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이 쓴 “그날 이후”라는 글에 재미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은혜를 베푼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 지상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지상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한 ‘술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거의 폐인이 되고 손발이 심히 떨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여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소?”라고 물었습니다. 술주정꾼은 예수님을 가만히 보더니 “나를 고쳐 준분이군요.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당신이 건강한 다리로 고쳐주셨지요. 절름발이일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 대로 살아갔는데 두 발로 뛰면서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은 없고 하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습니다.” 하고 깊은 한숨을 쉬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깊은 상념 속에서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한 불량자’가 선창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오?”라고 싸움을 말렸습니다. 그 때 그 싸우던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전에 앞을 못 보던 소경이었을 때 당신은 진흙을 발라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고 온 세상이 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눈을 뜨고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화풀이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고 흐느껴 울더라는 것입니다.
절름발이가 멀쩡한 사람이 되었으면 건강한 사람답게 살아야지 옛날 불구자일 때처럼 구걸이나 해서 먹고 살려고 하니까 인생이 더 힘이 들어지는 것입니다. 불구자나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고 도와줄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 멀쩡한 사람이 구걸을 하니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절름발이가 뛸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건강한 사람답게 힘을 쓰고 노력해서 살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구걸이나 하면서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던 장님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면 그 눈 가지고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 보면서 살면 되지 왜 꼭 나쁜 것만 보면서 그것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려 부수면서 살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마음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을 해 주었으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참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인이 되게 해 주었으면 인간답게 살아야 할 것인데 오히려 구원받기 이전의 삶보다 더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