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1년 위트콤(Whitcomb)과 모리스(Morris)에 의해 쓰여진 “창세기의 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이 발간됨으로서, 현대 창조과학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창조론에 대해서 언급하기보다는 주로 홍수의 본질과 그 엄청난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홍수는 창조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동일과정의 증거로 잘못 해석되어온 화석과 지층이 홍수에 의해 형성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정확 무오함이 처음으로 학술적인 면에서 신빙성 있게 언급되었다. 홍수는 실제로 발생했으며, 지질학상의 격변론에 대한 증거는 아주 풍부하다는 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견해가 전 지구적인 홍수를 필요로 하는 것은 마치 지구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국지적 홍수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이후 몇 년 동안에 상황은 변했다. 진화론자인 나의 동료 학자들은 아마 인정하려하지 않겠지만, 창조과학 운동은 세속의 지질학적 사고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최근에 세속의 지질학은 “창세기의 홍수”에 의해 옹호되는 “혁명적인(radical)” 견해들을 많이 수용함으로서, 이제는 세속의 지질학 분야가 격변론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주도적인 지질학자들 다수가 스스로를 “신격변론자”임을 자처하면서, 지층과 지형의 형성 원인을 대규모의 역동적인 작용에서 찾기 시작했다.
영국 지질학회의 전 회장인 데렉 에이저(Derek Ager) 박사의 견해를 잠깐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노아의 홍수를 믿는 창조론적 지질학자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면서도, 홍수지질학과 경쟁 관계에 있는 지질학 이론을 홍수 지질학으로 되돌리는데 앞장 서 왔다. “허리케인, 홍수, 해일은 수 천 년 동안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한 시간이나 하루 동안에 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매우 격렬한 짧은 순간과 지루하고 따분한 긴 시간으로 구성된 군인의 삶과 같다고 할 수 있다.”[1].
에이저 박사는 오늘날의 많은 주도적인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질학적 퇴적층의 거의 대부분은 실제적으로 매우 빠르게 격변적으로 퇴적물들이 쌓인 결과라는 것이며, 대부분 물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그랜드 캐년의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수평 지층들은 한 번 또는 그 이상의 대격변에 의해 쌓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점점 더 많은 신격변론자들이 그랜드 캐년의 타피트(Tapeat) 사암층을 형성한 일련의 격변적 사건들은 그랜드 캐년의 변두리까지 덮어 버린 격변적 사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련의 격변적 사건들은 서로 수 백 만 년의 차이가 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지질학적 격변론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오랜 지구 사상을 버리지 않고 진화가 발생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옹호하고자 하는지를 독자들이 명확히 파악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암석을 이루는 물질들의 대부분은 퇴적물로서 격변적인 과정에 의해 빠르게 쌓였고, 이런 격변들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큰 간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급속한 격변적인 퇴적의 증거들만 있을 뿐, 두 지층 사이에 오랜 시간이 경과했다는 실제의 증거는 전혀 없다. 모든 증거는 급속한 격변적 홍수를 증명하고 있다.
1961년 “창세기의 홍수”라는 책을 발간한 현대 창조론의 초창기 시대로 돌아 가보면, 창조론적 지질학자들의 임무는 고전적인 동일과정설(각각의 지질학적 지층이 오늘날 발생하는 것과 유사한 속도로 아주 천천히 퇴적되었다는 이론)에 대항하여 격변론을 증명하는 것이었다.2 이제는 급속한 격변적 작용을 인정하는 앞서가는 지질학자들이 많아짐으로써, 창조과학자들이 할 일의 성격이 좀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이 지층들이 한 번의 격변적 작용에 의한 결과이며, 각각의 두 지층 사이에 경과한 시간은 전혀 길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한다.
