상능선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임에도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이름을 가지지 못한 봉우리다. 715봉과 문수봉 사이에 청수동암문이 있다. 부왕동암문과 청수동암문 사이에 나월봉, 나한봉, 715봉의 세 암봉이 있었다. 세 암봉이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고 오르기 쉽지 않아 따로 문을 두지 않았을 거다. 바로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 인증을 찍었다. 그 시각이 12시 53분이다. 우리가 방문해야 할 12 성문 중 세 번째 문으로 남은 문은 9개!
청수동암문을 떠나 문수봉을 향해 갔다. 시각은 내가 예상한 대로 1시가 가까웠다. 문수봉이 코 앞이고 점심시간을 지난 시각이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점심 식당으로 적당한 곳을 머릿속에 그리며 문수봉을 향해 가고 있는데 큰 바위 뒤에 서너 명이 앉아 식사할 만한 공간이 보였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싸 온 먹거리를 꺼냈다. 그래 봐야 사 온 김밥과 수육, 막걸리와 주행이 만든 빨갱이가 다였지만.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다가 흥수가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내는 순간 홍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난 뜨거운 콩나물국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산행이 끝나고 깨달았으니, 뭐. 김밥과 삼오순대 수육과 홍어를 안주로 주행제 빨갱이, 흥수가 가져온 막걸리를 마셨다. 배가 불러 결국 수육은 남겨와 길냥이에게 줘야 했고, 내가 들고 간 위스키는 뚜껑도 열어보지 못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 후 문수봉으로 갔다. 그리고 건너편 보현봉에 있는 10여 명의 등산객을 보고 놀랐다. 저기도 비법정 구간으로 오르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시각에 10여 명의 등산객이라니, 과거에는 들머리에 요원이 지키고 있어 감히 오르고자 시도조차 할 수 없던 곳인데. 삼천사 뒤 봉우리, 나월봉, 보현봉! 공단이 감시를 중단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수봉에서 보현봉과 비봉능선을 감상하고 네 번째 문인 대남문을 향해 내려갔다. 내려가고 있는데 기계음 소리가 들려 드론인가 하고 고개를 드니 대남문이 공사 중이었다. 대남문을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중이라고. 그 공사 때문에 대남문을 통과할 수는 없었고, 등산객을 위해 임시로 성벽 위로 데크를 설치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어쨌든 네 번째 문인 대남문에 1시 46분에 도착했다. 남은 문은 8개!
그런데 대남문부터 위문까지는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위문 등 총 6개의 문이 있다. 거리는 의상능선과 비슷하지만, 문의 숫자는 배가 넘는다. 그만큼 산세가 평이해 접근이 쉽다는 거다. 암봉 세 개를 넘어야 문이 있는 의상능선과는 달리 봉우리 사이에 문이 두 개씩 있는 경우다. 대남문을 떠나 1시 58분에 대성문에 도착했다. 문 하나 사이가 10분도 안 된다는 얘기다. 다섯 번째 문이다. 남은 문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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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시 19분에 보국문에 도착했다. 이건 20분 거린가? 여섯 번째 문이다. 남은 문은 6개! 딱 반이다. 그리고 칼바위능선 갈림길을 지나 2시 34분에 대동문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12 성문 종주에 모든 걸 건 주행이 셀카로 인증하며 각 문을 지나왔지만, 여기는 셋이 인증을 남겨야 할 거 같아 삼각대를 설치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일곱 번째 문이다. 남은 문은 다섯! 그리고 원래 대동문에서 용암문까지는 성벽을 따라가야 하지만, 덕장봉을 오르는 코스라 공단에서 우회하는 등산로를 만들었다. 주행과 흥수는 우회로로 가고 나는 정석대로 성벽을 따라 전진해 매번 이게 뭘까 고민하는 덕장봉 정상의 제단에 도착했다.
덕장봉과 시단봉의 위치에 관해 등산객 사이에 의견이 구구하지만, 국립공원에서 제작한 북한산 등산 지도에 의하면 제단이 있는 봉우리가 덕장봉이고, 동장대가 있는 봉우리가 시단봉이다.
덕장봉을 떠나 동장대가 있는 시단봉을 향해 가니 동장대 주변에서 주행과 흥수가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덕장봉을 내려와 동장대가 있는 시단봉을 향해 성벽을 따라 오르는데 초등 2~3학년으로 보이는 딸내미와 같이 온 아빠가 시단봉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길이 좁아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에서 길을 비켜준 후 시단봉에 올라 주행과 흥수와 다시 만났다. 시단봉에서 건너로 보이는 행궁터를 살펴보니 기반 공사는 끝났고, 건물만 세우면 되는 거로 보였다. 기어이 행궁을 복원할 생각인 거 같다.
