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빠서 병역면제이라 대학동기들중에서 제일 먼저 교편을 잡았다.
4학년때 과대표를하고, 모범적인 대학생활을 해서 그런지 교수님의 추천으로 군산의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첫출발했다.
학교재단에 학교가 여러개이라 낮에는 독어를 가르치고,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23살의 젊은 열정이있는 교사이니 수업시간이 살인적으로 많아도 1년간은 힘든줄도 모르고,기숙사사감까지 잠깐 했다.
나중에는 너무 힘이들어 기숙사사감은 그만두었고 ,하숙생활을 했다
총각선생이 나혼자뿐이라 사춘기의 여학생들이 나와 나이차이가 적어서 그런지 하숙집으로 찾아와 빨래를 해준다니,영화를 보러가자고하던가,퇴근길에 빵을 사달라고 기다려서 하루도 편한날이 없는 긴장의 나날이었다.
긴장을했던 이유가있었다.
부임첫날에 교감선생이 나에게 은근 의미심장한 말을했다.
총각선생은 사실 꺼린다는것이며,매사에 행동을 조심하라는 언질이었다.
나중에 그이유를 알았다.
나의 전임선생이 대학선배인 유부남교사인데, 같은학교의 여학생과 스캔달이 나서 그만둔탓에
후임으로 내가 온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에 여학생들과 일부러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여학생들을 마음속으로 철저하게 경계를했다.
나를 추천하신 은사님에게 절대로 누를 끼치지않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즐거운일도 있었다.
교생실습을 나온 음대여대생과 로맨스도 있었고,평생의 반려자를 그당시에 군산의 선유도의 민박집에서 우연히 만나서 지금까지 알콩달콩 살게된 인연도 그시절이었다.
군산이 아무래도 객지이어서 외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저녁에 술집을 자주 들리게되어 좀 방탕한 생활을 하기시작하였다
마음이 한참 흔들릴때, 또 대학의 다른교수님이 전화로 서울로 오지않겠냐고하여 교수님의 추천으로 방배동에 있는 문제의 상문고등학교로 전근을와서 그후로 파란만장한 많은일을 겪게되었다.
사실 서울로 오고싶은 마음에 상문고등학교가 어떤학교인지도 몰랐지만,사표를내고 그대로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올라왔다.
어떤학교인지를 알았다면 애초에 그대로 군산에 있었으면 앞으로 있을 험난한 고생은 하지도 않았을터인데,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 또한 운명이었다.
*교직은 길어서 후반부는 다음에.
교사로서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부족함이 많은 교사이었다.
교사는 사명감이없으면 단순한 직업인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가장 큰 문제이다.
39년의 교직생활에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인성교육에 나름 노력을했지만,
현실은 인문계고등학교에서는 어려웠다.
더구나 강남에있는 학교에서.
사회가 부패해도 마지막 양심을 지킬사람은 교사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도 말이 그냥 나온것이 아니다.
교사의 말한마디가 학생의 미래를 좌우할수있다.
좋은선생이 학생들에게 빛이라면,
나쁜선생은 평생 학생들에게 트라우마가 된다.
39년의 교직생활에서 얻은 철학이며,
교사는 학생들의 거울이되야하며,
좋은교사들이 나쁜교사보다는 많다고 자부한다.
군산에서 여제자들과.
지금은 66세정도 되었을듯.
같이 늙어가는구나!
이제는 스쳐가도 모를정도로 변했지만,
보고싶다!
서울로 도망오듯이 갑자기 오게되어 소식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