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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텃밭에서
김 선 구
내가 자란 시골집은 집터가 넓었다. 사방을 돌담으로 높이 쌓아 작은 성처럼 보였다. 터 한가운데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ㄷ자 모양으로 배치하였으니 가운데는 공동의 공간 마당이다. 마당은 평소에 우리들 놀이터가 되고, 농사철에는 작업 공간, 그리고 수확 후면 곡식을 널어 말리는 장소였다. 집 주변으로 딸린 넓은 공간은 채마 밭이었다. 무, 배추, 파, 마늘, 고추, 호박 등 철따라 각종 채소가 재배되어 년 중 식재료를 이용했다. 일부는 뽑아서 오일 마다 서는 시장에 내다 필기도 하고, 이웃집에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나의 부모님은 연로하여 농사일에서 손 뗀 다음도 텃밭 가꾸는 데는 정성을 다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평생을 함께 한 흙을 벗하여 사는 것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나본다.
집에 딸린 공간을 정원이라고 보면 정원은 마당과 텃밭으로 나누어진다. 마당은 생활공간이고 텃밭은 보통 채마 밭으로 이용되었으니 체험공간인 셈이다. 우리나라 전통가옥에서 정원이란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양손을 뒷짐 지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사색을 통하여 정신적 성장을 꾀하는 장소가 마당이라면, 텃밭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을 체험하는 장소로 볼 수 있다. 절집에 스님들도 텃밭에서 울력이란 노동을 통하여 자연의 순리를 배운다. 곧 텃밭은 심신을 단련하는 체험공간이라 힐 수 있다.
근래에 도시화가 진전되다보니 사람들은 삶의 공간이 좁아졌고, 생활에 여유도 줄어들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농업이란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을 것 같다. 도시농업이란 텃밭을 통하여 한적한 시골모습의 재현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흙과 함께 하며 여유를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종자가 싹트고 자라는 모습 속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인들에게 채소를 가꾸기를 통하여 생활에 재미와 여유를 제공할 것이다.
얼마 전 큰애가 텃밭을 분양받아 가꾼다고 연락이 왔다. 손녀가 조루를 들고 물주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자라는 애들이게 자연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유용한 일이다.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도 어려서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키웠기에 훗날 천제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하지 않는가!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자연 속에서 배움을 찾고 여유를 누려보려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독일에 있을 때 일이다. 주말 어느 날 연구실의 스티븐슨박사가 자기의 텃밭(?)에 가서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신기한 생각에 따라가 보니 30평정도의 풀밭이었다. 주위에 나무 몇 그루 심었을 뿐 채소는 하나도 심지 않았다. 관리실도 있고 야외화장실도 마련된 조그만 가정집과 같았다. 관리실은 농기구와 탁자와 의자, 바비큐 틀 등 파티에 필요한 자재들을 저장해두는 공간이었다. 그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했으므로 집과 떨어진 곳에 땅을 임대하여 작은 정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이라야 예초기를 꺼내어 풀을 깎고 풀밭을 정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원정리를 끝내고는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이곳은 텃밭이 아니고 휴식과 사교의 공간일 뿐이었다. 그들은 집밖 야외에서 식사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인 모양이었다.
독일 가정집에 가보면 정원이 온통 풀밭이다. 정원 한구석을 정하여 채소라도 가꾸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아마 텃밭이란 개념이 없는 모양이었다. 건물 내부와 창가는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집 밖은 오직 풀밭으로 된 정원을 가꿀 뿐이었다. 주말이면 친구나 친지들을 초대하여 정원에서 식사를 하거나 담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정원은 휴식의 공간일 뿐 우리의 텃밭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거주자들처럼 개인 소유의 정원이 없는 경우에 별도로 정원을 마련한 것을 나는 텃밭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어렸을 때 나는 우리 집 채마 밭은 텃밭이라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당시에는 집안농사일도 힘든데 이것 까지 가꾸려니 귀찮기만 하였다. 텃밭이라면 여유를 갖고 취미삼아 채소를 가꾸는 곳이다. 땅이 귀한 사람에게나 대접 받는 법이지 농토가 많은 사람에게는 노동의 연속으로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도시에 나와 살면서 텃밭의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은 흙을 접해보고 싶은 심경에서다. 어려서 힘들어 했던 농사가 어느 덧 향수로 변하여 찾아왔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시골생활이 향수처럼 밀려오는 것을 보니 사람은 자라온 환경을 벗지 못하는 모양이다.
