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여행] 신격화된 비운의 공민왕당가는길...........82
.
.
[봉화군 여행] 신격화된 비운의 공민왕당가는길...........82
.
유랑자는 응진에서 내려와 곧장 공민왕당으로 길을 잡는다. 여기 산성 길은 걷는 코스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임도를 타고 가다 ‘공민왕당’을 거쳐 축융 봉까지 가는 길과 산성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성 오르는 계단 길
로 빠져 성곽을 타고 밀성대 쪽으로 올라 산성을 따라 축융 봉까지 가는 길이 또 하나 있다.
.
오늘 유랑자는 역으로 소방 도로로 따라 올라 먼저 공민왕당을 보고 축융 봉을 갔다가 하산 길에 공민산성으로
내려가면서 둘러보기로 하고 소방도로를 따라 오른다. 그러나 유랑자는 난관(難關)에 봉착한다, 태양은 뜨겁고
그늘 하나 없는 소방 도로는 8월 한여름 무섭게 내리쬐는 뙤약볕에 유랑자를 지치게 만든다.
.
.
.
.
마땅히 쉴곳 하나 없는 도로를 따라 오르는 내내 비 오듯 흐르는 땀으로 인해 약간은 어지럼증 같은 게 일어난
다. 안되겠다 싶어 도로 한쪽 그늘을 찾아 땅에 주저앉아 수분부터 보충한다, 암튼 한 여름에 등산하는 분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유랑자도 예전엔 시도 때도 안 가리고 사시사철 등산을 다녔지만 이젠 체력이 예전만은 못하다는 게 이렇게 몸
소 실감하는 상황이다. 몸도 마음도 체력도 모든 게 마음뿐이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는 셈이다, 유랑자가 체력
이 당당할 젊은 시절 삼복더위에 등산을 하면서 산우님들에게 말하기를 한여름 등산은 삼가하라고 했었던 말
들을 곱씹어 보면서 다시 일어나 공민왕당을 향해 오른다.
.
*입구에 청량산을 읊은 한시 ~권성구(權聖矩)~
聞設金剛勝 (문설금강승) 금강산 좋다는 말 듣기는 해도
此生遊未嘗 (차생유미상) 여태껏 살면서도 가지 못 했네.
淸凉卽其亞 (청량즉기아) 청량산은 금강산에 버금가니
呼作小金剛 (호작소금강) 자그마한 금강이라 이를 만하지.
.
권성구[1642∼1709(인조 20∼숙종 35)] 조선 숙종 때 문신이다. 자(字)는 서여(恕余), 호는 구소(鳩巢). 1678년(숙종 4)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ㆍ전적(典籍)ㆍ병조좌랑(兵曹佐郎)을 지낸 인물이다.
.
.
.
.
.
그러나 오늘 유랑자는 무더위로 인해 이미 지친 몸이라 축융 봉까지의 욕심은 접어두고서 그냥 공민왕당 까지
만 갔다가 산성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해야할 상황이다. 절대로 산행에서 무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
칙이기에 아쉽지만 포기 하자라는 생각이 소방도로를 오르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
산성 입구에서 5.1km정도 이긴 하지만 산행이라는 것이 평지와 다르기에 또한 차가 산성 입구에 있는지라 되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소방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웬 집들이 보인다. 화전민들 집 같기도 하
고 …….암튼 멍멍 짖어대는 개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정신이 없을 정도다.
.
*여말 조선 초에는 전국적으로 공민왕, 김유신처럼 실존했던 인물을 마을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유행처럼 생겨나기도 했던 시절이다.
.
.
*공민왕당을 소개하자면 공민왕당은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청량산 축융봉 산성마을 안에 위치해 있으며 산성마
을과 두들 마을 주민들이 마을신(洞神)으로 모시고 함께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
칡 꽃
.
.
웬 개소리는 이렇게 우렁차고 힘이 좋은지 매일 영양제만 먹였나, 가뜩이나 더위에 지처 있는데…….구시렁구시
렁 거리며 행여나 개 목줄이 풀려 쫓아 올까봐 조바심에 발길을 재촉한다, 이 마을 뒤편에 큰 바위아래에는 공
민왕을 모시는 사당 '광감전'이 있다. 유랑자는 산성 입구에서 70여분 정도를 걸었을까. 소방도로에서 벗어나
.
