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장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설교
오늘부터 매일성경으로 전도서를 살펴보게 됩니다. 전도서는 다른 시가서, 지혜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쳐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방법과 뜻을 따라 인간답게 살아 보려고 애쓰죠. 누구에게나 나름의 지혜와 방법이 있는 겁니다. 그러는 우리에게 전도서는 우리의 모든 지혜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이 없이 하는 일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이 계신다면 가치 없어 보이는 삶도 어떤 삶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삶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전도서를 세례요한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삶의 해답을 찾아보려는 모든 시도를 다 버리게 하고,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시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목욕을 하듯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하고 회개하게 하는 성경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전도서를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서 1장 1절에서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도서를 쓴 사람은 많은 것을 누리고 가져보았지만, 모든 것이 덧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나라를 지혜롭게 다스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부와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과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먼저, 잠언에서는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정확히 밝혔는데 전도서에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또, 전도서를 쓴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 보면, 솔로몬의 시대와 조금 다릅니다. 솔로몬이 누리던 부위와 영광은 사라진 시대였고,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고 있었고, 이방인이 폭정을 하던 시대였고, 죽음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여겨지기도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학자들은 솔로몬이 우상숭배에 빠졌다가, 말년에 마음을 돌려서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럴듯하긴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솔로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 정도만 참고해 주셔도,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않고 전도서를 묵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을 보시면, 전도서를 쓴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가르칩니다. 전도서에서 ‘헛되다’는 말이 정말 많이 나오죠. 이 헛되다는 말은 바람이나 수증기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전도자는 인생이 이런 바람과 같다, 수증기 같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마치 수증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이고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전도서는 이처럼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시작했고, 3절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한가?” 이 질문을 계속 반복하면서, 전도자는 답을 찾아갈 것입니다. 이 질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지혜가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지혜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일반적인 지혜는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13절 보시죠.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여 살폈다.” 살펴보니, 어떻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은 괴롭고, 수고로운 것이더라고 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달콤하고 즐겁기만한 것이 아니라, 아주 괴롭고 수고롭고 힘든 것이라는 말이죠.
16절 보시면, 이 전도자는 자기가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혜를 많이 가져봐도, 수고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한지, 인생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서, 17절을 의미를 살려서 번역해보면, 무엇이 지혜로운 삶인지, 무엇이 어리석고 미련한 삶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 역시도 바람을 잡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지혜도 인생의 신비를 풀기에는 소용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18절에서,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사람은 지혜로워지면, 지식이 많아지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인생의 신비를 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매일 성경 해설에서 써 놓은 대로, “지혜는 삶이 수고롭고 괴롭다는 것을 알게 하지만, 그 고통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게 하기에 근심을 더합니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나은 기술이 우리 인생에 해답을 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오늘 전도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성도 여러분, 전도서를 묵상하실 때, ‘헛되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는 말 앞에 ‘하나님이 없다면’이라는 말을 넣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전도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의 모든 수고와 모든 지혜는 헛되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많은 지혜를 가지지 않아도, 인생의 모든 신비를 풀지 못해도,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자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괴롭고 수고롭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두셨습니다. 그러면 삶을 하찮게 여기고 포기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괴롭고 수고로운 삶에도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아도, 그것은 헛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화려하지 않아도,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전도서를 묵상하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