우리를 포함 대여섯 명의 등산객이 동장대 주변에 흩어져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으며 휴식하고 있는데 내가 올라올 때 내려갔던 모녀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한 등산객에게 물이 있으면 딸내미에게 좀 달라고 부탁했다. 아쉽게도 그 등산객은 물은 없었고, 과일즙을 가지고 있어 사과즙 두 개를 꺼내 딸내미에게 주었고, 옆에서 보고 있던 주행이 물을 꺼내 모녀가 마음껏 마실 수 있게 제공했다. 어쨌든 시원하게 목을 축인 두 모녀는 용암문을 향해 갔고 우리는 조금 더 쉬다가 용암문을 향해 하산했다.
전면에 펼쳐진 용암봉과 만경대, 그리고 오봉과 도봉산의 절경을 구경하며 내려가 3시 13분에 용암문에 도착했다. 여덟 번째 문이다. 남은 문은 백운동암문, 북문, 서암문(시구문), 대서문 4개! 노닥거릴 이유도 없어 인증만 찍고 바로 출발해 3시 29분에 노적봉 아래에 도착했다. 노적봉이 출입금지라 등산 앱은 이곳을 노적봉으로 쳐준다. 그곳에서 5분간 쉬기로 하고 물을 마시고 복장 등을 재정비한 후 다음 문인 백운동암문을 향해 출발했다. 일제가 위문이라고 이름 붙인 문을 향해.
대서문이야 별거 아니니 우리의 최종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원효봉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만경대 8부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백운동암문을 향해 갔다. 지난 산행 시 한창 공사 중이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등산로가 데크가 설치되어 위험도 줄었고 산행하기도 좋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짜증 났지만. 투덜거리며 계속 길을 가 12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백동운암문에 3시 53분에 도착했다. 아홉 번째 문이자 최고 높은 문이다. 남은 문은 3개! 남은 문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종주의 완성이다. 그냥 셀카 인증으로 끝낼 상황이라 아니라 삼각대를 설치한 후 등산객이 없는 틈을 타 주행의 12 성문 종주 클럽 가입을 축하하는 사진을 찍었다.
백운봉암문을 떠나 10번째 문인 북문을 향해 내려갔다. 내려가는 중에 저 멀리 보이는 한강과 서해를 사진으로 남기며. 북한산성 입구에서 백운대를 오르는 주 코스의 길은 등산이나 하산이나 쉽지 않은 길이다. 특히 하산이 더 힘든 코스다. 그 길을 따라 원효봉을 향해 갔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정상적으로 성벽을 따라 움직이려면 백운대에 올라 능선과 성벽을 따라 염초봉으로 가야 하지만, 염초봉 암벽이 워낙 위험해 암벽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라 어쩔 수 없이 우회해야 한다. 길을 잘 모르는 초보자는 등산로를 따라 마냥 내려가다가 원효봉 갈림길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선택하는데 그럴 경우 마지막 지옥을 맛보게 된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대동사 일주문?이 나오고 일주문을 지나 대동사에 도착하면 상운사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절 간 이어지는 길을 따라 상운사로 가면 원효봉에서 상운사로 오는 정규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원효봉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그 길을 따라 100여 미터만 올라가면 북문이다. 그렇게 올라 4시 51분에 열 번째 문인 북문에 도착했다. 남은 문은 둘!
북문에 막 도착했을 때 순희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뒤풀이 장소인 들꽃식당에 도착했고, 닭은 한 시간 정도 걸리니 미리 주문할까 묻는 거였다. 순희 누님과는 용출봉 아래에서 헤어졌고, 우리가 대동문에 도착했을 때 누님은 대남문에 도착해 어디로 하산할지 묻는 전화를 했었다. 주변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대남문에서는 구기동으로 하산해야 한다는데 맞는지. 당연히 틀리고 구기동 쪽은 길이 좋지 않으니 중성문으로 난 큰길을 따라 하산하신 다음 들꽃식당에서 만나자고 얘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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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원효봉 정상까지는 200m! 150여 미터를 올라가자 널찍한 바위가 나오고(물론 원효봉이 암봉이니), 거기서 쉬고 있는 등산객 몇이 보였다. 그리고 전면으로는 석양에 빛나는 백운대와 만경대가 있었다. 거기서 5분만 누워서 절경을 감상하자는 주행을 정상에는 더 넓은 곳이 있으니 거기서 쉬자고 달래 계속 올라가 5시 3분에 원효봉 정상에 도착했다.
이 페이스라면 6시까지 약속 장소인 들꽃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효봉 정상에는 가족 단위의 등산객이 있었고, 일몰 시각에 맞춰 다들 하산하고 있었는데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으로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온 엄마가 아이들과 간식을 먹고 있었다. 복장이나 모든 게 등산할 차림은 아닌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지만, 알아서 잘할 거로 생각하고 정상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시구문을 향해 갔다. 문제는 내려가는 내내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랜턴을 주고 올 걸 그랬나 후회했다는 거. 사고 소식이 없는 거로 봐서 무사히 내려온 듯하지만.
