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2) - 비정규직 농성중단 끊임없이 압박...아름다운 연대, 아름다웠나
“2010년 12월 8일 식사 준비 하지 말라는 ‘오더’ 있었다”
통합진보당 울산 남구갑 예비후보로 출마한 이경훈 전 현대차 정규직노조 지부장에게 쏟아지는 가장 큰 비난은 이경훈 전 지부장이 기본적인 인권인 ‘밥’을 가지고 비정규직투쟁을 압박했다는 점이다. 재작년 겨울 25일간 현대차 공장 점거 농성을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이경훈 전 지부장에 대해 이런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참세상>이 당시 정황을 취재한 결과, 밥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차 울산 1공장 2층에서 농성을 하고 있던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농성중단을 선언하고 공장 밖으로 나오기 하루 전인 2010년 12월 8일,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농성자들이 먹을 밥을 아예 준비하지 않았다. 이날 비정규직 노조가 농성을 해제할 것이라는 정규직 노조 누군가의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농성장으로 비정규직 식사 반입을 담당했던 정규직 노조 관계자 A씨는 <참세상>과 통화에서 “8일 오전 평소 식사 인원수 등을 알려주던 (정규직 노조) 모 실장으로 부터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과 수석 부지회장이 내부적으로 정리를 해서, 농성을 풀고 내려가기로 결정했으니 오늘은 밥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더(order)가 왔다. 그래서 그날 밥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그날 밥이 전혀 올라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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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훈 전 지부장 |
그러나 8일 오전 비정규직이 농성을 해제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으며 그와 비슷한 통보도 없었다. <참세상>은 이를 비정규직 노조 핵심 관계자들에게 재차 확인했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는 7일 밤까지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교섭을 전제로 농성을 먼저 해제 하지 않는다”며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의미 있는 교섭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농성을 풀지 않을 것을 거듭 확인하고 정규직 노조에 통보한 바 있다.
당시 금속노조에서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어 농성단 상황실에 함께 있었던 박점규 전 금속노조 교섭국장은 “8일 아침에 농성장 입구를 사수하던 정규직 노조 상무집행 간부들이 모두 철수했는데 농성단이 내려온다는 판단을 했다면 상집간부들이 철수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또 그날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할 이유도 없었다”며 식사 반입 중단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날 식사 반입 중단과 더불어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취한 일련의 행위는 다음날 전격 발표된 농성 중단 발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비정규직 농성단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8일 전부터 이어졌던 이경훈 전 정규직노조 지부장과 정규직 노조의 농성중단 압박은 8일에 최고조에 달했다”며 “결국 8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다음날 농성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8일 날 식사가 한 끼도 들어오지 않자 농성 중인 비정규직들의 마음은 강하게 흔들렸다. 25일 동안 침낭도 없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조합원들에게 그나마 제공되던 김밥 한 줄 조차 끊긴 것은 큰 고통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정규직 노조가 밥을 넣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었다.
당시 한 비정규직 조합원은 “8일 날 배고픔이 겹친 데다 가압류 협박까지 이어지자 가족들의 본격적인 회유가 빗발쳤고, 가족과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더 농성을 이어가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농성을 해제하던 날인 9일 조합원 총회에서 “지금 이탈하는 조합원들은 더 이상 배가 고파서 못 하겠다고 농성장을 나가고 있다. 배고파서 나가는 조합원들을 데리고 어떻게 끝까지 갈 거냐”고 비정규직 노조 지도부에게 농성을 풀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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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들은 정규직화에 대해 현대자동차 사쪽이 의미있는 합의라도 해야 농성을 중단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정규직 노조는 어떤 교섭이든 열기 위해서는 먼저 농성을 중단하고 교섭 내용도 현안 문제 해결을 주로 하자고 요구했다. |
탄압의 분수령이었던 2010년 12월 8일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연대 파업 찬반일이기도 했던 12월 8일은 탄압의 분수령이 됐다. 일단 회사는 12월 8일 종일 전기를 끊었다. 울산동부경찰서는 현대차 울산 1, 2, 3 공장을 점거하며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비정규직지회 간부, 정규직 대의원, 금속노조 간부 등 10명에게 추가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현대차 사쪽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323명에 대해 3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울산지방법원에 냈다. 이날까지 손해배상 소송 대상자는 419명이었으며 청구금액도 162억 원에 달했다.
