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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향해 던지는 몇 가지 의문
이 홍사
시대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것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시대는 나에게 몇 가지 의문을 던진다.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의혹이라 명명해도 무방하고 질문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그것을 역사를 구성하는 한 가닥 실핏줄에 불과한 사소한 일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구성원인 나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상당히 큰 의문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의문에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하겠다.
정말 그럴까?
과연 그럴까?
그럼 누구는 왜 저렇게 상반되는 입장에 서서 저렇게 절규를 할까?
이 불합리한 시대여! 소리 없는 절규가 보이지 않느냐? 그대에게 묻고 싶다.
*의문 하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 빛을 받은 양지가 음지가 될 수도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영원한 양지는 없다. 고로 영원한 음지도 없다. 태양과 지구가 움직이기에 그런 일은 순차적으로 반복되어 일어난다. 영원한 양지도 없을뿐더러 영원한 음지도 없게 당연한 이치다.
이치?
그런데 그 이치를 모르는 여자가 있다.
칼을 휘둘렀다.
대학살이었다.
어느 언론매체에서는 수족 절단에 생매장이라고 강력한 비난으로 서술했다.
수족 절단에 생매장!
그 여자가 법무부 장관에 오르자 나타난 말이다.
삼권분립 국가의 사법부 독립은 옛말이 되었다. 그녀는 칼을 쥐자 마구 휘둘렀다.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몇 개의 의혹을 품던 게이트보다 검찰의 인사가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사법부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여자가 자리를 꿰차자 그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 인사권이라는 영역에서 칼춤을 추었다. 칼춤? 수사팀은 박살이 났다. 대학살이다.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검사들이 난이 일으켰다. 이른바 검사 대란이 시작되었다. 한직으로 밀려나고 좌천으로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검사들과 판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는 사태에 이르렀다. 사법부 내에서도 두 부류로 나뉘어 갈등과 소요가 일어났다.
급기야 막말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네가 검사냐?”
“어느 새끼가 그따위 소리를 해?”
법무부 장관으로 그 여자를 앉혔다. 잘한 일이다. 국회의 인사검증을 완벽하게 거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고 집에서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다. 딸이 많아서 그런가? 여성을 억압하거나 남성 우월주의에 젖어본 적이 없다. 한데, 이번 일로 여자의 속이 좁으며 독하고 악랄하다는 사실을 걸 실감했다. 그 여자는 다른 여자와 달랐다. 모가 났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관대작이 되면 관용을 지녀야 한다고 맹공의 고서에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여자는 그런 게 없다. 두루뭉술한 돌을 쓰다듬듯이 봐주는 관용이라는 것이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렇게 칼을 휘두르고 나자 반감이 들었고 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사진을 보니 그 여자의 얼굴이 표독하게 생겨 먹었다는 걸 절실히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면 역사의 한 장이 된다.
참고 보고 있자!
내가 늘 외치는 말이다. 외치는 말이 아니라 속으로 다짐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정책을 볼 때마다 그랬다.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지. 이것 또한 역사의 한 과정이리라. 그런 말로 자위를 하곤 한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하다 보면, 어느 정치인을 싸잡아 욕으로 보쌈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게 없다. 그러나 나는 가능하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고 에둘러 가려고 애쓰는데 이번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보편적 상식이나 생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이다.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공소장은 지금부터 공개하지 않겠단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발표를 해버렸다.
공소장의 의미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공소장에 공公을 붙여놓았는가? 하필이면 살아있는 정권의 비리를 수사하는 이 마당에 공소장 공개를 거부하고, 살아있는 정권을 수사하던 팀에 검찰의 중책을 맡은 간부를 좌천이나 유배를 보내고, 살아있는 정권을 겨냥하던 수사팀을 조직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찢어서 완전히 무장 해제시켰다. 법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든 것을 강행했다. 아니다. 불법이 되더라도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첫 번째 인사로 간부들을 대학살을 하고 열흘이 지나지 않아 부장급 검사들 팔백여 명의 인사를 강행하며 확인사살까지 해버렸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부서 통폐합이라는 야바위꾼 같은 방법을 고안해서 부서를 통폐합시키면서 자동으로 무력화되도록 인사를 강행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그렇게 조치를 강행하며 칼을 휘둘렀는가?