이제, 여러 개의 지층이 단 기간에 생성된 한 묶음의 지층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이런 방법들을 사용해서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화석을 포함한 (지층 기둥 내의) 퇴적암 거의 대부분의 형성 원인이 단 한번의 빠른 지질학적 사건이며, 진화에 필요한 오랜 시간의 여지가 전혀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지표(地表)의 특징들
어떤 퇴적층과 바로 그 위 퇴적층 사이에 경과한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을 밝히는 한 가지 방법은 아래 지층 윗면에 나타난 여러 특징들이 오랜 기간 노출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침식되거나 파괴되기 전에 이러한 지표의 특징들이 신속히 덮여 버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소의 많은 암석들이 보여주는 매우 일반적인 한 가지 특징은 물이 퇴적물의 표면 위를 흐름으로서 형성되는 “물결자국 (ripple mark)”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결자국은 종종 조수가 물러난 후 해변에서 보이기도 하고, 특정한 방향으로의 물의 흐름이 우세한 해양의 바닥에서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예로는 “빗방울 자국”이라고 불리는 흔적을 볼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물론 이 “빗방울 자국”은 물 속에 빠르게 퇴적된 퇴적물로부터 공기방울이 빠져나가면서 형성된 흔적일 것이다. 동물 자국 또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여하튼 이런 흔적들은 퇴적물이 굳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부서지기가 쉬우며, 고화가 되지 않은 물질이든 단단한 암석이든 간에 표면에 흔적이 존재한다면 그 흔적이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거의 모든 퇴적암 지층이 물 속에서 퇴적되었다는 사실을 유의해보자. 지질학자들은 모두 이러한 사실에 동의한다. 침식이 우세한 지역이 아닌 한에는 물의 흐름이 있는 해양의 바닥, 삼각주, 해변, 석호(lagoon), 하천 제방 등에 퇴적물이 쌓인다. 만일 퇴적에 뒤이어 일어난 어떤 작용에 의해 퇴적층이 물 밖으로 노출된다면 결과적으로 침식이 되거나 퇴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물 속에 그대로 놓여있다면 계속적으로 물의 활동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그 위에 더 많은 퇴적물들이 쌓일 것이다. 이런 역동적인 환경에서 퇴적물이 최대한 빨리 퇴적되어야만 물결자국이 보존되고, 암석 속에서 단단하게 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대양 바닥의 퇴적물들은 고화(固化)되어 암석으로 변한 다음, 융기되어 대륙의 표면을 형성한다. 물결자국이나 이와 유사한 흔적들은 여러 지역에서 암석 속에 얼어붙은 것처럼 쉽게 발견된다.
생각나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내가 하천의 바닥을 조사 연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하천 바닥에는 각 층 당 수 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수많은 석회암 층들이 있었고, 각 층마다 2.5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를 갖는 명확한 물결자국이 존재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층에서의 물결자국은 그 방향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퇴적을 시켰던 물의 흐름이 퇴적이 계속되는 동안 빠르게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물결자국들이 모두 보존될 수 있었을까?
만일 그러한 흔적들이 물 속이든 물 밖이든 표면에 드러난다면, 그것은 곧 침식되어 사라질 것이다. 단단한 암석 표면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흔적은 수 십 년 후에는 침식되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연약한 흔적들이 다시 물에 잠기고 묻혀서 파괴적 작용으로부터 보호되길 기다리면서 수 백만년을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물결자국이나 빗방울 자국이나 동물 발자국 등을 관찰함으로서, 어떤 두 퇴적층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하게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암석 표면에 형성된 특징들이 침식으로 사라지는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에 그 윗 지층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거의 모든 지층들은 격변적으로 빠르게 퇴적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 거의 모든 격변적인 퇴적층들은 침식되지 않은 표면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지층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암석층들이 빠르면서도 연속적일지도 모르는 사건에 의해 퇴적되었다는 것이다.
생난작용 (生亂作用; bioturbation, 생물 활동에 의한 지층의 파괴)
또한, 암석층 내에서 생물이 서식했던 증거가 부족함을 관찰함으로써,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어떤 지표면의 아래나 위나, 육지든 바다든, 그 표면이나 표면 아래에는 흔적을 남기게 되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해양의 바닥이거나 해변이 가까운 물 속이거나 벌레들, 조개류, 물고기 그리고 온갖 종류의 식물과 동물들이 퇴적물을 휘저어 놓는다. 실제로 진흙을 먹고 그 속의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들도 많다. 육지에서는 나무뿌리, 다람쥐, 그리고 많은 다른 동물들이 상당히 빠르게 표면 지층들을 파괴하며, 풍화작용은 더욱 더 빨리 지층의 파괴 및 퇴화를 가속시킨다.
최근의 예로서 1961년에 허리케인 칼라가 텍사스 중부 해변을 휩쓸고 간 후, 해변과 멕시코만 깊숙히 뚜렷한 퇴적층이 남게 되었다. 점이층리 퇴적물들은 지표 밑 물결자국이나 사층리(斜層理)와 같은 많은 “퇴적구조”를 포함하고 있었다. 허리케인 칼라가 지나간 후 수 년 동안 퇴적물 내부의 이러한 구조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구조는 급격하게 형성된 퇴적층의 특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3].