회사와 정권 차원의 전 방위적 압박과 더불어 정규직 노조의 압박도 함께 진행됐다. 문제가 된 12월 8일 정규직 노조의 심리적 압박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농성장 입구를 지키던 정규직 상무집행(상집) 간부 철수, △비정규직 지원 총파업에 대한 정규직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 실시(비정규직 지원 총파업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에서 결정했음에도 이경훈 집행부는 굳이 정규직 노조 차원의 찬반투표를 강행했다), △식사 반입 중단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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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동안 침낭도 없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조합원들에게 그나마 제공되던 김밥 한 줄 조차 끊긴 것은 큰 고통이었다. |
박점규 전 국장은 “전날인 7일 저녁 비정규직 노조가 국회의원들의 중재안인 ‘선(先) 농성해제’ 요구를 최종 거부하자 정규직 노조는 8일 오전에 관리자들을 막아주던 상집 간부들을 농성장 입구에서 철수시키고, 이미 금속노조에서 총파업을 하기로 의결한 상태인데도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오전에 이 소식이 농성장에 알려지고 회사의 손해배상, 경찰의 수배자 확대도 알려지자 점심 무렵 농성장 이탈이 시작됐다. 그런 와중에 저녁 까지도 전혀 밥이 들어오지 않자 집단적으로 이탈하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정규직 노조가 이 세 가지로 농성해제를 압박한 것은 파업 파괴행위”라고 농성해제 전날의 숨 가빴던 과정을 설명했다
하루 두 끼 올렸다던 식사, 알고 보니 한 끼 분...농성 장기화 막기 위해?
밥과 관련해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됐다. 농성장에 실제 반입된 식사량이 농성 인원수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는 것이다.
당시 비정규직 노조의 핵심 관계자 B씨는 “농성이 장기화 되면서 정규직 노조 상집 간부 한명이 ‘우리는 최소한 하루 두 끼 이상 꼬박꼬박 올려주는데 왜 한 끼 밖에 못 먹는다는 소리가 들리느냐. 비정규직 노조가 식량을 비축하는 것이냐’고 묻더라”며 “그래서 ‘실제 한 끼 밖에 안 온다’고 그랬더니 그 분이 ‘농성장 안에 150명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저희가 정말 놀란 일 중 하나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실제 농성자 수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B씨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말을 안 믿고 자기들 스스로 우리 인원 파악까지 하면서 밥을 올려준 것”이라며 “많은 농성 이탈자가 생긴 후 농성 마지막 날 내려간 인원도 249명이었다. 그전엔 300명 가까이 있었다. 정규직 노조가 식사를 150인 분을 올렸으면 하루 한 끼 밖에 안 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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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해제 하루 전날인 12월 8일 현대차 노조가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 한다고 낸 소식지. 12월 6일 이상수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 '선 농성해제'에 동의했다고 왜곡한 확대운영위 과정 설명이 담겨 있다. |
박점규 전 국장도 “농성이 장기화 되면서 밥 숫자가 많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제가 상황실에 있었기 때문에 밥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얘기했지만 정규직 노조가 짐작한 숫자만큼만 올려 보냈다”며 “이렇게 한 끼만 올라오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이경훈 전 지부장과 정규직 노조를 더욱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비정규직 농성자들은 실제 농성 막바지 10여 일 동안 하루 한 끼를 먹거나, 두 끼를 먹는 날은 비축해 놨던 과자나 컵라면, 초코파이 등으로 다른 끼니를 때웠다. B씨는 “정규직 노조 간부가 저희들에게 식량비축을 한 것이냐고 물은 것은 ‘농성을 장기화 하려는 것 아니냐’는 압박으로 읽혔다”고 밝혔다.
정규직 노조에서 추정한 비정규직 농성자 수와 실제 농성자 수 사이에 이 같은 차이가 난 것을 두고 비정규직 노조는 “상집 간부들이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농성장 추가 진입을 막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밝혔다.농성장 입구를 지키던 정규직 상집 간부들이 농성장 사수 역할 외에 비정규직 농성단의 출입 관리 역할도 함께 했다는 것이다.