그 서슬이 퍼런 칼을 국민이 보았다. 그걸 국민이 알아버린 것이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표에서 나온다고 했다. 권력의 원천은 백성이라 하였다.
국민의 정서를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공수처가 발족되면 가장 먼저 검찰청장부터 직권남용으로 구속해야 마땅하다고, 어느 작자가 성명서라는 것을 발표했다. 문장이 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문장은 기록하면서 한 번 정도 여과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아무리 급하게 써도 앞뒤 문맥을 맞추기 위해 한 번쯤은 다시 읽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저절로 여과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입장 성명서라는 걸 발표하면서 그런 말을 서슴지 않다니?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본디 완장을 차면 간이 좀 붓는다고는 하지만, 모든 완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그 국민의 가치관은 변한다.
가증스러운 기회주의자들이여!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다시 해가 떠서 그대들이 음지가 되면 그 후환,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시는가?
*또 하나!
2010년 3월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 천안함이 북괴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 승선한 해군 중에서 사망자가 오십여 명이고 실종자가 여섯 명이다. 이런 경우에 사망자보다 실종자가 더 괴롭고 가족의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사망자는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으로 끝이었다. 보상은 군인 전사로 간주해서 나오고 더욱이 국민 성금을 거두어서 지급했다. 희생자의 어느 가족도 이설을 달지 않았다. 모두 자식이나 남편의 숭고한 죽음을 자신의 가슴에 묻었다.
1994년 10월 난데없는 일이 발생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무너졌다기보다는 다리 한 칸이 그대로 강물에 내려앉았다. 혹자들은 다리를 지탱하는 볼트가 빠져나가고 없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그런 공사 현장에 뼈가 굵은 내 생각으로는 그 다리는 볼트가 없는 탓이 아니라 구조적인 설계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아치형 다리는 내려앉으면 앉을수록 옆의 교각과 조이게 되어있는 법인데 겉으로는 아치형 다리고 실상은 일반 교각이 있는 다리와 같은 원리로 놓였다. 그럼 볼트 몇 개로 다리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튼, 출근 시간이었고 근처에 있던 무학여고 학생들이 등교하던 시간이었다. 등교하던 학생들과 출근하던 시민들의 사상자가 났다. 정부에서 아무런 책임지지 않았다. 보상금도 없었다. 그 사건은 지금은 모두에게 망각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1995년 6월 멀쩡하게 영업을 하던 백화점이 그대로 풀썩 내려앉았다. 삼풍백화점이었다. 배는 침몰할 수가 있고 건물은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지만, 그 건물이 순식간에 내려앉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가 압사했다. 구조된 사람이나 실종자가 없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오백 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다. 한국전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희생자를 난 사건이었다. 보름간 건물 잔재에 깔려있던 청년이 기적적으로 살아서 나와 장안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흘 뒤 또 다른 여학생이 살아서 국민은 더 뜨거운 환호를 지르고 눈물까지 흘렸다. 쇼핑하러 갔다가 죽었으니 정부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아무도 보상을 받은 사람이 없고 그 백화점 터는 공터로 남아 지금은 공원 용지로 이용되고 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이 삼풍백화점 부지였다고 기억할 뿐이다.
1999년 6월 조립식으로 만든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 건물은 청소년 수련원이었다. 소방차가 들어가기 힘든 좁은 시골길 끝에 매달린 씨랜드라는 곳이었다. 그 건물 안에는 유치원에서 하계 휴양을 나온 어린아이들 여럿이 자고 있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어린아이들과 더불어 그 생명을 구하러 들어간 선생님까지 희생되는 사건이었다. 그 어린아이들의 부모들은 사진을 안고 울었고 타고난 뼈를 감식결과 누구의 아이라는 사실을 구별할 수가 있었다. 국민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
2003년 2월 출근과 등교로 복잡하던 대구의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공사장 위로 교통의 물결이 흐르던 곳에서 순식간에 복공판이 하늘로 치솟았고 그 위를 지나던 버스와 차량이 허공으로 솟았다가 현장 아래로 추락했다. 학교에 가던 학생들과 출근하던 시민들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장의 소장이 구속되었다. 표준개발이라는 아주 작은 건설업체의 불찰이었다.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희생자 가족들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세월호? 이 사건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다수의 국민이 리본을 달고 그 아이들을 추념했다. 그리고 국가에서 어마어마한 금액을 보상했고 아직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광화문광장에는 그들을 추념하는 천막이 있다.