약 20년 후에 다시 다른 사람들이 이 지층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조사 연구하였다. 생난작용(生亂作用)에 의해 지층들은 확인하기 힘들었고, 어떤 곳에서는 퇴적구조의 흔적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겨우 20년 이내에 (아마 이보다 훨씬 짧았을 것이다) 지층 표면의 생명체들은 해변과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격변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 지층의 속성을 파괴해 버린 것이다. 사실 어떤 환경에서도 즉, 사막의 모래언덕부터 얕은 해양의 바닥까지 생명체들이 가득하고 이 생명체들은 표면으로부터 수 미터 깊이까지의 퇴적물을 계속 교란시키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퇴적 작용이 일어나는 얕은 물에서는 식물과 동물 군의 활동이 아주 활발하다.
허리케인 칼라에 의한 퇴적층을 세계 도처에 있는 ― 거의 대부분이 풍부한 퇴적 구조를 가진 ― 퇴적층들과 비교해 보기로 하자. 세부적으로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전반적으로 각 지층들 내부에 퇴적층으로서의 구조가 풍부하게 존재한다. 식물과 동물들의 생난작용의 영향을 받기 전에 퇴적층이 쌓였고, 굳어지기 전에 잠시도 생물학적 활동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퇴적물이 계속해서 매우 빠르게 쌓여 올라갔기 때문에 퇴적층에 바닥을 파헤치는 동물이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며, 이러한 사실은 연속적인 격변적 퇴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석화된 생난작용이 존재하는 곳을 보면 보통 현대의 서식 환경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즉, 점점 두터워지는 퇴적물로부터 탈출하다가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묻혀 버린 바닥을 파헤치며 사는 동물들이 남긴 흔적과 더 유사하다고 하겠다.
이 “탈출 서관(棲管; burrow, 퇴적물 속에 동물이 살기 위해 파놓은 구멍)”은 흔히 위쪽 방향으로만 향할 뿐이며, 그들이 평소에 살아가는 방식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서관이 뚫어져 있지 않다. 이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가 두터워지는 퇴적층을 파헤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아래 지층이 퇴적된 후 얼마나 오래 있다가 위 지층이 퇴적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래 지층에 존재하는 퇴적구조가 생난작용에 의해 파괴되기 전에 윗 지층이 쌓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지층들은 같이 묶여서 지층 기둥을 만들 수 있었으며, 전체의 지층 배열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형성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토양층(土壤層)의 부재(不在)
똑 같은 논리를 또 다른 명확한 특징에 대하여 정확히 적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지층에도 인지할 만한 토양층이 없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오래된 지구 사상에 의하면, 지금은 물 위에 드러나 있는 대륙이 물 속에 잠긴 적이 여러 번 있었으며, 이것은 거의 모든 암석들이 바다 물이나 파도의 작용에 의해 삼각주, 석호에 퇴적되거나 폭풍이나 이류 (泥流 ; 물을 많이 함유하여 유동성이 큰 진흙이 산의 경사면을 흘러내리며 나무 조각, 자갈, 동물의 사체 등을 포함한 물질의 흘러내림)에 의해 퇴적된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는 것이다. 육지로 드러난 동안에는 토양이 존재하여 식물이나 동물들이 살았을 것이다. 연안이라 하더라도 물 밑 토양은 필요하다.
오늘날 토양은 풍화된 암석 즉, 동결(凍結; freezing)과 해빙(解氷; thawing)과 같은 물의 작용, 광물의 화학적 풍화, 바람과 물의 침식작용, 식물의 뿌리와 바닥을 파헤치는 동물의 작용에 의해 분쇄된 암석으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부패해 가는 식물, 동물의 배설물, 시체와 같은 유기물들이 추가된다. 토양이 없다면 다양한 생물의 번성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화석 증거를 통하여 지구의 역사 전반에 걸쳐 수많은 생물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토양이 형성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형성되면 침식에 대항하여 남아 있으려는 성질이 있다. 육지의 표면이 바다 속에 잠기게 되면 토양은 어떻게 될까? 격변적인 과정에 의해 빠르게 잠기든지, 아니면 바다가 서서히 확장되어 잠기든지, 분명히 토양의 일부는 보존될 것이다.
지질학적 증거로서 토양층이나 토양 구성물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토양층일 것이라고 종종 언급되는 것은 “하반점토 (下盤粘土; underclay)' 인데, 일반적으로 얇은 석탄 층 아래에서 발견되며, 물로 씻기어진 토양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반점토의 구성은(석탄이 형성될 수 있는) 무성한 늪지 토양의 구성과는 다르다. 그리고 화석화된 토양을 확인해보려는 시도조차도 별로 없다. 지질학적 증거로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암석들 중 하나이며 토양이나 고대토양 (古代土壤; paleosols)은 아니다. 그리고 이 암석들은 이제껏 토양으로 존재했던 적이 있는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고전적인 지질학에 의하면 생명체들이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육지 표면이 수 억년에 걸쳐 계속 존재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토양은 다 어디로 갔는가?
