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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CO, El / The Pentecost 1596-1600 / Oil on canvas, 275 x 127 cm Museo del Prado, Madrid
[야곱의 우물]<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성령 강림 대축일
● 독서: 사도 2,1-11 독서2: 1코린 12,3ㄷ-7.12-13 ● 복음: 요한 20,19-23
복음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시작기도 위로의 성령님, 제 두려움, 제 부족함, 제 나약함을 거두어 주소서. 그리하여 당신 말씀에 담대히 나아가 그 말씀 안에서 굳건한 용기를 얻어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세밀한 독서(Lectio) 문을 잠가놓은 것은 지독한 단절의 의지적 표현이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가운데에 서’ 계시는 것은 모든 인간적 의지를 꺾어놓으시는 강한 열림의 의지적 행위다. 오늘 복음은 두 의지의 대립에서 한 의지만을 읽어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죽음의 흔적을 보여주시는 예수님 안에서도 우리는 두 의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죽음의 흔적은 영원한 사라짐을 드러낸다. 그 사라짐에 ‘나타남’으로 대응한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죽어도 살아야 한다는 지독한 의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어떠한 의지에도 비길 수 없는 예수님의 유일한 의지가 부활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예수님의 이 의지는 또 다른 의지, 곧 인간의 자리에서 가능한 의지로 재탄생한다. 문제는 이 둘째 의지가 예수님이 아닌 우리 인간이 감당해 내고 실천해야 할 의지라는 데 있다. 두려움 가운데 평화를 만들어야 할 의지고, 죽음의 문화 가운데 생명의 강인함을 드러내야 할 의지다. 이 의지를 우리는 평화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평화는 예수님의 의지가 인간의 의지 안에 놓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에, 믿지 못해 의심하는 토마스 앞에 예수께서는 평화를 내놓으셨다. 평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신앙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신앙은 내 의지를 꺾고 주님의 의지를 담는 새로운 의지다. 내 의지이되, 예전의 내 의지가 아니라 나를 꺾고 만들어 내는 전혀 새로운 의지가 신앙이다. 단절의 ‘내’ 세계에서 열림의 ‘우리’ 세계로 나아가는 게 신앙이고, 이것은 보고 확인하는 내 인식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라는 인식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낯선 여행이다.
묵상(Meditatio)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신다고 한국교회가 들썩인다. 그분이 인기스타가 되어가는 요즘이 마뜩지 않다. 그분은 교황이고 성직자다. 성직자는 이래야 된다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계실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 열광하는 것 자체가 오늘날 참된 성직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반증이리라. 대개 인간은 ‘현실’을 살아간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어떻게든 세상과 호흡하고자 하는 노력은 잊어버린 채, 세상이 나를 조금이라도 편안케 해주길 바라면서 현실을 비껴가고자 하는 걸 우리는 ‘현실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극히 현실을 살아내고 있고, 현실을 더욱 현실적이게 만드시려 안간힘을 다하고 계신다.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며 그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들, 그 목소리는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이고 현실에 맞닥뜨리기 싫은 두려움에 젖은 비겁함의 신음일 테다. 최소한 비겁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기도(Oratio) 주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세상 안에 당신을 드러내고 당신을 증거 할 힘을 주소서. 아멘.
-야곱의 우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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