경산으로 이사 온 후 텃밭 할 만한 땅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남매지 뚝 앞에 버려진 땅을 발견했다. 못에 제방을 쌓으면서 뚝 앞 토지들은 개발제한 구역으로 정하는 바람에 관리하지 않고 버려둔 땅이었다. 주변에 과일 나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사람들이 살던 곳인 듯도 한데 헐어버린 건축자재들로 널려 있어서 불모지 땅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부부가 힘을 합쳐 황무지를 개간하듯이 땅을 정리 하였다. 무거운 돌과 시멘트 블록들을 파내서 한쪽으로 이동하고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정비하니 제법 텃밭다운 모습이 되었다. 어느 날 땅 주인이 나타났다. 힘들여 정리해 놓은 모습을 보고는 뭐라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결국 농사를 잘 지어보라고 허락했다. 이제 완전한 나의 텃밭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년째 채소를 가꾸고 있다. 풀을 썩혀 퇴비를 만들고, 유기질 비료도 주다 보니 토양이 개선 된 듯 지렁이도 보이고 굼벵이도 보인다. 여름철이면 각종 해충과 들짐승도 다녀간다. 그래도 유기농 채소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즐겁다. 그런가 하면 텃밭 주변에서 과일과 들나물도 공짜로 들어온다. 쑥 , 머위, 드릅이 봄철 식욕을 돋우어 주고, 관리하지 않고 버려진 나무에서 각종 과일이 공급된다. 이제 곧 예취가 열리려한다. 이어서 찔레열매와 오디가 달리고 가을이면 감과 밤이 열린다. 주인 없는 나무에서 과일을 따먹는 것도 재미있다.
아침 산책길에 텃밭을 둘러본다. 상치, 깻잎, 열무가 싹이 트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관찰한다.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모종들이 잘 크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돌보아준다. 지주를 세워주기도 하고, 오이넝쿨들이 감아 올라 갈 줄도 메어준다. 수확 할 것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두어들인다. 깻잎도 따고, 상치도 솎고, 열무도 뽑아온다. 고추가 달리면 고추를 따고, 오이가 커지면 오이를 딴다. 토마토가 익으면 수확하고, 가지는 수시로 따준다. 키우는 정성, 수확하는 기쁨. 이것은 흙과 더불어 상생하는 즐거움이다. 이 보람을 어찌 바비큐 파티와 비교할 것인가!
첫댓글 진짜 좋은 텃밭이네요. 가꾼 만큼 거두고, 공을 들인만큼 땅은 좋은 결실을 선물할 것입니다. 거기에 재미와 신체적 정신적 건강까지... 땀흘리며 활짝 웃는 두 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인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조금 나누어 주어서 먹어보니 마트에서 사온 채소와는 맛이 비교할 바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먹고 남은 채소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방금 가지고 온 채소처럼 신선했어요. 텃밭을 가꾸시는 석염선생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자신이 심고 가꾸고 열매가 달려 자라는 모습을 보는 재미와 보람도 남다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경산에 살고 있습니다. 텃밭 구경도 하고 저도 텃밭이 있는데 앞으로 농사도 지어 보고 싶네요 많은 가르침 주세요
경산에 살고 있다니 반갑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해보지요
작은 텃밭에서 큰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버려진 땅을 일구어 텃밭을 만들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버려두면 쓰레기장이 될 곳이 정비되고 채소를 심고 가꾸면 정서적 운동도 되고 내가 가꾼 싱싱한 채소를 제때 맘 놓고 먹을 수 있으며 간혹 이웃에 베풀수도 있으니, 일석4조가 아닐까 생각하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버려진 땅을 텃밭으로 만들어 채소를 재배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좋은 글 읽었습니다.
텃밭의 의미를 생각하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저도 경산에 살고 있어요~ 자그만 텃밭도 하고 있구요. 남매지 산책하면서 텃밭도 돌볼수 있으니 더할나위없이 좋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경산에 계시는 분이 많네요. 한 십년 농사를 짓는데 영감이 힘이 딸려 아플까봐 걱정입니다. 비슷한 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계시네요. 버려진 땅을 옥토로 만들어서 가꾸고 계시니 주인아저씨도 좋아하실 겁니다. 울친구 묵정밭으로 두었더니 세금 엄청 물었답니다.
텃밭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저수지 뚝 앞 텃밭이라서 어릴 적 제주 고향집 채미 밭보다 넓디 넓은 공간이라 유유자적하며 심신을 단련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합니다. 푸성귀 냄새 풍기는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텃밭을 일구고 채소를 제배하다 보면 힘도들지만 보람도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서 덤으로 정도 쌓여가는것 같습니다. 제주도 고향집의 농사와 텃밭, 독일에서의 텃밭 개념을 아우르는 좋은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성공한 도시농업의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부지런하게 움직이시는 모습과 가족의 화목함이 느껴집니다. 늘 좋은 먹거리 드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