교란되지 않은 층리면 (層理面; bedding plane)
지층 경계면의 모습과 관련하여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암석이 “칼로 자른 듯한 면”으로 층리면을 이루며 놓여있는 두 지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랜드 캐년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암석층들 사이의 접촉면 사진을 살펴보기로 하자. 어두운 색의 허미트 혈암이 코코니노 사암 아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허미트 혈암층은 해변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환경에서 미사(微砂; silt, 모래보다 잘지만 진흙보다 굵은 침적토)와 진흙(mud)이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진화론적 연대로 대략 2억 8천만년 전의 시준 화석과 지질학적 퇴적환경이 발견되었다. 혈암(頁岩; shale)층 위의 코코니노 사암(砂岩; sandstone)층은 약 2억 7천만년 된 지층으로 혈암층과는 다른 기원을 갖고 있으며, 아직 그 생성 과정이 논쟁 중에 있다. 대부분의 동일과정론자들은 이 지층을 사막의 모래 언덕으로서 현재는 고화(固化)되어 단단한 암석으로 변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들이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암석의 수평한 층리면에 대해 전체적으로 경사가 진 층리면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평평한 사막에 생긴 물결모양의 모래언덕이라는 것이다.
어떤 지질학자들은 이것을 물 속 모래 언덕에 생긴 커다란 “물결자국”으로 해석한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사층리(斜層理; cross bed)의 경사 각도, 모래에 생긴 양서류의 흔적화석, 모래의 근원, 모래 입자 모양 등으로 보아 마른 모래라기보다는 젖은 모래의 특성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다른 의미만 없었다면 모든 지질학자들이 사암층의 물 속 생성이론을 수용했을 것이다.
움직이는 물은 모래입자를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코코니노 사암층을 이루는 모래 알갱이의 평균적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 코코니노 사암층의 모래는 직경이 1/8 ~ 1/4 mm인 세립질(細粒質; 크기가 작은) 모래라는 것이 밝혀졌다. 세립질의 모래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모래와 물의 경계면 물 속도가 초당 1~1.5 m 정도로 빨라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모래 언덕 구조의 측량결과와 실험적 결과를 비교해보면 이 엄청난 모래 언덕들(혹은 길다란 물 속 연흔들)이 30 m 깊이 이상의 물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물은 깊은 곳보다는 표면에서 훨씬 더 빨리 이동한다는 것은 관찰을 통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이 30 m 깊이에서 초당 1~1.5 m 속도로 이동한다면 표면에서는 이 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현재로서는 30 m 깊이의 대양에서 초당 1 m 속도로 이동을 계속하는 물의 흐름이 관찰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강력한 폭풍우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격변적 상황은 동일과정론자들 대부분이 생각지도 못하는 사건이다. 물론 창조론자들 대부분은 물에 의한 대격변적 사건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한 이 모래 언덕이 노아 홍수의 절정기에 퇴적된 것으로 아주 설명이 잘되기 때문에 물 속 생성 모델을 선호하며, 그리고 그곳에 사막 퇴적구조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해석만은 아니다. 증거들은 분명히 물 속 모델 편이다. 모래 언덕이 사막에서 만들어졌다는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마치 “만일 내가 그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격언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허미트 혈암층과 코코니노 사암층의 층리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코코니노 사암층이 어떻게 퇴적되었는가와 관계없이, 이 사암층은 허미트 혈암층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형성되었으며, 진화론적으로 보면 두 지층 사이에 천만 년의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일 코코니노 사암층이 사막 (25만 6천 평방 킬로미터 면적을 갖는) 이었다면, 허미트 혈암층 물질이 쌓인 바다 바닥이 융기하여 물 밖으로 드러나 사막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높아지고 건조되었을 것이다. 특히 수면 근처에서 (수면 위나 아래 모두) 이 거대한 지역이 침식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허미트 혈암층(Hermite shale) 윗 면은 유독 편평하고, 일반적인 침식의 흔적이 전혀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관찰 결과에 비추어 보아 이러한 침식 작용이 허미트 혈암층 위에 있던 퇴적물을 씻어내어 코코니노 사막이 형성될 편평한 허미트 혈암층만이 남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만일 어떤 퇴적물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모래가 쌓이기 전 천만 년 동안 허미트 혈암층 표면이 어떻게 침식되지 않고 편평하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침식작용과 퇴적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지표면은 없다. 천만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천만 년 동안에 말이다! 진화론적인 오랜 지구 각본에 의하면 그 때 지구는 다습한 기후가 계속되던 시기였다. 따뜻한 바다 가까이에 강우량이 적은 거대한 사막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모순된 표현이다. 또한 코코니노 사암층이 물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할지라도,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허미트 혈암층 표면과 같은 지층면이 침식 흔적 없이 남아 있을 수 없다.