그렇게 보상한 이유는 아이들의 시체를 묻지 않고 일명 ‘시체팔이’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시대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짚을 건 짚고 넘어가자. 죽은 아이들에게 흠결이 되는 일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무리를 보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월호 일곱 시간! 이게 신조어가 되어 무슨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동안 대통령이 무얼 했느냐에 국민의 관심은 쏠렸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될 온갖 억척스럽고 흉측한 추측들이 소문으로 돌았다. 결국은 다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그 일곱 시간 안에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었다고 한들 무엇을 달라졌을까?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했을까? 그것보다 궁금한 것은 세월호의 선주인 유병언이다. 그의 양산에 있는 저택이 왜 현재 대통령 이름으로 되어있을까? 도대체 그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어떤 연결고리로 그 저택이 현 대통령의 이름으로 넘어갔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옛날, 어느 정권에서는 ‘가정의례준칙’이라는 말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너무 낭비라고 생각한 경제를 개발하던 시대의 사람들이 관혼상제를 간소화시키자고 장례를 치르는데, 보름 걸리고 삼 년 상을 치던 것을 삼일장을 간소화시켜서 그 시간에 일해서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살아보자고 그런 걸 범국가적으로 계몽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는가?
그 계몽이 성공을 한 이 시대에 제 아버지가 죽으면 그 세월 동안 삼베로 된 리본을 달고 다니겠는가?
세월호 사고에는 왜 그리 민감한가? 국민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보상을 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그토록 고맙(?)고 미안(?)한가? 정말 궁금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해가 간다. 너희들은 죽고 나는 살아있으니 미안하다. 참으로 미안하다. 그런데,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또 하나!
일본은 참 나쁜 나라다.
섬나라라서 역사이래 대륙 진출의 꿈을 접은 날이 없다. 남의 나라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족속이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호시탐탐 주변국을 약탈하기 일삼았다. 지리적 영향으로 우리는 항상 피해를 보았다. 일본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까지 그 악마의 마귀 같은 손길로 어루만지는 척했다. 일제 강점기 삼십육 년! 왜 그 강점기를 맞았는가? 총리대신 이완용과 그 일당,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물론 강력히 저항했던 인물도 있지만, 칼을 찬 일본 순사보다 더 악랄했던 놈은 순사 앞잡이였다. 순사 앞잡이는 전부가 조선인이었다. 치가 떨린다. 그 후손이 버젓이 반일구호를 외치며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시대다. 그리고 해방! 우리가 독립운동을 잘 해서 해방이 된 게 아니다. 베트남도 같은 날, 독립되었다. 그 쪽바리의 마수 같은 손길을 보다 못한 미국이,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의 종지부를 위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이 손을 들자 베트남은 위도 17도에서 잘리고 우리나라는 38도에서 잘리는 분단국가로 해방이 되었다. 물론, 그사이에 몇 년간 여러 가지 정책적으로 논쟁이 있었지만, 개요를 따지자면 그렇다. 38선 이북은 김일성이 공산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이남은 이승만이 들어와 미국을 끌어들여 미 군정에 들어간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자면 길다. 다 아는 사항이니 중략하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투하로 인해 민간인 수십만이 사망했다. 그것도 생각하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제의 만행인 중국 난징 학살 사건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일단은 각설하고,
일본은 그렇게 원폭을 투하한 미국이 원수처럼 여겨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데 지난해에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 총리와 사흘간 골프를 쳤다. 이 아이러니를 역사는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 할까?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
일본 총리는 미국을 두고 영원한 동맹국이라고 지칭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원폭투하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동맹국이라고?
“이거 너무 건너뛰는 거 아니야?
나는 의아했다.
미국의 중재로 해방이 되고 이십 년이 지나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필리핀에는 보상이 없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서 일 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을 보상받았다. 그 돈으로 기간산업을 육성하고 경제개발의 도약 발판을 구축했다. 신일본제철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여 황무지의 땅에 포항제철을 만들어 세계의 강국으로 발돋움을 했다. 그런데 75년이 지나서 일제 징용공 배상문제로 판례를 만들어 포항제철에 있는 일본의 지분을 압류한 것이다. 그걸 판결한 판사가 만약 신일본제철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어떤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을까?
