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금강산여행기를 적업봅니다. 순전히 아직 가보지 아니한 카페식구들에게 나중에 가게될 경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며칠전의 '1일차'이야기는 빼고요. 양이 많아 한번에 안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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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일차(2002. 4. 11)
배안의 식당에서 200여명의 승객들이 아침 6시부터 식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모처럼의 북한 땅(남한 배 안?)에서의 1박 후 삼삼오오 식탁에 모여앉아 어제의 상호교감을 나누며 그 어느때 보다도 의미심장한 아침식사를 다들 맛있게 먹는다. 8시경 다시 통행검사소에 모여 관광증에 출입도장을 받고 다시 북한 땅으로 들어선다. 불과 하루가 지났음에도 검사소의 북측 사람들에게서 어제의 날카로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반가움을 느낀다. "조선★금강산-날짜-통행검사소"라고 인쇄된 스탬프를 찍어준다. 입북할 땐 적색(타원형), 나올 땐 녹색(사각형) 도장으로...
버스를 타고 온정리(溫井里)를 벗어나 관음폭포, 六花岩(달빛에서 육각형의 흰 눈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을 지나 만상정(금강산의 네거리를 오가는 길손들의 쉼터)주차장까지 약 40분 정도를 들어가나보다.
참 금강산 등산은 크게 萬物像('상'자가 이 '相'자가 맞지 않나하는 동료도 있는데 그중 더 박식한 분이 둘 다 맞단다. 아무튼 팻말에는 '像'자로 쓰여져 있다)코스와 九龍폭포코스 둘로 나뉘어지는데 우리일행은 만물상쪽을 택했다. 안내조장 설명으로는 구룡폭포쪽은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선호하듯 좀더 산 오르기가 용이하다고 한다. 한편으론 작년에 큰 산불이 나 그쪽의 소나무가 많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정말 탐스러운 소나무들인데...) 이번에도 역시 연로하신 분들이 그 쪽을 택했다.
철망사이로 보이는 북한 고성군은 100% 비포장도로가 아닌가싶을 정도로 거의가 맨땅이었으며 관광버스가 다니는 도로는 현대아산측에서 포장한 것이라고 한다. 다행하게도 이틀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길을 가는 북한주민들의 걸음걸이가 씩씩하게(?)(사실 평화로운 발걸음으로 보고 싶었지만 대체로 꽤 빠른 걸음걸이다) 보였지만 만일 흙탕물 길이었더라면 보기 민망했을 듯 싶다. 안내조장의 이야기는 한쪽 귀로 들으며 너도나도 버스창 밖으로 눈동자들을 바삐 굴린다. 건물이나 주민들이 나타나면 유심히 지켜본다. 모처럼 5층인가의 석조건물이 나타난다. 안내조장의 설명으로는 김정숙휴양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꽤 괜찮은(?) 휴양소일텐데 겉으로 보기엔 뼈대만 남다시피한 꽤 낡은 건물이다. 당간부 등의 피서시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많이 낡았다. 여타의 건물로는 초가집은 안 보였지만 대부분 닮은꼴의 단층 기와집들이다. 좀 가다보니 학교교실처럼 길다란 단층주택이 나타난다. 누군가 畜舍(축사치고는 좀 깨끗해 보였는데)가 아닐까 했는데 안내조장 얘기로는 병원이란다. 어떻게 그런 건물에 병원이? 도무지 감이 안온다.
가끔씩 자전거를 끌고가거나 타고가는 주민들이 눈에 띈다. 사전에 듣기로 북한에서는 자전거가 상당한 부의 상징에 속한다고 하던데 타고가는 이보다 끌고가는 이가 더 많아 보인다. 아마도 타이어가 닳을까봐서가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해 본다. 밭에서 일하는 남녀주민들의 옷 색깔은 95% 이상이 갈색계통이었다. 모자를 쓰면 군인 아니면 주민 이렇게 식별해 본다. 신발은 대부분이 운동화(어두운 색)나 고무신이고 가뭄에 콩나듯 구두도 보인다. 車라고는 어쩌다 군용버스 한 두 대가 지나다닐 뿐, 그 넓은 평야에 트랙터나 경운기같은 농기계도 좀체 보이지 않는다.