시준 화석과 관계없이, 두 지층의 접촉면이 칼로 자른 면과 같다는 사실은 두 지층의 퇴적 사건 사이에 오랜 시간이 경과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논의의 요점이다. 만약 진화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이 두 지층은 급속한 물의 흐름과 물질의 퇴적이 거의 동시적으로 빨리 일어났거나 광대한 지역 위를 동일한 깊이로 빨리 이동하는 다량의 물에 의해 표면 침식이 일어난 후 코코니노 사암층이 퇴적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느 경우라도 창세기의 홍수와 같은 규모의 대홍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지역에서 지층 사이의 경계는 똑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한 지역의 인접한 두 지층 사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역마다 그런 지층들이 있다. 암석지층들은 인접한 두 지층들의 퇴적 사건 사이에 오랜 시간이 경과했다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지층 화석
지하 석탄광산은 일하기에 항상 위험한 장소인데, 석탄 채굴이 기계화되기 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광부들은 항상 위험하다. 석탄광산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의 하나는 “구혈 (歐穴; kettles)”이라고 알려진 형태가 존재할 때이다. 구혈은 채굴 갱의 천장에 거의 원형으로 보이며, 쉽게 분리되어 떨어져 광부들을 압사시키는 원기둥 모양 암석의 바닥 면이다. 둥그런 모양은 위로 향한 나무줄기의 아랫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뿌리를 포함하고 있는 아랫부분은 종종 석탄과 함께 채굴되어 버려서 채굴 갱의 천장에서 위 지층으로 뻗어 있는 줄기만 남는다. 만약 보강재나 천정볼트, 스크류, 혹은 다른 방법으로 구혈을 안정화하지 않는다면, 이 원통형의 나무 줄기는 매우 위험하다.
석탄의 기원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은 이탄 (泥炭; peat, 석탄의 전 단계로 생각되는 유기퇴적물)이 이탄 습지(늪지)에 쌓인다는 것이다. 습지에 나무와 관목들이 살다가 죽어서 습지의 정체된 물에 이탄으로 퇴적하는 것이다. 두터운 이탄층이 수년에 걸쳐 쌓인 후, 습지가 서서히 바다 속에 잠기게 된다. 이탄 습지가 완전히 바다 속에 잠기고 나면, 해양저에 쌓이는 진흙에 덮여 버리게 된다. 이탄 위에 덮인 진흙은 서서히 암석(보통 혈암이나 석회암)으로 변하고, 이탄은 수백만 년 동안 묻혀 있는 동안 열과 압력에 의해 서서히 석탄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이탄으로부터 물과 다른 휘발성 물질이 제거되고 탄소만 대부분 남게 된다는 것이다.
해양 바닥에 쌓이는 진흙은 대륙붕 근처나 얕은 바다에서 매년 1~25 mm 정도로 아주 얇게 쌓인다. 깊은 바다에는 퇴적물이 1000년에 1 mm 정도 쌓인다. 이런 속도로는 진흙이 두텁게 쌓이고 이탄이 석탄으로 변하고 진흙이 암석으로 변하는데 수백만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 동부의 어떤 석탄 지역에는 서로 다른 석탄층들이 50개나 되며, 층과 층 사이는 석회암이나 혈암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론상으로 진화론에 따르면 각각의 퇴적층들이 쌓이는데 오랜 세월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요요(yoyo)와 같이 바다 위 아래로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함으로써 퇴적에 필요한 전체적 시간은 더욱 길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나무 화석들은 전체 지층 열의 연대를 구하거나 적어도 몇 개의 지층을 동일한 연대로 묶어주는 데 도움이 되는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만약 나무 화석이 발견된 곳에서 나무가 살았었다면 (다시 말하면 나무들이 습지에서 자랐다면), 이탄이 퇴적되고 습지 전체가 서서히 물밑으로 가라앉은 후에도 그들의 죽은 줄기는 때때로 9~12 m 이상 되는 해양의 물을 뚫고 우뚝 서 있어야 한다. 해양 바닥으로부터 9 m 높이로 뻗어있는 나무줄기를 생각해 보라. 어떤 나무도 바닷물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다. 바닷물에 뿌리를 뻗고 살아가는 나무도 있지만, 어떤 나무라도 바닷물에 잠기게 되면 곧 죽어버린다. 죽은 나무줄기가 썩어 부스러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정말로 이 나무 주변에 진흙이 퇴적되는 동안 백만년, 아니 수백년 만이라도 우뚝 서 있을 수 있었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다. 어떤 다지층 나무화석은 하나 이상의 석탄층을 가로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 다지층 나무화석은 수백만년동안 지층과 함께 위 아래로 반복해서 오르락내리락 했을까? 이 나무를 연구해 보면 나무가 부패하기 전에 이탄(후에 석탄으로 변함)과 그 위를 덮는 퇴적물이 퇴적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역동적인 해양의 환경이든지, 공기 중에 서 있거나 혹은 퇴적물에 덮혔든지 간에 나무는 길어도 수십년 안에 확실히 썩어버린다.
