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 추락
우리는 지금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하나님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살펴봤고 이삭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야곱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 3대의 가문을 살펴볼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 야곱= 우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들이 살던 곳은 척박한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물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파는 곳마다 물이 나오는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부인을 동생이라 속이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그들은 자신의 가문을 이끌어야 하는 가장으로 애굽으로 혹은 햇족속에게 의탁하여야 하는 상황이 정말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인생에서 하나님에 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자손이 정말로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닷가에 모래같이 많아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에는 끝없는 추락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의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였습니다. 상승이 있습니다.
야곱의 아내인 레아와 라헬에게도 자녀가 없어 끝없는 질투와 반목이 거듭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아에게 그리고 라헬에게도 자녀의 복을 주십니다. 추락에서 상승의 모습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하심입니다.
그들이 추락할 때마다 재판관이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재판관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에는 인권과 긍휼함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모습에서 보면 야곱의 사다리에 야곱이 그 사다리를 통해 하나님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한없는 추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서해안 새만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잼보리 행사를 보면 큰일이 났습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주님은 오고 계십니다. 광야에는 샘물이 터집니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면 알고 있는 것이 성경에 있다 나온다고 해서 내말이 맞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오류가 됩니다. 성경을 보고 알고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는 영성인이 됩시다.
본문말씀 : 창세기 30장 17-24절
하나님이 레아의 호소를 들어 주셔서, 레아가 임신하였고, 야곱과의 사이에서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는 “내가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했습니다. 레아가 다시 임신해서, 야곱과의 사이에서 여섯 번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레아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남편이 내게 잘해주겠지”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뒤에 레아가 딸을 낳고, 그 아이 이름을 디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녀의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녀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주님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 하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말씀 선포 : 우정 : 낙하 (Friendship : Falling)
하나님 나라 백성은 주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성도의 삶에 대해서 주님 백성이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올라간다, 또는 상승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은 복된 삶, 성공의 삶으로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가 주님과 함께 살아갈 때 상승하는 것만이 아닌 낙하할 때도 있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더 나아가 주님 백성의 실패인 것 같은 삶이 오히려 더 복된 삶을 살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보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모두 낙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 모두 기근이라는 어려움을 겪으며 각각 이집트 파라오, 블레셋 왕 등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하나님과 진실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이들이 기근을 겪어서 주님을 모르거나 대적하는 이들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없어 보이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모두 낙하하는 상황을 거쳐 주님이 주시는 복을 충만히 누리며 그분과 변함없으며 더 깊어진 우정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낙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을 때는 많은 유대인이 드디어 메시아가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야웨 하나님 약속대로 다윗 왕국이 세워지고 로마 제국은 쫓겨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성전에 임재하실 것이라 기대하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어서 속히 자신들을 끊임없이 추락하는 삶으로부터 건져달라고 탄원하며 동시에 그 일을 하시는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21세기 때처럼 주후 1세기의 예루살렘이 산 중턱에 위치한 도시이기에 예언자 스가랴의 말대로 새끼 나귀를 타고 주님의 거룩한 도시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상승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 안에서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날이 저물면 먼 거리에 위치한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습니다. 형편없는 추락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추락은 만민과 온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야웨 하나님이 예수님의 생명을 지키실 수 있는 힘이 없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가 죽으셔야만 많은 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나라에서 살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까지 사울이 온 광야를 헤집고 다니며 그를 잡아 죽이고자 했지만 하나님이 다윗이 생명을 보존하다가 마침내 왕이 되도록 하시는 것처럼 주님은 자기 백성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시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주님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이들은 인생에서 낙하하는 일을 경험하더라도 그 일이 결국 자신과 모든 이의 생명을 살리시는 복된 길로 인도하는 여정임을 압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며 비참한 실패의 인생을 살고 있을 때도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 자신을 인정하며 변치 않는 우정을 나눴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자신을 다음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신호로 확신했으며, 그 뒤에 왕이 된 이후엔 요나단의 남은 아들을 그가 죽을 때까지 돌보며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타인과 나눴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깊은 우정을 나누던 예수님도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온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한 복이 될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제자들과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그분의 충성된 증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셨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 이미 바리새파 사람들은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라 갔다고 한탄했습니다. 이미 주님을 대적하던 이들을 통해 예수님이 자신의 비참한 죽음이 온 세상의 복으로서 반전 상승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21세기까지 온 세상이 예수님이 오직 유일한 구세주이시라고 고백하며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낙하는 추락이 아닙니다. 21세기 선교사 가정의 남매로서 주님이 주신 탁월한 음악의 재능을 활용하고 있는 악뮤의 이찬혁씨는 낙하라는 음악을 작년에 공개하며 사람이 아래로 뛰어내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구 반대편으로 뛰어 오르게 될 것이라는 감동을 받아 그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주님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이들은 낙하하더라도 영원히 추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국 바닥을 뚫고 위로 상승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의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14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후에 그의 가족에서 살아가던 동안 그가 받았던 호의는 적대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의 두 아내이자 자매인 레아와 라헬은 남편 야곱이 잘되는 인생을 살도록 수고하기는커녕 상대방보다 자신이 안주인으로서 더 큰 영향력을 끼치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녀들 모두 나름의 이유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들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녀들 모두가 자녀를 낳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녀들이 낙하하는 인생이 아닌 상승하는 인생, 즉 복을 누리며 살도록 야곱의 가정을 인도하셨습니다. 낙하는 낙하로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