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위한 경관(景觀)
글_주신하 교수(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경관’을 검색창에 입력해 봅니다.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풍경’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만납니다. 아름다운 경치라는 일상적인 단어의 뜻이겠지요. 조금 더 아래까지 읽어보면 ‘기후, 지형, 토양 따위의 자연적 요소에 대하여 인간의 활동이 작용하여 만들어 낸 지역의 통일된 특성’이라는 두 번째 뜻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데, 지리학에서 사용하는 조금 넓은 경관의 의미 같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초점을 둔 정의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경관법에도 경관의 정의가 있는데 ‘자연, 인공요소 및 주민의 생활상(生活相) 등으로 이루어진 일단(一團)의 지역환경적 특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서 보신 지리학적인 관점을 많이 반영한 것 같네요. 물론 조금 더 찾아보면 ‘미국 LA 한인 경관 늘었다’ 같은 경찰관을 뜻하는 기사도 쉽게 만날 수 있긴 합니다.
이처럼 경관이라는 용어는 학술적인 용어나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사용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어서 개념적으로 쉽게 정의되기 어려운 대상 중의 하나입니다. 너무 쉽게 써서 어려운 경우라고 할까요?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들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는 대상. 그래서 더 정의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경관을 한자로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경관(景觀)’ ‘경(景)’은 잘 아시는 것처럼 경치(사실 이 말에도 ‘景’자가 포함되어 있네요)라는 의미입니다. 풍경(風景), 전경(全景), 팔경(八景) 등과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는 단어들에 주로 들어가는 글자네요. ‘경(景)’자도 태양(日)이 밝게 비추고 있는 도시(京)라고 풀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멋진 볼거리라는 뜻이겠지요. 하여간 ‘경(景)’은 보이는 대상, 즉 객체에 해당하는 글자입니다. 그럼 ‘관(觀)’은 어떤 뜻일까요? 옥편을 찾아보니 ‘볼 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찰(觀察), 관람(觀覽), 관광(觀光) 등과 같은 단어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역시 ‘본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관적(主觀的), 인생관(人生觀), 관심(觀心) 등과 같은 단어에서도 ‘관(觀)’자를 사용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단순히 ‘눈으로 본다’라는 의미보다 더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대상을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체계에 가까운 느낌이지요. 감각적인 차원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는 인지와 판단이 개입되는 단계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복잡해 졌습니다만 하여간 ‘관(關)’은 보는 주체와 관련된 말인 것 같군요.
그래서 경관(景觀)은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는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보이는 대상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보는 주체가 있음으로 해서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경관의 의미 : 서울 남산 전망데크에 서울을 내려 보는 사람들의 모습
사람 사이와 관계된 모든 경관. 인문학적 경관은 사회경관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경관 - 임재해 교수(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경관 안에서 사람이 느끼는 바. 인문학적 경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 - 유현준 교수(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인문학적 경관이란 여러 유적과 지형 사이의 관계망이며 시기별 지역의 세계관
- 김권구 교수(계명대학교 사학과)
고유한 의미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장소’와 기능과 효율성을 지닌 ‘비장소’의 결합
- 정수복 작가(사회학자, 작가)
인문학적 경관이란 조경, 도시, 건축 속에서 인간성과 더불어 생활과 문화가 나타나는 경관. 경관은 사람의 욕망을 드러내는 방법
- 황상민 소장(황상민의 심리상담소)
공통의 정서를 느낄 수 있고 유사하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사람들을 조망하고 이들과 유대관계 형성하게 하는 것
- 신일기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지난 8월 1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오리사옥에서 ‘인문학적 경관형성 전문가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경제성 위주의 개발방식을 벗어나 사람과 장소가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LH와 한국경관학회가 함께 ‘휴머니티가 흐르는 인문학적 경관 형성방안’ 연구용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전문가 워크샵은 그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었죠. 저는 연구 책임을 맡고 있어서 워크샵을 기획하고 토론 진행도 했습니다. 원래는 연구진 내부 워크샵으로 진행하려고 했다가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모시는 귀한 기회라서 LH관계자와 외부 참석까지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경관분야에서의 새로운 방향제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이강문 LH 도시경관단 단장은 “그 동안 물리적 계획에 의해 시각중심의 경관이 형성되어 왔으나, LH가 미래로 갈 수 있는 인간중심의 도시계획 틀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도시에 다양한 부분을 포함시켜서 계획하고 맞춰가면서 더욱 좋은 경관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기사 링크)
앞에 언급한 인용들은 워크샵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인문학적 경관에 대한 설명의 일부입니다. 평소 경관에 대해 발표도 하고 참가도 많이 해봤지만, 이 날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경관을 이야기 한 것은 저도 처음이라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고 강조하는 바도 약간은 다르지만 중요한 키워드로는 역시 사람, 정체성, 관계, 의미, 욕망 같은 시각적인 대상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것들 이었습니다. 한 동안 건물의 위치와 높이를 조절하고, 색을 바꾸고, 간판을 정비하는 일에 나름 열심히 몰두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조금씩 도시경관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고요. 그러나 이 날 워크샵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 동안 다소 소흘하게 다루었던 사람,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경(景)’ 중심으로 경관을 다루어 왔다면, 앞으로는 ‘관(觀)’ 측면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것이죠. 원래 경관이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는 상태’라고 생각해 보면 중요한 한 쪽 축을 빠진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잊고 있었던 것인지, 눈에 보이는 대상에만 집착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경관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을 포함하는 말이었는데 말이지요.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경이든 경관이든 간에 결국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글 _ 주신하 교수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