진정성이 어린 사과를 하면 돈은 받지 않겠다?
이게 입으로 뀌는 방귀야, 똥구멍으로 하는 말이야?
언젠가 써먹은 말이지만 이 말을 아니할 수가 없다.
일본이 돈 때문에 그러나?
일본이 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과했다. 그 사과가 무려 29번이다. 그것은 거짓말을 못 한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어느 사이트든 검색창에 들어가 ‘일본의 사과’라고 치고 검색하면 바로 뜬다. 언제 어느 총리가 공식적인 사과를 했고 언제 어느 총리가 방한해서 고개를 숙였다는 내용이 다 나온다.
그 진정성의 잣대가 무엇인가? 심히 궁금하다. 만약 일본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으면 그런 판결이 나왔겠는가? 지소미아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고 했다가 파기날짜가 되어 서너 시간을 앞두고 파기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통보했다. 군사기밀을 다루는 국제 협약이 애들 장난인가? 진정성이 어린 사과를 하면 징용공의 급료는 한국 정부에서 지급하여 해결하겠단다. 그 돈 때문에 일본이 토라진 것인가?
안 사요! 안 가요!
온갖 언론을 동원해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이 어금니를 깨물고 선택했다. 안 사겠다는데 한국으로 군말 없이 보내던 몇 가지 원료에 대해서, 그 화이트 리스트 국가로 특혜를 주었던 것을 파기하고 다른 나라와 같이 동등한 조건으로 심사해서 물건을 팔겠다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반도체 생산에서 원료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일본은 말했다.
안 사겠다며?
그러니 말을 바꾸어서 동맹이 어쩌고, 이럴 수가 있느냐? 난리다.
사지 않겠다면? 팔지 않겠다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일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그런 화공 약품을 자체 개발해서 생산하는데 국고에서 얼마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그 대기업이 그 돈이 없어서 일본에서 물건을 사다 썼겠는가? 우리나라는 그런 화학물질을 만들지 못한다.
왜?
화공 약품 관리법과 화공 약품 생산법에 저촉되지 않고는 그런 물질을 개발해서 생산할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나라다. 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만들 수가 없다. 그런 물건을 개발하여 생산한다면 현행법으로는 다 불법이다.
시대가 변하니 국제사회가 이웃처럼 간섭을 받는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세상, 역시 정보화의 시대다. 사드를 들여와 배치하고 나니 중국이 난리다.
왜? 사드가 공격용 무기인가?
어디를 보아도 사드는 방어용 무기다. 사드를 배치하는데 용지를 제공했던 어떤 그룹은 중국에 백삼십여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이 선동하자 파리를 날리다가 곧 문을 닫고 철수해야만 했다.
되놈은 되놈이다.
누구는 중국에 가서 정상회담을 하며 사드 배치가 굉장한 잘못인 양 꼬리를 바짝 내리고 추가로 사드 배치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사드가 중국을 공격하는 무기인가? 중국몽을 함께 꾸기 위해서? 그 중국몽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도 소원이라는 통일을 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평양을 탈환하고 신의주까지 밀고 올라갔다. 통일이 바로 눈앞에 보이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훼방꾼이 나타난 것이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중국이 가담하자 다시 밀리었다. 밀리고 내려와 휴전선이 생겼다. 총부리를 맞댄 국가다. 일본의 강점기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건 잊고 있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 지가 고작해야 이십 년이 조금 넘는다. 그 이전에는 조공을 바쳐야만 했던 원수의 나라다.
우리의 소원! 통일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물 건너갔다. 이 사실을 확실히 잊고 있는 모양이다. 중국에서 창궐한 우한 폐렴이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중국인 입국을 전면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아비규환인데 대응은 지극히 소극적이다. 우한이나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湖北城을 다녀온 외국인만 입국을 금지한다는 걸 대책으로 내놓았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후쿠오카를 다녀온 외국인만 입국을 거부하겠는가?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아마도 소녀상으로 입국 통로마다 방어막을 쳤을 것인데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일본의 심기는 왜 건드리나? 우한 폐렴이 일본에서 창궐하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우리가 중국에 얻을 게 뭐가 있을까?
북한의 중재자 역할?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행하는데 모방해야 할, 지극히 훌륭한 전범?
심히 궁금하도다.
일본과 중국을 다른 잣대로 평가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또 하나!