땅과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언제나 저들은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포장된 도로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을까?(여행을 마치고 마침 북측의 고성군과 비슷한 규모의 우리나라 시골에 갔을 때에 눈에 띈 도로나 차량, 주민들의 복장, 주택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눈에 띄는 주민들 중 유난스러운 점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서 있거나 지시하는 듯한 느긋한 동작에 비해 여성들이 무거운 걸 들거나 바쁘게 일손을 움직인다. 안내조장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일을 많이 한다고 한다. 대신 여차하여 이혼하게 될 경우 이혼결정권은 단연 여성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남성이 아무리 이혼하고 싶어도 여성이 해 주지 않으면 이혼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여성이 이혼하길 원하면 물론 바로 되고...(안내조장이 여성이긴 하지만 설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겠지?)
북한 땅에서 본 것 중 부럽게 생각된 것은 곧고 굵게 자란, 줄기가 붉은 빛을 띤 소나무들이다. 지름이 거의 30cm 정도나 되는 굵은 소나무들. 안내조장의 설명에 따르면 赤松(색깔이 붉어서)이라고도 하고, 춘양목('춘양'[지명]이라는 곳에 많이 번식하고 있어)이라고도 한다.(또 다른 두어 가지의 이름을 들먹였는데 그만 잊어먹었다) 또 한가지는 솔방울이 엄청나게 많이 달렸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엔 우리나라 소나무에도 솔방울이 많이 달렸다고 생각했으나 최근에 보는 우리나라의 소나무엔 결코 많은 솔방울이 달리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줄기가 삐뚤빼뚤한데 비해 이곳 소나무는 대나무처럼 곧게 서있다.
버스가 점차 길따라 완전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안내조장의 설명대로라면 117谷(137곡인가? 금방금방 까먹는다. 아무튼 100은 넘는다)길이라고 한다. 버스유리창 전면으로 보이는 앞장선 버스가 하나는 오른쪽을, 그다음 버스는 왼쪽을, 또 오른쪽 다시 왼쪽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정도로 구불구불하다. 대관령이나 미시령고개는 저리 가라다.
드디어 버스로 갈 길은 끝나고 모두 내려서 바야흐로 등산을 시작한다. 이곳의 화장실이 마지막 무료화장실이라 하여 다시금 너도나도 줄을 선다.(금강산 등산중 이용하게 될 화장실에서는 2∼4달러를 내야한다고 함. 실제로 올라가다 보니 화장실 입구에 환경봉투 이용료 어쩌고저쩌고 해서 4달러란 글자가 얼핏 보였다) 실제로 달러를 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때문에 일부러 확인하기도 뭣하고..
유명한 三仙岩부터 시작하여 각 안내조장들의 설명이 시작된다. 한두 걸음 옮겨 토끼바위하면 토끼가 한 마리 앉아있는 것 같고, 곰바위하면 곰이 한 마리 서 있는 것 같다. 切斧岩하니 마치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팬 것처럼 생긴 바위가 나타난다. 萬物像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병풍을 두른 듯 눈길을 잡아 끈다.(아마도 TV 어느 프로에 나오는 수다맨이 한달만 이곳에서 머리를 짜내면 萬가지가 아니라 十萬가지 像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바위모양이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 우뚝우뚝 솟아있다)
길목마다 북한 환경관리원이라는 감시원(?)이 남녀 2명 1조로 하여 지켜 서있다. 김정일(김일성?)뱃지를 패용하고 웃으면서 일행들의 질문에도 곧잘 대답하고 간혹 물어도 본다. 뱃지의 모양도 가지가지다. 안내조장 말로는 27가지라는데 등급이 있다고도 하고 선호도에 따라 좋아하는 뱃지를 단다고 하는데 주로 나부끼는 국기 모양의 네모 혹은 타원형의 붉은 색 바탕이고 중앙에 김씨 사진이 들어있다. 등산로는 듣던 바대로 꽤 깨끗하다.(굳이 쓰레기를 찾아내자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결국은 우리들 관광객이 버린 오물이겠지)
등산도중 작은 사건 두 가지가 발생했다. 일행중 누군가가 과일을 먹으며 껍질을 버리다(그것도 감시원 바로 앞에서) 북측 감시원의 주의를 받는 조그만 사건, 그리고 동국대생들이 깃발(120cm×80cm 정도)을 들고 등산길에 나섰는데 깃발 내용중 '동국대학교 북한학과'라는 표현 중 '북'자 때문에 감시원에 깃발을 압수(?)당했다.(다음날 이 깃발은 문제의 '北'자를 검은 매직으로 뭉갠 다음 학생들에게 되돌려졌다) 하긴 북한에선 '한국'이란 단어(대신 '에치'라고 표기)를 쓰지 못하게 하여 졸지에 우리들의 관광증에도 '에치은행'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북측 감시원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여러 계층의 남쪽 여행객을 대하면서 웬만한 상식은 줄줄 꿰고있는 그들이 '에치은행'이 어떤 은행이냐고 되묻는 걸 보면.
