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헤르만 헤세 "데미안" 명언에서 시사점
[출처]: 중국고대사서 고찰을 통한 수구리의 우리고대사
--> https://tnrnfle.tistory.com/90
1) 새는 알에서 태어났다
--> 우리가 배운 한국 역사는 반도사관에서 태어났다
(반도사관은 대학 역사 교수들이 일본서기를 연구하면서 공고화시켰다 )
2) 그 알은 세계다
--> 반도사관은 학교에서 배우고, 알고 있는 우리 역사관이다
3)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우리 고대사 실체를 찾으려는 사람은, 반도사관을 파괴해야만 한다
4) 새는 신에게로 간다
--> 반도사관에서 벗어 났을 때,
우리 선조인 동이족의 가슴 벅차는 위대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 많은 오류와 윤색, 과장이 있는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삼국사기를 해석하거나 일본서기로 우리고대사를 채우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1) 년도가 120년 틀리고(이주갑 인상),
(2) 백제왕명(초고왕, 귀수왕-> 근초고왕, 근구수왕)도 틀리는 등의
많은 오류와 윤색, 과장이 있는 일본서기로 우리고대사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은
대하 역사소설은 될 수 있어도, 역사적 사실은 될 수 없다
따라서
1) 삼국사기 기준으로 일본서기 내용이 교차검정되면 우리고대사로 이용가능하다
2) 교차검정되지 않으면 일본 열도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나라 이름이면 일본열도에 있었던 나라로 봐야한다
3) 교차 검증되지 않는 일본서기의 신라, 백제는 일본열도에 있는 신라, 백제 분국
일본서기의 임나는 일본열도의 가야 분국들로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주) 일본열도에 있었던 신라 분국 사례
(1) 신공황후 원년(AD 200) 신라 정벌에서 신라는 이키섬(壱岐島)이다
후쿠오카 시카노섬(志賀島)의 서북쪽에 있고,
대부분 해발 40m이하로, 가장 높은 산이 해발 160m로 지대가 낮아서
해일에 의해 섬 대부분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섬은 이키섬(壱岐島)이니 이키섬이 신라다
(해발 100M이상의 산이 즐비한 대마도는 될 수 없다)
☞ 일본서기 신공 즉위전기 (중애 9년 9~10월 AD 200년)
"기록의 바닷사람 명초를 보내어 (서해로 나가서 나라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였다.
며칠 뒤에 돌아와서 “서북쪽에 산이 있는데 구름이 띠처럼 두르고 있었습니다.
무릇 나라가 있는 듯합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순풍이 불어 범선이 파도를 타니 노를 젓는 수고로움 없이도 곧 (신공황후가) 신라에 이르렀다
그때 배를 따라온 파도가 멀리 (신라) 나라 안에까지 미쳤다"
-. '기록의 바닷사람 명초' : 筑前國 糟屋郡 志珂(현재 시카노섬志賀島)에 있던 해인 집단의 일원
-. '배를 따라온 파도' : 해일의 발생
[원문] 使吾瓮海人烏摩呂, 出於西海, 令察有國耶. 還曰, 國不見也. 又遣磯鹿海人名草而令視.
數日還之曰, 西北有山. 帶雲橫絚. 蓋有國乎.
冬十月己亥朔辛丑, 從和珥津發之. 時飛廉起風, 陽侯擧浪, 海中大魚, 悉浮扶船.
則大風順吹, 帆舶隨波. 不勞櫨楫, 便到新羅. 時隨船潮浪, 遠逮國中.
(2) AD 2~3세기 호남(백제)에서 일본열도(구주) 건너가는 연안항해로
남해안 --> 거제도 --> 대마도(쓰시마) --> 일기도(이키섬) --> 쿠슈(구주)의 오키나와(복강시)
AD 283년 궁월군이 백제에서 일본열도(오키나와)로 가려고 했는데
이키섬(일기도)의 신라가 방해하여, 대마도(쓰시마)의 가라(임나가라)에 머물고 있었다
☞ 일본서기 응신 14년(AD 283년)
이 해에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와서
“신은 저희 나라의 인부(人夫)120현(縣)을 이끌고 귀화하고자 하였으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加羅國)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원문] 是歲, 弓月君自百濟來歸. 因以奏之曰, 臣領己國之人夫百廿縣而歸化.
然因新羅人之拒, 皆留加羅國.
※주) 삼국지 위서동이전 왜열전에
정시(‘正始’: AD 240~248년, 신공 40~48년) 년간에 비미호(신공황후)가 죽어서,
남자를 왕으로 세웠으니 피살되어,
종실의 여자(宗女)인 일여(壹與)가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 큐슈지역의 신공황후 왜는
AD 246년 경에 비류백제 의려왕(고이왕)에게 밀려서
신공황후(비미호)가 죽고, 신공황후(일여)가 오사카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2) 일본서기 신공 46년(AD 246년) 부터는
삼국지 위서동이전 왜열전의 비미호(신공황후)가 아니라 일여(신공황후)로
백제에게 큐슈지역을 빼앗기고 , 오사카 지역으로 이동한 왜로 봐야 한다
☞ 일본서기 신공 50년(AD 250년) : 일여(신공황후) 5년(오사카 지역)
이에 황태후는기쁘게 맞이하며 구저(백제인)에게
“바다 서쪽(큐슈)에 여러 한(韓)을 이미 너희 나라(백제)에게 주었다.
지금은 무슨 일로 빈번히 또 오느냐?”라고 물었다.