우측 소로(小路)를 따라 공민왕당 가는 계단을 오른다. 가푼 숨도 쉴 겸해 잠시 뒤를 돌아보니 수려한 청량산이
손을 내밀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명산답게 산자수려(山紫秀麗)하다, 10여분쯤 올랐을까 저만
치 사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생각 보다는 깔끔하게 지어진 사당이었다. 큰 바위를 병풍삼아 지어진 건물이
다. 사당은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어 유랑자는 주변을 서성거린다.
.
칡 꽃
.
*청량산 축융봉 일대에는 공민왕과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도 축융봉 일대에는 공민왕 때 쌓은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
며, 공민왕이 군율을 어긴 죄수를 처형했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밀성대(密城臺), 다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순찰을 다녔다는
오마도(五馬道) 등 공민왕과 관련한 유적과 많은 설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
*전쟁이 끝나고 개경으로 다시 환도했으나 신하의 손에 비운의 삶을 마감한 공민왕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사당
을 짓고 이 마을의 신(洞神)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
.
배초향 꽃
.
이 공민왕당은 공민왕을 신으로 모시는 사당으로 내부에는 공민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벽면에는 임금을 상
징하는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는 하는데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의 형태는 정면 1
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집으로 정면에는 다른 당집과 달리 툇마루가 설치된 점이 좀 특이하다.
.
이곳에 공민왕당이 세워지게 된 배경은 고려 31대 공민왕이 1361년 11월 19일 홍건적의 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 청량산에 머물다 환도했다. 본시 공민왕(재위 1351~1374년)은 친원 세력을 제거하고 개혁 정치를 추
진한 고려 제31대 왕이다.
.
배초향 꽃
.
벌개미취꽃
*공민왕당은 1361년 11월 19일 고려 공민왕이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을 거쳐 청량산으로 몽진왔을때 감화를 입은 주민들에
의해 행해지게 된 동제(洞祭)에서 비롯되었다.
.
*처음엔 공민왕을 마을의 신으로 받들 다가 이후로 그의 부인인 노국공주, 그의 어머니, 사위, 딸 등이 신격화 되면서 청량산 일대는
공민왕계열의 신앙이 자리 잡게 되었으며 단순한 동제에서 벗어나 마을사람들의 화합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
*공민왕당은 좌측에 산신각이 있고 우측에 공민왕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공민왕당 현판에는 ‘曠感殿(광감전)’으로 ‘堂’이 아닌 ‘殿’으로
표기되어있다. 이는 왕을 모시는 사당이기 때문인 듯하다.
.
광감전과 뒤쪽 산신각
.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기이며 1351년 왕위에 올라 원명교체라는 대륙정세의 변동을 효과적으로 이용하
여 고려의 중흥을 꾀하는 많은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365년 왕비인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져 모
든 국사를 신돈에게 맡기고 정사를 소홀히 했다.
.
그림에 뛰어나 고려의 대표적 화가의 한사람으로 일컬어지며 글씨에도 능했는데 특히 큰 글자에 뛰어났다. 그
러나 환도 후 개혁정치를 펴다가 왕비인 노국대장공주가 죽은 뒤 후계자 문제로 신하들과 다투다가 신하들
에 의해 비운의 죽음을 맞는다.
.
광감전(曠感殿)
*공민왕당은 공민왕을 동신으로 모시는 것도 특이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점은 공민왕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공민왕
가족신이 마을신(洞神)으로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
산신각
.
*공민왕 가족신당은 도산면 가송리 일동마을에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를 모시는 ‘공주당’을 비롯하여 명호면 북곡리 윗두실, 아랫
두실, 구름재, 북장골에도 노국공주를 마을의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매년 정월보름에 따로 동제를 지낸다. 그리고 공민왕의 어머니를
모신 도산면 단천리의 ‘왕모당’도 공민왕 일가를 숭배하는 공민왕 가족 신당으로 볼 수 있겠다.
봉화군에는 8개 마을이, 안동시에는 9개 마을이 공민왕계열 가족신당을 모시고 있다,
.