다시 安心臺(금강산을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이 안심하고 쉴 수 있다하여), 天仙臺(만물상의 경치가 하도 좋아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忘杖川(어찌나 경치가 아름답던지 그만 짚고가던 지팡이를 잊어버리고 놓고간다 해서)을 지나 望洋臺(푸른 동해 및 해금강 일대를 볼 수 있다 하여)까지 올라간다. 할머니도 오르고 꼬마도 오르고 다들 잘도 오른다.
군데군데 현대아산측에서 사다리를 설치하거나 밧줄을 매어 놓아 위험하지는 않다.(여기저기 안내조장이 열심히 설명하는데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긴 그 설명보다야 눈동자에 박히는 만물상의 默音이 더 크다) 70이 넘은 할머니가 가족들의 응원 속에 등산을 함께 한다. 온정각휴게소의 호박엿장수도 우리와 등산을 함께 하며 안내도 하고 엿도 판다. 한 상자에 2달러하는 엿을 사 주위 일행들과 한 입씩 오무린다. (울릉도 호박엿 같은 맛의) 금강산 호박엿이라고 한다.
또한 군데군데 온정각휴게소의 전용사진사들이 좋은 장면을 배경으로 원하는 이들의 사진을 찍는다. 잘 나오지 않으면 찾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나중에 보니 대개 잘 나오긴 했는데 상당히 비쌌다. 20×12cm의 크기로 단체사진은 5달러, 5명 이하가 찍힌 개인사진은 6달러)
하산하는 길에 나머지 鬼面岩(귀신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에 들러 구경하는 것을 끝으로 4시간여의 금강산 등산을 마치고 버스로 온정각휴게소로 되돌아온다. 경계철망 너머로 북한의 초등학생들이 마침 학교가 파했는지 개울가에서 가재같은 것을 잡느라 등을 구부리고 있다가 버스소리를 듣고 고사리손을 흔들어댄다. 애들의 얼굴엔 생기가 돌아보인다.(마음이 간사해서 그렇게 느껴진 것이겠지) 그에 반해 40이 넘어 보이는 주민들은 딴청하듯 바라볼뿐 도무지 손을 먼저 흔들지는 않는다. 더구나 길가에 일정하게 지켜 선 군인들은 눈동자만 버스를 좇을뿐 거의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다. 상당히 앳된 얼굴들이 어찌보면 귀엽고 어찌보면 안쓰럽다.
다음 일정은 북한에서 유명한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교예단의 공연관람이다. 북한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3개 교예단이 있다고 한다. 평양교예단, 평양모란봉교예단 그리고 인민군교예단이란다. 평양교예단은 서커스처럼 동물들도 등장한다는데 비해 모란봉교예단은 배우들만으로 공연하며, 세계적인 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에 수차례 입상한 바 있고 매년 해외 순회공연도 나간다고 한다. 배우의 등급도 일류배우, 초일류배우, 공훈배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민배우의 순으로 등급이 매겨지는데 그날 공연은 인민배우는 빠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후보들만 나온게 아니라 인민배우들의 나이가 많아 실연은 하지않고 후배들의 지도에 나선다고 한다. 특석요금은 30$.
