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동 허름한 지하 체육관… 기대주 3명·샌드백 2개로 시작했다
험악하다. 가늘게 찢어진 눈과 다부진 입술. 정말 매서운 얼굴이다. 부산 '종합격투기의 대부' 양성훈(32) 관장.
지난 19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한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한 종합격투기 체육관에서 그를 만났다. "반갑다"며 맞잡은 손에서는 묵직함이 전해왔다. 여기에 한 방 걸리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양 관장은 격투기 팬들에게 그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UFC 김동현(30), LFC 챔피언 배명호(25), 이상수(27) 선수 등은 격투기 팬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종합격투기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파이터들이다.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스승이 바로 양 관장이다. 이쯤 되면 젊은 나이에 부산 '종합격투기의 대부'라 불리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이소룡 동경했던 조용한 아이…
스물셋 무작정 상경 KPW로 데뷔
선수로선 화려한 전성기 없었지만
지도자 나서면서 발군의 실력 발휘
내로라하는 파이터 30명 키워
■평범한 아이
어릴적 모습이 궁금했다.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이소룡과 최배달을 무척이나 동경했죠. 강한 남자가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양 관장은 어릴 때 별다른 특징이 없는 그냥 순하고 평범한 아이였다고 했다.
그는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부산시복싱협회 사무국장을 지내서였을까. 양 관장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운동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초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커서 잠시 농구선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말려 결국 그만뒀다. 어머니의 반대도 양 관장의 파이터 기질은 꺾지 못했다. 그는 몰래 복싱, 킥복싱, 태권도 체육관을 옮겨다니며 파이터로서의 열정을 채워나갔다.
무술을 익혔으면 실전에 사용해 보고 싶어 호기를 부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청소년 때 싸움깨나 하지 않았나요." 대답은 "아니올시다"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을뿐더러 생긴 모습(?) 때문에 자기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더 없었다는 것. 믿기지 않았다. 집요하게 되물었다. 그랬더니 주저하면서 딱 한 번 주먹을 쓴 경우가 있다고 실토했다. 사정은 이랬다. 17세 때 친구가 불량배들에게 잡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다. 친구는 17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양 관장은 그 무리 속에 들어갔다. 그중 '짱'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친구를 놔주라고 얘기했다. 짱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양 관장은 '짱'을 한 방에 때려 눕혔다. 기세에 눌린 불량배들은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물러났다. 양 관장은 "짱을 때려눕히니 다른 애들은 덤빌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보시다시피 제가 손이 커서 맞으면 조금 아픕니다"며 큼지막한 손을 내보였다. 손을 보니 조금 아픈 게 아니라 '스쳐도 중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투기에 빠지다
제자들을 지도하기 위해 직접 훈련에 나서는 양성훈 관장. |
그는 바로 친구와 함께 부산의 한 주짓수 동호회에 가입했다. 주짓수는 브라질 유술로 주로 그라운드에 누워서 관절 등을 꺾어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이다. 양 관장은 제대로 된 종합격투기를 알고 싶었다. 주짓수도 종합격투기의 한 종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2003년 말 무작정 상경했다.
양 관장이 찾은 곳은 정심관. 당시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종합격투기 체육관이었다. 현재 양 관장의 제자로 있는 UFC 김동현도 당시 정심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정심관에 둥지를 튼 양 관장은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발전했다.
그는 2004년 국내 최초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KPW(Kick Punch Wrestling)를 통해 데뷔했다.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승리했다. 왼쪽 스트레이트 타격과 팔 관절을 공격하는 암바기술이 훌륭했다. 양 관장은 2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12승1무2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선수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국내 종합격투기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쥐꼬리만 한 출전료를 받고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정말 라면 먹고 운동했습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내가 큰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낀 것입니다." 양 관장은 자신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경기에서 승리하지만 팬들에게 인상깊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는 2004년 말 스프릿MC 인터리그 미들급 결승에서 레슬링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어원진에게 무기력하게 패한 뒤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태교도 격투기 영상으로 한 아내
국내 최강 女 파이터 함서희의 언니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성·기본 중시 욕
설 내뱉은 적 단 한 번도 없어
선진기술 몸으로 직접 터득해 가르쳐
■'부산 팀매드'
2005년 선수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 온 양 관장은 격투기에 대한 미련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서구 동대신동에 지금의 체육관을 열었다. 20여 평의 허름한 공간이었다. 샌드백 2~3개와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가 전부였다. 김승희란 친구가 배명호를 데리고 체육관으로 왔다. 유명한 김동현 말고 다른 김동현(작은 김동현)이 합류했다. 하루종일 훈련만 했다. 3개월 뒤 "경기에 나가 보자"는 선수들의 요구에 일단 내보냈다. 그런데 3명 모두 KO승을 거둬 종합격투기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이때쯤 팀매드가 창단된다. 이름인 팀매드에는 재미나는 일화가 숨어있다. 양 관장 친구 중 만화를 잘 그리는 만수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친구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친구 그림 중 크로우즈라는 일본 만화가 있었다. 만화 내용 중 강한 애들끼리 모인 조직인 '파르코 앤 데인저러스'를 팀매드의 마크로 사용하게 됐다. 그러면서 마크 이름을 '만수 앤 데인저러스'로 지었고, 이니셜을 따 체육관 이름을 'MAD'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지도자의 길을 가다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에 나선 양 관장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격투기를 처음 접한 강경호를 2
그라운드 기술을 직접 전수해주고 있는 양성훈 관장. |
양 관장의 팀매드는 국내 종합격투기계에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김동현이 합류하면서 팀매드의 입지는 더욱 굳어졌다. 그는 "김동현은 정심관에서 같이 훈련을 한 사이다. 성실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를 지도자로 선택한 것이 고마울 뿐"이라고 밝혔다.