하나 이상의 지층을 뚫고 서있는 다지층 나무화석은 여러 층의 지층을 단 기간에 형성된 한 묶음의 지층군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지층 나무화석으로부터 이 한 묶음의 지층군이 형성되는데 정확하게 얼마나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일반적인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다.
다지층 나무 화석이 하나 밖에 없다면 특이한 사건에 의해 퇴적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다지층 나무화석들이 있다. 석탄 광산에서 다지층 나무화석이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하의 많은 석탄 광산을 가보았는데, 그 중 한군데를 제외하고 모든 광산에서 다지층 나무화석이나 구혈을 관찰했다. 침식이나 노천 채굴에 의해 석탄 광맥이 드러난 곳에서도 종종 극적인 예가 발견된다.
우리의 논의는 큰 나무 줄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오클라호마의 한 지역에서 나는 도로 건설시 깎여 나간 암반에 드러난 얇은 석회암 층을 연구했다. 이 석회암 층은 7.6 cm 두께의 층들이 팬케이크와 같은 형태로 쌓아올려져 있었다. 진화론자인 나의 동료들은 이 석회암 층을 오랜 세월의 느린 퇴적 작용의 결과로 해석한다. 그러나 노두(露頭; 광맥의 노출된 부분) 전반에 걸쳐 빠르고 연속적인 퇴적의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관찰한 모든 곳에서 석회암 층을 뚫고 서있는 다지층 나무화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큰 나무는 아니고, 칼라마이트(Calamities) 라는 갈대 같은 식물 화석이었다. 보통 2.5 cm 정도의 두께로 지층을 뚫고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지름이 15 cm인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마디가 있는 줄기들은 일단 죽으면 매우 부서지기 쉬운데, 이는 그것들이 작은 조각으로 발견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확실히 이 석회암은 이런 식물이 성장하는 동안 느리고 서서히 쌓인 것이 아니며, 일련의 물 속에서의 작용에 의해 매우 빨리 퇴적된 것이었다.
다른 종류의 화석들도 역시 똑같은 결론을 입증해준다. 동물 화석이 암석 속에서 하나 이상의 지층이나 엽층(葉層; lamination, 1 cm 이하 두께의 지층)에 걸쳐있는 경우가 있으며, 여기서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 와이오밍주에 있는 그린리버(Green River) 층은 오래된 연대를 주장할 때 인용되는 대표적인 지층 중의 하나이다. 이곳의 광대한 혈암층은 수백만 개의 밀리미터 두께의 엽층으로 구성되어있다. 동일과정설 해석에 의하면 이 곳은 잔잔한 호수 환경에서 여름과 겨울의 반복된 퇴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풍부한 화석들이 발견되어진다.
그런데 화석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동물이나 식물이 호수나 해양의 바닥에 가라앉고 매년 아주 적은 양의 퇴적물이 쌓이게 되면 화석화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바닥에 가라앉는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수면에 떠다니며, 어느 경우라도 육식성 동물이 먹어 치우든가,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든가, 역학적인 작용에 의해 훼손된다. 오랫동안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는 결코 없다. 화석들은 아주 신선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서 묻혀버렸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도 한다. 구체적인 화석화 메커니즘은 다양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화석의 주인공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기 위해서는 분해작용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매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그리고 이것이 그린리버(Green River) 지층 군이 형성된 모습이다. 그린리버 지층에는 메기 화석들이 매우 많이 발견되는데, 어떤 것은 길이가 25 cm나 되는 것도 있고, 껍질과 부드러운 살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면, 급격히 매몰된 것이 확실하다 [6]. 밀리미터 두께의 여러 엽층에 걸쳐있는 다양한 자세의 메기 화석들이 발견된다. 이 메기들은 호수 바닥에서 서서히 그들의 몸이 덮일 때까지 수백 년 동안 죽은 채로 누워있었던 것이 아니다. 풍부한 조류 화석을 [7] 포함하여 다른 형태의 화석들도 호수 바닥 퇴적물에서 발견된다. 성경이 옳지 않다는 고전적인 증거였던 이 지층 군이 실제로는 빠른 격변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임을 인정할 때가 온 것이다.
