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는 ‘내 발을 씻기신 예수’
이천 권 남짓한 장서를 전부 26사단에 보냈었다. 이제 죽을 때까지 내 곁에 둘 책은 겨우 수십 권 정도다. ‘가요’ 책들이며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색소폰 연주곡> 따위 팝송집 등등. 그리고 가톨릭 신앙에 관계되는 <성경>과 기도서도 약간 손에 집힌다. 사전류 몇 권과 심심풀이로 모아온 문학잡지 창간호…….한데 마음이 한없이 홀가분하다.
이 고백은 사실에 가깝다. 좀 부풀리는 것 자체가 죄이겠지만, 그래도 털어 놓자. 박물관에 가 있어야 할 만큼 희귀한 신앙 책들이 내게 몇 권 있는데(부산 교구 금곡 본당에 있을 때 어느 연로한 자매가 준 것이 위주다,) 그런 책들만 남기고 다른 건 버려도 아깝지 않다. 물론 개신교 성경이며 찬송가 등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며칠 새에 정말 자랑 삼아 수시로 빼어드는 건 국방부에서 발행한 <천주교 군인 성가>다. 2010년 발행한 성가집인데 비매품이긴 하지만 엄연한 국방부 재산이다. 지난 시월 어느 주일 26사단 불무리 성당에서 가져 왔다. 물론 책 값 조로 헌금을 따로 했었긴 하지만.
지난 이야기 하나 해야겠다. 정말 애지중지하던 <가톨릭복음성가>라는 책이 있었다. 그런데 천주교 부산교구 어느 노인학교에 강의를 다니다가 그만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충격이고도 남았다. 그 성가집을 통해 나는 내 목숨을 건졌으니까. 내친김에 덧붙이자. 강변이 아니다. 거기 ‘살아 계신 주’ 등 몇 곡을 죽어라 부르면서 매달렸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한데 <가톨릭복음성가>는 중고 서점에서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천주교 군인성가>를 손애 들고 이거야말로 복음이요 은총이라는 착가에 빠진다. <가톨릭복음성가>를 완전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전체 359 곡 중에서 거의 절반이 ‘생활 성가’로 꾸며져 있는 것이 아닌가! <가톨릭복음…>에서 익혔었던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바람 속의 주’/ ‘사랑의 종소리’/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우리는 사람의 띠로’ 등등이다. 나는 다시 이 성가들을 부르며 지난 십여 년 전 이미 죽었어야(?) 할 내가 목숨을 부지하는 자체를 의아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철면피라는 자책인들 왜 하지 않으랴! 돌이켜보면 慘慽까지 겪은 내가 아닌가?
그런데 정말 주님의 역사하심을 들먹이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생활 성가가 <천주교 군인성가>에 수록되어 있으니, 바로 저 유명한 신상옥 안드레아의 ‘내 발을 씻기신 예수’다. 215번이다. 워낙 긴 사연이 있는 터라, 진부하지만 또 입을 열 수밖에. 그러니까 지난번 불무리 성당에 들른 날 나는 참모장 남궁** 대령에서 이등병까지 참례한 미사가 끝나고 나서(물론 주임신부조차 신자 석에 앉아 있고), 이 ‘내 발을 씻기신…’을 봉헌했다. 이미 안면을 익혔던 사단 군악대원 셋(키보드 최연우 상병 ‧ 기타 장현수 일병 ‧ 기타 강민영 병장)의 반주에 맞춰서. 잘 했느냐고? 그건 아니지만 열창은 했다고 우기자. 주임신부의 신호가 없었더라면 나는 또 사족을 붙였으리라.
나는 억지가 대판이란 말이 어울리는 착각에 빠지길 잘한다. 그 전날 그러니까 토요일 특전미사 때 동백 성요셉본당에서 피정이 있었는데, 바로 신상옥 형제가 왔던 것이다. 당연히 그는 ‘내 발을 씻기신…’를 들고 무대에 섰었다. 그냥 우연의 일치라 치부하면 될 텐데, 나는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거 참 이상하지 않아? 그렇고말고. 삼 년 전에는 ‘살아 계신 주’로 장병들 앞에 섰었는데, 이번에는 하루 전 작사 작곡 노래까지 도맡은 신상옥 그 형제로부터 배운 ‘내 발을 씻기신…’을 내가 부르다니 말야.
그러나 어쨌든 내친 김에 얘긴데, 이 성가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다. 라장조로 성가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최고음이 높은 솔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게 뭐 어떻느냐고? 군 장병들을 상대로 노래 지도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나더러 별 희한한 친구 다 보겠다며 고소를 날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는 그야말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랄 수밖에. 남자 군인은 일반적으로 최고음이 높은 ‘미’까지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저 유명한 26사단가도 김동진 선생이 작곡할 때 그걸 염두에 두었으리라. 한데 지금도 나는 장병들 앞에서 몇 곡의 군가 등이 과연 제대로 제창이 되는지 염려한다. 애국가는 사장조, 최고음이 ‘레'인데도 부담을 느끼는 병사가 더러 있더라.(극단적이 예다)
적의한 표현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내 발을 씻기신 예수’에 천착한다. 신상옥도 자기가 쓴 가사 ‘참된 삶’을 그냥 ‘참된 삶’으로 발성하더라. 국립국어원에 문의해 보니 틀렸다는 게 아닌가. '참뙨 삶' 혹은 '참뛘 삶’이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다. 내 비록 어느 누구의 발도 씻어 주지는 못했었지만, 신상옥의 ‘ 내 발을 씻기신…’은 바로 불러 보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이유에 의해 두 번째 다시 쓰는 <요한복음> 13장 5절-16절을 귀담아들으려 애쓴다.
그래 체면은 뒤로 제쳐 두고 ‘내 발을 씻기신 예수’ 연습에 오늘도 매달리자. 좀 무리일지 모르지만,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웃고 넘겨서는 안 될 이야기를 마지막에 하나 얹자. 어린이 미사 때 부르는 ‘주님의 기도’(외곡 팝송 ‘에레스 뚜’ 곡에 주님의 기도 가사를 옮긴 것)는 높은 솔에서 다시 반음이 올라가야 한다. 그걸 그대로 소화시키느라 악을 써야 하는 어린이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수월하고 행복한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잘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