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 대통령의 새 승부처
외교 이슈에서 승부 보려 했던 한국 대통령들
尹도 이 분야서 임기 상반기 성패 결정 날 듯
“That’s the beauty of one-term presidency.”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러 가기 직전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5년 단임 대통령이니까 이 정도의 강제징용 해법을 갖고 한일 정상회담이라는 승부수를 보란 듯이 던졌다”는 얘기다. “재선에 도전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 같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카드”라고도 했다.
한일 간의 화해를 권했던 미 정부 인사의 말이라 의외였다. 정상회담 후 벌어지는 풍경은 그의 반응처럼 복잡하다. 여권은 “윤석열식 결단”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이완용”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맹비난한다. 일본 측은 회담에서 독도, 위안부 합의 이행 등이 거론됐다고 주장하며 뒤통수를 치고 있다. 회담 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가 완연하다.
윤 대통령은 물러설 기색이 없다. 21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당을 “반일 외치며 정치이득 취한 존재”로 규정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주변에는 “지지율이 한 자리로 떨어져도 한일 문제는 해결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윤 대통령에게 궁금해하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일 관계를 풀려는 속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는 교과서적 답변 말고 실존적인 진짜 이유 말이다. 필자는 전직 외교관에게 힌트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단임제 특성상 역대 대통령은 돌고 돌아 외교안보 이슈에서 자기만의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처럼 지지층이 반대하는 결정으로 지금까지 평가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자원외교, 원전 수주 등 나라 밖에서 승부를 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허상이었지만 집권 내내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매달렸다. 단지 대통령 직무의 한 축이 외치라서 그랬을까. 그에 못지않게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갈리고 협치 가능성이 사라져가는 정치 환경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로 여야 간 대화가 막혀 내년 4월 총선 전까지는 입법을 통해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정치 입문 전 외교안보 분야 경험이 거의 없던 윤 대통령이 이 분야에서 중대한 모멘텀을 맞이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숙명적인 요소도 있다.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러 일본에 간 것도, 4월 미국 국빈 방문도 공교롭게 12년 만이다. 5월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를 찾아 한미일 정상회담을 할 듯하다. 3-4-5월로 이어지는 릴레이 외교 행보는 국내에 미칠 파장이 직접적이다. 특히 한일 정상회담 성과가 채 마무리되지 않을 시점에 미국을 찾는 윤 대통령은 실질적 확장억제 강화와 반도체법 등 한국 기업을 조여 오는 바이든판 ‘아메리칸 퍼스트’ 대처라는 2개의 중차대한 숙제를 받게 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권의 적폐를 갈아엎고, 이재명 대표를 사법적으로 응징하는 것이 윤 대통령의 사명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에겐 시대를 뛰어넘는 성과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한 진영의 정치적 축배에 그칠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윤 대통령은 새로운 승부처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2023년 봄 미국과 일본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윤석열 정권 상반기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