양 관장은 김동현을 제자로 받아들인지 불과 1년 만에 그를 세계적인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에 진출시켰고, 아시아인 최초로 5연승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는 "김동현은 세계 어딜 내놔도 톱(TOP) 10 안에 드는 대단한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 관장은 선수들을 지도할 때 기본을 중시한다. 기본이 충실히 돼 있어야 전략을 짤 수 있고, 그 전략을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격투기는 몸으로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머리를 잘 써야 이길 수 있는 경기입니다."
그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한다. 선진기술을 자신의 몸으로 터득한 뒤 선수들에게 가르친다. 자신이 가르쳐 주지 못하는 기술은 다른 스승을 찾아가 배우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자신의 제자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 쉽지 않은데도 양 관장은 제자의 기량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권유한다. 이 같은 지도력 덕분에 현재 양 관장 아래에서는 무려 30명의 선수들이 훈련하며 미국과 홍콩, 일본 등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에게 지도자로서의 꿈이 있다면 더 많은 선수를 김동현처럼 UFC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아시아 격투기대회인 LFC에서 우승을 차지한 배명호를 UFC에 진출시키는 게 최대 목표"라고 밝혔다.
■아이가 원한다면 격투기를
양 관장에게는 8개월 된 아들이 있다. 아이가 원한다면 격투기 선수로 키울 생각이다. 그러면서 부인 얘기를 슬쩍 꺼낸다. 아내는 국내 최강 여성 격투기선수 함서희(24) 씨의 언니다. 부인도 격투기에 관심이 많아 아이를 가졌을 때도 틈만 나면 격투기 영상을 볼 정도다. 그는 "태교를 격투기로 했으니 아이는 엄청난 격투기 선수가 될 것"이라며 웃었다. 양 관장은 부인에 대해 "주짓수 스파링을 하면 내가 밀린다. 타고난 힘과 센스는 함서희를 능가해 격투기 선수로 키워 볼까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양성훈(가운데) 관장이 지난 19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자신의 체육관에서 희노애락을 함께 한 제자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인간성이 가장 중요
양 관장이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성이다. 심성이 좋지 않으면 절대 선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살아오면서 욕설을 내뱉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에게도 욕설을 쓰지 않도록 강조한다. 선수들이 어디를 가든 예의 바른 사람으로 보였으면 하는 게 양 관장의 바람이다. 격투기 국가대표 양성소라 불리는 팀매드의 정신은 바로 인간성이었다. 격투기 선수는 거칠고 무자비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 또한 종합격투기 대부 양성훈 관장의 또 다른 목표다.
글=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사진=이재찬기자 chan@
선수 위해 통 큰 배려 2살 차 다정한 형님
"든든한 형입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한지…."
지난 12일 UFC 경기 때 당한 부상으로 안와골절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김동현(30·사진)은 양성훈 관장에 대해 인간미 넘치는 형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와 양 관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들은 2004년 서울의 정심관에서 함께 훈련을 하며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했다. 양 관장이 2005년 부산으로 내려와 팀매드를 창단했을 때 김동현은 그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와 그의 제자가 됐다. 이들의 나이 차는 2살밖에 되지 않는다.
"2007년 부산으로 내려올 당시 너무 힘들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 관장이 방황하는 나를 잡아줬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줬습니다." 김동현은 양 관장의 은혜로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동현은 "양 관장은 현재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는 데도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특히 선수들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스승을 찾아가도록 배려하는 것을 볼 때 정말 통이 큰 사람"이라고 말했다.
LFC 배명호가 본 스승
따뜻한 리더십 존경 아버지 같은 존재
지난 16일 LFC 웰터급 우승을 차지한 배명호(25·사진)는 양성훈 관장의 첫 제자다. 그는 지난 2005년 양 관장이 부산으로 내려와 지금의 체육관을 열면서부터 함께한 선수다. 당시 그의 나이 19세. 스승 양 관장을 가장 오래 보고 지낸 선수다.
그는 양 관장에 대해 "제자를 정말 사랑하는 따뜻한 스승"이라고 말했다. 6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양 관장은 화낼 줄 모르는 스승이라고 했다. 배명호는 "체육관을 연 초창기 때 일이다. 당시 선수 3명이 훈련시간을 지키지 않아 여러 번 지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관장이 정색을 하며 나무란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양 관장을 '작은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선수 생활을 해서인지 선수들의 입장을 아주 잘 알고, 아버지같이 든든하게 지켜 준다는 것. 그는 "양 관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선수들로 하여금 스스로 훈련을 하게 만들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서 "관장과 함께 있으면 기량뿐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한 면도 많이 향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