어떻게 된 일인지 국가가 손을 대는 것마다 박살을 낸다. 백성들은 제발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두라고 아우성이다. 근로자는 주 52시간 근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국민은 모름지기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감옥에 집어넣겠다?
최저 임금은 얼마를 주어야 한다.
매출이 최저 임금을 밑도는데 어떻게 주어?
그래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가 행복하다.
많이 주면 우리도 좋지! 그런데 매출이 이것 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주어라. 주지 않으면 감옥에 집어넣겠다.
하여, 아르바이트 자리가 다 없어졌다. 아르바이트가 절실한 학생들은 많은데 전부가 손가락을 빨고 있다.
단언하는데, 시장 경제는 가만히 두면 저절로 알아서 굴러간다. 그게 시장의 원리요 논리다.
그건 절대로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은 원칙은 법으로 제도할 수가 없는 물건이다. 가만히 두면 알아서 합일점을 찾아서 굴러간다.
주 52시간을 시행하자 버스 대란이 일어났다. 버스 기사가 모자라고 현행 버스비로는 그 정부가 정한 임금을 주기에도 모자란다. 그런 문제야 간단하지, 국고에서 얼마를 지원하고 요금을 조금 올리면 된다. 그래서 버스비가 올랐다. 국고의 돈은 과연 누구의 돈인가?
공무원을 왕창 뽑아라!
지금도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공무원이 넘쳐나는데요?
그래도 뽑아라, 일자리 창출이 바로 내 선거 공약사항이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뽑았다. 주민 수 대비 공무원이 일본의 다섯 배가 되었다. 문제없다! 공무원도 세금을 내니 문제가 없다.
어느 시골 면사무소는 하루에 찾아오는 민원인이 고작 서너 명인데 면사무소를 지키는 공무원은 여덟 명이다. 어느 면장은 오전 열한 시에 출근하여 삼십 분간 자리를 지키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점심을 먹고 테니스를 두 시간 친다. 체력이 국력이니 나무랄 수가 없다. 테니스를 치며 땀을 흘렸으니 씻어야 한다. 시내 변두리에 있는 사우나까지 찾아가서 두 시간을 보낸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 들어와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잔다. 테니스를 쳤으니 고단하다. 면장이 얼마나 고단한 직업이냐? 퇴근 시간인 여섯 시가 넘었다. 할 일이 남았으니 야간을 해야 한다. 야간을 하려면 저녁을 먹어야 한다. 또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반주로 살짝 한 잔 마시고 들어와 결재서류에 사인하고 그것을 책상머리에 던져놓고 퇴근부에 지장을 찍고 나간다. 그 시간에 퇴근하면 야간수당이 나오게 되어있다. 다른 직원들은 면장이 퇴근하지 않았는데 먼저 퇴근하는 것은 상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면장이 퇴근하자 너도나도 따라서 퇴근부에 사인하고 집으로 간다.
이건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익요원이 한 이야기의 개요다. 허구가 절대 아니다. 팩트fact다.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한심했으면 그 공익요원이 이런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을까?
원전은 위험하다. 가동을 최대한 줄여야 국민이 안전하다.
신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원전이 신생 에너지가 아닌가? 국민은 의혹이 인다. 태양광이 안전한 거야.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업자에게는 정부 보조금이 있다. 원전 가동률을 최대한 줄여라! 그 결과 멀쩡한 원전 1호기가 멸실판정을 받았다. 막대한 이윤을 남기던 한전이 적자로 돌아섰고 막대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데 총선을 앞둔 실정이라 선거 뒤로 미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영화를 누가 만들었는가? 원전이 위험하다는 판도라라는 영화! 영화 한 편에 국가적으로 이렇게 막대한 영향을 초래하다니?
가만히 생각하니 영화를 만든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사전에 원전에 대한 지식이 없이 허구와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관객 한 사람의 시각이 문제였다. 우리보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돌리는 원전! 중국의 싼뚱반도 쪽 해안에는 우리나라를 보고 수십 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그것은 어쩌나?
대한항공이 잘 돌아간다.