원효봉에서 서암문 쪽으로 하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바위를 넘어야 한다. 물론 그 바위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이 있고 철봉을 박아 연결한 안전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불어 몸이 흔들리자 그 공포가 더했다. 그 바위를 넘어 원효암을 지나 5시 38분에 열한 번째 문인 시체가 다니는 문이라 시구문이라고도 불리는 서암문에 도착했다. 남은 문은 대서문 하나! 정규 등산로는 시구문을 지나 효자리로 내려가지만, 우리는 12 성문이 목표라 대서문으로 가기 위해 아미타사를 향해 방향을 좌로 틀었다. 북한산을 잘 아는 등산객은 효자리에서 시작해 원효봉에 오른 후 북한산성 입구로 하산하는 가족 단위의 산행을 많이 한다. 빠르면 3시간 반. 느리면 5시간 코스다!
아미타사를 향해 방향을 바꿔 5시 45분에 절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물이 떨어져 갈증이 심한 상태였던지라 먼저 물을 배가 부르도록 마신 후 아미타사를 구경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12 성문 종주 시에는 꼭 들리는 절이라 새로운 것도 없다. 이제 길은 차량이 통행하는 포장도로다. 물론 출입이 허가된 차량만 다닌다. 절이나 국립공원 내에 집이 있는 사람, 그리고 공단 차량. 포장 도로인 만큼 남은 구간은 시속 4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달려 6시 정각에 마지막 성문인 대서문에 도착했다. 흥수나 나는 몇 번째 종주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주행은 12 성문 종주 클럽에 가입하는 순간이다. 휴식 빼고 종주에 7시간가량 걸린 거 같다. 축하할 일이다! 대서문을 배경으로 마지막 인증을 남기고 누님과 영한이 기다리는 들꽃식당을 향해 갔다. 그리고 6시 10분에 사실상 종주의 시작이랄 수 있는 의상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9시 42분에 시작했으니 휴식 포함 8시간 28분이 걸려 한 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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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봉 갈림길을 떠나 이번 종주의 출발점이자 종점인 들꽃식당에 도착한 시각이 6시 22분이다. 내가 예상한 6시보다 22분이 늦었다. 내 생각보다 아미타사에서 산성 입구까지 멀다는 얘기다. 식당에 도착하니 누님과 영한은 부추전으로 끼니를 때우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주문한 백숙이 나왔다. 이 백숙은 원효봉 정상을 떠날 때 누님에게 주문해 달라고 요청했던 거였다. 먼저 소맥 두 잔으로 주행의 12 성문 종주 클럽 가입을 축하함과 동시에 갈증을 해소했다. 그리고 백숙과 부추전을 안주로 빨갱이를 계속 마셨다.
영한이 가족 행사가 있어 먼저 일어나고 다음으로 누님이 떠났다. 그리고 북한산에 홀로 등산을 왔던 친구가 동참해 같이 빨갱이를 마신 후 8시 20분경 뒤풀이를 파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거로 이번 북한산 12 성문 종주 산행을 마쳤다. 그런데 집에 와서 확인한 사실은 내 지갑이 없어졌고, 손등에는 나도 모르는 상처가 있다는 거다. 이 상처는 뒤풀이 장소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만, 언제 생겼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이번 산행에 상처 날 만한 상황이 없었는데. 그래서 깨닫지 못했을 거고.
계획대로 '(북한산성 입구) → (의상봉) → 가사당암문 → (용출봉) → (용혈봉) → (증취봉) → 부왕동암문 → (나월봉) → (나한봉) → (715봉) → 청수동암문 → (문수봉) → 대남문 → 대성문 → (성덕봉) → 보국문 → 대동문 → (덕장봉/제단) → (시단봉/동장대) → 용암문 → (용암봉) → (노적봉) → (만경대) → 백운동암문(위문) → 북문 → (원효봉) → 서암문 → 대서문 → (북한산성 입구)'의 15.86km(트랭글 기준), 8시간 46분의 북한산성 12 성문을 환종주했다. 이동 7시간 23분, 휴식 1시간 23분!
북한산 12 성문 종주는 대부분 원효봉에서 시작했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의상봉에서 시작한 거는 처음이다. 아, 물론 의상봉에서 시작한 경우는 몇 번 있지만, 다 중도에서 포기했다. 그런데 원효봉 시작보다 모든 면에서 더 좋았다는 게 이번 산행의 솔직한 느낌이다.
세계를 혼란으로 빠트리고 있는 코로나 19 덕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세먼지가 거의 없어 시야가 대단히 넓었고, 가끔 바람은 강했지만, 날씨가 화창해 이런 전망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하며 즐기는 조망이었다.
힘들지만 꿋꿋이 종주를 마치고 12 성문 종주 클럽에 가입한 주행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첫댓글 너와 흥수에게...
안전하고 재밌게 잘 이끌어줘 고맙다.
그런데 지갑은 어디서 흘렸냐?
내일 점심 먹으러 들꽃으로 와라
거기 있다는 거 확인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