B씨는 “식사 인원수 얘기를 통해 우리는 정규직 노조 상무집행 간부들이 농성장 입구에 서서 비정규직 인원통제 행위도 함께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상집 간부 중 일부는 누가 나가는지 체크하고 들어오는 조합원은 들어오지 말라고 해 조합원들이 항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여러 루트를 통해 농성장에 들어와 정규직 노조가 파악한 인원과 실제 인원에 두 배나 차이가 났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공장 바깥에서 식사 문제 등의 실무를 맡았던 비정규직 노조 C씨는 “원래는 농성장 입구를 1공장 대의원들이 돌아가면서 사수했다. 그런데 농성이 장기화되는 15일째 즈음 대의원을 철수시키고 정규직 노조 상집 간부들이 출입 관리를 하겠다고 하면서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한 사람도 못 들어가도록 오히려 상집 간부들이 막았다. 우리가 회사 눈을 피해 다른 루트로 농성장 입구까지 가도 정규직 상집 간부들이 막았다”고 분개했다. 농성장에 비정규직 조합원이 늘어나 농성이 장기화되는 것을 우려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농성장 진입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당시 정규직 노조 간부 A씨는 이런 의혹들을 모두 ‘오해’라고 일축했다. A씨는 “비정규직들이 밥 문제를 가지고 오해가 많다”며 “정규직 노조가 사쪽 관리자들과 매일 충돌을 하고 다쳐가면서 밥을 올리려고 한 노력도 봐야 한다”고 정규직 노조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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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장에 식사를 넣기 위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며 아름다운 연대를 강조하는 당시 현대차 정규직 노조 기획광고 |
농성 해제 전날, 이경훈 전 지부장 “투표함 개봉” 최후통첩
8일 계속되는 정규직 노조의 압박과 회사, 정권의 압박으로 인해 비정규직 농성자들의 집단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는 와중에 이경훈 전 지부장은 이상수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B씨에 따르면 8일 저녁 이경훈 전 지부장은 비정규직 노조를 찾아와 “다 죽든지 말든지 선택을 하라”며 “정규직 지부는 오늘 진행했던 파업 찬반 투표함을 개봉하겠다”고 최종 통보했다.
이와 관련해 B씨는 “당시 투표 결과로 압도적인 반대가 예측됐던 상황에서 개표를 강행하겠다고 한 것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반대를 명분삼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연대투쟁에서 빠지겠다는 의미였다”며 “농성해제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이어 “그날 이경훈 전 지부장이 우리에게 ‘최후 선택권을 주기 위해 지금 투표함 개표를 안 하고 있다. 더 농성을 이어간다면 투표함을 개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공권력 투입에 대한 언급도 해 엄청난 압박이 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B씨에 따르면 이경훈 전 지부장이 최후통첩을 하고 난 뒤 정규직 노조의 핵심 관계자가 농성장에 올라와 비정규직 쟁의대책위원들에게 “너희가 정규직 노조의 손을 버리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떻게든 이경훈을 달래야 한다”며 농성을 해제하라고 설득했다.
한편 박점규 전 국장은 파업 찬반 투표결과를 ‘반대’라고 예상한 이유에 대해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비정규직에 힘을 보태자. 파업을 하자’고 적극 설득했으면 조합원들은 찬성에 나섰겠지만 이경훈 집행부는 부결이라는 표현만 직접 쓰지 않았을 뿐 부결 선동을 노골화했고, 외부 세력 운운하며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 갈등을 유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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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조 농성 중단이후 정규직 노조가 발행한 신문내용. 이경훈 전 지부장은 이 글에서 투표 결과 개표가 비정규직과 정규직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비정규직 지원 연대 파업 투표 결과를 사전에 알고 있다는 것이다. |
아름다운 연대라고 자화자찬 했던 이경훈 전 지부장의 농성중단 요구
농성 해제 하루 전날인 2010년 12월 8일 발생한 일련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그 무렵 ‘선(先) 농성해제’를 둘러싼 이경훈 전 지부장의 행보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2010년 11월 24일부터 26일 사이 정규직 노조와 금속노조, 아산, 전주,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3주체가 회사에 교섭 요구안을 결정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교섭요구 안은 정리 되지 않았다.
당시 정규직 노조는 농성 사태의 발단이 된 사내협력 업체 동성기업 폐업 문제와 고소고발 문제 해결에 주력하려고 했던 반면 비정규직 노조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더 절실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자 11월 26일 밤 이경훈 전 지부장이 직접 농성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모아 놓고 파업 찬반 투표를 운운했다.