석탄
석탄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자연 조건하에서 이탄이 변하여 석탄이 되는 과정이 결코 관찰된 적이 없다는 것을 언급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변화 단계인 석탄, 갈탄, 이탄을 모두 알고 있지만, 어떤 단계의 변화도 멈추어버린 것 같다. 종래의 이탄형성에 대한 늪지 이론은 폐기되어야 마땅한 것 같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일반적인 주장과 같이 석탄이 만들어지는데 수백만년에 걸친 열과 압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몇 시간이나 혹은 몇 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석탄이나 석탄과 같은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실험실적 방법이 고안되었다 [8,9]. 압력은 필요하지 않았으며 주로 높은 온도가 필요하였다 (뜨거운 물이 이상적인 것 같다) [10]. 유기물이 연소하지 않도록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가열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시작될 때는 열이 가해져야 하지만, 일단 과정이 시작되면 스스로 열과 압력을 발생한다.
이러한 화학적 반응에는 촉매가 필요하고, 촉매는 이런 반응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일어나도록 한다. 이 촉매는 보통 화산재로부터 비롯된 점토의 한 형태이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대부분의 석탄층은 “하반점토' 라고 불리는 점토층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분할물(partings)' 이라고 불리는 얇은 화산성 점토층은 석탄의 곳곳에서 발견되며, 화산성 물질들이 유기물 자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 물질은 석탄이 연소할 때 ‘클링커(clinker)’라 불리는 덩어리로 변한다.
이 점토 분할물은 그 자체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물질이다. 얇고 편평한 이 점토 분할물 층이 수백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뒤덮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오늘날의 이탄 습지에는 넓고 편평한 층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표면이 물결 모양과 같고 많은 수로가 나 있으며 ,곳곳에 높은 지형이 존재한다. 이탄 습지에는 하나로 연결된 넓은 평지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절한 조건하에서 이탄이 빠르게 퇴적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탄 습지에서는 이러한 적절한 조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이 점토 분할물은 편평한 퇴적 면을 필요로 하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탄 습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1]. 그래서 석탄 형성에 관한 다른 모델이 분명히 필요하다.
1980년 5월 18일 세인트 헬렌스 산이 분출하여 산 북쪽 388 평방 킬로미터 (역자주: 서울 면적의 64%)의 산림을 황폐화시켰다. 수분 내에 백만 개 이상의 통나무가 스피릿 호수 위를 떠다니며, 막대한 양의 유기물과 화산재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불과 수 년 만에 나무 껍질과 변질된 목질부로 주로 구성된 유기물과 화산재를 포함하는 퇴적물들이 호수 바닥에 쌓였다. 이 이탄층은 석탄과 거의 같은 성분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나무 껍질들이 바닥에 쌓여 층을 이루었는데, 이는 호수 위를 떠다니던 나무들이 서로 부딪쳐 껍질이 벗겨진 후 바닥에 쌓인 것이었다. 석탄에서 발견되는 단단한 짙은 색의 번쩍이는 줄무늬가 바짝 마른 나무 껍질이라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스피릿 호수의 이탄은 석탄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떠다니던 많은 나무 줄기들이 물이 잔뜩 배어 뿌리 쪽이 먼저 가라앉아, 호수 바닥의 유기물이 섞인 진흙과 나무 껍질 층에 뿌리를 내린 듯이 수직으로 서있었다는 것이다. 유기물이 계속 퇴적되고 화산활동과 침식작용이 계속됨으로서 화산재와 다른 퇴적물이 호수로 계속 유입됐고, 호수 바닥에 우뚝 선 나무들은 이러한 퇴적물에 의해 점점 매몰되어 갔다. 만약 퇴적물이 계속 쌓인다면, 이 나무 줄기들은 우뚝 선 다지층 나무 형태로 매몰될 것이다 [12].
스피릿 호수의 이탄은 현재의 석탄 층과 그 성분과 구조가 유사할 뿐만 아니라, 석탄층 주변에 화산성 점토가 풍부한 이유도 설명하고 있다. 만일 화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이탄층 위에 뜨거운 물질이 쌓일 것이고, 이탄층은 빠르게 석탄으로 변할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역청탄과 같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석탄층은 다지층 나무화석에 의해 관통되어 있을 것이다.