※주) 일여 신공황후가 오사카 지역으로 이동하여 ,기비(吉備) 지역에 임나 7국이 있었고,
1년전인 신공 49년(AD 249년) 기비(吉備) 지역의 임나 7국을 일여 신공황후가 평정하였다
■ 반도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
1) 많은 오류와 윤색, 과장이 있는 일본서기로 우리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니,
오류가 많은 일본서기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서기라는 우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된 것으로 보인다
2) 서기 600년 이전 중국 고대사서와 문헌을 연구하면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당태종이 본격적인 역사왜곡의시발점이니
당나라 학자들부터 본격적인 역사 왜곡이 시작되었다)
3) 해방후 80년 동안
많은 오류와 윤색, 과장이 있는 일본서기로 우리고대사를 연구하는 노력 대신에
사마천 사기와, 한서, 삼국지, 후한서 등 중국 고대 사서로 우리 고대사를 연구 했다면,
우리고대사의 위치와 영토를 정확히 확인하여
소실된 우리 고대사서들의 우리 고대사 원형을 복원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4)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근본 이유
당태종이 중국 왕조를 황제국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제후국으로
역사 조작을 통해 역사전쟁에서 당나라가 승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태종의 지시로 편찬된 진서, 북사, 남사에서는
고구려 ,백제에게 유리한 내용은 삭제되고, 불리한 내용으로 바꾸어 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백제가 천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수서나 구당서에 남아 있다)
■ 반도사관의 출발점은 해海의 틀린 해석 때문(원삼국 시대 : 고조선 열국)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삼한의 위치는 "(三)韓 東西以海爲限"
1)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낙랑군,대방군과 예 삼한 고구려 동옥저 등
고조선 열국들의 상대위치와, 영토 크기 및 지형적인 특성이 있다.
2) 고대 중국인은 큰 강이나 큰호수를 해(海)로 표현했다(바다도 해海라고 했지만..)
섬서성과 산서성 북쪽 내몽고 자치주에는 지금도 바다라고 부르는 호수가 여러개 있다
: 황기해(黃旗海),대해(岱海),합소해(哈素海), 오양소해(烏梁素海) 등
특히 하북성 중남부의 북쪽으로 흐르는 춘추시대 고대 황하를 사마천 사기에서 해(海)라고 했다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集解)徐廣曰:海一作河
조이의 특산품은 짐승가죽 옷인데, 갈석산을 오른쪽(서쪽)으로 끼고 황하(해海)를 통해 운송되었다
(집해) 서광은 해海는 하河(황하)다
3)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韓 東西以海爲限"을
삼한의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막혀있다고 해석하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가 되고,
위만조선/낙랑군은 대동강 평양이 되지만, 중국 고대사서 내용에 맞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1) 예=동예=예맥의 임금(예군濊君) 남여가 항복해서
BC128년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했는데,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낙랑군 동쪽에 있는 예=동예=예맥의 위치가
강원도 강릉지역이라면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가 아니다
(2)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할때 한나라 수군이 사용한 배가 누선인데,
누선은 강이나 연안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배다
따라서 누선은 발해만을 건너서 서해바다를 건서서 대동강 평양까지 갈 수 있는 배가 아니다
4)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韓 東西以海爲限"에서
동쪽 바다를 중국 동해(서해,황해)로 보고, 서쪽 바다를 춘추시대 고대황하로 보면,
삼한과 고조선 열국 위치는 중국 동부 지역되어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고,
중국 고대사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5)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고조선 열국 위치의 선택지는 2개뿐이다
첫째는) 해海를 바다로 해석하여 삼한을 한반도 남부, 낙랑군을 대동강 평양,
예=동예=예맥=맥을 강원도 강릉지역으로 비정하는 방법과(반도사관/식민사관),
둘째는) 해海를 하河로 해석하여 삼한을 중국대륙 동부, 낙랑군을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
예=동예=예맥=맥을 하북성 중동부 창주시로 비정하는 방법이다(대륙사관)
첫댓글 ■ 산해경에는 하북성 중동부 창주시에 있었던 (예맥)조선(번조선)은
찬자가 다스린다고 했다
☞ 산해경 해내경(山海經 海內經) :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他人愛之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있어 이르기를 조선은 천자(단군)이 다스린다
※주) 천독(天毒, 천자 천, 다르릴 독) : 천자(단군)이 다스린다
■ 고대 중국인들은 고조선의 단군과 배달국의 환웅을
천하(중국대륙 만주 한반도)를 다스리는 임금인 천자라고 했다
1) 한나라의 채옹이 지은 독단獨斷에 보면
천자는 고조선(이夷는 동이족, 적狄은 북방 민족)의 (임금을) 부르든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
[원문] 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
2)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황제에
구려의 임금이 치우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원문] 史記索隱:孔安國 曰九黎君號蚩尤
史記集解"應劭曰 蚩尤古天子之號
■ "산해경"에 삼한의 여라나라(개국)은
전국시대 하북성의 연나라(거연) 남쪽과 왜(양자강)의 북쪽에 있다고 했다
☞ 산해경 해내북경(山海經 海內北經)
蓋國 在 鉅燕 南, 倭 北.
(삼한의) 여러나라는 전국시대 연나라(거연)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다
※주) 개국(蓋國)
1) 춘추좌전이나 사마천사기 등 중국 고대 사서에 개국이라는 나라는 없다
2) 개국(蓋國, 여라 개, 나라 국) 이니 여러나라를 의미하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의해
연나라 남쪽, 왜의 북쪽에는 삼한이 있다
※주)거연(鉅燕)
1) 거(鉅) 는 "클 거", "강할 거"의 의미이니 전국시대 연나라로 하북성에 있었다
2) 하북성 남쪽이, 왜의 북쪽이니
하북성 남쪽 멀리에 왜가 있었으니, 왜는 양자강 지역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