“(정규직) 지부는 이제까지 여러분의 투쟁을 엄호하고 지지해 왔다. 여러분 얘기처럼 바로 정규직화 되면 좋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냉혹하다. 사측을 협상에 끄집어내야 협상을 해서 정규직화든 뭐든 한다. 24일 6시간 동안 회의를 해서 3주체 의견 안을 냈다.
그런데 여러분이 뽑아준 지회장이나 금속노조 위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내 맘에 안 든다고 내가 뽑아준 조직의 지도자를 부정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어렵사리 논의 안에 합의했다. 그걸 놓고 중앙쟁의대책위원 몇 명이 ‘안 돼’ 하면 제가 직접 여기 계신 분들을 만나야 한다. 대표자끼리 한 얘기를 부정하면 발전이 없다. 마지막 3자 결론을 내기 위해 비정규직 지회에서 오늘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정리해서 회사를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 오늘 정리가 안 되면 저는 마지막 총회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경훈 전 지부장이 언급한 ‘마지막 총회 선택권’은 상급단위인 금속노조가 결정한 비정규직 노조 지원 연대파업을 조합원 파업 찬반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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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비정규직 노조는 12월 7일 밤 쟁의대책위를 열고 △회사와 교섭을 전제로 1공장 농성을 먼저 해제하지 않는다는 선 농성해제 불가 원칙을 확인했다. |
하지만 비정규직 쟁의대책위는 27일 새벽 1시 30분까지 회의를 하고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 없이 농성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합의안의 문구로 요구했다.
그러자 12월 6일 현대차 정규직 노조 확대운영위는 “현대차지부(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파업에 따라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12월 8일 실시한다. 8일 이전 교섭창구가 개설되면, 현대차 지부는 총회 소집을 연기하고, 비정규직지회는 1공장 농성을 해제한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농성은 비정규직이 하는데, 정규직 확대운영위가 그냥 교섭이 열리면 무조건 농성을 중단하라고 협박한 것이다.
정규직노조는 이 과정에서 이상수 전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 농성중단에 합의했다고 교묘하게 언론에 흘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화 성과 없는 선 농성해제에 합의한 적이 없다”고 곧바로 반박하기도 했다. 이경훈 전 지부장이 확대운영위 도중 정회를 하고 이상수 전 지회장과 독대한 내용을 왜곡 편집해 확대운영위에 전달한 결과였다.
당시 비정규직 노조 핵심 관계자 B씨는 “당시 정규직 노조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빨리 농성을 해제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이경훈 전 지부장은 농성을 풀면 비정규직 조합원과 만날 수 있게 하고 현장 활동도 보장한다고 했지만 비정규직 노조의 현장 출입을 사측이 막아도 지부가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정규직 노조는 오로지 빨리 농성을 정리하려는 마음만 있었다. 결국 아름다운 연대는 면피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경훈 전 지부장이 파업을 정리시키기 위해 한 각종 제안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고 지키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받았지만, 그걸 외면하고 가기는 힘들었다”며 “힘이 막강한 정규직 노조 요구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경훈 전 지부장은 3일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이나 정규직화 모두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작은 것부터 아름다운 실천을 하는 것이 저희들 책임이라고 생각했다”며 “정규직화는 (당시에) 제가 지금 처리할 수 없는 문제라고 (비정규직 노조에) 솔직하게 얘기했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정규직화에 대해선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하고 농성 해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했다는 것이다.
이경훈 전 지부장은 또 “전국의 어느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철폐 문제로 이렇게까지 한 위원장이 있느냐”며 “저도 당시 25일 동안 노노갈등을 막고 아름다룬 연대를 위해 매일 관리자들과 몸싸움을 벌여 아직도 오른팔이 안 좋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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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 초기엔 하루 두끼 식사 분이 안정적으로 들어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줄을 서서 음식물 등을 옮겼다. 하지만 농성이 장기화 되면서 이 줄은 없어졌다. |
판도라 상자를 연 대법원,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하라” 판결
선 농성해제 논란은 정규직화 교섭은 나중에 하자는 것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진행된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들의 공장 점거 파업은
대법원의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판결’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이 판결에 따라 실제 도화선이 된 사내 협력업체 동성기업 폐업 문제로 공장 점거 농성 돌입 순간부터 회사에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교섭을 요구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최병승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비정규직 해고자)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결에서, 최병승 조합원이은 현대차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파견되어 현대차로부터 직접 노무 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판결했다. 현대자동차 같은 제조업엔 분야에서 근로자를 파견하면는 것은 불법이다.