문외한의 눈으로 본 공연은 아주 잘했다. 공연 중에는 난이도가 높은 체조경기의 한 종목같은 작품들(눈꽃조형, 공중2회전, 널뛰기, 봉재주 등)도 많아 연습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박수를 아끼지 않은 것 같다. 간혹 실수하는 출연자도 없지 않았으나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더 커 전체적으로는 성공적인 공연이었던 것 같다. 북한 땅에서 구경한 것 중 自然말고는 제일 훌륭한 관광거리가 아니었을까. 특이했던 점은 삐에로 차림의 짧은 코메디코너로 관객에게 웃음도 선사했으며 중간중간에 작품설명에 나선 한복차림 여성의 북한 특유의 억양(라디오나 TV에서 흔히 듣던)의 멘트였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음은 금강산온천. 지하 200m에서 용출되는 물의 양은 하루 670톤이나 되며 수온은 40도라고 한다. 무색무미의 중탄산나트륨이 주성분이고 피부병, 신경통 등에 좋다고 한다. 날씨가 약간 흐린 상태에서 좀 쌀쌀했지만 아무래도 노천탕이 인기였다. 이곳은 12$.
여행기간중 틈나는대로 관광객을 온정각휴게소(결국 관광상품 매장)에 풀어놓는 건 여기도 어쩔 수 없이 현대아산이 북한측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관광지일테니 어디서나 통하는 관광회사의 상혼이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관광객들 부지런히 사고, 열심히 사고 쉴 새없이 또 산다. 이제 웬만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 들어봤음직한 백두산 들쭉술이 18$. 이곳이 면세점이라 1인당 한도는 양주 1병, 담배 1보루라고 한다. (글쎄 북한술도 양주라고 봐야 하나?) 2병까지는 괜찮다고 판매원이 일러준다. 생각같아선 대여섯병 사 가지고 가서 여기저기 나눠줬음 싶은데 안 된다니 사무실 동료들에게 회식주로 내 놓을 생각으로 2병만 산다.
저녁식사후 설봉호로 되돌아와 2일차 밤을 다시 선상에서 조용하게 보낸다. 4시간의 산행이라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여행객들에겐 상당히 피곤했겠지만 여기가 어딘가? 그래도 피곤하다고 느낄 정신이 들까?
[3] 3일차(2002. 4. 12)
오늘도 역시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어제와는 달리 관광객 전원이 함께 버스편으로 해금강과 三日浦를 관광한다. 삼일포(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가 너무 멋있어서 하루씩만 머무는 관례를 허물고 3일씩이나 묵었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는 예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호수(안내조장이나 북측 환경감시인 이야기로는 호수란다. 지명에 '浦'자가 붙으면 호수가 아니라 바닷가라고 들은 것 같은데...)이고 이곳의 將軍臺는 전망대로서 날씨가 맑으면 멀리 남한 고성의 통일전망대가 쌍안경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날은 맑아 쌍안경을 보는 이들이 통일전망대가 보인다고 손을 흔들며 야단이다.(그쪽에서도 망원경으로 보면 이쪽이 보일테니 같이 흔들어줘야 한대나?)
이어 해금강으로 넘어간다. 아주머니 관광객들이 바닷가에서 미역을 따 즉석에서 드신다. 물가에 보니 커다란(직경 20cm 정도) 해파리 두 마리('개'라 해야 하나?)가 바위 틈새에 떠 있다. 이렇게 큰 해파리는 처음 본다. 그것도 바로 눈앞 가까이서.