세수도 모자라는데 저렇게 이윤을 내는 기업은 빼앗고 싶다. 도덕적으로 감성팔이를 먼저 해야 한다. 특히 여자 문제라면 더욱이 좋다. 땅콩에 물컵 사건을 언론으로 때렸다. 더 심하게 때려라! 드디어 국민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때다! 국민연금을 통해서 날름! 그 오너는 화병으로 미국에서 죽었다. 죽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그다음은 사립유치원에 눈독을 들인다.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가며 운영하는 게 눈에 거슬린다. 저것도 빼앗아서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 때려라. 어느 원장은 명품 핸드백을 샀다. 그걸로는 안된다. 도덕적인 측면을 때려라! 어느 원장은 성인용품을 샀다. 성인용품? 국민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때다! 사립유치원 국유화로 꿀꺽!
근로자를 보호해야 한다.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혜택의 사각 지역에 있는 근로자도 보호해야 한다. 한 모텔에 이불을 비롯하여 수건을 세탁하는 일용직을 고용하고 있었다. 근로감독관이 이미 지급한 임금에 대해서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없다. 그 이전에 고용한 사람! 없다. 그 이전에 고용한 아줌마! 사 년 전의 임금 대장까지 만들라고 한다. 근로감독관이 일 년 반에 걸쳐 114번을 다녀갔다. 모텔은 장사를 그만두고 문을 닫았다.
왜?
빌빌대는 공무원이 많으니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내가 존경하는 시대여!
내 말이 틀렸는가?
집값이 오르고 있다.
집값이 떡상이란다. 떡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떡상? 집값을 잡아야 한다.
집값이 얼마 이상이 되면 일체 은행에서 대출을 중단하고 아파트 구매 자금을 심도 있게 추적하라. 그렇지 집값을 잡으려면 당연히 그래야지.
반은 단팥빵을 사 먹고 반은 찹쌀떡을 사 먹을 겁니다. 아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반은 만두를 사 먹고 반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겁니다.
이런 대답이 공문서에 기록된다?
아파트를 판 매도자에게 그 금액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규명하라는, 구청의 전화가 빗발친단다. 소명하지 않으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통보하여 진상조사를 나가도록 만든다고 협박 전화가 온단다. 이게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국가인가?
모든 것은 어리석은 개인이 하면 행복하지가 않다.
국가에서 나서서 행복을 만들어 주어야 국민이 편하다.
집을 판 돈을 어디에 쓸지 규명하라. 주택 구매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소명하라.
이렇게 간섭을 하다가 부부간에 잠을 자면서 한 달에 몇 번 부부관계를 하라는 간섭까지 공표되는 게 아닌가? 일률적으로 같은 횟수를 공표하면 그건 원칙에 어긋난다. 칠십 대가 이십 대와 체력이 같은가? 이 자상한 나라에서는 그 점을 고려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해줄 것이 분명하다. 삼십 대는 한 달에 몇 번! 나는 엊그제 오십 고개를 넘어 육십 대로 접어들었는데 한 달에 몇 번으로 정해줄까?
시대를 향해 던지는 의문이 아니라 이번에는 질문이다.
육십 대는 한 달에 몇 번인가? 그것을 조속히 알려 달라.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는 분명히 자유 민주주의다.
제 돈으로 떡을 사 먹든, 만두를 사 먹든 세금을 또박또박 내는 이상 국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자유라는 법치 앞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또 민주를 걸고넘어지겠지?
그놈의 민주.
민주를 들먹이는 놈치고 민주적인 놈은 보지 못했다.
북한도 조선 인민민주공화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다.
민주가 자유보다 앞설 수가 없다. 자유가 우선이다. 자유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북극성이나 혜성이라는 별이라면 민주는 자유라는 별까지 이동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자유가 우선인 시대에 시대를 대상으로 묻는다.
시대여! 이게 나라냐고 묻지는 않겠다. 하나, 그대는 과연 자유로운가?
*또 하나!
시대가 이 모양이니 이번 겨울에는 눈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포근한 겨울은 처음이란다. 겨울 날씨가 이래서야, 조졌다. 내년 농사가 엉망이 될 모양이다. 백성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었고 지구의 온난화는 가속되고 있고 자유대한민국 뜨겁고 했다. 누구는 국민이 열을 받아서, 그 열로 인해 이렇게 날씨가 더워진 것이라고 했다.
시대여! 적확한 표현이고 합당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시대여!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설마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겠지? 이 소금단지 속같이 숨이 막히고 엄혹한 시대에 그것보다 잔인한 요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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