대법원은 “2005년 7월 1일 이전에 입사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원청회사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한다”며 “최병승 조합원은 2004년 3월 13일부터 현대자동차에 의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판시했다. 2004년 3월 13일부터 법에 따라 이미 정규직이 돼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어 비정규직 농성돌입 3일 전인 2010년 11월 12일 서울고등법원도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로 일하다 2003년 노조결성을 이유로 사내하청업체로부터 해고된 김준규 조합원 등 7명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7명 모두 불법파견임을 재차 확인했다. 7월 22일 대법원이 판결한 최병승 조합원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과 같은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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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장으로 올라 오는 계단 |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를 외면하던 사법부가 불법파견 판결을 확정짓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2005년에도 불법파견 철폐 점거 농성이 있었지만 그때는 법원이 비정규직에 등을 돌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승리에 반신반의 했다. 대법원 판결을 등에 업은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 열망은 현실가능한 일이 됐고, 농성장의 추위와 배고픔도 잊게 했다.
이런 정당성 속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당장 정규직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의 교두보를 마련한 후에 농성을 풀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이마저도 이루지 못하고 농성을 중단했다. 그리고 유일한 무기를 잃은 농성중단의 결과는 참혹했다.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 중단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국회의 권고안이라도 도출해낸 한진중공업 사태와 비교해 보면 농성 중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경훈 전 지부장의 농성 중단 압박은 현대차 비정규직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0년 11월 20일 비정규직 농성 당시 농성장 안 진입이 좌절되자 공장 바깥에서 결의대회 도중 분신을 시도해 3도 화상을 입었던 황인화 조합원은 <참세상>과 통화에서 “정규직 노조의 역할이 비정규직 투쟁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금 새로 바뀐 현 문용문 현대차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태도와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인화 조합원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휴직 연장이 안 되서 현장으로 복직했고, 올 1월 2일부터 비정규직 노조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인하 조합원은 얼굴에 아직 화상으로 인한 흉터가 남아있지만 몸 상태는 많이 회복됐다고 전했다.
황 조합원은 “재작년 농성 투쟁으로 해고된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정문 앞에서 수요 집회를 할 때마다 회사가 버스 3~4대를 가지고 정문을 막아도 이경훈 전 집행부는 그냥 묵인했다. 정규직 노조가 묵인 하니 회사가 대놓고 집회 훼방을 놨다”며 “하지만 현 문용문 지부장으로 바뀌고 나서는 정규직 노조가 수요 집회 방해 버스를 책임지고 치워주겠다고 밝혔다. 이경훈 집행부 때는 ‘회사에서 하니 어쩔 수 없다. 버스를 치우라고 말을 해도 회사가 안 치운다’고만 했지만, 문용문 집행부는 ‘회사가 치우지 않으면 우리도 집회를 같이 하겠다. 우리가 버스를 치워주겠다’고 한다. 이런 차이다”라고 설명했다.
황인화 조합원은 이경훈 전 지부장의 통합진보당 예비후보 등록을 두고는 “통합진보당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그 당의 정체성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보라고 말은 하지만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같아선 이경훈 전 지부장을 따라다니며 낙선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가 이렇게 비정규직 투쟁을 망쳤다고 알리고 다니고 싶다”고 복잡한 속내를 토로하기도 했다.
정규직 노조의 농성장 출입 관리 행태를 지적했던 C씨도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이경훈 전 지부장에게 아픈 기억이 있다. 그의 출마로 비정규직들은 분개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노조도 이 전 지부장의 출마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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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점거 농성 5일째인 12월 19일 오후 4시께 이경훈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지부장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당시 진보신당 대표, 홍영표 민주당 노동위원장등 야당 국회의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농성장을 찾았다. 이 자리엔 당시 진보신당 부대표였다가 민주통합당 당대표 후보에 나선 박용진 전 부대표와 19대 총선 울산 북구 통합진보당 예비후보로 나선 당시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도 함께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