이틀간 함께 다닌 북한 감시원들은 주로 온정리 주민들이라고 한다.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어느새 정들어 보인다. 어느 아가씨는 동국대 한 여학생과 부둥켜안고 울먹거린다. 그들은 정말 이야기도 잘하고 표정도 밝아보인다. 우리 일행들도 감시원들과 열심히 상호 인터뷰를 한다. 처음엔 2인 1조의 배치가 상호 감시역할 아닐까 했는데 전혀 아니지는 않겠지만 자유롭게 이야기들을 나누며 굳이 귀를 쫑긋하는 것 같지는 않다. 금강산 관광길이 처음 열렸을 때와는 엄청 많은 변화라고 한다. 이번 여행길에 상호간에 난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졸지에 전공이(北韓學科에서 漢學科로) 바뀐 대학생들의 헤프닝말고는...
이제 여정을 마치고 다시 온정각휴게소로 되돌아온다. 점심을 먹으며 남는 시간에 또 쇼핑. 그 외에 인기품목은 자전거대여. 하루종일 2,500원이라나. 온정각휴게소에서 온천장까지 자유로이 왔다갔다한다. 하긴 북한 땅을 거닌다는 흥분에 발 아픈 줄도 모르고 거니는 관광객도 여럿 보이고 은연중에 안내조장들이 운동 半 감시 半 자전거를 빌려타고 역시 왔다리갔다리하는 사이사이로 역시 젊은 대학생들이 달린다. 둘이서 함께 각자의 페달을 밟고 타는 2인용자전거도 꽤 보인다.
도중에 북한 주민들이 지나가는 교차로에는 길 양쪽에 군인들이 서 있지만 표정이나 분위기가 전혀 무거워보이지는 않는다. 북한 주민들도 간혹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구간중 딱 한군데 건널목에서 상호 교차해 지나간다. 손도 흔들면서... 관광객들이 마치 통일로를 다니는 것 아니 그보다 더 상쾌한 기분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이 광경만 놓고 본다면 결코 통제지역내의 관광이 아니다. 평화롭게 쇼핑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군인이라곤 건널목에 서 있는 두세명 뿐이며 감시인도 따로 없다. 이런 공간이 더욱 넓어졌으면 아니 금강산관광의 전구역만이라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면 사치일까?
더 사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관광객들이 마지막 쇼핑물들을 들고 버스에 오른다. 드디어 온정각휴게소를 출발, 장전항으로 향한다. 휴게소근무자들이 2열로 도열하여 손을 흔들어준다. 마지막으로 통행검사소를 지나면서 그나마 목에 차던 금강산관광증은 북한 땅에 남겨두래서 허전하지만 넘겨주고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다시 싣고갈 설봉호에 오른다. 짧은 2박3일간의 여정이었지만 지근거리에서 북한 주민도 직접 보고, 병사도 대하고 그리고 우리를 보고 먼저 고사리손을 반짝반짝 흔들던 천진난만한 북한 아이들도 보고...(1년쯤 전인가, 북한 아동들의 기아문제가 심각하다고한 기사를 본 것 같은데 글쎄 온정리마을의 아이들은 그래 보이지 않으니 우선 다행이다)
이제 금강산 그리고 백두산을 배가 아닌 열차를 타고 또 고속버스를 타고 육로여행을 하게 될 그 날들도 오지 않을까? 또 북한 주민들도 설악산을 그리고 한라산을 기차타고 비행기타고 구경하러 올 날들도. 거추장스럽게 출입국절차 같은 것 거치지말고 그냥 티켓 한 장만 달랑 들고서...
모처럼의 금강산관광. 시작 전에는 '통제받을(?) 여행'에 별 기대를 걸지 않았으나, 북한 땅 아름다운 소나무들·고사리손들·아무도 손대지 않은 봉우리들. 그리고 차갑게 제지할 줄 알았던 병사, 환경감시원들의 뭔가를 읽고싶어하는 맑은 눈망울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이 나에게는 또하나의 행운이었음을 느낀다. 주위에 아직 가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다들 한번씩 구경하게 될 때쯤에는 주민등록증 없이도 다녀올 수 있으리라.
* 애써 머리에 담아온 기억들이 자꾸 도망가버려 본의아니게 거짓부분도 적었겠지만 어쩌랴 담기는 속도보다 더 빨리 새는 머리를 탓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