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통신 6
시월 첫날 이른 아침 팔룡동에서 포항행 시외버스를 탔다. 양산을 지나 언양에서 내려 그곳에서 주말이면 산내 산방으로 가는 친구를 만났다. 팔순 모친을 대동한 친구와 국도를 따라 석남사 부근 고개를 넘어갔다. 울주와 그리 멀지 않은 어디쯤이 추석 전후 두 차례 일어난 지진 진앙 경주 내남면이다. 친구 모친은 지진으로 놀라 울렁증이 생겨 몇 차례 병원을 다녔다고 했다.
대현골짝에서 면소재지를 돌아 친구 농장에 닿았다. 나는 한 달 만에 친구네 산방을 다시 찾았다. 친구는 주말이면 농장에서 흙과 더불어 산다. 여장을 풀기 전 텃밭을 둘러보았다. 달포 전 심어 놓은 배추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친구가 직접 담글 김장 재료였다. 친환경농법을 고수하는 친구인지라 농약을 뿌리지 않아 배추흰나비애벌레가 잎사귀를 갉아먹어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텃밭을 빙글 둘러보고 산방으로 들었다. 야외탁자에서 곡차를 몇 잔 들며 1박2일 작업을 구상했다. 내가 이번에 친구 농장을 찾아간 데는 두 가지 도울 일이 있어서였다. 철이 조금 지난다만 호두 따기와 친구가 준비해둔 잔대 모종을 심는 일이다. 친구는 모친을 모셔오고 멀리서 내가 온다고 시장을 신경 써 봤다. 비행기로 실어온 제주 구엄닭으로 한방 백숙을 끓여낼 요량이란다.
친구는 솥단지에다 천궁과 엄나무를 비롯한 여러 약재를 넣었다. 나는 매실 전정가지의 마른 삭정이로 불을 지폈다. 약재가 고여지길 기다리는 사이 나는 하우스 골조 안으로 가 잔대 심을 이랑을 만들었다. 그 자리는 지난 봄 눈개승마를 파 낸 이랑이었다. 친구도 이젠 웬만한 농사일에 익숙해졌지만 괭이나 연장으로 하는 일은 내가 잘했다. 나는 묵혀둔 이랑 무성한 풀을 제압했다.
친구는 꼼꼼한 성미라 내가 뽑아둔 풀 더미를 모두 안고 가 개울가로 치웠다. 두 이랑은 잔대를 심을 자리고 눈개승마는 늦가을 바깥으로 파 옮길 것이라 했다. 잡초를 제거한 이랑에 친구는 두엄을 넉넉히 흩뿌렸다. 나는 그 이랑을 쇠스랑으로 일구어 잔대를 심을 자리를 마련했다. 도라지처럼 뿌리를 먹는 잔대인데 친구는 가을에 심어 내년 봄 새순은 나물로 뜯어 먹을 생각이었다.
친구는 주말을 앞두고 멀리 구례에서 택배로 온 잔대 모종을 구해 놓고 비가 온다기에 은근히 걱정이 되더란다. 예보처럼 비가 내려도 작업을 강행할 셈이었는데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작업은 수월했다. 잔대 모종은 무려 6백 포기였다. 둘이서 힘들게 심고 있을 때 막바지 친구 모친이 거들어 주어 마무리 지었다. 그새 갖은 약재를 넣어 푹 삶아낸 구엄닭은 땀 흘린 노동의 보상이었다.
소진된 칼로리는 곡차와 백숙으로 충전시켰다. 친구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식탁에 마주 대해 자주 모시지 못한 모친께 닭백숙을 대접하려는 마음이 헤아려졌다. 날이 저물기 전 심어야 할 묘목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구한 왜성 배롱나무 스무 그루였다. 친구는 잔디마당 가장자리에 심고 나는 산방 들머리 바깥으로 나가 심었다. 텃밭 작물만큼이나 꽃나무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하루치 작업은 순조로이 끝내고 산방 거실로 들었다. 친구는 아까 닭백숙에 이은 후속 안주를 마련했다. 살아 꿈틀거리는 돌문어를 삶고 갈치를 구웠다. 저녁밥이 필요 없을 만큼 넉넉한 안주였다. 비워진 곡차 병은 식탁에 줄지어 꼬리를 이었다. 그새 평소 교류가 뜸했던 지기들과 긴 통화가 있었다만 의식은 가물가물 흐려졌다. 이내 깊은 잠에 곯아 떨어져 이튿날 아침이 밝아왔다.
나는 아래 밭둑으로 가 구지뽕나무 이랑의 풀을 잘랐다. 뒤늦게 일어난 친구는 구지뽕열매를 땄다. 이어 친구는 뒤란 호두를 줍다가 그만 난감한 일이 생겼다. 스프링클러 물탱크에 올랐다가 오래된 덮개가 폭삭 내려앉았다. 이웃에 사는 원주민 노총각의 도움으로 까까스로 수습되었다. 친구 혼자서도, 나하고 둘이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두는 당연히 노총각에게도 나누었다. 1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