Reference and Notes
1 '층위학적(層位學的) 증거의 본질' 54쪽과 106쪽
[Ager, Derek, 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1981, pp.54, 106.]
2 1961년에 휘트콤(John Whitcomb), 모리스(Henry Morris)가 쓴 책 '창세기 홍수(The Genesis Flood)'는 현대 창조 론 운동의 촉진제로 평가되고 있다. 최초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로 성경적 세계 역사에 대한 신빙성 있는 변호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3 “지질학적 동인(動因)으로서의 허리케인: 허리케인 칼라에 대한 사례연구”와 “텍사스 대학 경제 지질학부 조사보고서”
[Hayes, M.O. 'Hurricanes as Geological Agents: Case Studies of Hurricanes Carla, 1961, and Cindy, 1963,'University of Texas, Bureau of Economic geology, Report of Investigation No.61, p.56.]
4 '1982년 퇴적 지질학회 회장 강연: 특수 퇴적 작용―얼마나 정상적이어야 정상인가? 얼마나 드물어야 드문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퇴적 암석학회지, 12쪽, 1983년 3월.
[As reported in Dott, Robert H.'1982 SEPM Presidential Address Episodic Sedimentary―How Normal is Average? How rare is rare? Does it matter?' Journal of Sedimentary Petrology, Vol.53, No.1, March 1983, p.12.]
5 이에 대한 설명으로 1994년에 스티브 오스틴(Steve Austin)이 편집하여 미국 창조과학연구소가 발행한 그랜드캐니언 관광 안내서인 “대격변의 기념비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을 참조하라.
6 지질학회지 1979년 4월호 196쪽 “와이오밍주 그린리버 지층의 메기 화석과 퇴적 환경”
[Buchheim, H. Paul and Surdem, Ronald C. 'Fossil Catfish and the Depositional Environment of the Green River Formation, Wyoming,' Geology, Vol. April 1979, p.196.]
7 어메리컨 싸이언티스트 1978년 5/6 월호 298쪽 “프레스비오르니스와 오리류와 홍학류로의 진화”
[Feduccia, Alan 'Presbyornis and the Evolution of Ducks and Flamingos,' American Scientist, Vol.66, May/June 1978, p.298.]
(역자주: 프레스비오르니스는 진화론의 시대 구분상 효신세(曉新世; Paleocene)에 살았던 다리가 길고 머리는 오리류와 비슷한 새를 가리킴.)
8 “퓨얼”지 1964년 43권 215-224쪽 “석탄화 작용에 있어서의 섬유소와 갈탄 성분의 역할”과 “케미칼 테크놀로지“지 1972년 5월호 296쪽과 ”네이처“지 1985년 3월28일 16쪽 ”일년만에 목질소(木質素; lignin)에서 석탄으로“를 참조하라
[Davis, A., and Spackman, W.'The Role of Cellulosic and Lignitic Coponents in Articulate Coalification,' Fuel, Vol.43, 1964, pp.215-224 / Hill, George R. Chemical Technology, May 1972, p.296, / Larson, John 'From Lignin to Coal in a Tear,' Nature 31, March 28, 1985, p.16.]
9 '유기 지구화학' 1984년 6권 463-471쪽 “인공 석탄화(石炭化)에 대한 연구: 인조 마세랄의 제조와 특성 분석“
[Hayatsu, R., et al. 'Artificial Coalification Study: Prepar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Synthetic Macerals,' Organic Geochermistry, Vol.6, 1984, pp.463-471.]]
10 1993년 2월 20일자 “싸이언스 뉴스” 121-125쪽 “물의 다양한 역할: 생물의 사체를 석유와 석탄으로 조용히 바꾼다”
[Pennisi,E.'Water, Water Everywhere: Surreptitiously Converting Dead Matter into Oil and Coal,' Science News, Feb. 20, 1993, pp.121-125.]
11 1979년 미국 지질학회 앱스트랙트 11호 381-382쪽, 오스틴의 논문 '켄터키 12호 석탄에 널리 퍼져 있는 탄소질 혈암 분할물의 해양 기원의 증거“
[Austin, S.A. 'Evidence for Marine Origin of Widespread Carbonaceous Shale partings in the Kentucky No 12 Coal,'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 Abstracts, No.11, 1979, pp.381, 382.]
12 세인트 헬렌스 화산에 대한 전체적인 것을 싶으면 1986년에 발행된 ICR Impact Article 175 Steve Austin 저 '세인트 헬렌스 산과 대격변론(St. Helens and Catastrophism)“을 참조하라. 창조과학 연구소(미국)에서는 매 2 년마다 8월에 관광단을 모집하여 세인트 헬렌스 산 관광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