고려엉겅퀴
.
고려엉겅퀴
.
암튼 이 사당은 공민왕이 다녀간 후 왕이 베푼 감화를 입었던 이곳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매년 제를 올리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전통은 면면(綿綿)히 이어져 오면서 마을 주민들은 공민왕을 동신(洞神)으로 받들고 마을
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동제를 매년 거행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
여기에 힘입은 탓일까 청량산에는 공민왕당뿐만 아니라 노국대장공주를 기리는 부인당과 어머니를 모신 왕모
당, 딸당, 사위당 등 일가족 사당이 8여 곳 흩어져 있다. 현재 공민왕당은 2006년 봉화군에서 그 뜻을 기리기 위
해 개축했다. 암튼 청량산에는 공민왕에 대한 일화와 유적이 유난히 많다.
.
고려엉겅퀴
.
구릿대 꽃
.
구릿대 꽃
.
*한 때 성 안에는 산성마을을 중심으로 수 십호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원주민은 이제 덩그러니 세 가구만 남았다.
.
.
봉화에는 이 사당들 외에도 군율을 어긴 죄수를 절벽아래 떠밀어 처형했다는 밀성대(密城臺), 다섯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지나갔다는 오마도(五馬道) 등이 그것이다. 암튼 민초들과 공민왕의 길고 긴 인연이 600여
년 넘게 지속돼온 역사이다.
.
청량산 공민왕당의 답사는 그 옛날 시대의 흐름과 공민왕과 그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공민왕을 신
격화 하는 신비로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 답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유랑자는 이제 축융봉은 다음으로 미루
고 여기에서 발길을 돌려 공민왕산성을 향해 길을 잡는다.
.
둥굴레 차 열매
.
*공민왕당에는 공민왕신을 모신 광감전(曠感殿)이 있고 위패가 봉인되어 있다. 조그마한 뜨락이 있는 공민왕당에서 더위를 식히며
옛 고구려 개혁에 앞장서다 비운에 간 공민왕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
.
.
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057
.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186~7
.
............
첫댓글 내가 영주에서 근무할때 점심 나절에 가서 코스별 사진에서 3번코스로 갔엇
었는데, 랑자님은 1번코스로 아침일찍부터 돌으셨나봐요?
청량사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산새가 굉장히 우람하던데... 그곳을 가셨군요?
나는 다음에 다시 반대편(공민왕당이 있는곳)으로 가보자 했는데 발령이 군산으로나는 바람에 못갔었지요.
랑자님덕에 건너편을 잘 보았습니다.
또 구릿대꽃을 올리셔서...잘 배웠습니다. 이곳 해안가에 엄청많은 저꽃이 있어서 얘는뭐지?하고 궁금했었는데...
랑자님이 체력을 말씀하시니 정말 그렇더라고요.요즈음은 딸려요.그래서....이곳의 오름을 몇군데 가보았지만 한라산은 아직도 못올라갔어요.
겁이나더라고요. 혼자 잘갔다 올 수있을까? 하고 (그래도 이번 가을에는 올라갈 예정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감사합니다.!
ㅎㅎㅎ 맞습니다.
이제는 더구나 혼자 다니다 보니 떡히 누구하나
돌봐줄 사람들이 없잔아요. 다치거나 쓰러지면 큰 걱정인지라
조심하게 다니면서 절대로 무리는 안할려구요.
그래서 이번에 축융봉도 포기하고 공민왕당 까지만 하고 산성으로....ㅋ
하두 땀을 흘리다 보니 어지럼증이 약간 돌더라구요.
겁나서리 포기했지요. ㅎㅎ
식염을 가지고 다녔었는데 그만 안가지고 가는 바람에...ㅋ
준비부족이지요.
자고로 여름엔 아침 산행이 최고인데 그만 놓치고 대 낮에 가는 바람에..
암튼 산행은 천천히 다니시다가 좀 무리다 싶으면 그만하고 돌아오는게
제일 상책 입니다. 누가 상줄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금 나오는것도 아니고...
암튼 전 아주 오래전에 한라산은 두번 올라본 경험이 있어서 눈에 선 합니다만...
암튼 조심 하세요.
@유랑자 네!항상조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